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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소리 - 열정의 피아니스트 임현정의 나의 이야기
임현정 지음, 양영란 옮김 / 청미래 / 2016년 10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가 얼마 전에 피아니스트
임현정 님이 쓴 <당신에게 베토벤을 선물합니다>를
읽고, 임현정 님의 또 다른 책 <침묵의 소리>를 읽겠다고 했잖아. 그래서 이번에 읽었단다. 제목은 <침묵의 소리>
임현정 님의 <침묵의 소리>는 프랑스의 출판사의 제의로 임현정 님이
프랑스어로 쓴 책을 양영란 님이 번역하여 우리나라에도 출간한 책이란다. 그러니까 임현정 님의 첫 번째
책은 우리나라가 아닌 프랑스에서 먼저 출간된 거야. 그만큼, 우리나라보다
외국에서 더 유명한 피아니스트야. 최근에도 프랑스 방송국에서 임현정 님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촬영하고
있다고 하더구나. 정말 멋진 분이시네.
임현정 님의 약력을 보면, 루앙 국립유학원 조기 졸업,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 최연소 입학,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 조기 수석 졸업, 베토벤 소나타 최연소 전곡
앨범 발매, 그 데뷔 앨범이 빌보드 클래식 차트와 아이튠즈 클래식 차트에서 한국인 최초 1위 기록 등 엄청난 이력을 갖고 계신단다. 이번에 읽은 <침묵의 소리>는
2016년에 프랑스에서 출간한 책이라고 하는구나. 임현정 님이 1986년생이니, 30년 인생과 음악이 오롯이 담겨 있는 책이란다.
1.
1986년 안양에서 늦둥이로 태어났다고 했어.
임현정 님의 태어났을 때 이미 아버지는 50이 넘으셨다고 했어. 아버지는 시골에서 무일푼으로 올라와 자수성가하신 분으로 안양에 건물도 갖고 계신다고 했어. 어렸을 때 임현정 님은 엄마와 유달리 친밀한 관계였대. 피아노를
치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말에 엄마는 임현정 님을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는구나. 곧바로 임현정 님은 피아노에
푹 빠지게 되었어. 피아노 앞에 있을 때 자유를 느꼈다는 임현정 님.
부모님도 딸의 자유에 간섭을 걸지 하고 원하는 대로 하게 두셨나 봐. 그래서 더욱 자유로울
수 있었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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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35)
아무튼 내가 전적으로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유일한 공간은 피아노 앞에서였다. 영혼이 느끼는 행복감은 한참 후에나 찾아오게 된다. 이 시점에서 나는 아직 피아노를 일종의 의무로 받아들였다. 내면적인
명령. 나의 임무. 아무도 나에게 신동을 만들기 위한 교육법이라든지
아주 세세한 전문적 방식에 따라 손가락, 손목, 팔 놀리는
법, 자세를 유지하는 법 등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아직 나는 모르고 있었다. 이 작은 피아노 학원을 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운인지를 짐작조차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무도 나에게 신동들이 강요받는 몸짓을 강요하지
않았으니까. 그렇다, 그것은 분명 다행이었다. 내 몸은 여전히 자유로울 수 있었으니까. 간혹 내가 사람들에게서
고양이처럼 연주한다는 소리를 듣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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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생이 되고 나서 프랑스
유학을 가겠다고 부모님께 이야기했다는구나. 엄마는 찬성, 아빠는
반대. 역술인이 나서서 임현정 님의 아빠를 설득했다고 하는데… 그렇게
무작정 떠난 프랑스 유학. 프랑스 콩피에뉴에서 생활을 시작했어. 그곳에
엄마의 친구의 아들 부부가 살고 계셔서 그 집에서 생활하게 되었단다. 엄마의 친구의 며느리 분이 자신을
‘이모’라고 부르라고 했어.
그런데 그 이모는 임현정 님한테 무척 엄하고, 현정 님 앞에서 대놓고 험담도 많이 하고
자신의 아이들과 차별하고 무시를 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알고 보니,
임현정 님의 부모님이 보내준 돈도 많이 떼어먹었다고 하는구나.
예민한 중학생 시절 그렇게
엄하고 차별 받는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 같구나. 학교 생활도 힘들었어. 프랑스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한 동양인 여자아이에게 프랑스 애들은 친절하지 않았어. 동급생들에게 차별 받고 그랬는데, 어느 날 피아노 한번 연주를 하고
나서는 친구들의 시선이 확 바뀌었단다. 그렇게 힘든 시절 임현정 님이 참아낼 수 있던 것은 역시 피아노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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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드디어 자유로울 수 있는
곳. 내가 음표들을 통해서 암울한 분노를 폭발시킬 수 있는 것은 축복이었다. 내 안에서 솟구치는 격랑은 내가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곳으로 나를 이끌었다.
음악이 나를 잡아당기고 이끌었다. 내가 거기에 기대서 내 몸을 지탱할 수 있도록. 완전히 낯선 이 세계에서 음악만큼은 나만의 동굴, 나의 피난처, 내가 몸을 웅크리고 안길 수 있는 가장 은밀하고도 친숙한 존재였다. 피아노
앞에만 앉으면, 그곳이 어디건, 나는 내 집에서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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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임현정 님은 콩피에뉴 음악원을
다녔는데, 마르크 오플레 선생님을 만났는데, 오플레 선생님은
바로 임현정 님의 재능을 알아보고,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 입학 시험을 준비하자고 하셨어. 이때 고국에 계시던 엄마가 처음으로 프랑스에 왔단다. 그리고 임현정
님이 머물던 집의 아줌마의 행적을 알게 되고, 바로 짐을 빼서 호텔로 옮겼다고 하는구나. 머물 곳을 찾고 있었는데, 오플레 선생님이 자신의 집에서 지내라고
하셔서, 임현정 님은 오플레 선생님의 집에서 지내게 되었어. 오플레
선생님의 부인께서도 임현정 님을 딸처럼 여기고 잘 보살펴 주셨다고 하는구나.
이제 더욱 피아노에 전념할
수 있는 임현정 님. 15살에 루앙 국립음악원에 입학을 해서 거처를 다시 옮기게 되었는데, 이 때는 엄마가 다시 프랑스로 오셔서 한동안 함께 지냈다고 하는구나. 자신을
보살펴 주러 엄마가 프랑스에 오셨지만,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프랑스말도 못하시는 엄마가 오히려 걱정이
되었어. 그러다가 교포분들과 알게 되면서 엄마도 프랑스 생활에 적응하셨고, 김양희 외교관님의 많은 도움을 받기도 했다는구나. 루앙 국립음악원에서는
지도교사와 마찰도 있어서, 지도교수 없이 혼자 파리국립 고등음악원 시험을 준비하기도 했어. 타고난 능력과 끊임없는 노력과 열정으로, 2003년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
입학을 했단다. 이 때 엄마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셨단다.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서는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했어. 그래서 자신만이 피아노를 사서 집에서 연주연습을 하려고 했지. 하지만 가정집에서 내가 원할 만큼 피아노를 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지.
그래서 도로변 차고형 아파트를 간신히 빌려서 정말 열심히 연습했대. 그 아파트 위치상 얼마나
위험한지도 몰랐고, 가끔씩 쥐가 출현하는 그런 집이었어도 피아노 연습만 할 수 있다면 참을 수 있는
젊음과 열정이 있었어.
…
이때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에서
공부하고 음악을 하면서, 불교에도 빠져들게 되었단다. 불교를
삶의 자세로 받아들이게 되었어. 아빠도 한 때 삶의 방식으로 불교를 공부한 적이 있었는데… 실천은 하지 못했지만 말이야. 임현정 님이 불교에 빠져들게 되었다고
하니 왠지 반갑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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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8)
나는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육체는 하나의 옷에 불과하며,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내가 아무리 재산이 많다고 해도 그것을 저세상에 가져갈 수 있는가? 나에게는 오히려 영원히 지속되는, 저세상에서도, 그 어디에서도 함께하는 나의 영원한 본질을 풍성하게 키우는 것이 진정으로 지혜롭고 온당한 것이었다. 내면의 본질적인 아름다움, 보이지 않는 섬세한 아름다움의 영원한
재산. 나는 그 재산을 끊임없이 늘리고 싶었다. 더불어 지금
열여섯 살의 내가 접한 불교의 신선한 가르침과 매일매일의 경험에서 얻는 깨달음은 조금씩 내 안에 새로운 자산이 되어갔고 탐험의 공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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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의 소개로 알게 된 성담
스님과 계속 교류를 하게 되었는데, 성담 스님으로부터 정신적 가르침을 많이 받았다고 했어. 이 책에서도 성담 스님의 가르침이 여럿 나와 있는데, 다 좋은 글들이었어. 그 중에 두 개만 소개해 볼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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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41)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께서
그분의 트레이드 마크인 유머와 간명함으로 나에게 한마디 해주셨다.
“부처가 되기보다 부처럼 행동하라. 부처행을
하는 자가 부처님이니 깨달음을 찾으려고 허망하게 시간을 보내기 말고 지금 즉시 각자 자리에서 부처행을 하라. 부처행이란
나 아닌 것이 없으면 나도 없다는 걸 깨달아 모든 생명이 행복하도록 도우면 부처행이다”
그렇다. “절대적인 완전함”을 계속 찾으며 헤맬 것이 아니라 지금 즉시 여기에서
그 “절대적인 완전함”을 삶과 음악으로서 표현하면 된다. 왜냐하면 그 절대적인 완전함, 즉 정신의 본질, 온전하고 완전한 참나는 영원한 영원부터 언제나 내 안에 있었고 영원히 있을 진정한 “나”이므로, 그것은 표면적인
“자아”, 혹은 껍질에 불과한 “나”가 아닌 나의 진정한 본질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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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많은 음악인들에게 큰
혼동이 되는 이 문제에 대해서 훗날 서대산인 성담 스승님은 그분만의 특유의 명쾌함으로 이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해주셨다.
“우리가 위대한 한 작곡가의 세계 속으로 깊이 들어갈 수 있다면, 그 음악은 깨달은 자의 음악이므로 우리 또한 그 작곡가의 진정한 본질에 도달하게 됩니다. 그때 우리는 그와 하나가 되며 우리 자신의 진정한 본질에도 도달합니다. 왜냐하면
각자가 가지고 있는 개체성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소위 말하는 ‘하나가 된 의식’과 연결되기 때문이죠. 온 세계를 놓고 볼 때, 어떤 존재도 다른 존재와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으나, 참자아, 즉 정신의 본질이라고 하는 것은 모두 하나이며 그것이 바로 우주의 의식입니다.
그때는 연주자와 작곡가 각각의 개성이 공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은 반드시 필요한 상호의존이 됩니다. 그렇게 해서 그 둘은 하나가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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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파리 국립 고등음악원을 조기
수석 졸업하고, 벨기에 엘리자베스 뮤직 채플에 합격하여 다니다가 기차에서 우연히 만난 마에스트로 리바노비치-바라콥스키를 만나게 되었고 그의 충고로 뮤직채플을 그만두고 임현정 님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만들어갔어. 그런 자신만의 음악을 추구하다 보니, 그 흔한 콩쿠르도 나가지 않았다고
하는구나. 그런 명예욕과 욕심도 없으시고, 오직 피아노에
대한 열정만 있으신 것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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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184)
유명한 작곡가들의 이름을
단 이 콩쿠르들은 모두 그들의 이름을 내세워서 그들의 이름을 걸고 진행하는데 고작 몇 명에게 상을 주고 그 나머지 몇 백 명들의 마음은 무너뜨리고
상심하게 했다. 정작 그 창조자들은 이런 비즈니스에 어떻게 반응할까?
정말 그들의 이름이 경쟁을 앞세워 음악도들을 모으는 비즈니스에 쓰이는 것을 그들은 원할까? 그들의
독립적인 정신이 그것을 허락했을까? 의문이다. 나는 그런
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벨기에 왕가에서 개설했다는, 음악에
열중하는 데에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삶의 조건을 제시하는 그 기관의 이름을 처음으로 접하자 나는 나의 인생의 마지막 시험에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이제 겨우 스물 살밖에 안 되었지만 내 안의 무언가는 휴식을 필요로 했다. 아니, 내 안에 있는 그 무언가는 이제 보살핌을 필요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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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에스트로 리바노비치-바라콥스키는 임현정 님께 많은 독주회를 주선해주었고, 그 연주들을
인터넷에 올려보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고 하는구나. 그런데 그런 영상들이 많은 사람들이 보게 되면서, 임현정 님이 유명해지셨대. 그리고 어느날 영국의 유명 매니저인 재스퍼
패로트로부터 연락이 와서 전속 계약을 맺었대. 이후 임현정 님은 더욱 실력을 인정 받게 되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데뷔앨범으로 베토벤 소나타 전곡 앨범을 발매하기까지 한 거야.
...
어린 나이에 프랑스로 홀로
유학을 가는 담대함은 어디서 온 것이며, 타고난 피아노 실력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열정은 어디서 온 것일까. 정말 대단한 분이신 것
같구나. 그리고 글도 정말 멋지게 잘 쓰셨어. 주옥 같은
글들도 많아서 아빠도 여러 곳 발췌하면서 다시 읽곤 했단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도 연주를 자주 하시는데, 언젠가는 아빠도 한번 공연을 직접 보고 싶구나. 너희들도 함께 가면
더욱 좋고 말이야.
…
임현정 님께서 최근에 우리나라에서
공연도 하셔서 너희들과 함께 공연을 보러 가도 좋겠지만, 코로나가 우리들의 발목을 잡는구나. 오미크론이 극성인데 오미크론이 가고 나면 부디 더 이상 다른 코로나 바이러스는 찾아오질 않았으면 좋겠구나. 그래서 마스크 벗고 공연장도 걱정 없이 다니고 말이야. 마스크 일상이
너무 오래되었어. 이젠 그만 할 때도 되었는데… 올해는 꼭… 부디…
PS:
책의 첫 문장: 아이다운 아이였던 적이 없는 나는 런던의 거대한 로열 앨버트 홀에 들어선다.
책의 끝 문장: 엄마, 아빠의 영원한 막내딸로서.
영원히 사랑합니다.
아이다운 아이였던 적이 없는 나는 런던의 거대한 로열 앨버트 홀에 들어선다. 수천 명은 족이 된다. 살아 숨 쉬는 육체를 이끌고 이곳으로 모요든 사람들. 음악을 통해서 거룩하고 신성한 숨결을 듣고, 느끼고, 호흡하기 위해서. 그것에 시종하는 것이 내가 하는 일이다. 그 숨결, 하모니의 숨결은 나의 영원한 열망이다. 청중들에게 인사한다. 박수 소리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잦아든다. 어떤 남자가 기침을 한다. 피아노는 잠자코 나를 기다린다. 의자에 앉고, 음악은 시작된다. 모든 것이 펼쳐진다. 음악은 그들이며, 나 자신이며, 당신이며, 침묵을 갈구하는 우리이다. - P11
이와 같은 과거에 대해서 아버지는 통 말씀을 안 하신다. 그렇지만 나는 아버지의 음성에서 징용자의 절규를 듣는다. 아버지의 목청 속에는 강제로 빼앗긴 모국어가 담겨 있다. 그리고 그의 두 손에는 일본인들의 구타가, 몸속에는 과학의 이름으로 실험쥐 신세가 된, 마치도 없이 생체이식을 당한 한국인들의 몸이 담겨 있었다. 아버지의 어깨에는 도저히 먹여 살릴 수 없었던 집안의 무게가, 뱃속에는 장남의, 한 남자의, 한 아이의 분노가 한 짐이었다. - P26
독창적인 해석이란 없다. 뚜렷하게 유일무이한 진정성 있는 해석이 있을 뿐이다. 비극적인 음악이라고 해서 반드시 비극적으로 연주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아차피 그 음악은 비극적일 수밖에 없다. 연주하는 사람이 음악과 하나가 된다면, 연주자가 감히 그 정도까지 자기 자신이고자 한다면 결국 그 자신은 숨결과 하나가 되며 우리가 "나"라고 알고 있는 그 나가 사라지게 될 테니까. 음악과 한 몸이 되는 것. 음악을 연주하고 해석하는 것을 멈추고 음악이 우리의 영혼을 아예 관통하는 것. 마침내 존재하기 위해서 사라지기. - P90
템포란 무엇인가? 음악에서 템포는 환상에 불과하다. 그저 작곡가가 실마리를 주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 한 인간이 마음에서 우러나와 어떠한 말을 속삭일 때 누가 그 어떠한 속도로 말을 하는지 따위에 신경을 쓰겠는가? 표현이 먼저이다. 열광하면 그것이 속도를 결정한다. 음악은 템포에 의해서 시작되지 않는다. 음악은 템포 속에 갇혀 있지 않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음악이 템포를 창조하는 것이다. - P92
음악은 바람의 소리에서 처음으로 생겨났으며, 강물이 흘러가는 소리, 물고기들의 움직임이 모두 음악의 원천이다. 음악은 안양의 다리 밑에도, 어린 나의 두 눈을 휘둥그렇게 만들던 나른한 물풀들의 움직임에도 이미 있었다. 음악은 자연이다. 또한 자연의 메아리다. 음악은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만들어내는 불규칙적인 흐름의 완벽함을 듣게 해준다. 반복되는 프레이징으로 모래사장을 향해 밀려와서 부서지는 파도. 하지만 밀려올 때마다 각각 늘 유일하며 개별적인 파도.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 이어지는 새의 노래. 억수처럼 쏟아지는 비와 봄날의 이슬비. 내면의 숨결에 몰아치는 열대 계절풍, 영혼의 루바토, 쿵쿵 뛰는 심장, 점점 더 빨리 뛰었다가, 겁을 먹기도 하며, 순간 평온을 되찾는 우리의 심장. 감정이 고조되면서 빨갛게 달아오르는 두 볼. 축축하게 젖은 손. 살아 있는 육체! - P175
서른 개의 소나타는 이를 테면 각각이 하나의 소설이다. 극한으로 치닫는 치열한 삶을 살았던 한 인간의 인생이 가지는 정수를 기념비적인 작품의 형태로 드러내 보이니까. 그 소나타 전곡을 연주한다는 것은 그 의 전 인생을 다시 사는 것이었다. 그 서른 개의 소나타를 나는 흔히들 습관적으로 해왔던 것같이 연대순으로 분류하는 것이 아니라 주제별로 묶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해야 총 99개의 악장을 효과적으로 파악할 수 있고, 이를 바탕으로 명쾌하게 이해되는 음악적 설계도를 완성시킬 수 있으니까 말이다. - P217
프랑스에서 연주할 때면 운다. 아주 많이 운다. 친구들이 청중들 속에 앉아 있는데 난 친구들과 함께, 우리 모두가 같이 함께 연주하는 것 같다. 한국에서도 운다. 드디어 전적으로 나의 거처와 강렬하게, 그리고 진정하게 소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은 안전과 사랑이 있는 곳, 용서와 평화가 있는 곳이다. 침묵의 거처이기도 하다. 그곳을 내 거처로 삼을수록 더욱 음악은 나에게 다가온다. - P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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