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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시를 향하여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이선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올 여름은 정말 더웠지. 에어컨이 없다면 이 더위를 어떻게 견뎠을까, 싶구나. 그런데 그 더위를 견디기 위해 켜 놓은 에어컨이 내년 여름을
더 덥게 만들거라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구나. 이 악순환. 아빠가 어렸을 때는 에어컨이 없었어. 여름방학 한창 더울 때(그래 봐야 지금보다는 덜 덥고, 기간도 짧았지만…) 집이 만든 그늘 아래 의자나 돗자리 깔아 놓고 불어오는 바람에 친구들과 장기도 두고, 혼자 있을 때는 책도 보고 그런 때가 생각이 나는구나.
여름에는 추리소설이 어울린다는 소리를 어디서 들었는지, 사촌 형 집에서
빌려온 코난 도일 문고판을 읽곤 했어. 아빠가 어렸을 때는 책을 거의 읽지 않았는데, 그 코난 도일 문고판들을 읽고 책이 재미있을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 그러면서
추리 소설에 매력에 빠졌지. 중딩 때인가 학교 도서관에서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을 처음 보고 또 한번
재미에 빠졌었어. 학교 도서관 시설이 좋지 않아 책이 많지는 않았지만 말이야. 주인공 포와로의 활약… 어른이 되어 책을 제대로 읽기 시작한 이후에도
아빠는 추리 소설을 즐겨 읽었단다. 주로 최근에 출간된 소설들이고, 옛
고전 추리 소설은 많이 읽지는 않았어. 작년에 오랜만에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을 읽고 앞으로도 가끔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지난 여름 한참 더울 때 무슨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책장에 꽂혀 있는 이 책을 빼
들었단다. 그래, 더운 여름에는 추리 소설이지… 라는 근거 없는 생각과 함께 말이야. 아빠가 게을러서 무더위가 다
지나가고 시원한 가을 바람을 맞으면서 너희들에게 이제서야 이야기를 해주는구나.
1.
제목은 <0시를 향하여>.
이 책의 주인공도 당연히 포와로인줄 알았어. 그런데 책 중반을 넘어서도 포와로가 나오지
않았어. 아빠는 등장인물 중에 짜잔 하면서 다른 사람으로 변장한 포와로가 나올 줄 알았는데, 그런 반전은 없더구나. 수사를 맡은 총경이 포와로라면 이렇게 했을
거야 라는 식으로 등장한 것이 전부였단다. 포와로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소설은 무척 재미있었단다. 역시 애거사 크리스티로구나.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가 전에 몇몇 인물들에 대한 에피소드들로 이야기는 시작한단다. 굳이 너희들한테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데, 나중에
등장할 때 도움이 될까 싶어 그냥 이야기해줄게. 트레브스는 여든을 앞둔 은퇴한 변호사란다. 가끔씩 법조인들과 모여서 어떤 사건에 대한 심리를 하면서 시간을 보냈어. 앵거스
맥휘터는 좌절감에 빠진 젊은이로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어. 배틀 총경은 열여섯 살 막내 딸 실비아가
학교에서 도난 사건의 범인이라고 해서 학교에 불려갔어. 그런데 실비아가 범인이라는 증거는 없고, 학교 교장 선생님이 심리 검사를 통해 범인으로 지목했다는 거야. 어이가
없어서, 배틀 총경은 자신의 딸을 믿었어.
..
자, 이제 본격적인 사건의 중심에 있는 인물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네빌. 유명한 테니스 선수. 오랫동안
같이 했던 오드리와 이혼하고, 케이라는 여자와 결혼했어. 케이는
젊고 부자였단다. 그런데 케이는 의심 많고 질투 많은 그런 여자였어.
네빌이 오드리와 이혼했지만 여전히 둘의 관계를 의심하고 그랬어. 그럴 거면 왜 네빌과 결혼을
했을까. 네빌과 케이는 여름 휴가로 먼 친척인 트레실리안 부인의 집에서 머물기로 했단다. 네빌이 오랫동안 트레실리안 부인으로부터 후원을 받아서 트레실리안의 초대에 응하기로 했어. 아내 케이에게도 물론 동의를 얻었지. 그런데 거기에 오드리도 같은
기간에 머물기로 했다는 거야. 오드리도 트레실리안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였거든. 그리고 트레실리안의 집에 오드리만 있는 것도 아니고, 트레실리안의
친척들과 지인들 등 많은 사람들이 머물렀어. 속 좁게 오드리 때문에 못 간다고 하기 그래서 네빌과 케이도
가기로 했어. 하지만 그곳에 온 사람들이 네빌과 케이와 오드리의 관계를 다 알고 있으니 앞에서는 이야기하지
않아도 뒤에서는 이러쿵저러쿵. 그런데 네빌과 케이와 오드리 셋 관계도 불안불안했어.
오드리는 이젠 네빌 부부와 친구로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네빌은
케이와 결혼을 후회하는 듯하며 다시 오드리와 재결합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 이런 분위기를 알아챈 케이는
불쾌해했고 말이야. 네빌은 그럴 거면 왜 이혼한 거야.
…
2.
트레실리안에 초대되었다가 자신이 묵던 호텔로 돌아간 트레브스가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단다. 앞서 이야기했던 은퇴한 나이 많은 그 변호사… 처음에는 그저 돌연사인
줄 알았는데,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고장도 나지 않았는데, 고장
팻말이 세워져 있었고, 그로 인해 심장병이 있는 트레브스가 계단을 오르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 그가 심장마비가 걸리지 않고 계단을 잘 오를 수도 있었겠지만, 누군가가
일부러 심장마비가 걸릴 확률을 높이게 했다는 것… 그가 다음 일어나는 사건들에서 진범을 찾아낼 수 있어
미리 죽였다는 것이 후에 밝혀진단다.
…
그가 죽고 나서 얼마 뒤 트레실리안 부인이 무엇인가에 맞아서 머리 왼쪽이 함몰되는 상처를 입고 죽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어. 그곳에서는 피 묻은 골프채가 놓여있었어. 보통
트레실리안 부인은 하녀 배레트의 보살핌을 받는데 하필 그날 하녀 배레트는 잠에 빠져 있었어. 배레트가
먹는 차에 누군가 수면제를 넣어 타 놓았던 거야.
…
초반부에 이야기했던 배틀 총경과 그의 조카이자 총감인 짐 리치가 함께 수사를 하기 시작했어.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 단순한 사건이었어. 옆에 떨어진 골프채에는
네빌의 지문이 묻어 있었고, 네빌의 방에서 발견된 감색 양복에는 피가 묻어 있었어. 누가 봐도 네빌이 범인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리고 전날 네빌과 트레실리안이
말다툼까지 있었거든. 그러나 네빌은 완벽해 보이는 알리바이가 있었어.
네빌은 트레실리안 부인과 말다툼을 하고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서 테드라는 사람과 술 먹고 당구 치고 새벽 2시 30분이 되어서야 돌아왔어. 사건
추정 시간은 네빌이 호텔에 머물고 있던 11시에서 12시
정도였고… 그리고 자신이 죽였다면 증거물들을 너무 어설프게 그냥 두었다는 것도 이상하고… 누군가 네빌이 죽인 것처럼 꾸미려고 한 것 같았어. 그럼, 누가?
수사를 하면서 새로운 증거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그 증거들은 범인을
오드리로 몰고 있었단다. 오드리의 피 묻은 손장갑이 발견되고, 감색
양복에 오드리의 머리카락과 화장품이 발견되었어. 누가 봐도 오드리가 범인처럼 보였어. 네빌과 케이의 결혼에 대한 일종의 복수라고 할까. 트레실리안 부인에
대한 원한은 직접적으로 없지만, 네빌에게 누명을 씌우기 위한 작전… 모든
증거들도 이런 시나리오에 딱 들어 맞았단다.
…
잠깐, 네빌과 오드리가 왜 헤어졌는지 잠시 이야기해야겠구나. 대외적으로 네빌이 오드리를 가멸차게 차 버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정은
좀 달랐다고 하는구나. 오드리가 에이드리언이라는 사람과 사랑에 빠져서 헤어진 거야. 그러니까 오드리가 네빌을 찬 것으로 볼 수 있지. 하지만, 네빌은 자존심이 센 사람이라서, 자신이 오드리를 찼다고 이야기하고
다닌 거였어. 그런데 오드리와 에이드리언의 사랑은 오래 가지 않았단다.
에이드리언이 교통사고로 죽고 말았거든.
…
3.
다시 사건의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지금부터는 완벽한 스포일러가 있단다. 하지만 추리 소설을 많이 읽은 이들이라면 추리 가능한 반전. 오드리는
궁지에 몰렸어. 결국 오드리는 절벽에서 자살을 하려고 했단다. 그런데
그때 오드리를 보고 있던 맥휘터가 말렸단다. 아빠가 편지 앞 부분에서 이야기했던 그 맥휘터. 자살하려다가 실패했던 그 맥휘터… 자신도 자살 시도의 경험이 있어서였는지
오드리의 자살을 막아냈단다. 그리고 오드리가 죽으려는 이유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오드리가 누명을 쓴 것이라고 생각했어. 그러면서 자신이 사건 당일에
본 것이 있다면서 같이 배틀 총경을 만나러 가자고 했어.
맥휘터는 자신이 본 것을 이야기했단다. 사건이 있던 날 밤 우연히
트레실리안 부인의 집을 보았는데, 누군가 담을 오르고 있었다는 거야…
남자였다고 했어… 그리고 그때 담을 오를 때 사용했던 젖은 밧줄이 창고에서 발견되면서 사건은
급반전이 이루어졌단다. 그 담을 오르고 있던 이는 네빌이었어. 그러니까
호텔에 갔던 네빌은 호수를 가로질러 다시 트레실리안 부인의 집에 와서 그녀를 죽이고 다시 호텔로 돌아갔던 거야.
다시 궁지에 몰린 네빌은 엉겁결에 자신의 죄를 자백하고 말았어. 사실 증거가 부족해서, 배틀 총경이 자백을 유도했던 것이란다.
그렇다면 네빌이 왜 그런 짓을 한 것일까? 그는 오드리가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진 것을 오래 전부터 마음에 두고 복수를 계획했던 것이란다. 아주 치밀한 계획과 함께… 네빌이 겉으로는 잘 나가고 사교성 좋은 테니스 선수인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콱 틀어 막히고 무서운 사람이었어. 어렸을 때 실수를 친구를 죽인 경험이 있는데, 그를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도 계획했던 것이라고 했었거든.. 그만큼
어렸을 때부터 살기를 몸에 품고 있었고, 비상한 머리로 살인 사건을 설계했던 것인데, 그만 들통이 나고 말았던 것이란다. 오드리도 그런 네빌의 본 모습을
결혼을 하고 나서야 알게 되었고, 그와 결혼 생활이 자신을 숨막히게 하자, 새로운 사람을 만나 일탈을 했었던 것이란다.
이렇게 소설은 끝이 났어. 무더위에 걸 맞는 재미있는 추리 소설 한
편 잘 읽었다… 이런 생각과 함께 말이야. 이 소설을 읽을
때만 해도 도대체 무더위는 언제 끝나나, 이런 생각도 들었는데, 세월은
또 빠르게 흘러 잡고 싶은 계절이 왔구나. 이 시원한 가을에도 추리 소설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
PS:
책의 첫 문장: 난로 주위에 모인 사람들은 모두 변호사이거나 법조계와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책의 끝 문장: “저는 결코 도망치고 싶어 하지 않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