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정로드 4000km - 대한민국 100년,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임시정부 투어가이드
김종훈 외 지음 / 필로소픽 / 2019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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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2019년은 대한민국 건국 100년이 되던 해였단다. 100년이라고 하면 매우 기념할 만한 시간인데, 아빠 기억으로는 그리 많은 행사가 있지는 않았던 것 같아. 아빠가 관심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말이야. 2019 4 11일 임시정부가 세워진 날을 즈음하여, 각종 매체에서 100주년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뿐이지, 어떤 행사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구나. 2018년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서는 대한민국 건국 100주년을 맞이하여 임시정부 26년의 여정을 따라가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고 하는구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고, 그 다큐멘터리를 기반으로 한 책이 바로 <임정로드 4000 km>인데, 그 책을 이번에 읽었단다.

전세계적으로 유명한 순례길이 있는데, 이 책의 지은이들은 임시정부가 행적을 따라 가는 임정로드도 순례길로 많은 사람들이 다녀갔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이야기했단다. 임시정부가 상하이에서 처음 만들어졌다고,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 광복을 할 때는 충칭(중경)에 있었다는 내용만 알고 있지, 중간에 여러 곳을 거친 것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세세한 곳들을 알게 되어 좋았단다.


1.

이 다큐에 참석했던 이들이 임정로드를 모두 다녀오는데 20 21일이 걸렸다고 한다. 일반 사람들이 가기에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짧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도 알려주고 있단다. 만일 시간이 넉넉해서 풀코스를 간다면, 이 책을 들고 지은이들이 다녔던 길을 그대로 가면 좋은 가이드가 될 것 같구나. 임시정부의 역사적인 장소와 사건에 대한 것만 이야기하는 주는 것이 아니라, 각 지역별로 주의해야 할 점과 숙박, 교통에 대한 정보도 주고 있는 좋은 여행 가이드라고 할 수 있단다.

서울을 출발하여, 상하이, 자싱, 항정우, 난징, 창사, 광저우, 류저우, 구이린, 충칭으로  이어지는 긴 여행길이었단다. 상하이로 출발하기 전에, 서울의 임시정부 관련 장소 먼저 소개해주었단다. 백범 김구 선생이 광복 후 국내에 들어와서 머물렀던 경교장을 소개해주었고,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세 분의 유해가 계신 효창공원도 소개해주었단다. 그분들이 효창공원에 그곳에 계셨구나, 이번에 알게 되었단다. 외국에서 돌아가신 분들이 그곳으로 모셔온 것도 백범 김구 선생이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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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이 1946년 고국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했던 일이, 당시 재일본조선거류민단 단장 박열 선생을 통해 윤봉길, 이봉창, 백정기 의사의 유해를 수습해서 국내로 모셔오게 한 것이다. 의거 이후 십수 년이 지났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이들을 위해 국가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긴구 선생께서 몸소 보여주셨다. 지금 우리는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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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 공원은 이렇게 애국지사들이 많이 모셔져 있는 곳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 같구나. 뿐만 아니라 효창운동장이 효창 공원 앞에 떡 하니 있어 가로 막고 있다고 하니,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이승만이 그런 일을 벌인 것이란다. 백범 김구 선생과 임시정부 인사들에 대한 열등감으로 한 짓이 아닌가 싶구나. 그 뒤의 박정희도 만만치 않은 짓을 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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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공원 입구부터 거대한 축구장(효창운동장)이 있습니다. 반세기 넘게 김구 선생과 삼 의사 묘역 남쪽을 막고 있습니다. 효창운동장 때문에 숨이 턱 막힐 지경입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9 <2회 아세아축구선구권대회> 개최를 구실로 독립운동가의 표를 이장하고, 운동장 건설을 밀어붙였습니다. 특히, 이승만 전 대통령은 김구 선생이 돌아가신 다음, 효창원에 경찰을 배치해서 시민들의 참배를 막기도 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만행이 이 전 대통령이 쫓겨난 뒤에도 계속된다는 점입니다. 1969, 박정희 정권은 김구 선생과 삼 의사 묘역이 능선으로 이어진 머리 쪽에 느닷없이 <북한반공투사위령탑>을 세웠습니다. 일본군 출신인 박정희 전 대통령 때 만들어진 건데, 이 역시 반세기 넘게 김구 선생의 묘역과 삼 의사 묘역 머리 쪽에 버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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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919 4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상하이에서 생겨났단다. 하지만, 그 정확한 위치를 모른다고 하는구나. 상하이의 서금이로라는 거리에서 생겼다고는 하지만,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몰라서 지은이들도 대략적인 위치를 추정하더구나. 정확한 위치는 아니더라도, 표지석이라도 하나 세워져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것 하나 없다고 했어. 이곳뿐만 아니라, 지은이들이 가는 임시정부 유적지 대부분이 표지석이 없어서 어디가 어딘지 정확히 모른다고 했어. 아무튼 알아두자꾸나. 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곳은 서금이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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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곳 서금이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한 장소다. 처음으로 대한민국이라 명명된 국가가 만들어진 곳이며, 지금 우리가 향유하는 대한민국 민주공화정이 정립된 곳이다. 우리 헌법이 세계만방에 공표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이 중요한 이유는 단순하다. 반복되는 건국절 논란에 마침표를 찍을 수 있는 역사적 장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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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관련된 분들을 소개해주었는데, 아빠가 알고 있는 분들도 많지만, 그렇지 않던 분들도 많았단다. 그 중에 대표적인 분이 예관 신규식이라는 분이란다. 나라가 망하고 두 번이나 자살 기도를 했다가 살아 남으신 다음, 임시정부에 온 인생을 희생하신 분이라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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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예관 신규식)의 집을 나오니 빗줄기는 더욱 강해졌습니다. 그래서 더 아쉬웠나 봅니다. 임시정부의 기틀을 마련했고, 외무총장과 국무총리 대리까지 맡으셨던 분의 거처치고는 너무나 초라했습니다. 운 좋게 선생의 집에 거주하는 중국인 아주머니의 도움을 받아 집 안을 자세히 살필 수 있었지만, 선생의 거주지 역시 대한민국 임시정부 첫 번째, 두 번째 청사처럼 아무런 표식조차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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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봉길 선생의 홍커우 의거와 도쿄에서 이봉창 선생의 의거 이후, 그 배후로 지목된 김구 선생은 피신을 할 수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피신한 곳이 중국 자싱이라는 곳이란다. 그곳에서 2년 동안 피신하고 있었는데, 그 때 도움을 주신 분이 중국인 주푸청이라는 분이란다. 김구 선생을 비롯하여 임시 정부 요인들을 2년 동안 도와 주신 것이란다. 당시 상황을 생각해 보면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  그 일을 주푸청과 그의 식구들이 해 주신 것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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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상상해보자. 이름만 알던 지인에게 무려 현상금 200억 원이 걸렸다. 정권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다. 결코 가까운 사이도 아니다. 오히려 남남에 가깝다. 만에 하나 그 사람을 숨겼다 발각당하기라도 하면 내 몸숨마저 위태로운 상황이다. 그런데 지인이 갑자기 나를 찾아와 숨겨 달라는 요청을 해왔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 대부분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혹자는 거절에 그치기는커녕 현상금 200억 원에 눈이 멀어 오히려 적극적으로 신고할지도 모른다. 1932, 중국인 주푸청 선생에게 찾아온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그리고 선생은 200억 유혹을 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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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백범 김구 선생의 자싱 피신 생활에 대한 내용은 좀 알고 있단다. 왜냐하면 오래 전이긴 하지만, 중국 작가 하련생님의 소설 <선월>을 읽었는데, 그 소설이 바로 백범 김구 선생의 자싱에서의 생활을 그린 것이었거든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구나. 너희들도 나중에 한번 읽어봤으면 좋겠어.


3.

일제 36년의 기억은 우리에게 아픈 기억들이 너무 많단다. 그 중에 가장 아픈 기억은 위안부들에 대한 기억이 아닐까 싶구나. 이번 임정로드 길에도 위안부들의 유적지가 있다고 하는구나. 난징에 있는 리시샹 위안소 유적진열관이 바로 그것이란다. 리지샹 위안소는 조선인 위안부들을 있던 곳이었단다. 그곳이 위안소가 있었던 곳이라고 확인된 것이, 위안부였던 고 박영심 할머니의 증언 때문이었다는구나. 중국에서는 과거 아픈 기억을 잊지 말자는 취지로,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을 만들었다고 하는구나. 우리나라에는 이런 진열관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중국에서 우리나라 위안부들을 위한 건물이 있다는 것에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구나. 그리고 진열관 광장에는 동상이 있는데, 위안부 시절 임신했던 고 박영심 할머니의 동상이 있다고 하는구나. 고맙긴 한데, 우리나라는 뭐하고 있나? 이런 생각이 들어 다시 한번 부끄럽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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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징 <리지샹 위안소 유적진열관> 2015 12 1, 정식 개관했다. 위안소를 주제로 한 전시관 중 압도적으로 아시아 최대 규모다. 평안도 출신 박영심 할머니가 이곳 두 번째 건물 19번 방에서 3년 동안 위안부 생활을 했다. 2003 11 21, 박 할머니가 현장을 찾아 내가 있던 곳이 여기라고 증언하자 중국 정부가 직접 나서 난징 중심부에 유적 진열관을 마련했다. 3,000m^2 규모로 1,600여 점의 전시물과 680장의 사진이 생생하게 보존돼 있다. 진열관 가운데에는 마당이 있는데, 한쪽 벽면이 70명의 할머니 얼굴 사진으로 구성돼 있다. 놓치지 말아야 할 사실은 70명 할머니 중 다수가 한국 출신이다. 광장 가운데 박영심 할머니가 위안부 시절 임신했을 당시 모습이 동상으로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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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화란 분이 있단다. 이 분도 아빠가 좀 알고 있단다. 예전에 정정화님께서 직접 쓰신 <장강일기>를 읽은 적이 있거든.. 시아버지 김가진과 남편 김의한이 독립운동을 위해 망명한 이후, 얼마 안 있어 여자 혼자의 몸으로 상하이까지 가시고, 광복 때까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안살림을 도맡아 하신 분이란다. 임시정부 요원 중에 그 분의 밥을 먹지 않은 분이 없다는 이야기도 있단다. 그뿐만 아니라 독립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몇 번이라 국내에 왔다 갔다 하시고, 대한애국부인회에서 활동하는 등 독립을 위해 많은 활동을 하셨단다. 하지만, 안타까운 것은 광복 후 그도 나라로부터 푸대접을 받았다는 것특히 백범 김구 선생이 돌아가시고, 남편 김의한이 납북된 이후로는 더욱 그랬다고 하는구나. , 안타까운 일이로구나. 정정화님께서 쓰신 <장강일기>를 다시 한번 읽어봐야겠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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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밖에 없던 것이,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 인사들이 그대로 미 군정에 부역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러난 일제의 자리를 미 군정이 채운 상황, 한평생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정정화 여사의 형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어렵게 서울에 자리를 잡았지만, 믿고 의지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가 1949 6 26일 암살당했다. 이후에 시련의 연속, 1950년 전쟁이 발발하자 40년 지기이자 독립운동 동지였던 남편 김의한이 납북되었다. 남한에 남은 정정화 여사는 부역죄로 끌려가 투옥당하는 등 잦은 고초를 겪었다. 여사는 1991년 사망할 때까지 세상에 나서지 않고 조용한 삶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의 의지와는 별개로, 일제 강점기와 미 군정, 이어진 독재정권이 그들을 가만히 두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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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 밖에 많은 분들과 유적지들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한 분만 더 이야기를 하고 마무리를 해야겠구나. 아빠도 처음 들어보는 분인데 조명하 선생님이라는 분이야. 그분은 익숙지 않은 대만에서 의거를 일으키신 분이란다. 꼭 기억을 해야 할 또 한 분의 독립 의사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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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하 선생, 아마 처음 들어보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처음에 조명하 의사의 이야기를 접했을 때 거짓말인 줄 알았다. 마치 무협지 주인공처럼, 혼자 무공(?)을 연마했다. 단도 한 자루를 던져 의거에 성공했다. 그것도 당시 히로히토 장인이자 육군 대장 구니노미야를 없애 버린 것이다. 1928 5 14, 대만 타이중에서 의거한 스물네 살 청년 조명하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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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나서, 느낀 점은 우리나라가 독립운동 유적지에 대해 너무 소홀한 것 같다는 것이야. 일단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 곳이 많았고, 관리되고 있는 곳도 다녀간 사람들이 너무 적단다. 그렇게 잊혀지고 찾는 이가 없고, 시간이 흐르면 그곳은 사라질 거야. 대한민국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임시 정부. 그 임시 정부와 독립운동가들이 활동했던 유적지들을 좀 잘 관리했으면 좋겠구나. 임시정부 요원들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들에게 고마움을 생각하고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너희들도 그러길 바래.

임정로드 4000km 말고 약산로드 7000km도 있다고 하는데, 그 책도 한번 보고 싶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임정 프로젝트>을 진행하며 가장 자주 내뱉었던 말이 있다. “헛헛하다.”

책의 끝 문장 :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작은 움직임들이 생기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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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1-03-22 00: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이 책 봐야지 하고 깜박 잊고 있었네요. 약산로드와 함께 다시 바구니에 넣어놓습니다. ^^

bookholic 2021-03-22 08:42   좋아요 0 | URL
독립 운동 유적지가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웠습니다.
이런 책을 통해서라도 다시 한번 가슴에 새길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즐독하시고, 즐거운 한 주 되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