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6)

(다윈)는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다음과 같이 은유적으로 말할 수 있으리라. 자연선택은 전 세계를 매시간 매일 샅샅이 수색하여, 가장 작은 변이까지도 찾아낸다. 그리하여 나쁜 것은 기각하고, 좋은 것은 보존하여 보관목록에 추가한다. 자연선택은 언제 어디서나 기회가 생길 때마다 조용히 눈에 띄지 않게 움직인다. 그러나 시간의 손이 연대의 경과를 표시할 때까지 우리는 서서히 일어나는 변화를 전혀 감지하지 못한다. 아득히 먼 지질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너무나 불완전해서, 기껏해야 오늘날의 생물형태가 종전과 다르다라는 정도만 알 뿐이다.”


(38)

전문적이든 대중적이든, 진화론을 다룬 서적과 논문들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왔다. 그중 상당수는 바늘 끝에 천사가 몇 명 올라갈 수 있을까?” 같은 중세 주석학자들의 논쟁처럼 지극히 추상적이었다. 다윈주의에 대한 가장 박식한 해석 중 일부는 현실과 다소 동떨어졌다. 결정적으로 수많은 문헌들은 자연선택을 통한 진화라는 이론을 여전히 편지봉투 겉봉에 휘갈겨 쓴 메모처럼 단편적으로 다뤘고, ‘종의 기원은 다윈이 <비글호 항해기>에서 말한 것처럼 미스터리 중의 미스터리로 남았다.


(42)

갈라파고스 제도는 10여 개의 큰 섬과 10여 개의 작은 섬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섬들은 모두 해저에서 솟아오른 화산의 끄트머리다. 섬들의 태평양 표면을 꿰뚫고 올라온 지는 500만 년이 채 안 되므로, 아메리카 대륙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암석들보다 나이가 젊다는 특정이 있다. 그 섬들 중 몇 개는 아직도 산고를 겪고 있는, 지구상에서 가장 맹렬한 화산으로 분류된다. 갈라파고스는 너무 젊어서 구형에서 신형이 창조되는 과정이 아직 초기단계에 머물러 있다. , 갈라파고스에서는 생물도 화산과 마찬가지로 빠르고 맹렬하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상당수의 생물들은 고립된 섬들에 발목이 잡혀 있고(각 화산의 정상은 교도소와 비슷해서 대부분의 생물들은 그곳에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본토와 연결되는 다리도 전혀 없어서(남아메리카 대륙은 동쪽으로 1,000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다), 제도에 서식하는 생물의 생활형은 본의 아니게 자신만의 경로를 밟는다.


(69)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끝에 다윈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내 생각에 약간의 근거라도 있다면, 갈라파고스 제도의 동물학은 연구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 내가 관찰한 현상들은 종의 안정성을 약화시킨다.” ‘종의 안정성을 약화시킨다라는 구절은 다윈이 향후 20여 년간 겪을 고뇌를 예고하는 조짐이었다.


(103)

사소한 차이가 생존할 것사라질 것을 결정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 찰스 다윈이 아사 그레이에게 쓴 편지 중에서


(162)

삶은 그리 단순하지 않으며, 심지어 메마른 섬에 사는 새 떼들에게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삶의 한 단계에서 다른 단계로 나아가는 동안 목숨을 부지하는 것만도 녹록치 않다. 물론 살아남는 건 단지 기본사항일 뿐이다. 나이가 좀 더 들면 새들은 목숨을 계속 부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배우자를 만나 짝짓기를 하고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 ()은 기존의 생존경쟁에 완전히 새로운 경쟁을 덧붙이며, 성선택의 압력은 자연선택의 압력과 가끔씩 충돌한다.


(206)

돌프 슐러터는 이렇게 말한다. “예민한 움직임은 도처에 존재하는 모든 개체군들의 한 측면입니다. 그것은 개체군이 역동적이며, 아직 요동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그러므로 언제든 좀 더 큰 환경변화가 일어나는 순간, 개체군들이 이쪽 또는 저쪽으로 떠밀릴지도 모릅니다.” 만약 개체군들이 환경변화에 예민하게 반응하지 않는다면, 그들을 여기까지 이끌어온 과정은 완료되었으며 생명창조가 끝났음을 시사한다. 원자가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면 우주가 죽거나 소멸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개체군의 움직임은 어디서나 발견되기 때문이다. 슐러터에 의하면 그것은 항상 존재한다.


(277)

비글호는 영국 해군의 탐사선이었으므로 다윈은 바위와 산호모래로 구성된 보이는 해안선을 지도로 작성하는 데 동참했다. 하지만 종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해안선에 대한 그의 생각은 일관성이 없고 헷갈렸다. 첫 비밀노트에서 그는 종을 성적 본능 및 도구에 의해 격리된 것으로 묘사했다. 그러나 나중에는 분기 원리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주제에서 이 부분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새로운 종을 계속 격리시키는 것은 무엇일까? 종간의 장벽은 무엇이고, 이 장벽을 넘기 어렵거나 쉽게 만드는 요인은 무엇일까? 다윈이 조사나 탐험을 하지 않은 채 남겨둔 부분은 바로 이것, ‘보이지 않는 해안선이었다.


(334-5)

지난 20년간의 관찰기간 동안 그랜트 부부는 진자가 가뭄 쪽으로 이동했다가 홍수 쪽으로 이동하고, 다시 가뭄 쪽으로 움직이는 것을 봤다. 그러면서 그들은 적응지형이 (보이지 않는 바다의 흰 파도처럼) 슬로 모션으로 서서히 솟아오르는 것을 봤다. 적응지형이 대홍수 이전의 상태로 되돌아갈 때, 즉 땅이 건조해지고 선인장과 남가새가 제자리로 돌아올 때 종 사이의 유전자 흐름도 고갈될 것이다. 그렇데 된다면 크랜트 부부가 말한 것처럼 현재의 적응지형에서 지금껏 번성했던 잡종은 다시 불리해질 것이고, 결국에는 자연선택을 통해 제거될 것이다. 그리고 다음 슈퍼 엘니뇨 사건이 일어날 때까지 세 가지 종(중간땅핀치, 작은땅핀치, 보통선인장핀치)은 독립된 종으로 존속할 것이다. 참고로 지난 500년간 슈퍼 엘니뇨로 분류된 엘니뇨는 한 세기에 한 번 내지 세 번꼴로 일어났다.


(341-2)

계통수에 대한 오래된 관점은 소박하고 깔끔하고 삭막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제시하는 관점은 부드럽고 혼란스럽고 뒤엉켜 있고 생생하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동정적이기도 하다. 다윈핀치의 계통들이 경쟁한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들은 다윈의 분기 원리에 따라 서로 투쟁하고 밀어낸다. 산의 왕 자리를 놓고 끊임없이 게임을 한다. 그러나 동시에 각각의 섬과 고독한 봉우리에 사는 새들은 겉보기와 달리 고독하기 않다. 핀치들은 (수많은 핵의 결속과 긴장에 얽매인) 핵가족 내의 형제자매들처럼 또는 (왕자와 공주를 교환하여 혈통을 연결하는) 유럽의 왕가들처럼 분열과 융합, 경쟁과 협동으로 가득 차 있다. 그 새들은 보이지 않는 메시지를 이리저리 전달하면서 좋은 이웃들이 레시피, 요리 도구, 리메릭(aabba의 각을 가지는 5행 익살시_옮긴이)을 교환하듯 무심코 유전자를 교환한다. 비밀을 공유하고, 긴 여행을 하며 서로 친해지고, 상대방의 제안에 마음을 연다. 핀치들은 계통은 합쳐졌다가 갈라지므로 이런 측면에서 창조되고 재창조되는 일을 되풀이한다고 할 수 있다.


(342)

지구의 외견상 고정불변성이 코페르니쿠스의 주장을 반박하는 상식적 주장이었던 것처럼, ‘종의 외견상 불변성은 한때 진화론을 반박하는 가장 주요한 주장이었다. 한때 이솝을 비롯한 우화 작가들로 하여금 여우, 올빼미, 늑대, 고래, 까마귀 이야기를 늘어놓게 함으로써 우리를 만족시키고 안심시켰던 동일성은 어쩌면 환상에 불과한 개념인지도 모른다.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은 유전한다라고 말했다. 생물의 형태와 본능, 그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경계, 그리고 살고 있는 해안과 지형은 헤라클레이토스가 상상할 수 있었던 것보다 훨씬 더 가변적이고 유동적이다.


(343-4)

빅토리아 시대의 물리학자 켈빈 경은 1883년에 이렇게 선언했다. “당신이 말하고 표현하는 것을 측정하여 숫자로 나타낼 수 있을 때, 당신은 그것에 대해 뭔가를 안다고 자부할 수 있다. 그러나 숫자로 측정할 수 없다면 당신의 지식은 빈약하고 불만족스러운 것이다. 말이나 표현이 지식의 출발점일 수는 있어도 어떤 문제이든 간에 당신의 사유는 과학의 단계로 발전하지 못한 것이다.”


(378)

인간 때문에 본의 아니게 지구상의 새로운 장소에 침입하는 바람에, 그들(영국참새, 따개비, 초파리 등)은 갈라파고스에 상륙한 첫 핀치들처럼 위기에 처했으며, 핀치의 진화처럼 그들의 진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위기라기보다는 획기적인 사건이었다.


(434-5)

우리가 해충과 세균에게 가하는 압력이 강해질수록 그들은 그 압력을 우회하여 진화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의 압력은 해충에게 진화압력으로 작용하지만, 우리는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진화의 기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진화는 갈라파고스에서만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창밖에서 악전고투하는 개똥지빠귀와 참나무만의 문제도 아니다. 진화는 매우 가까운 곳에서 일어난다. 이것은 끔찍한 아이러니다. 환경을 가장 철저하게 통제하고 가장 완벽하게 소유하고 싶은 곳에서 우리는 저항운동에 포위되어 속수무책으로 공격당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가 저항운동과 맹렬히 싸울수록 세균과 해충은 더 강하고 빠르게 진화한다. 잘라낼수록 더 빨리 튀어나오는 히드라의 머리처럼 말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들을 통제하려는 우리의 노력이 바로 그들의 진화를 촉진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통제가 그들에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변화의 한 자락에 불과하다. 그것은 환경의 변화일 뿐이며, 그들은 꿋꿋하게 서서 변화를 따라잡도록 설계되어 있다. 무차별적으로 진화압력을 계속 가하는 한, 그들은 대항하여 전염병을 계속 일으킬 것이다. 구약성서에서 이집트 땅에 출현한 개구리들처럼, 또는 이집트 땅 전체에서 이(lice)로 변한 지구의 먼지처럼 말이다.


(456-7)

진화가 팩트임을 확신하게 되었을 때, 다윈은 첫 번째 비밀노트 중 한 권에 이렇게 써놓았다. “거만한 인간은 자신을 (신성이 개입되었다고 말해도 좋을 만큼) 위대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인간이 생각보다 더 비천하다고 느끼며, 동물에서 창조되었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믿는다.”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의식이라는 재능은 미스터리이며, 생물학에서 아직 풀리지 않은 가장 큰 수수께끼 중 하나이다. 하지만 의식이 새의 부리, 깃털, 날개보다 우월한 기적은 아니며, ‘살아 있는 진흙의 모델링과 몰딩에 의해 새와 꼭 같은 과정, 즉 다윈과정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우리는 왜 의식을 정도의 차이로 보지 않고, ‘우리에게 특유한 것이라고 가정할까? 다윈은 노트에 이렇게 썼다. “의식은 우리의 자만심의 발로이자 자화자찬 행위에 불과하다.”


(468)

에머슨은 이렇게 말한다. “사람들은 각자 천직을 갖고 있으며, 재능은 소명이다. 누구나 자신에게 열린 길이 있으며, 그쪽에 끝없이 정진하도록 묵묵히 이끄는 재능을 갖고 있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이렇게 말한다. “개처럼 걸으려고 애쓰는 양이나, 말처럼 뛰기 위해 노력하는 황소를 본다면 얼마나 우스울까? 이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모방하려 애쓰는 인간은 얼마나 우스꽝스러울까? 사람들 간의 차이가 동물 종들 간의 차이보다 더 크다.” 아이스킬루스는 말한다. “특징이 곧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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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eehyun 2020-03-24 23:5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진화론은 읽을수록 매력적이예요.

bookholic 2020-03-25 00:0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것 같아요~~
더 내공을 쌓아서 언젠가는 다윈의 <종의 기원>에 도전을 해봐야할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