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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 불멸의 편지
루드비히 판 베토벤 지음, 김주영 옮김 / 예담 / 2000년 2월
평점 :
품절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모차르트와 쌍벽을 이루는 클래식 작곡가의 대가라고 해도 손색이 없는 베토벤. 아빠는 베토벤보다
모차르트를 더 좋아하긴 하지만, 베토벤의 음악들도 좋아한단다. 특히, 예전에 본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나왔던 베토벤 교향곡 7번을 특히 좋아한단다. 너희들에게 이 독서편지를 쓰면서도 오랜만에 베토벤 교향곡 7번을
켜 놓고 들으면서 쓰고 있단다. 아무리 들어도 질리지 않는 음악들이 있는데, 아빠에게 베토벤 교향곡 7번도 그런 음악 중에 하나란다.
베토벤은 대표곡을 손에 뽑을 수도 없을 만큼 사람들에게 사랑 받는 음악들이 무척 많단다. 그가
떠난 지 200년이 거의 다 되어가는데도 여전히 그의 음악은 우리 삶 곳곳에서 들려오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연주하고, 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찾아 듣는단다. 한마디로 천재라 할 수 있어. 너희들도 피아노를
배우면서 베토벤의 곡들을 연주했잖니.
워낙 유명한 사람이다 보니 베토벤의 생애는 많이 알려져 있단다. 어린이들을 위한 위인전에도
빠지지 않고, 어른들을 위한 그의 전기도 많이 나와 있단다. 그만큼
그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도 많다는 이야기야. 그리고 그가 직접 쓴 글도 아직 남아 있어서 책으로
엮었는데, 그것이 바로 이번에 아빠가 읽은 <베토벤, 불멸의 편지>라는 책이란다.
1.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베토벤이 생전에 쓴 편지들을 모은 것이란다. 사실은 편지 이외에 일기와
메모 등도 실려 있어. 유명세를 타서 어쩔 수 없지만, 자신이
쓴 편지나 일기가 자신의 허락 없이 만천하에 공개되는 것은 그리 썩 좋은 경험을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베토벤이 편지를 쓰면서, 나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편지를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편지를 쓴 것 같지는 않았어. 편지의 내용을 보면 자신과 상대방만의 비밀스러운 내용도 있었고, 어렵게 사랑을 고백하는 글도 있었단다. 그렇게 고백한 사랑이 잘
되었으면 모르겠지만 말이야. 그렇지 않았거든.
어디선가 베토벤의 영혼이 있어서 이 사태를 보고 있다면 유쾌하지만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
그래서인지 베토벤의 편지를 훔쳐 보는 기분에 약간 미안함마저 들었단다. 하지만 베토벤의
편지를 읽고 보니, 그의 호흡마저 느껴지는 것은 좋았단다. 베토벤이
이 편지를 쓰면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썼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었어. 그리고 점점 귀가 안 좋아지는 것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괴로워하면서
쓴 글들은 읽은 이도 함께 괴롭게 했단다. 음악가에게 있어 청력을 잃는다는 것은 얼마나 괴로운 일이었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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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
때로는 이런 장애를 모두
잊으려고 했지만, 청각장애는 이중으로 쓰라린 경험을 맛보게 했다. 잘
들리지 않으니 더 크게 이야기해주시오, 외쳐달라고, 어찌
이야기하겠는가. 다른 누구보다도 완벽해야 할 내 귀에 장애가 있다고 어떻게 남에게 털어놓는단 말인가. 오, 난 그럴 수 없어. 한때는
어떤 음악가보다도 완벽했던 내 귀의 장애 때문에, 사람들과 즐겨 어울리고 싶어도 자리를 피해야 한다. 사회에서 어울리지도 못하고, 벗들과 생각을 나누고 세련된 대화를
할 수 없어 세간의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이중고에 시달린다. 꼭 필요할 때만 사람들과 지내고, 거의 홀로 마치 추방된 자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사람들과 가까이할
때면, 내 비참한 상태가 알려질까 봐 몹시 불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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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토벤은 독신으로 살아갔는데,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어. 일찍
삶을 마감한 동생의 아들, 그러니까 조카였지. 조카를 보살피고
후원해 주어야 하는 것을 의무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했어. 하지만 동생의 아내와 사이가 안 좋고, 동생의 아내는 조카의 엄마가 될 자격이 없는 부도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그래서
소송까지 하면서 조카의 친권을 얻게 되었지만, 조카와도 사이가 좋지는 않았단다. 조카에 대한 사랑이 조카에게는 간섭으로 느꼈었나 봐. 심지어 조카가
자살 시도까지 한 적이 있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베토벤은
조카의 후원을 자신의 삶을 마감할 때까지 했으며, 유언으로 자신의 모든 재산을 조카에게 남긴다고 했단다.
…
베토벤의 음악만큼 그의 글이 박진감 넘치고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글을 통해서 그의 호흡을
느낄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구나. 그리고 베토벤이 삶을 마칠 때까지 진정한 사랑을 얻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고… 문득, 손편지를 쓰고 싶은 생각이 드는구나. 너희들에게 오랜만에 손편지를 한번 써봐야겠구나.
PS:
책의 첫 문장 : 저는 일찍이 네 살 때부터 음악에 매료돼왔습니다.
책의 끝 문장 : 나의 모든 재산은, 그가 죽은
뒤에는 그의 혈연관계에 따른 상속자가 물려받거나, 아니면 그의 뜻대로 처리한다.
내 안에 있는 것을 모두 표현해낼 때까진 세상을 떠날 수 없다는 생각으로 이 비참한, 정말로 비참한 삶을 참아내고 있다. 내 육체는 아주 사소한 변화에도 나를 최상의 상태에서 최악의 상태로 전락시킬 만큼 예민하다. 인내. 그것을 내 지침으로 삼아야 했다. 그렇게 참아왔고, 운명의 여신이 내 생명의 밧줄을 끊을 때까지 저항의지를 간직하길 바라왔다. 스물여덟 살에 이미 모든 것을 달관한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며, 예술가에게는 더욱 그렇다. - P68
오, 사랑하는 요제피네, 아는 그저 이성관계로서 그대에게 끌리는 것이 아니오, 나는 당신 그 자체, 우리 앞의 모든 걸림돌을 비롯해 당신의 전부를 사랑하오. 내 모든 감성이 그대에게 사로잡혀 있고. 당신을 만난 그때부터 내 가습은 다른 어떤 사랑도 느끼지 못하게 되었소. 당신은 나를 정복했소. 당신이 나를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 대답을 듣고 싶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생각하며, 내 가습이 얼마나 뛰는지. 오, 신이여, 어떻게 말을 해야 합니까. - P92
음악가도 일종의 시인이라오. 두 눈의 마술이, 불현듯 음악가를 위대한 영혼이 노니는 아름다운 세계로 옮겨가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게 하는 거라오. 당신과 함께 지내는 동안 내게 떠오른 영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소. 잠시 동안이었지만, 그 아름답던 비 내리는 5월은 내게 충만한 순간이었소. 아름다운 주제가 당신의 눈에서 내 가슴으로 미끄러져 들어와, 언젠가 베토벤이 죽은 뒤에도 그 음악은 세상을 매혹할 거요. 하느님이 시간을 더 허락해주신다면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겠지. 그리운, 그리운 베티나, 당신을 부르는 내 목소리엔 거짓이 없다오. 우리는 서로의 정신까지 사랑하지 않소? 나는 언제까지나 그대의 정신을 구하오. 당신이 인정해주는 것은 온 세상 그 무엇보다 기쁜 일이오. - P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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