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김종철 : 그러니까 정치판에 단 한 사람도 농민의 대변자가 없는 셈이네요.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어요? 농사라는 게 우리들 모두의 존재의 기반 중에 기반인데 말이에요. 정말 한심한 현실입니다. 지금 중앙 언론의 간부들이나 기자들이 거의 전원이 도시 출신이고, 도시에서만 교육 받고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농촌에 대한 기억을 가진 언론인들은 이제 다 늙어서 은퇴했어요. 그리고 제가 지방에 있다가 서울로 옮긴 지도 15년이 넘었는데, 그동안 서울에서 만나본 지식인들 중에서 농촌에 대해서 관심을 표명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녹색평론> 지면에서라도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어서, 이러다가는 책도 안 팔리고, 일반 독자들에게 인기가 없는 주제인 줄 알면서도, 계속 농사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1)

김종철 : 참으로 어리석은 단견이에요. 지금 기후위기 시대에 앞으로 전 세계 농작물이 작황이 아주 나빠질 거라고 계속 연구가 나오는데,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농산물을 수입해서 먹고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어요. 국내의 자급 기반을 넓힐 생각은 안하고, 엉뚱한 짓만 하려고 하니 기가 찹니다. 지금 우리가 얼마나 지속 불가능한 산업구조를 유지하고 있는지, 그게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해 인식이 없으니까요. 지금 쌀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진짜 쌀농사를 많이 지어서 그런 게 아니잖아요. 외국에서 수입해온 다른 먹을거리들을 워낙 많이 소비하니까 그런 건데.

(41)

하여간 재생 불가능한 화석연료 자원 대신에 재생 가능한 자연적인 자원을 활용한 새로운 에너지시스템을 만들고, 석유에 의존하지 않는 유기농 농사법을 통해서 식량 자급을 도모하는 일은 당장 해야 할 긴급한 과제들입니다. 어제까지 가능했으니 내일에도 가능할 것이다, 라는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계속해서 석유에 기반한 구태의연한 산업과 경제성장을 지향하다가는 어느 날 갑자기 나라 전체가 멸망할지도 모릅니다. 국가나 지방 자체체는 물론이고, 언론, 학계, 시민들, 농민들이 지금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 어떤 길로 가야 하는지 제대로 눈을 떠야 합니다.

(47)

사회에 끼친 객관적인 피해가 아니라 행위한 자의 주관적 의도를 기준으로 하는 재판은 법관의 양심에 따른 판결 원칙과 짝을 이루어 한국을 무법의 사법 마피아 왕국으로 전락시켰다. 양심에 따른 판결 원칙은 세상의 어떤 법치국가 헌법에도 규정되어 있지 않다. 21세기 한국에서는 18세기 베카리아의 수준에도 미치지 못한 채, 양심을 빌미로 법률로부터도 독립한 법관의 전제적 재판이 횡행하고 있다. 더욱이 기준 없는 봐주기식, 눈감아주기식 양심 판결의 오류에 대해 법관을 검증,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조차 갖추어져 있지 않다. 민중은 속수무책으로 신같이 무오류를 참칭하는 법관의 전횡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살아야 한다.

(53)

사법권력 분산의 차원에서 북한의 사법제도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공산당 독재체제라고 비난받는 북한의 사법제도를 보면 의뢰로 민주적인 데가 있다. 사법권력이 민중에게도 주어져 있는 참심제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참심제는 용어부터 남쪽 한국에 사는 우리에게 낯선데, 그것은 배심제와 다르다. 배심제는 법조인 판사가 형량을 결정하기 전에 유무죄를 시민 재판관, 즉 배심원이 결정하는 것을 말한다. 참심제는 거기서 더 나아가 형량의 결정에도 시민이 참여하는 것이다. 북한에서는 재판관이 세 명으로 구성되는데, 한 명은 전문 법조인, 나머지 두 명은 민중이다. 이들 민중은 판사와 동등한 권리를 갖고 사건을 심리하고 판결하는 데 동참한다.

(63)

한국은 민주국가를 표방하면서도 민중의 권리와 동력을 인정하려 않고 관료 일변도의 권위주의 행정, 입법, 사법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 풍토가 지금까지도 만연하게 된 주요 원인은 목숨이 아까워 겁내고 저항하지 못한 우리 자신에게 있다.

(70)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은 기후위기가 큰 딜레마라고 지적한다. 기후위기의 실상을 곧이곧대로 전달하면 사람들은 포기하거나 체념하고, 동기화된 망각기제를 발도시켜 끔찍한 메시지를 의식에서 밀어낸다. 자기중심적 위험 인식도 문제다. “설마내가 사는 동안은 괜찮겠지하는 식의 현재 편향과, 미래에 대한 과도한 가치폄하도 나타난다.

(71)

세대 간 정의의 문제도 있다. 기성세대의 행동(온실가스 누적) 및 무행동(온실가스 통제의 방임) 때문에 젊은 세대와 미래세대가 입을 피해를 누가 책임질 것인가. 그레타 툰베리가 유엔 연설에서 우리는 어른들을 절대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 말을 듣고 밤잠을 설친 어른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기성세대가 세대 간 연대의 정신으로 책임 있게 행동에 나서고, 기후위기의 고통을 더 오래 겪을 젊은 세대들의 말을 경청해야 한다. 청소년들의 참정권 확대 요구를 생명권-생존권 차원의 문제로까지 넓혀 인정해야 한다. 자녀들의 대학입시에 부모들이 퍼붓는 관심과 정성의 1%만 기후위기에 쏟아도 지금보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다.

(77~78)

2013 8, 도쿄전력은 고농도 오염수 저장탱크와 인근 배수구에서 높은 방사선 수치가 측정되었다고 발표했다. 당시 측정된 수치는 시간당 96mSv였다. 자연 상태의 방사선량이 시간당 0.0001~0.0003mSv 정도임을 고려할 때 수십만 배 이상 높은 방사선량이었다. 조사 결과 오염수 저장 탱크 인근에서 물이 흐른 흔적이 발견되었다. 저장탱크의 오염수 양을 계산해보니 고농도 오염수 300t이 유출되었다. 오염수 저장탱크 불량으로 누수가 생긴 것이다. 추가 조사 결과 저장탱크뿐만 아니라 운영에도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오염수 저장탱크 주변에는 오염수를 차단하는 콘크리트 차단벽을 설치해 놓았는데, 빗물을 빼기 위해 차단벽의 밸브를 계속 열어두고 있었다. 그 결과 차단벽은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차단벽 밖의 토양으로 오염수가 스며들어 결국 바다로 오염수가 흘러간 것이다. 저장탱크와 바다는 직선거리로 500m 정도 떨어져 있었다. 이 사고로 유출된 방사성물질의 양은 24Bq로 추정되었다. 국제원자력기구(IEAE)는 이 사건이 심각한 사건이라는 입장을 발표했고, 일본 원자력규제위원회는 국제핵시설사고등급(INES) 3등급으로 이 사고를 평가했다.

(93)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올바른 기술을 가지게 되면, 우리의 자유로운 이동 습관을 줄이거나 에너지 소비를 줄일 필요가 없다고 믿는다. 그리하여 세계경제가 계속해서 성장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그러나 내게는 그런 믿음은 그냥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아직도 기술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고백하고 있을 뿐이다. 전기 자동차나 기타 녹색제품들은 우리의 심리를 편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들은 따지고 보면 인권유린과 환경훼손이 우리의 시야에서 보이지 않도록-그리하여 불건강하고 임금이 싼 콩고나 내몽고 등의 광산으로-장소만 옮겨 놓는 음험한 책략이다. ‘녹색제품들은 그것들을 이용하는 부유한 자들에게는 지속가능하고 공정한 것으로 보이겠지만, 결국 그것들은 증기기관의 발명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근시안적 세계관을 영구화하는 도구들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이러한 환상을 기계물신주의라고 부르고 싶다.

(96)

오늘날 사람들이 맹목적으로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한 신앙은 우리를 구제해주지 못할 것이다. 지구상에서 생을 영위하는 우리들 모두에게 미래가 있으려면, 세계경제가 반드시 재설계되지 않으면 안된다. 문제는 자본주의나 성장논리보다 더 근원적인 데 있다. , 화폐와 그 화폐가 기술과 어떤 관계를 맺는가 하는 것이 더욱 근원적인 문제인 것이다.

(108~109)

모든 형태의 에너지 생산은 그 나름의 난제를 갖고 있다. ‘깨끗하고 재생가능한 에너지는 깨끗하지도, 재생가능하지도 않다. 우리가 무한한 에너지의 성장이라는 목표를 포기한다면, 모든 사람이 좋은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지침으로 삼아야 할 원칙은 진정한 청정에너지는 에너지를 덜 사용하는 형태로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 되어야 한다.

(143)

여기서 꼭 기억할 게 있다. 한국 국회의원들(300명 정도)에겐 있지만 스웨덴 의원들(350)에겐 없는 것 다섯 가지다. 첫째, 전용차 기사나 유류비 지원이 없다. 둘째, 월 보수처럼 받는 세비 외에 특별수당이 없다. , 무노동 임금이다. 셋째, 개인 비서나 고용 직원이 없다. 한국은 의원 한 명이 보좌관을 아홉 명까지 거느리나 스웨덴은 네 명의 의원 곁에 한 명의 보좌관만 있다. 대부분의 일을 스스로 한다. 넷째, 지역구 의원이 없다. 스웨덴 총선은 정당에만 투표한다. 다서째, 면책특권이나 불체포특권이 없다. 그러니 언행에 신중을 기한다. 물론, 자기 양심과 철학에 따른 소신 발언은 자유롭다.

(159)

독일 축구의 간판이었던 터키계 독일 선수 메수트 외질이 국가대표팀을 탈퇴한 것은 인종차별 때문이었다. 거기에다가 인터넷을 통한 대중의 폭력까지 더해졌다. 외질은 2014년 월드컵에서 독일을 우승으로 이끈 공로자로서 소위 국민 영웅이다. 그런 그가 독일축구연맹과 언론이 내가 터키 혈통이라고 차별했다.”고 항의하며 대표팀을 탈퇴했다. 독일축구연맹 회장은 (자신을) “이기면 독일인, 지면 이민자로 취급했다.”고 말했다. 그 말들이 지닌 아픔을 나는 공감할 수 있다. 독일 태생인 외질의 이런 말들은 국경을 넘어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의 공통된 마음이라는 것을 주류에 속한 다수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171~172)

금요시위에 나선 젊은이들은 투표 연령을 16세까지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앞으로 몇 년밖에 생존해 있지 않은 80세의 고령자들이 투표를 통해서 지구의 환경조건을 결정하고 있는데도, 이 지구에서 앞으로 60년 이상을 살아간 다음 세대에게 투표권이 없는 것은 너무나 불공평하다는 것이다. 분명히 일리 있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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