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지금 근대문명이 벼랑 끝에 이르렀다는 것은 누구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엄연한 사실입니다. 인류가 살아남고, 인간다운 삶이 최소한이나마 유지될 수 있는 상황을 지속시키려면, 근대문명을 넘어서 생태문명을 재창조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 생태문명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장벽은 우리들 뇌리 속에 끈질기게 남아 있는 고정관념, 즉 역사는 보다 나은 단계로 발전해간다는 이른바 발전사관과 이에 결부된 시대구분입니다. 근대문명의 본질을 정확히  포착하고, 생태문명을 재창조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발전이니 진보니 하는 관념적 장벽부터 깨뜨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10)

그러니까 생태문명의 재창조란 근대가 이 세계를 전면적으로 지배하기 이전의 거의 모든 토착적 혹은 전통적인 삶의 복구를 통해서 또하나의 비근대적 문명을 창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복구는 단순한 복원이 될 수는 없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은 근대를 통과해오는 동안 불가피하게 손상된 자연적 및 사회적 질서를 수선, 치유하는 것이 되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인류 사회에 축적되어온 갖가지 창조적인 지혜와 경험과 기술을 살리지 않으면 안됩니다. 제가 재창조라는 용어를 강조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34)

일본 우파세력이 문재인 정부 등장을 얼마나 싫어하고 경계했는지 지난해 초 출간된 무토 마사토시 전 주한 일본대사의 <한국인으로 태어나지 않아 다행>이라는 책을 보면 잘 드러나 있다.

대사직(2010~2012)을 포함해 한국에서 12년을 일한 일본 고위 관료 출산인 그가 그 책에서 풀어놓은 얘기들은 실로 충격적이다.

박근혜는 뭐니뭐니 해도 5,000만 한국 국민이 선거로 뽑은 대통령이었다. 그게 고작 100만 명의, 그것도 북조선(북한)의 공작원이 관여했을지도 모르는 데모()의 의해 탄핵결의로 내몰렸다. 이것이 민주화의 발로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문재인 정권은 세계에서 가장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나라, 김정은의 북조선을 어떤 나라보다 지지하는 정책을 내걸고 있다. 그런 인물을 대통령으로 뽑은 것이 정말 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할 수 있는가?” <산케이 신문>과 더불어 일본 보수우파의 대변지인 <요미우리신문> 등은 촛불시위와 헌법재판소의 대통령 파면 결정을 한국 민주주의의 승리가 아니라 미숙한 탓이라고 논평했다.

(36)

왜 일본은 몰락하는가? 모리시마 교수는 그 이유를 정치의 빈곤을 들었다. “정치가의 일은 새로운 정치적인 아이디어를 창조하는 데 있다고 보는 그는, 정치혁신 없이 이대로 갈 경우 일본은 고립돼 망할 것이라고 단언했다. 그 정치의 빈곤을 떨쳐버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그것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은 밝아지고 경기가 상승하는 효과가 나타날 것이며, 모든 6개 블록으로 나눈 동북아 공동체의 수도를 독립한 오키나와에 둔다면 남북한 분단이나 센카쿠열도(댜오위다오), 독도 등을 둘러싼 영토문제도 자동적으로 사라질 것이라고 했다. 갈라파고스 일본에서 그런 생각이 가능할까.

(50)

아베는, 일본군 성노예뿐만 아니라 난징학살 등 아시아태평양전쟁이라는 침략전쟁 중에 일본군이 저지른 온갖 전쟁범죄에 관련된 역사적 사실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그러한 역사적 진실을 은폐하려는 적극적인 활동을, 최초로 국회의원이 된 1993년부터 지금까지 26년에 걸쳐 일관되게 계속해왔다. 그 활동 내용은 정치적 반대 운동이라고 단순하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기만과 허위, 정치적 압력 등 온갖 사악한 수단을 동원한 것이었다.

(56-57)

독일 철학자 테오도어 아도르노도, 피해자를 기억으로부터 말소시켜버리는 것에 대해서 그의 저서 <자율적 책임을 위한 교육>(1971) 속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무력한 우리들이 학살당한 사람들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것, 즉 기억마저 죽은 자들로부터 빼앗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기억이야말로 우리가 죽은 이들에게 바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따라서 일본군이 아시아태평양전쟁 중에 저지른 온갖 잔학행위를 그런 일들은 없었다.”라면서 부정하는 것은 피해자를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 것, 즉 그 사람들의 기억을 빼앗는일이다. 그러므로 난징학살 따위는 조작이라고 태연히 말하고,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들을 거짓말쟁이라고 하는 아베와 그 무리들은 기억망각의 무덤에 떨어뜨리고 망각의 무덤을 파는 자들이며 동시에 기억의 도적들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82)

정치지도자는 다음에 열거한 것을 마음에 깊이 새기지 않으면 안됩니다.

- 인류의 도덕률은 모든 국민이 기본적으로 침범할 수 없는 자유와 존엄에 대한 권리를 대등하게 보유하고 있다는 통찰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

- 이 인류의 도덕률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자기 혹은 자국민 혹은 자국의 이익추구보다도 우선적으로 지켜져야 한다는 것.

- 정치지도자는 타국의 국민도 자국민과 마찬가지로 인정해야 할 이익추구 권리를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

- 따라서 양보의 미덕, 절도와 자제 등 기본적 미덕은 도덕적 계율이며, 이들은 결코 방기돼서는 안되는 이성적 원리라는 것.

(89)

발전소 주변에는 여전히 극심한 비극이 진행 중이다. 사고 당일 원자력긴급사태가 발령되어 처음에는 3km, 다음에는 10km 그리고 20km로 강제피난 지시가 확대되었고,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짐만 가지고 집을 떠났다. 가축이나 애완동물들은 버려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40~50km 떨어져 있어서 사고 직후에는 아무런 경고나 지시도 받지 않았던 지역민 아디테무라에는, 사고 후 1개월 이상이 지나고 나서 극도로 오염되었기 때문에 피난하라는 지시가 내려졌고, 마을 전체가 피난했다. 사람의 행복이란 대체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에게는 가족, 친구, 이웃, 연인과의 평온한 말이 내일도, 모레도, 그다음 날도 평범하게 이어지는 것이 바로 행복일 것이다. 그것이 어느 날 갑자기 중단된 것이다. 피난한 사람들은 처음에는 체육관 등의 피난소, 다음에는 2인당 4조 반( 7.3m2) 정도 넓이의 가설주택, 그리고 재해부흥주택이나 지자체 등에서 제공하는 주택으로 옮겨 갔다. 그러는 동안에 가족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생활이 파괴되고, 절망의 나락에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이 지금도 있다.

(99)

그때와 달리 이제는 주위에서 플라스틱 아닌 것을 찾기가 힘든 세상이 되었다. 누군가의 말처럼 플라스틱은 조물주가 미처 만들지 못한 물질을 인간이 만들어 신의 실수를 만회한 것처럼 보인다. 나는 통계를 해석하거나 분석할 능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지만 어떤 수치는 즉자적으로 공포를 불러온다는 것을 안다. 플라스틱이 생산된 이래 작년 기준으로 83t 정도가 생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플라스틱이 분해되기까지 300년 전도가 걸린다고 하니 인간이 만들어낸 그것들은 현재의 인류가 모두 자연사할 때까지 건재할 것이다. 이 수치는 낯설고 두렵다. 어떤 느낌인가 하면 플라스틱이라는 변형되기 쉬운 어떤 것이 인류를 변형시키는 중이라는 상상을 불러일으킨다고나 할까. 전혀 관련 없는, 성형수술을 의미하는 영어 ‘plastic surgery’라는 단어를 들을 때마다 드는 착각, 그러니까 플라스틱이 인류를 어떤 다른 존재로 변화시키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140-141)

- 인류는 그걸 왜 해결하려 안할까요. 지금이 아니라 미래의 일이라 그런가요? 이게 인류의 모순일까요?

이상하죠. 그러니까 인류는 자기 혼자나 가족이 먼저 죽는다고 하면 겁을 내는데, 다 같이 죽는 건 겁을 안 내더라구요. 공멸은 신경 안 써요. 인류의 모순이죠. 한계죠. 그러니까 호모사피엔스라는 게 현명한 인간이 아니죠. 바보죠. 공멸이 더 무서운 건데. 그야말로 다 죽잖아요.

(191-192)

그럼 이제 100년 후의 사회를 농사를 중심으로 해서, 내부와 외부의 관점을 섞어서 묘사해보겠습니다.

(1) 인구가 3분의 1로 줄어도 농민은 국민의 과반이 넘습니다. 농지는 마을에서 공동소유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제공되며, 농민은 모두가 동경하는 직업이 됩니다.

(2) 많은 사람들이 먹거리를 중심으로 가능한 한 자급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외국으로부터 식량 수입은 거의 없어지고, 수출은 식량이 부족한 나라나 지역으로만 하게 됩니다.

(3) 돈이 없어도 먹고살 수 있는 보장을 마을에서 얻게 됩니다. 작은 상점가들도 활기가 넘칩니다.

(4) 시간은 천천히 흐르고, 효율을 경쟁하는 일은 없어지고, 애초에 경쟁이 필요 없는 세상이 됩니다.

(5) 천지자연에 대한 몰입은 빼놓을 수 없는 관습이 됩니다. 도시에도 여기저기 농지가 조성됩니다.

(6) 천지유정의 풍경이 풍요롭게 되살아나서, 어디를 가더라도 아름답고 차분한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7) 마을의 천지자연으로부터 얻은 장작이나 낙엽, 잡초 등이 주요한 애너지원이 되고, 잘 관리되고 있습니다. 화석에너지는 중요한 분야나 재해시에 이용하도록 배당됩니다. 농업에 배당되는 것은 간척지의 배수펌프 정도일 것입니다.

(8) 수차나 퇴비의 열, 가스, 유채나 콩의 기름, 태양열 등이 잘 이용되고 에너지 소비 그 자체도 상당히 감소할 것입니다.

(9) 정치는 마을에서 자치가 이루어지고, 지자체 합병으로 거대해졌던 행정단위들의 영역은, 인구 수백에서 수천 단위로 재편성됩니다. 국가는 마을연합의 형태가 되고 그 기능은 극히 제한적이 될 것입니다.

(10) 수송기관은 주로 자력으로 움직이게 되고, 자동차는 제한된 분야에서만 사용됩니다.

(11) 유기농업이 당연한 농법이 되고, 농약이나 화학비료는 최소한으로만 사용합니다. 농업기술에서는 생산성을 부정하고, 천지자연의 은혜가 오래 계속되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중심이 되게 합니다.

(12) 교육은 지역을 기반으로 재편성되고, 농사가 필수과목이 됩니다.

(13) ‘농본주의 유산을 인증해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관장지가 됩니다.

(14) 농사는 천지에 떠 있는 커다란 배가 되고, 모두 이 배에 함께 타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될 것입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