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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 - 의열단, 경성의 심장을 쏘다! ㅣ 삼성언론재단총서
김동진 지음 / 서해문집 / 2010년 8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읽은 약산 김원봉 평전에서 이야기했던 의열단. 그들의 많은 작전 중에 국내 잠입
작전. 그 어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았던 그들의 작전. 그래서
그들을 소재로 영화꾼들은 영화를 만들었나 보구나. 몇 년 전 크게 흥행을 했던 <암살>과 <밀정>은 의열단의 국내 잠입 작전을 모티브로 영화로 만든 것이었단다. 그
중에 <밀정>은,
아빠가 이번에 읽은 <1923 경성을 뒤흔든 사람들>의
두 번째 이야기를 그대로 영상에 담은 작품이었단다. 이 책에서는 의열단이었던 김상옥과 황옥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단다. 아빠는 개인적으로 김상옥이 더 끌리더구나. 이십
대의 어린 나이로, 그런 결심을 할 수 있다니… 존경심이
절로 나는구나. 자, 그럼 바로 그들의 이야기를 해줄게.
1.
1923년
1월 12일 금요일 저녁 8시 10분. 종로경찰서에 날아든 사제폭탄. 일본이 점령하고 있는 경성의 한복판에 떨어진 사제폭탄은 그 여파가 대단했단다.
범인은 누구인지 몰랐기 때문에 더욱 그랬어. 폭탄은 터졌지만, 범인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거든. 경찰은 노심초사하고 특별수사대까지
만들었어. 특별수사대 대장은 악명 높은 미와라는 사람이었는데, 그는
김상옥을 의심하고 그를 추적했단다.
김상옥. 그는 누구냐 하면… 우리나라가 일본에 빼앗기는
그런 일이 없었다면 건실한 사업가로 살아갔을 그런 사람이란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겪었지만, 철물점을 운영하면서 장사 수완이 있어 성공한 자수성가를 한 사람이란다. 그는
시국에 관심을 가지고 항일민족의식을 가지고 있었어. 삼일운동에도 참여를 했고, 삼일운동이 일어난 1919년 4월에는
‘혁신단’을 만들어 신문도 발행했어. 이 일로 경찰에 잡혀 40여일 경찰서에 갇혀 있다가 무혐의로 풀려나기도
했단다. 그는 이후 무력투쟁으로 방향을 틀었고, 1919년 12월 ‘암살단’을 결성했단다. 그런데 그 ‘암살단’이
발각되어 동료들이 체포되는 것을 보고도 어쩔 수 없이 도망을 가 훗날을 기약했단다. 그렇게 중국으로
도망간 김상옥은 김원봉을 만나 의열단에 가입하게 되고 국내에서 거사를 시도했지만, 조선인 고등계 형사
김태석에게 적발되어 실패했단다. 그런 이력을 가지고 있던 김상옥이었기에, 특별수사대대장 미와 경부보가 그를 의심하는 것은 당연했어. 더욱이
얼마 전에 그가 국내 잠입했다는 정보도 있었어.
미와는 경기도까지 수사 범위를 확대해서 대대적인 검거작전을 펼쳤어. 1월 16일 정보가 하나 입수되었단다. 김상옥이 삼천통에 있는 매부의 집
고봉근의 집에 머물고 있다는 정보였어. 당시 김상옥은 1월 17일 서울역에서 사이토 조선 총독을 저격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서울역 근처 매부의 집에 머물고 있었던 것이야. 1월 16일 고봉근의 집에 들이닥친 일본 경찰들… 상옥은 기습을 당했지만 총으로 대응하며 일본 경찰 한 명을 죽이고 두 명을 부상시켰어. 상옥은 남산을 거쳐 도망을 갔단다. 그렇게 일본 경찰의 포위를 벗어났어. 하지만 가지고 있던 총 두 자루를 잃어버리고 말았어.
…
김상옥을 놓친 특별수사대 대장 미와는 심한 질책을 받았어. 위에 보고도 없이 자신 혼자 공을
쌓으려고 남의 관할까지 갔다가 범인을 놓쳐버렸으니 말이야. 미와로서는 자존심을 완전히 구긴 셈이었지..
2.
상옥은 남산을 통해 이모네 집에 들렀다가 안전하지 못하다는 생각에 옛 교회 동료인 이혜수의 집에 은신하게 되었어. 그곳에는 다시 암살 계획을 세웠어. 그리고 이혜수에게 부탁을 해서
잃어버린 총을 찾아달라고 했고, 이혜수는 잃어버린 총 두 개 중에 한 개를 찾아왔단다. 그 총은 김상옥에게 아주 소중한 총이고 사연 깊은 총이었대. 김상옥의
연인이었던 장규동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김상옥이 중국으로 도망간 이후 장규동은 경찰에 붙잡혀 심한
고문을 받다가 풀려났다고 했어. 이후 사람들의 도움으로 중국으로 도망간 장규동. 김상옥과 다시 만났지만, 장규동은 고문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하고
그만 죽고 말았단다. 임시정부 사람들이 그를 도와주었고, 백범
김구는 장규동의 관을 사라고 돈까지 주었다고 했어. 그런데 김상옥이 그 돈을 가지고 가서 관이 아닌
총을 사왔다고 하는구나. 그 총이 바로 잃어버렸다가 다시 찾은 그 총이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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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실의에 빠져 있던 상옥은
그 돈을 보자 관을 사겠다며 혼자 시내로 나갔다. 하지만 그는 관을 사오지 않았다. 그 대신 비장한 표정으로 품속에서 모제르 7연발 권총을 꺼냈다. 관 대신 총을 산 것이다. 장례를 준비하던 임정 동지들은 그런 상옥의
행동을 어이없어 했다.
그러나 그는 동지들에게
결연한 어조로 “사랑하는 내 동지 장규동을 죽인 것은 병마도 아니고 귀신도 아니다. 내 동지를 죽인 것은 바로 일제의 경관이다. 이 총으로 그놈들을
죽여 동지의 원수를 갚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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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혜수의 집에 머물면서 김상옥은 다시 암살계획을 세웠고, 옛 암살단의 동료들을 몰래 불러 만났어. 김상옥이 이혜수의 집이 안전하다가 생각했는데 그건 오산이었어. 그가
남산에서 잃어버린 것은 총만이 아니었단다. 이혜수의 집주소가 적혀 있는 편지봉투도 잃어버렸던 거야. 일본 경찰은 그 편지봉투를 주었고, 이번에는 치밀하게 김상옥 검거
작전을 짰단다. 일본경찰 400명이 이 작전에 투입되었다고
했어. 400명의 일본경찰과 김상옥은 총격전을 벌였지. 김상옥은
도망을 가면서 총으로 맞서 일본경찰들은 여럿 부상을 시켰단다. 마지막까지 도망을 갔던 김상옥은 결국,,, 마지막 총알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단다. 그의 나이 서른넷이었어. 왜놈에게 잡히지 않겠다는 다짐을 지킨 것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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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그 순간 상옥은 이미
마음을 정했다.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이렇게 죽는 게 너무도 원통하지만 상하이를 떠나기 직전 임시정부와
의열단 동지 앞에서 “자결하여 뜻을 지킬지언정 적의 포로가 되지 않겠다”고 굳게 약속했다. 왜놈에게 붙잡혀 조직과 스스로의 이름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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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이미 그의 삶이 어떻게 끝날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읽으면서 부디 살아서
도망가길 바랬단다. 그리고 그는 그렇게 삶을 마감하고 말았단다. 도대체
이런 정의로운 사람이 왜 이렇게 젊은 나이에 억울한 삶을 마감해야 하는가. 그런 것을 보면 신은 없는
것이 맞는 것 같구나. 그런데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종로경찰서에 폭탄을 던진 사람은 김상옥이 아닌 것
같다는구나. 그게 무엇이 중요하리… 그 뜨거운 뜻은 이미
일본에 여러 차례 폭탄을 던진 것이나 진배없는 것이었어.
3.
종로경찰서의 폭파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일본 경찰은 조선인 출신 고등계 형사 한 명을 중국으로 보내게 된단다. 그런데 그 조선인이 의문의 인물이었어. 그 사람이 누구인지 이야기하기
전에 의열단의 이야기를 해줄게.
…
김상옥이 거사를 계획했던 것은 의열단과 상하이 임시정부가 협력을 했던 것이라고 했어. 의열단은
단독으로 또 다른 계획을 세우고 있었어. 종로경찰서 폭파 사건이 있었던 한 달 전인 1922년 12월, 의열단은
단독으로 대규모 폭파 투쟁을 추진했단다. 유석현이라는 의열단원이 국내에 잠입하여 군자금을 마련하려다가
친일파 판사 백윤화의 신고로 경찰에 잡혔다가 풀려나는 일이 있었어. 이때 그가 풀려나게 도움을 준 사람이
조신인 출신 고등계 경찰인 황옥이라는 사람이야. 황옥의 계급은 경부로 무척 높은 사람인데, 그가 왜? 황옥은 사실 김원봉과 친분이 있는 사람이었어. 1920년 밀양 폭탄 사건 때 알게 된 사이라고 했어. 1922년 12월 김원봉은 대규모 폭탄 반입작전을 펼쳤어. 의열단원인 김시현이
폭탄반입 역할을 하기로 했고 황옥이 도와주기로 했단다. 그런데 의열단원 사이에도 황옥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대. 아무리 의열단 단장 김원봉과 가까운 사이더라도 일본 고급 경찰이니까 말이야.
…
그로부터 과거로 좀더 시계를 돌려보자꾸나. 폭탄 투쟁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있었어. 폭탄이 없었던 거야. 이때 도움을 준 이가 몽골에서 명의로 소문이
난 이태준이라는 의사였단다. 이태준은 상하이로 왔다나 김원봉은 만나고 의열단에 가입했어. 그리고 그가 알고 있는 폭탄 전문가 헝가리 사람 마자르를 데리고 오겠다며 다시 몽골로 돌아갔단다. 그런데 소식이 끊겼어. 감감무소식….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김원봉이 베이징에 머무르고 있었을 때, 어떤 외국인이 김원봉을 찾는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를 만나보니 그는 바로 이태준이 소개해주려고 했던 폭탄 전문가인 헝가리 사람 마자르였던
거야. 이태준에게 이야기를 듣고 직접 제발로 찾아온 거야. 그로부터
이태준의 소식도 들을 수 있었어. 몽골에서 러시아 백군에게 살해당했다는구나. 또 하나의 안타까운 죽음.. 슬프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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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
놀랍게도 그가 바로 이태준이
소개해주겠다던 마자르였다. 혼자서 약산을 찾아 몽골에서 베이징까지 온 것이다. 마자르는 약산에게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해줬다. 그는 이태준과 함께
고륜을 떠나 베이징으로 오던 길에 러시아 백군을 만났는데, 이태준은 일본군 장교들의 농간으로 끝내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외국인 그는 다행히 생명만은 건질 수 있었다. 친구
이태준은 비록 죽었지만 그와의 약속만큼은 꼭 지키고 싶어 혼자서 약산을 찾아 베이징까지 오게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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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르의 도움으로 이제 고성능 폭탄도 준비가 되었어. 이제 국내로 반입만 하면 되었지.
…
김원봉은 의열단이 벌이고 있는 일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 신채호를 찾아가 의열단 선언을 써달라고 요청했어.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일제시대 최고의 명문인 조선혁명선언이었단다.
4.
자, 이제 다시 종로경찰서 폭탄의 배후를 조사하기 위해 상하이로 떠난 조선인 출신 고등계 형사
이야기를 해보자꾸나. 이제 그가 누구인지 눈치챘겠지. 그가
바로 황옥이란다. 그 정도로 일본 경찰의 신임을 받고 있던 그였어. 상하이에
도착해서 김원봉과 만남을 가지고 김원봉은 황옥을 절대 신임했단다. 하지만 여전히 의열단 내부에서도 황옥을
믿지 못하는 이도 있긴 했어.
…
자, 이제 폭탄 반입 작전이 시작되었단다. 발각이
될 뻔한 일도 있지만, 위기를 여러 번 모면하고 국내에 반입하였단다.
이때 마자르와 황옥이 큰 역할을 했다고 했어. 총 반입작전의 총 책임자는 의열단원 김시현이었다. 경성에 도착한 후, 황옥은 자신이 폭탄을 가지고 있으면 발각될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이에게 폭탄을 맡겼는데, 여기서부터 틀어지기 시작한 것이지… 황옥으로부터 폭탄을 받은 사람도 발각이 두려워 다른 사람에게 맡겼는데, 그
사람이 일본 경찰의 밀정이었어. 일본 경찰에 고발했지. 경찰부장이
황옥을 호출했어. 일본 경찰에서도 이 신고를 반신반의했어. 자신들의
심복이었던 황옥이 의열단과 연루되어 있다니 말이야. 일단 황옥을 돌려보내기는 했지만, 의심을 계속 했어.
…
또 하나 그들의 실수. 그들이 폭탄을 반입하면서 일부는 신의주의 지인에 맡겨두었어. 하지만 그 지인도 믿을만한 사람이 아니었단다. 일본경찰에 발각이
되었고 그 사람의 입에서 김시현과 황옥이라는 이름이 나왔어. 이제 황옥은 빼도 박도 못하게 되었어. 서울에 숨겨두었던 폭탄도 모두 발각이 되었고, 의열단원들은 모두
체포가 되어 거사를 일으키지도 못하고 실패하고 말았단다. 안타까운 순간이로구나. 너무 많은 사람들이 엮여 있어서 그랬던 것 같구나. 황옥도 붙잡혔는데, 황옥은 혐의를 부인했어. 이것을 두고 황옥을 비난하는 이도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김원봉과 약속이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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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황옥 일행이 텐진을 떠나기
직전 약산은 황옥만 따로 불렀다. 약산의 표정에서 비장함이 느껴졌다.
그는 황옥에게 이번 작전의 중요성과 비밀 엄수 등 몇 가지 주의사항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우리의 혁명운동은 이번 한 번으로 끝치는 게 아니요. 우리의 이상하는 바가 실현되기까지는 끊임없는 투쟁이 있어야 하오. 우리
대에서 못 이루면 자식 대에서, 자식 대에서 못 이루면 손자 대에까지라도 가지고 가야 할 우리 운동이오. 이번의 우리 계획이 불행히 패를 보는 일이 있다 하더라도, 황공은, 결코 우리가 이번에 취한 수단방법에 관하여는, 발설을 마오, 한번 드러나고 보면 방책을 두 번 쓸 수는 없는 일 아니겠오?”
박태원의 <약산과 의열단>12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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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옥은 혐의를 부인했지만 유죄 판결을 받고 10년 형을 받았대. 그리고 감옥에서 중병을 얻어 가석방을 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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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거사의 총책임을 맡았던 김시현도 감옥에 갇혔는데, 그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고 하는구나. 나중에 광복을 맞이하고, 칠십 노인이 되고 나서도 독재 정치를 하고
못된 짓을 많이 한 이승만을 암살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는구나. 그의 삶 전체가 정의로움으로 똘똘 뭉쳤던
사람이구나.
….
이렇게 김상옥과 황옥의 이야기가 끝이 났단다. 비록 그들의 작전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지만, 그들은 일본경찰에게 우리가 계속 싸우고 있다고 충분히 알려준 것 같구나.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이 날린 명대사처럼 말이야. “둘을 죽인다고 독립이 되냐고? 모르지. 그치만 알려줘야지. 우린 계속 싸우고 있다고.”
…
PS:
책의 첫 문장 : 겨울바람이 제법 매섭게 불던 1923년 1월 12일 금요일 저녁 7시
반, 경성 종로의 천도교당(지금의 수운회관)에는 진보적 성향의 사회단체인 서울청년회가 주최하는 대중연설회가 열리고 있었다.
책의 끝 문장 : 이 책이 그런 우리의 노력에 조금이나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바깥에서 "투항하라"는 소리가 연이어 들렸다. 하지만 상옥은 조용히 눈을 감고 머리에 권총을 갖다 댔다. 그의 눈에 살짝 물기가 맺혔다.
배고픈 어린 시절 낮에는 쳇불공장과 대장간에서 일하면서 밤에는 야학을 다니며 공부하던 동생 춘원과 함께 영덕철물상회를 운영했던 일, 3.1만세운동 후 <혁신공보>를 제작해 경성시내에 뿌렸던 일, 암살단을 조직해 사이토 총독을 죽이려고 한 일, 상하이 시설 연인 장규동의 죽음, 임시정부 인사들을 만나고 의열단에 가입해 원대한 조국 광복의 꿈을 키웠던 일 등 34년의 짧은 생애가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스쳐갔다.
김상옥은 모제르 7연발총의 방아쇠를 힘껏 당겼다. - P141
"이태준은 단순한 의료생활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도 지사였다. 조국광복을 위해서는 그도 항상 마음을 태우고 있었다. 시베리아 깊숙이 살고 있으면서도 동지들과의 연락은 그치지 않았다. 이태준은 평범한 의사이면서 레닌이 혁명운동을 위해서 상하이임시정부에 보내준 돈 백만 원 중 40만 원을 상해까지 안전히 가지고 가는 중책을 떠맡아 이를 성공시킨 사람이었다."
<약산과 의열단>96~97쪽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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