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하지만 기후변화라는 엄혹한 시대를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우리가 지금부터라도 반드시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다. 불과 몇 인치이지만 그것 없이는 지상의 모든 생명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한 흙(토양)이 지금 빠른 속도로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2차대전 후 지금까지 전세계 표토의 절반이 사라졌다는 연구도 있다. 우리는 흙의 대량 소실이라는 이 현상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깊게 두려워할 줄 알아야 한다. 흙이 잘 보존되고 가꾸어진다면 기후변화에 대해서도 상당한 정도의 대응은 가능하고, 우리의 후손들에게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이 허용될 수 있을 것이다.

(11)

시골사람들은 이 모든 것을 도시인들 탓으로 돌리면 기분이 좋아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골과 도시의 대립이라는 오래된 도식은 물론 여전히 진실이며, 시골이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도시의 식민지가 되어 있는 오늘날에는 경제적인 의미에서는 더욱 진실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문제를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단순하다. 실제로 시골사람들도 갈수록 도시인들처럼 살고 있고, 따라서 도시인들과 공범이 되어 자신의 무덤을 파고 있기 때문이다. 점점 더 많은 시골사람들은 도시인들처럼 텔레비전과 세일즈맨, 외부 전문가들이 설정한 경제적, 사회적 기준을 자기들의 생활에 적용하고 있다. 우리의 쓰레기는 시골 매립장에서 뉴저지의 쓰레기들과 뒤섞여 있고, 어느 것이 어느 것인지 구분한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13)

저 옛사람들의 후손들은 지금 대부분 멀리로 떠나버렸다. 그 원인은 부분적으로 내가 조금 전에 언급했던 문화적 경제적 실패에 있다. 어쨌든 그들은 더 이상 저녁마다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잠잘 때까지 텔레비전을 보면서 매 수간을 광고를 듣는 데 쓰고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광고의 메시지는, 시청자가 다른 사람들처럼 되어야 하고 그러자면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사야 한다는 것이다.

(36)

농사를 살리는 것은 당면 위기에 대한 지혜로운 대응일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의 난제 중의 난제, 즉 수도권 과밀현상과 지역균형발전 문제의 해결에도 결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중앙의 주요 기관 지방 이전이라는 방식으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지역경제가 우선 살아나야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역경제의 핵심이 농사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이다. 농사를 살리면 지역의 토착 소상공업이 살아나고, 지역사회와 마을문화가 활기를 찾고, 거기에 뿌리를 박고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자연히 늘어나게 마련이다.

(53~54)

분단체제는 다른 체제로 체제전환(system transformation)됨으로써 사라진다. 분단체제 안에서 성장해온 힘이 이 체제의 작동을 정지시키면서 새로운 체제로 전환해가는 것이다. ‘촛불혁명이야말로 바로 이러한 체제전환의 계기, 출발점이 되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분단체제가 체제전환을 통해 환골탈태해야 한다면, 그 환골탈태한 새 체제란 과연 무엇일까? 남북의 적대가 해소되어 평화롭게 공존하는 체제 아니겠는가? 그래야 독재가 민주를 회수하는 마의 순환고리가 이윽고 끊기지 않겠는가? 그것이 한국과 조선이 서로를 인정하여 수교하는 양국체제, 즉 양국 평화체제, 양국 공존체제 아닌가? 그것이 분단체제에서 양국체제로의 체제전환인 것이고, 이것이 촛불을 진정 혁명으로 만드는 징표가 되지 않겠는가?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과연 분단체제론은 어떻게 생각할까?

(81)

1999 8현대의료를 생각하는 모임회원 아홉 명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 바르바샤의 게토 유적, 그리고 독일 베를린으로 답사여행을 떠났다. 일본과 자주 비교가 되기도 하지만, 독일 또한 전쟁 당시 나치에 의해 의학범죄가 행해졌던 나라이다. 그러나 일본은 전쟁 중의 의학적 범죄에 대해서 조금도 반성하거나 돌아보려고 하지 않는 데 비해서, 독일의 경우에는 나치 의학이 저지른 범죄들에 대해 반성하고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들이 계속되고 있다. <인간의 가치 - 1918년부터 1945년까지의 독일 의학>은 나치 당시의 독일 의학을 반성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독일의사회가 발행한 보고서이다. 여기에는 과거의 나치 독일 치하에서의 의학범죄 사실들이 상세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에 비해 일본의 경우에는 일본의사회를 비롯해서 아무 데서도 이러한 노력이 조금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28)

대학은 과학에 대해서 무엇을 해왔는가? 대학은 대학의 경비 염출을 위해서 과학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희생시켰다. 대학은 과학을 싸구려로 만들고, 알아보지도 못할 정도로 통속적으로 만들었다. 대학에 의해서 과학은 홍보용 속임수 수단이 되었다. 이런 종류의 교육에 의해서 나온 산물이 그래도 좋은 물건이 되어 있다면, 그것은 젊은이들의 정신이 아직 건강한 탄력성을 잃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하지만 많은 젊은이들은 회복 불가능할 만큼 손상을 입고 있다.

(129)

오늘의 과학은 공적 지원에 너무나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보조금을 받지 않고는 연구를 수행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만약 과학자들의 연구비 신청이 거부된다면, 가장 젊고 원기 넘치는 조교수들조차도 하던 일을 모두 중단하고 신청서를 작성하는 일에 모든 시간을 바쳐야 한다. 이와 같이 연구비가 나오는 수도꼭지가 끊임없이 열리고 닫히다 보면, 그것은 일종의 파블로프형 조건반사 작용을 낳고, 과학을 돌이킬 수 없이 손상시키는 일반 신경쇠약 증상을 초래한다. 그러고 보면 너무 가난해지기 전에 너무 부유해지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법하다. 왜냐하면 그사이에 실현될 가능성도 별로 없는 길로 많은 젊은이들이 유혹을 받고 끌려 들어왔기 때문이다.

(229)

따라서 자본주의시스템에서 모든 개인은 중독시스템을 구성하는 기본세포이다. 이 세포의 성장은 중독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를 확대재생산한다. 아니 자본주의가 존재하는 한 이 세포는 계속 성장해야만 한다. 결국 세포, 그들이 속한 다양한 조직인 학교, 가족, 노조, 기업, 정부 그리고 이것들을 품에 안고 작동하는 사회 전체가 하나의 중독시스템으로 완성된다. 잘 짜인 연결망으로 서로를 얽매어 중독이라는 단일한 작동 메커니즘에 따라 움직이는 거대한 괴물체, 저자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중독 과정을 영속화하는 병든 시스템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인 것이다.

(233)

중독시스템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가? 물론 그 출발은 나 자신이 (동반) 중독자라는 사실을 시인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를 위해 건강하고 행복한 사회를 지향하는 과감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유보다 존재를 지향하는, 결과보다 과정을 지향하는, 그리고 외면보다 내면을 지향하는 삶으로서의 방향전환이 그것이다. 이러한 방향전환을 토대로 중독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의 시스템을 상상해볼 수 있다. 저자들은 기계의 원리인 자동성, 획일성, 무한성이 지배하는 대량생산-대량소비-대량파괴를 특성으로 하는 근대성 패러다임의 극복을 말하는데, 야생성, 다양성, 순환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자연의 원리와 계획성, 창의성, 윤리성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인위적 원리의 중간 어디쯤에서 새로운 시스템의 기본 원리를 찾을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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