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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하고 호쾌한 여자 축구 - 한 팀이 된 여자들, 피치에 서다
김혼비 지음 / 민음사 / 2018년 6월
평점 :
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아빠도 축구를 좋아하는 편이야.. 아주 예전에는 조기 축구도 하고
그랬는데…. 언젠가부터 기회도 없어지고, 체력도 떨어지고, 낯가림도 많아지고, 게으름도 많아지고 나서는 축구를 할 기회가 없구나. 하지만 축구 보는 것은 여전히 좋아한단다. 작년에는 월드컵과 아시안게임
때는 너희들과 함께 축구를 보고 같이 응원을 할 수 있어 좋았단다. 그런데 방금 전 아시안컵에 보다가
속 터지는지 알았단다. 국가대표 경기 말고 프로축구도 가끔 보고,
유럽축구도 즐겨본단다. 그런데, 아빠가 보는
축구는 늘 남자들이 하는 축구였단다.
여자축구를 본 적이 있나 싶어.. 이 책을 읽고 나서 참 미안한 마음이
들었단다.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면서 여자축구 경기를 제대로 한번 관람한 적도 없으니 말이야. 우리나라에 여자프로축구가 있다는 사실도 처음 알게 되었단다. 그냥
실업 축구단만 있는 줄 알았어. 그리고 그 여자프로축구는 입장료도 없다고 하더구나. 그런데도 관객은 거의 없다고 하고… 이 책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여자축구의 관심이 늘었으면 하네.
…
축구를 좋아하지만 축구에 관한 책은 읽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그런데
제목에 떡 하니 “여자 축구”라고 써있는 책을 왜 읽었냐고? 이 책은 먼저 읽은 이들의 극찬이 이어진 책이란다. 아빠도 축구도
좋아하니까 읽어보고 싶어서 기억하고 있다가 이번에 읽게 된 것이란다. 김혼비라는 필명을 가진 분이 끈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라는 책이야.
평범한 직장 여성이 아마추어 여자축구단에 가입해서 일어났던 에피소드들을 모아 놓은 글이란다. 글솜씨가 예사롭지 않단다. 말을 재미있게 쓰는 사람은 꽤 있지만, 글을 재미있게 쓰는 사람은 많지 않거든. 지은이의 첫 번째 책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게 썼단다. 에세이를 읽으면서 이렇게 킥킥 웃으면서 읽은 책이 있나 싶었단다. 비유 또한 놀랍더구나. 폴란드 학생을 소환하고 실존주의를 소환하는
실력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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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6)
골키퍼의 선방에 막혀
튀어나온 공을 리바운드해서 골로 연결하는 것, 그러니까 내가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바라 마지않았고, 하려고 노력했던 ‘툭 쳐서 주워 먹기’를 드디어 성공했는데, 하필 골키퍼가 나였다. 저 시나리오에서 골키퍼도 내가 되고 주워 먹는 사람도 내가 될 수 있었다니,
정말 생각지도 못한 대반전이다. 마치 폴란드 영화 학교
2학년생이 실존주의에 대해 고민하다가 써낸 단편 영화 시나리오 같다. 살면서 내가 골을
넣는다는 것도 매우 현실성 없는 불가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는데, 살면서 내가 자책골을 넣는다는 것은
아예 상상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던 일이었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일어났다. 축구가 진짜 이렇게 전복적인 종합 예술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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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읽은 이들이 왜 극찬을 했는지 알겠더구나.
1.
여자가 축구를 좋아한다고 하면 보통 보는 것을 이야기하는 거야. 2002년
월드컵 이후에는 여자들도 축구 보는 것을 많이들 좋아하는 것 같더구나. 그 이전까지만 해도 여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이야기로 축구 이야기가 3등이었고, 1등이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라는 우스개도 있었어. 최근 들어서는 축구에 관심이 많은 여자들도 많아졌지만, 유럽 축구를 좋아하는 여자들은 아빠 주변에 없는 것 같아. 예전에
재미있게 읽은 소설 <아내가 결혼했다>의 여자
주인공이 바르셀로나와 유럽축구의 광팬으로 나왔던 것이 기억나는구나. 이 책의 지은이 김혼비도 브라질의
전설적인 축구선수 호나우두에 반해서 그가 뛰었던 유럽축구에 빠졌었다고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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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37)
나는 어느 날 우연히
호나우두가 스텝오버하는 장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보통 헛다리를 짚을 때는 달리는 속도가 확 줄기
마련인데 그런 기색 하나 없이 수비수들을 휙휙 제치고 죽죽 나아가고 있었다. 아니, 저게 가능한가? 물리학적으로 말이 되나? 마지막에는 골키퍼까지 스텝오버로 제치고 골을 꽂아 넣는데, 축구가
저렇게까지 아름다울 노릇인가 어이없을 정도였다. 우아한 헛다리와 그물 안으로 감겨들어 가는 공의 궤적과
관중들의 얼굴에 역력한 감동의 흔적. 어마어마한 규모의 관중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지만 세상이 잠시 숨을
죽인 것 같은 시간이었다. 그때부터 축구에 본격적으로 빠져들어 오랫동안 호나우두를 따라다니며 해외 축구를
찾아봤다. (새벽 중계가 대부분이어서 오랜만에 AM 김혼비가
맹활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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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직접 여자가 축구를 한다? 아빠 주변에는 물론 축구 하는 여자가
없기 때문에 축구 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기회가 없었어. 이 책은 그런 축구 하는 여자가 직접 이야기해주는 것 같았어. 그들이 뛴 경기뿐만 아니라 경기장 밖에 있었던 일들까지 말이야. 그것도
극적인 반전과 순발력 있는 위트까지 가미해서 말이지… 때로는 콧등 찡한 감동도 주었어. 연령대도 다양하고 직업도 다양한 그녀들은 왜 축구를 하는 것일까? 여자
축구에는 어떤 매력이 있을까? 남자 축구와 달리 섬세함이 있다면서 이번에는 트럼프 카드를 소환해서 비유했단다. 지은이는 비유의 천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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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신체 조건상 남자 축구에
비해 힘과 속도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여자 축구만의 독특한 색깔이 나온다 남자
축구는 뭔가 휙휙 재빠르게 지나가 버리는 느낌이라면, (물론 그게 또 재미지만) 여자 축구는 ‘상대적으로’ 느리고
정적인 몸동작과 전개가 선수들과 공이 만들어 내는 축구의 전체적인 그림을 좀 더 명확하게 보여 준다. 패스
워크라든지, 오프더볼 상황에서의 움직이라든지, 역습 때의
호흡 같은 것들을 그때그때 섬세하게 읽어 내는 재미가 있다. 툭툭 주고받는 짧은 패스들이 중간에 끊기는
일 없이 호쾌한 슈팅까지 이어지는 과정을 차근차근 따라가다 보면, 한 장 한 장 엇갈리게 섞인 트럼프
카드가 둥그렇게 만든 손 모양을 따라 폭포처럼 아래로 좌르륵 떨어지며 반듯하게 정리되는 것을 볼 때처럼 살짝 황홀하고 근사한 기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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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킥킥 웃음을 참으며 책을 읽다 보면 금방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게 된단다.. 마지막에는
생각거리를 하나 던져 주었어. 많은 사람들이 축구를 남자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여자 축구는 그런 인식의 틈을 내고 인식의 변화를 만들었다고 했어. 축구뿐만
아니라 우리가 은연중에 남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많은 분야에 여자들의 도전으로 인식인 바꿀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단다. 옳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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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그러다 보면 지금은 너무나
아득해서 보이지도 않는, 축구처럼 아직까지도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다른 많은 분야들에서 끊임없이
인식의 구획에 틈을 내고 틈을 넓히는 많은 사람들과 마침내 아무 구획도 없는 넓은 광장에서 만나는 그 날을 조금이라도 앞당길 수 있지 않을까.
‘초개인주의자’인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이지만, 그렇다 인간은 모일수록 좋은 것 같다. 적어도
축구공 앞에서, 특히 여자들은. 무엇보다 축구는 재미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으니까.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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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읽고 나서 여자 축구에 대한 관심이 급상승했단다. 그래서
여자프로축구에 대해서 검색도 해보고 그랬어. 앞으로 남자 축구뿐만 아니라 여자 축구에도 관심을 가져
보려고 해… 나중에 기회가 되면 너희들과 여자프로축구를 한번 보러 가도 좋고.. 공짜라잖아..^^
PS:
책의 첫 문장 : “나이 먹으면서 취향이 변하는 게 맞나 봐. 난 원래 운동하는 거 질색했는데.”
책의 끝 문장 : 뭐가 됐든 재미있으면 일단 된 것 아닌가. 정말이지, 이거 기절한다.
(8)
그러다가 성인이 되어 우연찮게, 썩 탐탁지 않은 마음으로, 룰도 제대로 모른 채 축구를 시작한 여자들이 있다. 그들은 숨이 턱에 찰 때까지 넓은 피치 위를 뛰어다니고, 공 다루는 섬세한 기술들을 하나둘씩 익혀가고, 팀원들끼리 호흡을 맞춰 골대를 향해 공을 착착 몰고 가는 재미에 푹 빠지며 ‘아, 사실 나는 운동을 좋아하는구나’를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운동에 대한 깊고 오랜 오해 하나가 풀렸을 뿐인데 그녀들에게 축구를 시작한 이후의 시간들은 전과 다른 시간이 되었다.
(34)
이렇게 운동 효과 면에서나 대외 이미지나 일상 활용성에서 모두 애매하디 애매한 운동이면서, 결정적으로 접근성까지 낮다. 다른 운동처럼 여기저기 배울 곳이 있고 정보가 널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경로로 열심히 검색해 봐야 하나씩 겨우 나온다. 이 모든 것이 여자들이 그라운드로 진입하는 것을 겹겹이 막으며 철통 수비하고 있다. 축구로 입문하는 과정 자체가 이미 하나의 축구인 것이다.
(43)
반면 남의 축구는 거의 보지 않는 이 ‘축구하는 여자들’ 머릿속에 뜨는 것들은 본인이 넣었던 첫 골, 본인이 경기 중 저지른 뼈아픈 실책, 우리 팀이 역전승하던 날, 우리 팀 유니폼 같은 것들일 것 같다. 그 속에는 오직 나 자신, 내가 속한 팀만이 있다. 어느 프로 축구팀의 어느 유명 선수가 끼어들 틈 없이. ‘축구’와 관련해서 자신에게서 비롯되는 자신의 몸에 새겨진 경험들로만 꽉 채워져 있는 여자들. 오, 생각해 보니 이건 이거대로 멋있잖아?
(64)
이게 다 아웃사이드 드리블 때문이다. 아웃사이드 드리블은 발 바깥쪽을 이용해서 새끼발가락이 공 밑 부분에 살짝 들어가듯 차, 공을 밀어내며 전진하는 것을 말한다. 이 드리블 최고의 장점은 수비를 속일 때 아주 유용하다는 점이다. 이쪽으로 갈 것처럼 몸을 기울여서 상대 선수가 덩달아 그쪽으로 몸이 기운 틈을 타 반대쪽으로 휙 빠져나가기 좋기 때문이다. 축구에서 가장 짜릿한 순간이라면 단연 ‘슛! 골인’이겠지만, 수비를 휙휙 제치며 빠져나가는 순간도 그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나를 축구로 확 끌어들인 장면도 호나우두의 골이 아니라 헛다리 짚기 아닌가! 로빙슛의 그날, 우리 주장이 보여 줬던 현란한 페인트 동작은 또 어떻고!
(67)
공을 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는 순간 어쩐지 공을 헛 찰 것 같고, 발, 발등, 새끼발가락, 땅을 딛고 있는 반대편 다리로 온 신경이 분산되면서 스텝이 엉키거나 힘이 지나치게 들어가 공을 이상하게 차고 만다. 인간이란 무언가를 의식하는 순간 그 의식의 대상에 필요 이상으로 파괴적인 힘을 주는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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