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리맨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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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딸과 아들에게 보내는 독서편지

0.

얼마 전에 인터넷 뉴스를 통해서 필립 로스의 타계 소식을 접했단다. 인터넷 서점에서는 필립 로스의 .타계를 추모하는 배너를 띄우기도 했단다. 필립 로스. 사실 아빠는 그의 책을 읽어 본 적이 없었어. 하지만, SNS와 인터넷 서점 등에서 그에 대한 평가가 무척 좋다는 것은 알고 있었어. 그래서 그의 대표작 중에 하나인 <에브리맨>을 진작에 사두기도 했어. 언젠가는 읽겠지, 하고 그냥 사둔 거지 뭐. 그런데 그의 타계 소식을 들었어. 해마다 노벨문학상 수상 후보로 오르내리던 그였는데, 결국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구나.

그가 타계하고 난 뒤, 아빠가 좋아했던 작가는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부터 칭송을 받던 작가이니까 아빠도 조금은 추모한다는 마음으로 진작에 사두었던 그의 책 <에브리맨>을 읽었단다. 200페이지가 채 안 되는 책이 뭐 있겠냐 싶었는데, 진하고 묵직함이 머리부터 가슴을 거쳐 발끝까지 훑고 지나간 기분이 들었단다. 한 남자의 일생에 관한 이야기가 200페이지 안짝에 다 그려지다니그래, 인생이란 그렇게 금방 휙 지나가버리고 짧은 거야. 소설의 제목에브리맨은 주인공의 아버지의 보석상의 가게 이름이기도 하고, ‘보통사람’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단다. 보통사람의 삶의 이야기

이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조차 나오지 않았단다. 처음부터 끝까지로 통했어. 아빠는 그래도 마지막에그의 이름은 누구였다라고 끝날 줄 알았는데, 끝내 주인공의 이름은 등장하지 않았어. 그냥 그는 에브리맨이었던 거야.

1.

소설의 시작은 그의 딸 낸시가 준비한 그의 장례식 장면으로 시작한단다. 그의 친구들과 가족들이 떠나간 그를 추모하기 위해 자리에 모였단다. 그 자리에 모인 누군가는 그와 함께한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단다. 그리고 장례식이 끝나고 나면 그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고, 시간이 흐르면 보통사람이었던 그를 사람들은 잊어갈 거야. 지은이는 그런 보통 사람의 삶을 기록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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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아버지는 유대인으로 전쟁통에 미국으로 이민을 왔고, ‘에브리맨’이라는 보석상을 냈어. 그의 아버지는 돈도 잘 벌어 그는 넉넉한 집안에서 자랄 수 있었어. 그는 형 하위가 있었고, 그의 형은 공부도 잘하고, 운동도 잘하고 동생인 그에게도 잘 해주었어.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잘 자랐어. 1942년 어린 시절 탈장으로 처음으로 병원에 입원한 경험이 평범을 살짝 벗어난 일이라고 해야 할까. 처음으로 혼자 병원에서 보내면서 병이라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되었을 거야. 그는 미술을 좋아해서 화가가 되려고 했지만, 현실은 그를 광고회사 직원으로 만들었단다. 그래도 회사 생활도 잘 해서 그럭저럭 성공 가도를 달렸다고 볼 수 있어. 그는 부모님의 뜻에 순응하며 평범하고 살았어. 결혼하기 전까지는

세실리아라는 여인과 결혼하여 두 아들을 낳았지만, 행복하지는 않았어. 결국 세실리아와 이혼을 했단다.. 34살 때 충수염으로 병원에 한 달 동안 입원한 적이 있었어. 그때 이혼한 그의 곁은 지켜준 이가 피비라는 여자였는데, 그는 피비와 재혼을 했단다. 그와 피비는 딸 낸시를 낳았어. 그는 피비와 끝까지 잘 지내야 했어. 피비는 심성도 착하고 내조도 잘하던 여자였는데 말이야. 그런데 그는 잠깐의 욕망으로 인해 두 번째 결혼도 실패로 끝이 났고, 세 번째 결혼 역시 아주 짧게 실패로 끝이 났단다.

피비에게서 얻은 딸 낸시도 그에게 참 잘했어. 첫 번째 아내에게서 얻은 두 아들은 그와 연락도 잘 안되었는데, 낸시는 그가 이혼을 한 다음에도 그와 연락도 하고, 잘 지냈단다. 그러니 더욱 피비와 이혼하지 말고 잘 지내었어야 했는데그가 낸시를 생각하는 마음이 마치 너희들을 생각하는 아빠의 마음인 것 같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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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는 한 번도 딸 걱정을 안 한 적이 없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이런 아이가 운 좋게 자기 자식이 된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가 이런 자식을 얻을 만한 일을 했다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피비라면 몰라도. 어쨌든 그런 사람들이 있다. 눈부시게 착한 사람들-정말이지 기적처럼 착한 사람들. 이런 기적 가운데 하나가 그 자신의 딸, 부패라고는 모르는 딸이라는 것이 그의 큰 행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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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삶이 평범한 보통사람이라고 했는데, 그의 결혼은 그리 평범한 것은 아닌 것 같구나. 지은이가 주인공의 결혼을 세 번이나 실패한 것으로 설정한 것은 나중에 죽음을 맞이하는 주인공을 더 외롭게 만들려는 설정이 아니었나 싶더구나. 1989년에 그는 아버지가 임종할 것 같다는 소식을 듣고 병원에 갔다가 오히려 그가 갑작스런 심장질환이 생겨 쓰러졌고, 그로 인해 큰 수술을 하게 되었단다. 그 큰 수술을 인해 그는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건강을 많이 잃었고, 이후 병원 생활은 일상이 되었어. 그는 장수한 부모님과 그보다 여섯 살 위지만 여전히 건강한 형에 비해 자신은 이제 고작 육십 대인데 건강을 많이 잃어버린 것에 대해 화를 내기도 했단다. 노년에 접어들면 죽음을 피하는 것이 삶의 중심이 된 것을 그도 피할 수 없게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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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그는 세 번 결혼을 했고, 애인들과 자식들과 성공을 안겨준 흥미로운 일자리를 가졌지만,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의 전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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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세 번의 결혼 실패로 그 주위에 남은 것은 고독뿐이었단다. 그리고 그에게 잘 대해주었던 형과도 왠지 모를 질투심으로 관계가 멀어졌어. 그 모든 원인은 그에게 있었어. 그걸 그 자신도 알았단다. 하지만 그것을 바꾸려 하지도 않았어. 고독과 외로움이 그의 벗이 되었지. 그가 싫어하는 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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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4)

자신이 없애버린 모든 것, 이렇다 할 이유도 없는 것 같은데 스스로 없애버린 모든 것, 더 심각한 일이지만, 자신의 모든 의도와는 반대로,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없애버린 모든 것을 깨닫자, 자신에게 한 번도 가혹하지 않았던, 늘 그를 위로해주고 도와주었던 형에게 가혹했던 것을 깨닫자, 자신이 이제 단지 신체적으로만 전에 원치 않았던 모습으로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수치스럽게 깨닫자, 그는 주먹으로 가슴을 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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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회사 생활은 비교적 성공을 했기 때문에 노년을 보내는데 연금은 충분했어. 그는 고독을 채우기 위해 마을에서 자원하여 그림을 가르치기도 했어. 그 그림교실에 나오는 이들도 대부분 그와 마찬가지로 노인들이 대부분이란다. 그들도 고독을 잊기 위해서 그림교실에 나오는 것이었어. 그들도 그들을 괴롭히는 병들을 하나 둘씩 가지고 있었어. 그와 말이 잘 통하던 어떤 여인은 병에 대한 고통과 외로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을 하기도 했어. 그녀의 자살은 또 그에게 이런저런 고통을 주었지. 노년층의 자살 증가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는 이야기가 떠오르더구나. 한편으로 이 소설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노년은 전투라는 말에 공감이 가기도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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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9)

다들 몸에서 가장 먼저 닳아버리는 지점이 있잖아요. 그이는 그 지점에 피로가 쌓였던 거죠. 이틀 전 밤에 나한테 그러더군요. ‘너무 피곤해그이는 살고 싶어했지만, 누가 무슨 일을 해도 그이를 더 살아 있게 할 수는 없었어요. 노년은 전투예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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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을 읽다 보면 나의 노년을 생각하게 될 수밖에 없었어. 나이가 들어 사회에서 나를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두려울 것 같더구나. 해탈을 하지 않은 많은 평범한 사람들은 죽음을 순순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야. 이 책에서도 주인공을 통해 죽음이 두려움을 표현하는데, 읽는 이로 하여금 자신의 미래를 생각하게끔 하였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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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

인생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강렬한 일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죽음은 정말 부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일단 삶을 맛보고 나면 죽음은 전혀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는 삶이 끝없이 계속된다고 생각해왔지요. 내심 그렇게 확신했습니다. “아니, 댁이 틀렸소.” 남자는 그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단호하게 말했다. “저 여자는 늘 저랬소. 오십 년 동안이나 저랬단 말이오.” 그는 절대 용서 못 할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며 덧붙였다. “저 여자는 자기가 이제 열여덟 살이 아니기 때문에 저러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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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 심장질환으로 수술을 받은 이후로 그에게 수술은 일상이 되었단다. 이번 수술도 그런 일상의 수술 중에 하나겠지.. 또 퇴원하여 죽음을 기다리겠지, 하면서 들어간 수술에서 그는 깨어나지 못했단다. 그의 짧은 삶의 마감과 함께 소설도 끝이 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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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

그는 생각했다. 여름의 매일매일 살아 있는 바다에서 타오르던 그 빛이여. 그것은 눈에 담을 수 있는, 엄청나게 크고 귀중한 보물이었다. 마친 아버지의 이름 머리글자가 새겨진 보석상 루페로 귀중하고 완벽한 행성 전체를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고향을, 십억, , 천조 캐럿짜리 행성 지구를! 그는 쓰러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불길한 운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느낌으로,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하며 밑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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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아빠도 나이를 하나 둘 먹으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단다. 그러면서 체력을 많이 요하는 운동이나 격렬한 운동을 할 때는 몸을 조심하게 되고점점 이번 생에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 하나 둘 늘어나겠다는 생각도 했어. 이런 생각을 하면 슬퍼지기도 하더구나. 그런데 아빠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생겨나게 되면, 그 시간에 다른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걱정 없다는 생각도 같이 했어. 예를 들어 책 읽는 시간이 더 늘어나서 좋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나이를 먹으면서 하나를 잃으면 하나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위안을 삼아야지. 아빠가 너무 앞서가는 것인가?^^

그런데 지난 십 년을 생각해보면 정말 휙 지나갔음은 사실이란다. 아빠의 노년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더구나. 노년이 너무 빨리 와도 놀라지 않도록 마인드 트레이닝도 좀 해야겠구나. 너희들과 함께 하는 시간도 더 많이 만들어야겠어. 노년이 다가온다는 이야기는 너희들도 함께하는 시간도 줄어든다는 이야기니까 말이야..^^



(23)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

(39)

그는 특별하고자 한 적이 없었다. 다만 나약했고 공격에 무방비 상태였고 혼란에 빠져 있었을 뿐이다. 그리고 한 평범한 인간으로서, 인생의 반을 발광 상태에서 살지 않으려다보니 죄 없는 자식들에게 큰 박탈감을 안겨주었을지 모르지만, 결국에는 자신도 사면을 받을 권리가 있다고 확신했다.

(63)

다이아몬드란 건 그 아름다움과 품위와 가치를 넘어서서 무엇보다도 불멸이거든. 불멸의 흙 한 조각, 죽을 수밖에 없는 초라한 인간이 그걸 자기 손가락에 끼고 있다니!

(171)

성공하지 못한 아버지, 질투심에 찬 동생, 한 입으로 두말하는 남편, 무력한 아들, 그의 가족의 보석상으로부터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에서 몇 명 되지도 않는 친족, 아무리 열심히 쫓아가도 도저히 거리가 좁혀지지 않는 친족을 소리쳐 부르는 자신의 모습. “엄마, 아빠, 하위, 피비, 낸시, 랜디, 로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방법만 알았다면 좋았을 것을! 내 말 안 들려? 나 떠나고 있다고! 다 끝났고, 나는 이제 당신들을 모두 다 떠나고 있어!” 그가 그들에게서 사리지는 것과 똑 같은 빠른 속도로 자신에게서 사라지고 있는 그 사람들이 고개만 돌려, 너무나 의미심장하게 소리쳤다. “너무 늦었어!”

떠남. 그가 공포에 질려 숨을 헐떡이며 깨어나게 했던 바로 그 말, 주검의 포옹에서 살아 돌아오도록 구해준 말.

(188)

그는 생각했다. 여름의 매일매일 살아 있는 바다에서 타오르던 그 빛이여. 그것은 눈에 담을 수 있는, 엄청나게 크고 귀중한 보물이었다. 마친 아버지의 이름 머리글자가 새겨진 보석상 루페로 귀중하고 완벽한 행성 전체를 살피고 있는 것 같았다. 그의 고향을, 십억, 조, 천조 캐럿짜리 행성 지구를! 그는 쓰러지는 것과는 거리가 먼, 불길한 운명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느낌으로, 다시 충만해지기를 갈망하며 밑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없었다. 있음에서 풀려나, 스스로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어디에도 없는 곳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처음부터 두려워하던 바로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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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07-16 23: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문득 저도 이런 형식으로 독서일기를 써볼까 하다가...생각만 해봅니다. 네루가 <세계사편력>을 감옥에서 썼다지요. 진짜 북홀릭님 대단합니다! 👍👍👍애들을 정말 생각하는 마음이 대단하신 것 같아요 아직 전 멀었나봅니다 내꺼만 챙기는 아빠 ㅜㅜ

bookholic 2018-07-17 23:19   좋아요 2 | URL
저는 감옥 아니구요..^^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이왕 독후감을 쓰는 거 편지 형식을 빌렸을 뿐입니다. 카알벨루치님이 그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무더위가 한창인데 더위 조심하시고, 시원한 여름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