史記本紀 까치동양학 22
사마천 지음 / 까치 / 199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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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성립되기 전 5년 동안은 항우와 유방의 시대였다. 두 사람은 태생도 다르고 생긴 모습이나 성정, 사람을 다루는 방법,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등도 판이했다.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진시황제의 행차를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항우는 “저 사람의 자리를 내가 대신 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의 의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면서 미래지향적인 반면 유방은 “아! 대장부란 마땅히 저래야 하는데”라고 한다. 부러워하는 듯하면서 수동적이다. 그러나 그 속은 의뭉스럽다.

항우는 초나라 장수가문 태생이고 유방은 평범한 가문의 자식으로 그가 범상치 않음을 뜻하는 것은 교룡이 몸 위를 올라갔다는 어머니의 꿈뿐이었다. 항우는 키가 8척이 넘고 힘은 커다란 정을 들어 올릴 만했으며 재기가 범상치 않아 모두들 항우를 두려워했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으나 “글은 성명을 기록하는 것으로 족할 따름이며, 검은 한 사람만을 대적할 뿐으로 배울 만하지 못하니, 만인을 대적하는 일을 배우겠습니다.”라는 말처럼 글을 익히거나 검술에 뜻이 없었다. 병법도 처음에는 크게 기뻐하였으나 이 또한 끝까지 배우고자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인문학적 소양은 전무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관과 마음 그리고 상황에 따른 판단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듯싶다.

유방은 콧날이 높고 이마는 튀어나와서 얼굴 모습이 용을 닮았으며, 멋진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넓적다리에는 72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평소 원대한 포부를 품고 농사일이나 일상사에 얽매이려 하지 않았다. 술과 여색을 좋아하고 주점에 가서 외상으로 술을 마셨으며 취하여 드러누우면 몸 위로 용이 나타났다. 유방은 관아의 모든 관리들을 깔보고 멸시했을 뿐만 아니라 큰소리만 치고 거짓말도 잘했으며 실행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은 뛰어났고 또한 유방을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항우와 유방은 서로 상반된 생김새만큼이나 다른 성격을 가진 듯하다. 이것은 초군과 한군이 광무산 계곡에서 오래 대치할 때를 보면 두 사람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항우는 유방과 단독으로 자웅을 겨루기 원한다. 지친 병사들을 대신해서 왕끼리 맞짱을 뜨자는 것이다. 그러나 유방은 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성격대로 항우의 열 가지 죄상을 조목조목 읊으며 반박한다. 이에 화가 난 항우가 쇠뇌로 유방의 가슴을 명중시켰다. 그러나 유방은 가슴에 맞고도 발을 더듬으며 “저 역적이 내 발가락을 맞혔구나”라고 떠벌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방이 말하는 항우의 열 가지 죄목은 유방 스스로에게도 대부분 해당되는 죄목이기도 하다.

위기에 처했을 때 두 사람의 모습은 더욱 볼만한다. 항우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해하에서 항우는 한군이 사방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다. 그는 장중에서 술을 마시며 비통한 마음으로 시를 읊는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만하건만
時運이 불리하여 추 또한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하는가?

시는 정녕 이러한 순간에 나오는 것이니 그 절절함 끝에 놓이는 것이 물음표뿐이라니 야속하기만 하다. 오강의 나루에서의 항우의 마지막 말은 뜨겁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건너서 무얼 하겠나? 또한 내가 강동의 젊은이 8000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었는데, 지금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했거늘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불쌍히 여겨 나를 왕으로 삼아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나? 설사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삶이 강 건너에 있다. 그러나 그것에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는 모습이다. 또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마지막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지만 5 년 동안 자신과 생사를 함께했던 말은 차마 죽이지 못하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

반면 팽성에서 항우에게 쫓겨 달아나던 유방의 모습은 전혀 다른 뜻으로 인간적이고 안타깝다.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진 유방은 쫓기던 중 그의 아들과 딸 호혜와 노원을 만나 수레에 태웠다. 그러나 초군의 기병에 쫓겨 다급해지자 두 자식을 수레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다. 한 번도 아니고 세 차례나 된다. 그렇게 데리고 온 호혜를 유방은 바로 태자로 세우고 죄수들에게 대사면을 내린다. 아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전쟁 중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어 후사를 세운 것일까? 하늘의 뜻을 받은 자는 인륜을 저버려도 되는 것인지 가족에 대한 개념이 현대와 다른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또 진평의 계책을 써서 항우로 하여금 범증을 의심하게 만들거나 형양에서 식량이 떨어지자 부녀자에게 갑옷을 입혀 초군의 화살받이로 쓰고 자신은 탈출하는 등 군주답지 못한 행동들이 많이 보인다. 황제에 올라서는 개국공신들을 모조리 삼족을 멸하는 벌을 내리면서 토사구팽하는 행동을 한다.


유방이 항우를 무찌르고 한나라의 고조로 등장하기까지에는 장량, 소하, 한신, 번쾌 등 능력이 빼어난 인재들의 역할이 컸다. 유방의 능력은 그들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고루 배치한 것이다. 그러니까 유방 스스로 말하듯이 “나는 장량처럼 교묘한 책략을 쓸 줄 모른다. 소하(蕭何)처럼 행정을 잘 살피고 군량을 제 때 보급할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병사들을 이끌고 싸움에서 이기는 일을 잘 하느냐 하면, 한신(韓信)을 따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세 사람을 제대로 기용할 줄 안다. 반면 항우(項羽)는 단 한 사람, 범증(范增)조차 제대로 기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천하를 얻고, 항우는 얻지 못한 것이다.”그러나 유방도 큰일을 도모하기까지는 이렇게 자신에게 모자라는 부분을 다른 사람의 능력으로 대체하는 수완이 빼어났으나 집권이후에는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항우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자신의 마음에 부끄러움 없이 처리했다. 그 결과는 잔인했고 그를 잘 아는 주위의 몇몇 사람을 제외한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반면 유방은 과정은 더티한 부분이 더러 보이는데 사후처리에 아주 너그러웠다. 심지어 항우를 위해서 발상하고 흐느끼기까지 했다고 한다. 유방이 널리 인기가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유방은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그것을 널리 이용했던 듯싶다. 유방과 항우가 서로 화합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그러나 그들은 서로 대립 했고 전혀 다른 인간의 모습을 후세에게 보여주고 있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어 보인다. 다만 내게 항우는 매력을 유방은 권력을 생각하게 한다. 
 

p.s 위의 인용한 내용은 모두 까치 출판사의 <사기 본기>에서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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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1-01-17 17: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뭇 사람들이 <열전>만을 얘기하는데, <본기>가 생각보다 흥미롭죠.
사마천이 한무제를 혹평하는 대목도 재미있구요. 쓸 데 없는 말 속에 한무제 역시 쓸모없는 인간임을 야유하고 있는 듯해 웃음을 자아냈습니다.
맹추위에 별고 없으신지요?

반딧불이 2011-01-17 23:23   좋아요 0 | URL
사기는 본기 세가 열전을 함께 읽어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항우는 거의 본기에만 나오지만 고조본기에서 유방에 대한 얘기는 별로 안나오는데 열전에서 오히려 유방이 재구성되고 있는것 같았어요.

저는 별일 없어요. 닥나무님은 어떠신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1-18 10:36   좋아요 0 | URL
저는 <본기>를 읽고나서 <열전>을 읽었는데 각 인물의 묘사가 서로 다르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실을 주무르는 작가의 재능이 본격적으로 보이는 글쓰기라는 의미에서 <사기>를 읽어도 흥미로울 듯 합니다. <사기> 이전의 중국 고전엔 그런 모습이 거의 없거든요.
이리 저리 바빠 책도 못 읽고 지내는 요즘입니다. <사기> 서평을 대하며 <사기> 읽던 시절이 생각나 즐거웠습니다^^

반딧불이 2011-01-18 12:44   좋아요 0 | URL
말씀처럼 인물묘사가 본기 세가 열전에서 다 달라요. 고조본기에는 유방이 화내는 모습이 전혀 안나오는데 열전을 보면 거기에는 그런 모습이 더러 보이거든요. 그러니까 한 인물을 살피더라도 책을 다 읽어야 한 인물이 구성되게 되어잇는 형식이죠. 읽을때마다 사마천에게 감탄하고 있답니다.

양철나무꾼 2011-01-18 0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제왕지사'라는 책을 읽으면서, 항우와 유방의 잔인함에 혀를 내둘렀었는데 말이죠.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님이 페이퍼에서 명확하게 정리해 주신 그 방법)으로 사람을 다스렸고, 결국 자신들도 꼭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까 말예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11-01-18 12:46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께서는 늘 새로운 정보를 주시는군요. 저도 찾아보고 싶네요. 사기에 빠지면 너무 오래 갈것 같아서 조심하려구요. 밀린일이 발등에 떨어진 불처럼 뜨거운데 이러고 있네요.
 

 

『사기』를 읽는 일이 만만치 않다. 중국사에 대한 기본 상식도 전무한데다가 기전체라는 형식도 한몫을 단단히 하는 듯하다. 본기를 읽을 때는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 낳고, 낳고......’ 하는 마태복음을 읽고 있는 건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어려운 문장은 하나도 없다. 중간 중간 밑줄을 치지 않을 수 없는 보석 같은 문장들도 보인다. 그런데도 읽고 나서 정리가 되지 않는다. 매 행마다 사람이 죽고 서너 줄만 읽으면 한 나라가 무너지고 새 왕이 생겨난다. 52만 6500자로 총 130 편을 썼는데 죽은 사람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항우와 진시황이 생매장한 사람만도 얼마냐.

무지한 내가 선택한 방법은 『사기』를 읽기 위한 참고서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고우영의 만화 <십팔사략>10권을 책꽂이에서 꺼냈고, 도서관에서 몇 권의 책을 빌렸다. 정작 『사기』는 제쳐두고 참고서만 뒤적이게 되었다. 꼬박 열흘을 뒤적이다보니 거칠게나마 기전체의 꼴이 잡히고 읽는 방법도 어렴풋이 알 것 같다.  

이책은 앞으로도 몇번은 더 볼 것 같다. 사기와 함께 보면서 이 책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된다. '십팔사략'은  말 그대로 중국의 역사서 18권을 간략하게 그려놓은 것이다. 사마천이 중국땅을 샅샅이 밟고 다녔듯이 고우영도 그 넓은 중국 땅을 현장답사 했던 것 같다.  

사마천이 사기를 쓰면서 인물의 말을 마치 소설속 대화처럼 처리하는 부분이 있다. 나는 아직 본기 밖에 읽지 못했지만 본기에 나오는 대사가 만화에 똑같이 쓰여지고 있었다. 그림은 고우영의 상상력으로 그렸지만 그 대사 하나하나를 모두 역사에 나오는 그대로를 옮겨 놓은 것같다. 다른 것이라면 사마천이  감정을 배제한 채 사실만을 간결하게 나열하고 마지막 부분에 '태사공이 말하기를'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덧붙인 반면, 고우영의 만화는 재미를 위해서 고우영 개인의 도덕적 판단이나 현대인의 입장이 좀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다. 앞부분은 사마천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이고 뒷부분은 사자성어 공부하기에 좋게 구성되어있다. '사기의 말과 인간군상'이라는 소제목에서 보이는 것처럼 사람들의 관계에서 생겨난 말 즉 주지육림, 관포지교, 와신상담, 합종연횡 등 낯익은 사자성어들을 주제로 사기속에 나오는 사람들의 사건을 기술했다. 
                                                                                                   사자성어의 말 뜻만 외우기보다 그 말이 생겨난 배경을 알 수 있어 학생들에게 유용할 듯하다.  

 

 

 

 저자는 미야자키 이치사다라는 이름의 일본인 학자다. 교토대학 교수로 60여 년 동안 중국사에 몰두했다고 한다. "나는 기록되어 있는 것이라면 그대로 믿는 사마천의 태도에 웃음이 난다. 또한 당연한 일이겠지만 나는 사마천이 써 놓은 것을 그대로 삼킬 수가 없다."는 저자의 말이 재미있다.  

우리나라의 '서동요'를 보면 선화공주에 대한 요상한 노래를 지어 부르는데 왕은 그 노래를 부른 사람을 찾아 벌하지 않고 선화공주를 내쫓아 버린다. 이것이 단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이렇게 적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는 백성들의 말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항우본기>와 <고조본기>는 항우와 유방을 다룬 이야기다. 항우없이 유방을 얘기할 수 없고 유방없이 항우를 다룰 수 없는데 왜 사마천은 한번에 다루지 않았을까? 각각의 관점을 달리해서 서술한 것은 아니었을까 꼼꼼이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천퉁성이라는 중국작가의 사마천 평전이다. 사마천의 일대기가 마치 소설처럼 쓰여있어 쉽게 읽힌다. 한무제가 흉노 때문에 고심을 하고 있을 때 이릉이라는 자가 보병 5천을 이끌고 흉노족을 치러간다. 5천으로 1만이 넘는 흉노를 죽였으나 사지에서 보급품도 지원군도 없던 이릉은 투항하고 만다. 이를 변호했던 사마천은 한무제의 화를 돋우게 되어 궁형에 처해진다. 궁형은  '음탕한 행위' 즉 불법적인 성행위에 대한 벌이었다고 한다. 때문에 궁형을 받은 자는 그  치욕스러움을 견디기보다 차라리 자결을 하는 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궁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벌금으로 50만전이 있어야했지만 사마천의 집안에는 그만한 돈을 구할 능력이 없었다. 그가 궁형을 받은 것은 그의 나이 47세 때다. 사기는 초고가 거의 완성되어있을 때라고 한다. 아버지의 유언과 쓰다만 글에 대한 책임감이 그를 치욕속으로 내몰았을 것이다. 나머지 그의 생은 오로지 쓰는 것으로만 그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보임안서>에는 쓰지 않을 수 없었던 사마천의 절절함이 쓰여있다.   

 

사마천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들은 많지 않다. 사마천이 그의 친구 안임에게 보낸 편지 <보임안서>에 이릉 사건의 전모를 간략하게 밝히고 『사기』의 저술 동기와 목적을 밝혀두었다. 또 <태사공자서>에 집안의 내력과 아버지의 죽음, 본기, 세가, 열전,표, 서 등에 대한 요지를 밝혀두었다.  

『사기』는 구성의 특이함으로 인해 책읽기는 입체적으로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을 듯 싶다. 『사기』의 구성은 본기가 종축을 이룬다면 세가는 횡축, 그리고 열전에 나오는 각각의 인물들이 각 시대별 좌표로 점점이 박혀있다. 마치 x, y 축과 각 분면 4개로 그려지는 함수의 형상이다. 그러니  『사기』를 제대로 읽으려면 본기, 세가, 열전을 함께 읽으면서 시간과 공간을 재구성해야 하는 형식이다.  도대체 사마천은 어떻게 이런 구성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감히 답을 구할 엄두를 내지도 못하고 또 감탄만이 내 몫임을 한탄 한다. 

최근 『사기』가 새로 번역되어 나왔다. 값도 만만치않고 가지고 있던 책이 있어서 이럭저럭 꿰어 맞춰 읽고 있다. 이래도 되는 건지는 모르겠다. 

       

아이고..알라딘은 상품넣기를 하면 왜 제대로 정열이 안되는 걸까? 왜 붙여넣기를 하면 키가 들쑥날쑥 이모양일까..할때마다 속터진다. '인간 사마천'옆에 붙어 있는 글은 왜 저장만 누르면 나란히가 제멋대로 정서가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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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1-01-16 0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사기열전> 2권을 모셔두고 있는데 님의 글을 읽고나니 이번엔 제대로
읽어봐야겠다는 욕구가 드네요. 저도 가끔 페이퍼 쓸 때 상품넣기하면
들쑥날쑥해서 짜증나요.^^;;

반딧불이 2011-01-16 21:29   좋아요 0 | URL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재미가 달라질확률이 거의 백프롭니다. 남자분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에요.


비로그인 2011-01-16 0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독서법을 갖고 계시는군요. 오에 겐자부로도 주제나 작가별로 책과 자료들을 모아 섭렵하는 식으로 독서를 했다더군요. 주제별로 최소한 한 박스 분량이 될 때쯤이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전문적인 독서를 할 수 있었다나요. 이 페이퍼를 읽으니 문득 그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파에 별고 없으시죠?^^

반딧불이 2011-01-16 21:33   좋아요 0 | URL
새벽한파를 뚫고 담양에 갔다가 좀전에 도착했습니다. 식영정, 풍양정의 기문을 읽고 추위도 잠시 잊었네요. 후와님도 평안하시죠?

프레이야 2011-01-16 10: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늘 감탄합니다, 반딧불이님.
이번에 사마천이군요.
이런 페이퍼 보는 것만으로도 정돈되는 느낌을 받아요.
우선 님의 이어질 페이퍼에 좀 기대어볼래요.
새해도 어느덧 보름 지나 17일째에요.
마음의 평화 잃지 않는 한 해 되면 참 좋겠어요.^^

반딧불이 2011-01-16 21:36   좋아요 0 | URL
읽고 보고 쓰고 하는 프레이야님의 부지런함 앞에서 저는 늘 감탄하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합니다. 어머님도 건강하시고 프레이야님도 행복한 한해가 되시기 바래요.

blanca 2011-01-16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 응원하고 가요. 괜시리 제가 기대됩니다. 역사 기행의 그 노정에 동반하는 느낌입니다. 숟가락 하나만 더 얹고 가서 미안스럽네요--;;

반딧불이 2011-01-16 23:54   좋아요 0 | URL
네. 고맙습니다 블랑카님. 숟가락을 얹는 것은 아무 상관이 없는데 드실게 없으실까 외려 신경쓰이는 걸요.

라로 2011-01-17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알라딘 상품 넣기 할 때 상품을 넣을 장소를 잘 결정하신건가요???
저도 님처럼 그런 경험이 있어서 그 이후로는 (글 위)라고 된 것을 선택해서 넣으니까 좀 정리가 되는 듯한,,,뭐 글보다 너무 커서 공간은 많이 차지하지만 제가 원하는 곳에 넣어지니 그나마...아뭏든 늘 님의 서재에 오면 죽비로 얻어 맞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반딧불이 2011-01-17 09:50   좋아요 0 | URL
상품넣을 장소는 그냥 커서로 하고 있는데요. (글 위)라는 기능이 있는 줄 몰랐어요. 다음에 할 때는 찾아서 이용해봐야겠네요.
근데..내일 출근하실분이 이시간까지 안주무시면 어쩐데요?


양철나무꾼 2011-01-17 0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김영수 님 번역 본을 눈독 들이고 있어요.

대장정이 될 것 같으세요.
저도 뒤에서 응원할게요~^^

반딧불이 2011-01-17 09:53   좋아요 0 | URL
그 책에 <보임안서>와 <태사공자서>가 모두 실려있어요. 저는 이미 갖고 있는 것도 있고 책값도 만만찮고 해서 도서관에서 일별하고 말았네요.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 주세요.

 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사르트르의 말을 빌리면 죽음은 그 부재로 말미암아 빛난다.

운명소식을 듣고 너무나 오랫동안 이분의 존재를 잊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은 것이 없으면서 나는 이런분과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았던건 아니었나 반성해야했다. 

가시는 것과 거의 동시에 출간되었기 때문에 내게는 가셨다는 느낌보다도 오히려 오셨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사상의 은사'니 '의식화의 원흉'같은 상반된 평가는 접어두기로 하자. 그가 편향된 사고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의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질병을 대하는 태도는 동양과 서양이 너무나 다르다. 서양의학은 질병을 제거해야할 적으로 보는 반면 동양의학은 질병도 역시 내 몸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고 병이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이게 한다.  

이 책의 관점이 재미있다. 질병을 외부의 침입자로 보고 그것에서 생기는 병, 또 인체 내의 변화로 인한 질병으로 나누어보고 있는 것이다.   어렵고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라니 더욱 관심이 간다. 

동의보감의 양생법에 따르면 병은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의 방법이니 이 책을 통해 양생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각 시대를 대표하는 예술 장르가 있다고 한다. 19세기는 소설의 시대였다. 그러나 '근대문학의 종언'을 말하는 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그 문학(소설)은 죽었다.  

과학문명의 식민지가 되어버린  21세기. 예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예술의 사회 참여는 무슨 의미인가? 과연 그것은 예술의 본질에 어긋나는 것일까?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듯 싶다.  

 

 

  

 

   

커피를 즐겨 마셔왔다. 갓볶은 원두를 직접 갈아서 핸드드립을 하는 일을 오래 해왔다. 최근에는 두드러기가 극성을 부려 유일하게 즐기는 이 커피를 멀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양들이 뜯어먹고 카니발을 벌이는 것을 보고 그 열매가 커피였다는 걸 알았다던데.... 

이런 커피가 세계의 경제 정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한다. 오랫동안 커피를 즐겨 마신 것에 대한 예의로라도 읽어봐야 할 듯 싶다. 

 

  

 

나는 신의 존재여부가 궁금하지 않다. 그러나 각 문화마다 신은 다르지만 존재하고 있고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또한 지대하다는 것을 간과할 수는 없다.    

책소개를 보니 신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 있는것 같다.  나는 오래전 이 선생님의 강의를 가까이서 몇달 동안 들었었는데 강의 보다는 글이 훨씬 더 설득력 있는 분이시다. 이번 책은 선생님께서 아주 큰 맘을 잡수신듯 하다.  다루고 있는 범위도 분량도 방대하다.  펴내시는 책들이 점점 깊이를 더해가는 듯 해서 여간 기쁘지 않다. 선생님의 경제에도 좀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개인적인 바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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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1-12 2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딧불이님은 인문,사회학 분야 책을 잘 챙겨 보시는 군요. 저는 너무 편중된 독서를 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무래도 인문,사회학 책은 항상 입구에서만 서성대는 것 같습니다.두드러기가 의외로 신경이 많이 쓰이는데 빨리 없어지셔야 할 텐데요. 아이가 초코렛, 아몬드를 먹고 온 몸에 두드러기가 나서 엄청 걱정했던 생각이 납니다.

반딧불이 2011-01-12 23:33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장하준과 마이클 샌댈 책 읽으셨던걸요. 그렇게 짬짬이 읽으시는 게 더 좋을 것 같은걸요.

저 역시 편향된 독서만을 했어요. 그걸 피하기 위해서 신간평가단을 신청했더니 좀 빡세기는 해도 이것저것 살펴보기도 하고 읽게도 되네요.

그런데 늘 일정에 좇기다보니 뭔가 생각하고 정리하고 할 시간이 별로 없는 것이 아쉽네요.

비로그인 2011-01-13 0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를 더 이상 드시지 못하게 된 건가요?
오랫동안 유일한 낙으로 삼으셨다면
다른 대체물을 찾기도 쉽지 않을 텐데요
'유일하게 즐기는 커피'라고 하시니 마음이 안됐네요...

반딧불이 2011-01-13 10:50   좋아요 0 | URL
정 마시고 싶을 때 며칠 가려울 각오하고 먹어요. 제발 얼굴에만 나지 말아다오 빌면서요.
말씀처럼 대체물 찾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좋은 차 있으면 소개 좀 해주세요.

hnine 2011-01-13 0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리하라의 몸이야기, 지금 막 리뷰를 쓰려던 참이었어요.
제목으로 보면 우리 몸과 질병에 대한 저자의 사상을 담은 책으로 보일 수도 있겠는데, 저는 참 잘 쓰여진 과학 상식 책이라고 생각하며 읽었어요. 머리에 쏙쏙 들어오게 쉬운 말로 잘 풀어쓰는, 제가 부러워하는 과학 저술가라서 이 저자의 책은 나오기만 하면 일단 사고 본답니다.

반딧불이 2011-01-13 10:52   좋아요 0 | URL
아..나인님 리뷰 기대할께요.
저는 저자의 글을 아직 못 접해봤거든요.

파고세운닥나무 2011-01-13 14: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 성탄절에 친구들과 리영희 선생 묘소를 찾았습니다. 아직 비석도 세워지지 않은 상태였구요.
한국 현대사에서 '사상'을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분들 가운데 한 분이셨죠.
자전적 에세이 <역정>을 읽으며 그 솔직함과 자신을 끝도 없이 방외인으로 밀어넣는 의지에 많이 놀랐습니다.
남겨진 글들을 뒤적여야겠습니다.
맹추위에 건강 유의하세요!

반딧불이 2011-01-13 20:31   좋아요 0 | URL
닥나무님도 건강 조심하시구요. 묘소까지 다녀오셨군요. 이거 갑자기 부끄러워지는걸요. 책읽고나면 불현듯 가게될지도 모르겠네요.

cyrus 2011-01-13 2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책들을 소개해주셨네요. 박이문 씨의 신간도서가 도서관 신간도서 코너에서
봤는데,, 어려울거 같아서 그냥 지나쳤는데,, 한 번 읽어봐야겠어요.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

반딧불이 2011-01-14 01:04   좋아요 0 | URL
사이러스님과 겹치는 책도 있지 않나요? 박이문 선생의 책은 예술이 지향해야할 바를 알려주지 않을까 싶어요. 예술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이 읽으면 좋을 듯 싶은데....확인을 아직 못해봤네요.

릴케 현상 2011-01-15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뵙네요. 알찬 관심도서들도 반갑고요^^ 어휴 다양하네요...요즘 저는 동양철학에 조금 관심을 보이고 있는데 그쪽에서는 역시 몸이나 양생이 따라나오더군요.

반딧불이 2011-01-15 23:51   좋아요 0 | URL
산책님. 동양학 산책하고 계세요? 저는 음양오행과 동의보감을 살피다가 원형탈모증이 생겨서 좀 쉬었다 하려구요. 좋지도 않은 머리로 공부하려니까 머리에 서리가 내리고 죄다 빠져버리기도 하네요. 열심히 하셔서 저도 좀 나눠주세요.
 
간절하게 참 철없이 - 2009 제11회 백석문학상 수상작 창비시선 283
안도현 지음 / 창비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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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가진 가족들이 하나씩 늘어가고 있다. 지난여름 맨 처음 남동생을 시작으로 여동생과 그 남편에 이어 이제는 딸아이와 아들까지 모두 스마트폰 일색이다. 남편과 나만 그 세계로부터 고립되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이 내게는 전자제품 공해에 다름 아니다. 동영상을 찍어와 보라면 봐야하고 새로운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으면 그 설명을 들어줘야하고 불면증에 좋다는 어플에서 나는 이상한 소리를 들으며 누워있기도 했다. 최근 딸아이는 엄마가 좋아하는 스머프가 나온다고 내게 양배추 키우는 게임을 시킨다. 내가 스머프를 좋아하는 건 거기 가가멜이 있기 때문이다. 스머프를 잡기위해 갖은 수를 다 쓰지만 똑똑한 스머프들 때문에 항상 골탕만 먹는 가가멜 말이다. 나는 가가멜을 보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양배추를 키우고 있다. 스머프들이 부지런한 것인지 속성양배추를 재배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시 한 편 읽는 사이에 양배추는 이미 다 자라서 녹아내렸다. 그동안 내가 읽은 시는 표제작 <공양> 한 편 뿐인데 말이다. 
 


공양


싸리꽃을 애무하는 산(山)벌의 날갯짓소리 일곱 근

몰래 숨어 퍼뜨리는 칡꽃 향기 육십 평

꽃잎 열기 이틀 전 백도라지 줄기의 슬픈 미동(微動) 두치 반

외딴집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낙비의 오랏줄 칠만구천 발

한 차례 숨죽였다가 다시 우는 매미울음 서른 되   

 

소리, 향기, 슬픈 미동, 소낙비, 매미울음 등을 그 속성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무게, 넓이, 길이, 양으로 환산하고 있다. 그것도 미터법 사용의 의무화로 사용 금지된 재래식 계량 단위로. 이질적인 것들이 이렇게 자연스럽게 연결되고 의미가 확장되는 것에 놀라워하다가, 시인의 천연덕스러운 솜씨에 감탄하다가 대체 누구를 위한 ‘공양’일까? 생각을 키워본다. 나는 기계문명에 몸과 영혼을 팔아버린 독자들을 위한 시인의 자연공양으로 읽기로 한다.

독자에게 이런 공양을 올린 시인에게 소원이 있다. 귀한 공양을 받았으니 무엇인들 아까울까. 그러나 <가을의 소원>이라는 제목을 가진 시인의 소원은 내가 들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자연의 매트릭스’ 시대에 시인의 소원은 차라리 사치다. 
 

 

가을의 소원



적막의 포로가 되는 것

궁금한 게 없이 게을러지는 것

아무 이유 없이 걷는 것

햇볕이 슬어놓은 나락 냄새 맡는 것

마른풀처럼 더 이상 뻗지 않는 것

가끔 소낙비 흠씬 맞는 것

혼자 우는 것

울다가 잠자리처럼 임종하는 것

초록을 그리워하지 않는 것 


봄도 아닌 여름도 아닌 겨울도 아닌 가을의 소원이라는 것에 곰곰 생각이 맴돈다. 빛 고운 단풍과 달고 향기로운 열매들로 넉넉한 계절이다. 내가 자동차 소리, 전화벨 소리, 전자제품 모터 돌아가는 소리 등등 모든 소리의 포로가 되어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을 줄이고 수시로 시각을 확인하며 바쁘게 달렸던 건 대체 무엇을 위해서였던가? 내가 가을 논두렁에서 맡는 벼 익는 냄새가 세상 어떤 향수보다도 향기롭고 배부르다는 걸 안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시인은 ‘혼자 우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혼자 훌쩍이고 싶지 않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난 유일한 목적이 방긋방긋 웃는 것이라도 되는 냥 남들 앞에서는 웃고 돌아서서는 뜨거운 것을 삼키며 살아왔다. 열네 살 때부터 시작된 내 소원은 목젖이 보일만큼 자지러지게 웃어보는 것이었다. 생의 가을이 된 지금도 그 소원은 여전하다. 그 배경이 햇빛 찬란한 가을날이면 더욱 좋겠다. 시인의 아름다운 소원과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나는 아프다. 왜 아름다운 것은 아픈 걸까? 왜 아픔은 아름답지 못할까?  


스며드는 것


꽃게가 간장 속에
반쯤 몸을 담그고 엎드려있다
등판에 간장이 울컥울컥 쏟아질 때
꽃게는 뱃속의 알을 껴안으려고
꿈틀거리다가 더 낮게
더 바닥 쪽으로 웅크렸으리라
버둥거렸으리라 버둥거리다가
어찌할 수 없어서
살 속으로 스며드는 것을
한때의 어스름을
꽃게는 천천히 받아들였으리라
껍질이 먹먹해지지 전에
가만히 알들에게 말했으리라

저녁이야
불 끄고 잘 시간이야
 


몸이 아프면 가장 먼저 입맛이 달아난다. 먹어야 병이 도망간다고 하는데 밥알이 모래알처럼 깔끄럽다. 언젠가 몸살을 되게 앓고 있을 때, 완도가 고향인 시 쓰는 친구가 푸르스름한 전복죽과 간장게장을 먹였다. 끼적거리고 있는 내게 게의 등껍질을 벗겨 거기다 밥을 비벼 주었다. 짭쪼롬한 그 밥 몇 술을 뜨고 입맛이 돌아왔었다. 그때 내 입맛을 돌려준 것이 알을 가득 품고 있었던 어미의 마음이었을까. 간장이 서서히 몸을 적셔올 때 짜고 매운 맛은 모두 자기 몸으로 받으며 어둠만을 알에게 전해주면서 하는 말 ‘저녁이야/불 끄고 잘 시간이야’ 이런 어미의 마음이 내 위장으로 스며들었던 걸까? 입맛은 되찾았지만 다시 게장을 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 시집의 2부에 언어로 차려놓은 음식상은 맛깔스럽다. ‘펌프 주둥이로 빠져나오는/통통한 물줄기를 잘라서/양동이에 띄워놓은 것 같’은 오이로 만든 물외냉국, ‘여인의 속곳 헹군 강물을 동이로 퍼’낸 것 같다는 안동식혜, ‘맑은 국물도 아니고 건더기도 아닌 푸른 것, 다만 푸르기만 한 것/바다의 자궁이 오글오글 새끼들을 낳을 때 터뜨린 양수’같은 매생이국. 나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을 시집을 펼칠 때마다 먹는다. 내 생애 없는 호사다. 안방까지 배달되는 전 지구적 먹거리는 잠시 밀어놓는다.

그러다가 문득 눈보라를 헤치며 오는 백석을 본다. 아마도 시인은 백석이 차려 준 북방의 음식에 대한 답례로 이 음식을 차렸는지도 모른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군불로 따끈해진 아랫목에 두 시인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음식을 서로 권하는 장면을 상상해본다. 창호지 문살에 비치는 두 그림자가 정겹고 아름답다. 나는 이 아름다운 정경 앞에서 다시 아프다. 모든 그리운 것은 멀리 있나니 내 소원이 멀고 백석은 더 멀다. 왜 모든 아름다운 것은 아픈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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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1-01-01 14: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마트폰을 잘 다루는 능력보다 시를 읽고 깊이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욕심나는 걸 보면 저도 스마트하긴 다 그른 모양입니다 ㅎㅎ
새해에도 늘 건강하고 평안한 하루하루 보내시고, 좋은 글을 통해 제게도 공감의 능력을 나누어주시길... 늘 고맙습니다^^

반딧불이 2011-01-01 23:23   좋아요 0 | URL
새해 첫 댓글이 후와님이시군요. 이거 아주 좋은 느낌인걸요.

모두가 다 스마트한 세상에서는 저희같은(공감하실지 모르겠지만)이가 있는게 세상에 대한 예의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만약 스마트폰에서 후와님 글을 더 많이 볼 수 있다면 당장 바꾸겠습니다. 저도 늘 고맙습니다.

cyrus 2011-01-02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제 곧 스마트폰을 사려고 하고 있는데,, 과연 제대로 적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저도 약간 기계치가 있거든요. 마지막에 간장게장에 대한 시를 보면서
방금 살짝 허기가 느껴졌네요, 그러고보니 재미있게도 반딧불이님이 읽으신
안도현 시인의 시집이 백석문학상 수상작이네요.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11-01-03 01:29   좋아요 0 | URL
한두달 적응하시면 되겠죠. 저도 일부러 버티고 있는건 아니구요. 핸드폰 수명이 다하면 바꾸려고해요.

이 시집이 백석문학상 수상작이던가요? 저는 몰랐네요. 고맙습니다. 늘.
 
<왜 도덕인가>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왜 도덕인가?
마이클 샌델 지음, 안진환.이수경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1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2004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조지 W. 부시는 재선에 성공했다. 출구여론조사에 따르면 사람들은 ‘도덕적 가치’에 기준을 두고 투표를 행사했다고 한다. 한마디로 ‘도덕적 가치’가 표심을 좌우했다는 얘긴데 테러리즘이나 이라크 전쟁 같은 주요현안은 도덕과 무관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이 같은 투표결과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겠으나 CNN의 한 기자는 ‘언제부턴가 우리 모두는 도덕적 가치의 이슈를 놓치고 있었다.’고 토로했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공공의 목적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미국의 유권자들은 테러의 망령에 사로잡힌 채 현직 대통령이 풍기는 안정적 이미지와 도덕적 확실성에 손을 들어주는 선택을 내린 것’으로 판단한다. 『왜 도덕인가?』에 대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여기에서부터 촉발된 듯하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문제시되고 있는 다양한 사안들, 즉 온실가스 배출권의 거래, 배아복제, 존엄사, 낙태, 동성애, 교육의 시장논리, 공공기관의 상업적 브랜드화 등을 다루고 있다. 그러니까 저자는 정치, 경제, 사회, 종교,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중요한 잣대로 도덕적 가치를 들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운영하는 복권사업과 카지노에서의 도박의 예는 비교적 명료하다. 라스베이거스의 카지노에서는 총수입금액의 90%를 손님에게 돌려주는데 정부가 독점 운영하는 복권은 50%정도만을 되돌려 준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익을 얼마만큼 환원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복권을 홍보하고 그것의 구매를 부추긴다는데 있다. 또 그 대상이 노동자계층, 소수민족, 빈민층을 상대로 하고 있다는 것은 더욱 놀라운 일이다. 인생을 역전시킬 수 있다는 한탕주의를 정부가 앞서서 조장하고 있는 것에 다름 아니다. 저자는 여기에서 복권이 야기하는 가장 중대한 해악은 공공영역의 타락이라고 진단한다.

1997년 교토 기후변화협의회에서는 세계 각국이 모여 온실가스 배출 규제협약을 맺었다. 이때 미국은 온실가스배출권 거래제를 시행하는 것이 오염을 줄이는 효과적인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한마디로 배출한계량 이상 온실가스를 내게 되면 배출량이 적은 나라로부터 배출권을 사서 배출하자는 얘기다. 지구전체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전지구적 목표를 잠시 잊고 어떻게 해서든 의무감축량을 피해가려는 행태로밖에 볼 수가 없다. 여기까지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다. 저자는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이것을 반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세 가지란 배출권 거래제가 선진국들이 의무 감축량을 피해갈 수 있는 구멍을 만들어 준다는 것, 배출권이 매매의 대상이 되면 지구오염행위에 수반되어야할 도덕적 죄책감을 덜 느끼게 된다는 것, 갈수록 국제사회 공조가 늘어나는 오늘날 인류공동의 책임감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 등이다. 저자가 미국정부의 주장을 반대하기위해 내세운 도덕적 가치는 타당성을 지닌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이다. 나머지는 기후변화협의회에서 다시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대안이 제시되면 그것은 만족스러울까? 모를 일이다. 도덕적 가치라는 것이 어떤 고정된 불변의 법칙은 아니잖은가.

존엄사에 대한 저자의 해결책은 ‘죽음을 돕는다는 행위의 도덕성을 유지하고 생명에 대한 경외감을 지키면서 존엄사를 존중해줄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 모든 조건을 만족시켜줄 만한 방법이 있기는 한 걸까? 나는 하루빨리 방법이 찾아지기를 바라는 것 외에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저자가 미국정부나 정책을 대상으로 할 때는 비교적 명료해지던 사안들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나 개인적 문제로 돌아오면 그 답을 어디에서 구해야할지 오리무중이다. 나만 이런 걸까?

미국의 학자가 미국에서 일어난 법적문제들을 예로 들어서 하는 설명들은 비교적 잘 읽혔다. 또 공화당과 민주당의 정책들을 비교하는 것, 실현되지 못한 케네디의 정책, 경제세력을 민주주의의 통제하에 두려는 시도 등은 내 관심의 영역을 넓혀주었고 나름대로 미국사회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내나라에 대해서는 공부도 하지 않으면서 미국 정부의 정책이나 도덕에 대해 공부한 셈이다. 그러고보니 이 책이 내게 도움이 되었다면 내나라에 대해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2부의 도덕적 가치의 원류를 찾아가는 부분은 내 능력의 한계 를 벗어난 이야기이므로 저자에게 맡겨두기로 한다.
 

 자유와 공동체를 말하는 3부에서는 우리나라의 정치인과 정치의식을 자꾸만 떠올리게 되었다. 정부는 정책이나 법률을 제정하면서 그것이 어떤 부류의 시민을 만들어낼지 고민을 했을까? 옳음은 과연 좋음에 우선하는가? 국가와 정부가 제한할 수 있는 개인의 자유는 어디까지인가? 대의란 과연 무엇인가? 논술교재에서나 다루었던 문제들이 꼬리를 무는 끝없는 질문으로 확장 연결되었다.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었는지 모르겠다. 아니 얼마나 많은 정치인들이 이 책을 읽었는지 궁금하다. 도덕적 가치라고는 들이댈 곳이 없는 요즈음 일부 정치인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것을 단지 이 책 때문만이라고 말하지는 말자. 저자는 전통적 공동체가 사라진 지금 개인주의를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를 위한 통찰력을 제시했다.그가 제시한 몇가지 사항들이 실현되어 내가 실감할 수 있을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를 생각하니 나는 왠지 떠돌이처럼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는 세상의 유목민이 된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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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27 01: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이 2010-12-27 10:00   좋아요 0 | URL
공감하는 부분이 있으시다니..고맙습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2-28 17: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의란 무엇인가>를 띄엄, 띄엄 보고 있습니다. 센델은 윤리학자라 봐도 무방할텐데요, 여자친구와 함께 번역하고 있는 책이 센델과 비슷한 부류의 윤리학자입니다. 두 사람 모두 존 롤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죠. 같은 대학에서 가르침을 받았구요. 물론 센델은 롤스를 비판하고 나섰지만, 큰 테두리 안에선 다르지 않다고 봅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결국 문제는 '우리'겠죠. 저도 더불어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해 봅니다.

반딧불이 2010-12-29 00:10   좋아요 0 | URL
이런책 자꾸 읽으면 만수무강에 지장있을것 같아요. 저도 모르게 자꾸 비교하게 되거든요. 이거 읽고나니까 문학작품 읽고 싶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밀려오더라구요. 내친김에 사르트르 책을 모조리 꺼내놓고(그래봐야 몇권되지도 않지만요)문학작품에 버금가는 <말>부터 다시 보고있어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2-29 15:03   좋아요 0 | URL
저도 새해엔 <말>을 서둘러 읽어봐야겠네요^^ <구토>는 읽다 정말 '구토감'을 느꼈던 소설인데요^^;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제겐 가장 기억에 남네요. 영향도 많이 받았구요.

반딧불이 2010-12-30 00:01   좋아요 0 | URL
저도 구토는 던져두었어요. <문학이란...>도 밑줄 그어놓은 부분만이라도 다시봐야할까봐요.

라로 2011-01-06 00: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는데 그동안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던 제 자신을 다시 돌아보게 하더군요. 뭐 아직 다 읽지도 못하고,,아니 다 읽기는 커녕 지금 초반부를 읽으면서 이런 말 하기 뭐하지만,,ㅎㅎㅎㅎ
암튼 님의 이 리뷰를 읽으면서 든 생각은 님이 어서 빨리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리뷰를 써주시면 그 리뷰를 읽고 정의란,,을 읽고 싶다는,,,,음,,늘 이렇게 쉽게 길을 가려고 하는 근성부터 새해엔 없앨 각오를 해야겠지요??^^;;
님은 새해에도 열심히 글을 써주시고 저는 열심히 읽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제 애정을 이렇게 밖에 표현하지 못해서 그래요,,,)

반딧불이 2011-01-06 01:11   좋아요 0 | URL
최근 천정배의원 발언관련과 관련지어 예전 한나라당 의원들이 노무현 전대통령을 모델로 한 '막 말'연극 동영상을 보았는데요. 이 나라의 '정의' '도덕'관련책은 몽땅 딴나라당 의원들한테 던져주고 싶었어요. 언제다시 샌델의 책을 보게 될지..쩝

제 글은 별 재미도 없어요 나비님. 우중충하잖아요? 나비님 글이 훨씬 발랄해서 기분좋아지니까 바쁘시다라도 혼자만 귀여워하지 마시고 가끔 해든이 소식이라도 전해주셔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