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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本紀 ㅣ 까치동양학 22
사마천 지음 / 까치 / 1994년 3월
평점 :
진나라가 망하고 한나라가 성립되기 전 5년 동안은 항우와 유방의 시대였다. 두 사람은 태생도 다르고 생긴 모습이나 성정, 사람을 다루는 방법,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 등도 판이했다. 동시대를 살았다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공통점이다. 진시황제의 행차를 바라보는 그들의 마음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항우는 “저 사람의 자리를 내가 대신 할 수 있으리라”고 자신의 의지를 직설적으로 드러내면서 미래지향적인 반면 유방은 “아! 대장부란 마땅히 저래야 하는데”라고 한다. 부러워하는 듯하면서 수동적이다. 그러나 그 속은 의뭉스럽다.
항우는 초나라 장수가문 태생이고 유방은 평범한 가문의 자식으로 그가 범상치 않음을 뜻하는 것은 교룡이 몸 위를 올라갔다는 어머니의 꿈뿐이었다. 항우는 키가 8척이 넘고 힘은 커다란 정을 들어 올릴 만했으며 재기가 범상치 않아 모두들 항우를 두려워했다.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에게서 글을 배웠으나 “글은 성명을 기록하는 것으로 족할 따름이며, 검은 한 사람만을 대적할 뿐으로 배울 만하지 못하니, 만인을 대적하는 일을 배우겠습니다.”라는 말처럼 글을 익히거나 검술에 뜻이 없었다. 병법도 처음에는 크게 기뻐하였으나 이 또한 끝까지 배우고자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인문학적 소양은 전무하고 오로지 자신의 직관과 마음 그리고 상황에 따른 판단만을 중요하게 여겼던 듯싶다.
유방은 콧날이 높고 이마는 튀어나와서 얼굴 모습이 용을 닮았으며, 멋진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넓적다리에는 72개의 검은 점이 있었다고 한다. 평소 원대한 포부를 품고 농사일이나 일상사에 얽매이려 하지 않았다. 술과 여색을 좋아하고 주점에 가서 외상으로 술을 마셨으며 취하여 드러누우면 몸 위로 용이 나타났다. 유방은 관아의 모든 관리들을 깔보고 멸시했을 뿐만 아니라 큰소리만 치고 거짓말도 잘했으며 실행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러나 인재를 알아보는 능력은 뛰어났고 또한 유방을 알아보는 사람도 많았다.
항우와 유방은 서로 상반된 생김새만큼이나 다른 성격을 가진 듯하다. 이것은 초군과 한군이 광무산 계곡에서 오래 대치할 때를 보면 두 사람의 성격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항우는 유방과 단독으로 자웅을 겨루기 원한다. 지친 병사들을 대신해서 왕끼리 맞짱을 뜨자는 것이다. 그러나 유방은 응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성격대로 항우의 열 가지 죄상을 조목조목 읊으며 반박한다. 이에 화가 난 항우가 쇠뇌로 유방의 가슴을 명중시켰다. 그러나 유방은 가슴에 맞고도 발을 더듬으며 “저 역적이 내 발가락을 맞혔구나”라고 떠벌인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방이 말하는 항우의 열 가지 죄목은 유방 스스로에게도 대부분 해당되는 죄목이기도 하다.
위기에 처했을 때 두 사람의 모습은 더욱 볼만한다. 항우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해하에서 항우는 한군이 사방에서 부르는 노래를 듣고 자신의 패배를 직감한다. 그는 장중에서 술을 마시며 비통한 마음으로 시를 읊는다.
힘은 산을 뽑을 수 있고, 기개는 온 세상을 덮을 만하건만
時運이 불리하여 추 또한 나아가지 않는구나
추가 나아가지 않으니 어찌해야 하는가?
우여, 우여, 그대를 어찌해야 하는가?
시는 정녕 이러한 순간에 나오는 것이니 그 절절함 끝에 놓이는 것이 물음표뿐이라니 야속하기만 하다. 오강의 나루에서의 항우의 마지막 말은 뜨겁다. “하늘이 나를 망하게 하려는데, 내가 건너서 무얼 하겠나? 또한 내가 강동의 젊은이 8000명과 함께 강을 건너 서쪽으로 갔었는데, 지금 한사람도 돌아오지 못했거늘 설사 강동의 부형들이 불쌍히 여겨 나를 왕으로 삼아준다고 한들 내가 무슨 면목으로 그들을 대하겠나? 설사 그들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해도 내 양심에 부끄럽지 않을 수 있겠는가?” 삶이 강 건너에 있다. 그러나 그것에 구차하게 매달리지 않는 모습이다. 또 양심에 부끄러운 짓을 하지 않고 살았다는 것을 마지막 말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있지만 5 년 동안 자신과 생사를 함께했던 말은 차마 죽이지 못하는 모습에서 인간적인 모습이 보여 안타깝다.
반면 팽성에서 항우에게 쫓겨 달아나던 유방의 모습은 전혀 다른 뜻으로 인간적이고 안타깝다. 가족들과 뿔뿔이 흩어진 유방은 쫓기던 중 그의 아들과 딸 호혜와 노원을 만나 수레에 태웠다. 그러나 초군의 기병에 쫓겨 다급해지자 두 자식을 수레 아래로 밀어 떨어뜨린다. 한 번도 아니고 세 차례나 된다. 그렇게 데리고 온 호혜를 유방은 바로 태자로 세우고 죄수들에게 대사면을 내린다. 아들에게 미안했기 때문이었을까, 자신이 전쟁 중 언제 죽을지 알 수 없어 후사를 세운 것일까? 하늘의 뜻을 받은 자는 인륜을 저버려도 되는 것인지 가족에 대한 개념이 현대와 다른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또 진평의 계책을 써서 항우로 하여금 범증을 의심하게 만들거나 형양에서 식량이 떨어지자 부녀자에게 갑옷을 입혀 초군의 화살받이로 쓰고 자신은 탈출하는 등 군주답지 못한 행동들이 많이 보인다. 황제에 올라서는 개국공신들을 모조리 삼족을 멸하는 벌을 내리면서 토사구팽하는 행동을 한다.
유방이 항우를 무찌르고 한나라의 고조로 등장하기까지에는 장량, 소하, 한신, 번쾌 등 능력이 빼어난 인재들의 역할이 컸다. 유방의 능력은 그들을 알아보고 적재적소에 고루 배치한 것이다. 그러니까 유방 스스로 말하듯이 “나는 장량처럼 교묘한 책략을 쓸 줄 모른다. 소하(蕭何)처럼 행정을 잘 살피고 군량을 제 때 보급할 줄도 모른다. 그렇다고 병사들을 이끌고 싸움에서 이기는 일을 잘 하느냐 하면, 한신(韓信)을 따를 수 없다. 하지만 나는 이 세 사람을 제대로 기용할 줄 안다. 반면 항우(項羽)는 단 한 사람, 범증(范增)조차 제대로 기용하지 못했다. 그래서 내가 천하를 얻고, 항우는 얻지 못한 것이다.”그러나 유방도 큰일을 도모하기까지는 이렇게 자신에게 모자라는 부분을 다른 사람의 능력으로 대체하는 수완이 빼어났으나 집권이후에는 전혀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항우는 일을 처리함에 있어 자신의 마음에 부끄러움 없이 처리했다. 그 결과는 잔인했고 그를 잘 아는 주위의 몇몇 사람을 제외한 사람들은 두려움을 느꼈다. 반면 유방은 과정은 더티한 부분이 더러 보이는데 사후처리에 아주 너그러웠다. 심지어 항우를 위해서 발상하고 흐느끼기까지 했다고 한다. 유방이 널리 인기가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유방은 인간의 심리를 잘 알고 그것을 널리 이용했던 듯싶다. 유방과 항우가 서로 화합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그러나 그들은 서로 대립 했고 전혀 다른 인간의 모습을 후세에게 보여주고 있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따지는 것은 의미 없어 보인다. 다만 내게 항우는 매력을 유방은 권력을 생각하게 한다.
p.s 위의 인용한 내용은 모두 까치 출판사의 <사기 본기>에서 인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