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문고판으로 <나의 개인주의>를 먼저 구입했는데 <문명론>에도 '나의 개인주의'가 실려 있었다. 일본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자제가 들어가는 '학습원'이라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나의 개인주의'는 이 학습원에서 소세키가 행한 강연의 제목이었다. '자기본위'라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생겨났는지 쉽게 설명되어 있다.

     
 

 내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교사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흥미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나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이미 귀찮고 따분한 것이었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시종일관 엉거주춤한 자세로 틈만 나면 나의 본령으로 날아가겠지, 날아가겠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본령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해서 어디를 향해서도 결단을 하고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비로소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자력으로 만들어내는 방법 외에는 나를 구할 길이 없다고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완전히 타인본위여서 근본이 없는 부평초와 같이 그 근처를 되는 대로 표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때부터 문예에 대한 나의 입각점을 확실히 하기위해서, 확실히 하기보다는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서 문예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본위(自己本位)라는 네 글자를 간신히 생각해 내어 이 '자기본위'를 입증하기 위해서 과학적인 연구라든가 철학적인 사색에 탐닉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내가 저술한 <문학론>은 그 기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패의 유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기형아의 시체일 뿐이었습니다. 혹은 멋지게 건설되지 않은 채 지진으로 무너져버린 미완성 시가의 폐허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저작은 실패로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때 확실히 포착했던 자기 자신이 주인이고, 다른 사람은 손님이라는 신념은 오늘날의 나에게조차 특별한 자신감과 안정감을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신념의 연속으로 오늘까지 계속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논지를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려고 생각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두 번째로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에 부수되는 의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세 번째로 자기의 금력을 나타내려고 한다면 그것에 동반되는 책임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요컨대 이러한 3개의 조항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좀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당파심이 없고 옳고 그름이 분명한 그런 주의입니다. 붕당을 만들고, 단체를 조직해서 권력과 금력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개인주의입니다.

 
     

 

     
 

 나는 의견의 차이는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내 집에 출입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은 할지언정, 그 사람들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는 데에 억압을 가하는 듯한 일은 다른 중대한 이유가 없는 한,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  

 
     

 

     
 

 국가적 도덕이라는 것은 개인적 도덕에 비해서 훨씬 단계가 낮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외교적 수사는 대단히 찬란합니다만, 도덕심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기를 치고, 속임수를 쓰고 계략을 사용하는 등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표준으로 삼는 이상, 국가를 하나의 단체로 보는 이상, 상당히 저급한 도덕을 감수하며 태평스럽게 견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개인주의의 기초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대단히 우월한 위상으로 부각되어 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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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5-10 1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쿠슈인(學習院)은 천황 일가와 귀족이 다니는 학교랍니다. 미시마 유키오도 이 학교 출신인데 <일본 정신의 풍경>을 보면 그가 이 학교에서 천황과 천황 일가를 만난 얘기가 나옵니다.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도 이 학교 출신이구요.

반딧불이 2010-05-10 10:36   좋아요 0 | URL
햐~ 고맙습니다. 미시마 유키오도 이 학교 출신이었군요. 거기다 시오노 나나미까지. 학습원에서 정신교육이나 도덕교육같은걸 어떻게 했나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뭐 참고할 만한 책이 있을까요? 그런곳에 가서 소세키는 국가, 국가 하지말라고 했던거군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5-10 11:44   좋아요 0 | URL
일문학사에서 시라카바파(白樺派) 얘기할 때 주워 들은 게 저도 전붑니다. 이 사람들이 다들 가쿠슈인 출신인데 문학 동인을 결성했다고 하죠. 가쿠슈인의 국가주의에 반발했던 게 결성의 한 이유라고 하는데 지극히 개인주의적인 작품들이 주류라고 합니다. 아리시마 다케오와 시가 나오야가 대표적이구요. 두 사람의 소설을 보면 세간의 평이 맞는 것도 같구요. 아리시마의 후반생은 좀 다르다는 생각도 해보지만요.
이 곳에서 한 나쓰메의 행동을 보니 도쿄대에서 한 미시마 유키오의 강연이 생각나네요. 둘의 강연은 퍽 대조적입니다.

반딧불이 2010-05-10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고세운 닥나무님, 여러가지 정보 고맙습니다. 미시마 유키오의 전공투 관련은 들은바 있지만 백화파는 처음 들어요. 미시마유키오와 나쓰메 소세키를 국가주의와 개인주의 라는 주제로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5-10 21:52   좋아요 0 | URL
네,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좌익 작가들을 제한다면 두 사람은 극단에 서 있다고 볼 수도 있겠구요.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웅진 출판에서 1995년 5월 25일 발행한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01'초판본으로 '꿈 열흘 밤'과 '마음'이 같이 묶인 <꿈 열흘 밤, 마음>이다. 박유하의 번역이다.  이후에 '마음'만이 따로 출판되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에 들어오려 하는 사람을 팔을 벌려 껴안아 주지 못하는 사람 -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64 

 
     

 

   
 

 사랑이 갖다 주는 만족감을 맛보고 있는 사람은 좀더 따뜻한 말을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 하지만 말입니다, 사랑은 죄악입니다. 당신은 그걸 알고 있습니까? -79

 
   

 

   
 

 나는 내 자신조차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겁니다. 자신을 저주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거죠. -83

 
   

 

   
 

 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에 발을 올려놓으라고 시키는 겁니다.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겁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기 보다, 외로운 현재의 나를 참아내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에 넘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가 그 대가로서 이 고독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84

 
   

 

   
 

그러다가, 결국은 내 과거를 병풍처럼 당신 앞에 펼쳐 보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당신을 존경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당신은 남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신경쓰는 일 없이, 내 가슴으로부터 어떤 살아있는 것을 끄집어 내려고 하는 결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내 심장을 깨고 거기에 흐르는 따뜻한 피를 빨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스스로 내 자신의 심장을 깨서, 그 피를 당신의 얼굴에 끼얹으려 합니다. 내 심장의 고동이 멎었을 때,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185 

 

 
   

 

   
  냉철한 머리고 새로운 사실을 말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견해를 말하는 편이 진짜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피의 힘으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공기에 진동을 전할 뿐 아니라, 보다 강한 것에 강하게 부딪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  
   

 

   
  육체건 정신이건 우리들의 능력은 전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발달하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자극을 점점 강하게 해 줄 필요가 있는 건 물론이어서, 잘 판단하지 않으면, 아주 험악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도 자신을 물론 옆사람도 모르고 있게 될 우려가 생깁니다. -236  
   

 

   
  나는 또다시 인간의 죄를 깊이 느꼈습니다. 그 느낌이 나를 매달 K의 무덤으로 가게 만듭니다. 그 느낌이 나로 하여금 장모님의 간호를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아내에게 잘 하라고 명령합니다. 나는 그 느낌 때문에, 길 가는 모르는 이에게 채찍질 당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단계를 지나는 사이에, 남에게 채찍으로 맞기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때려야 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나는 할 수 없이, 죽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자고 결심했습니다. -307  
   

 

   
  그런데 한창 더운 여름에 메이지 천황이 서거 했습니다. 그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에서 시작되어 천황에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강하게 메이지의 영향을 받은 우리들이 그 뒤에 살아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내한테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웃으며 상대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나한테 그럼 순사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놀렸습니다. -309  
   

 

   
  그리고 나서 약 한달이 지났습니다. 장례식날 밤, 나는 언제나처럼 서재에 앉아, 예포소리를 들었습니다. 나한테는 그 소리가 메이지 시대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은 노기 대장이 영원히 떠난 것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호외를 손에 들고 나도 모르게 순사다, 순사다 하고 말했습니다. -310  
   
   
 

 세이난 전쟁이라면 메이지 10년이니까, 메이지 45년까지는 35년의 거리가 있습니다. 노기 대장은 이 35년동안 죽자 죽자 생각하며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한테 있어서, 이제까지 살아온 35년이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른 한 순간이 고통스러울지, 어느 쪽이 고통스러울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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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4-1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씀하신 판본으로 책을 보았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분이시더군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편집위원 세미나 사진에서 여자분인 걸 알게 되었답니다.

반딧불이 2010-04-19 13:00   좋아요 0 | URL
헉..여자분이시군요. 그것참. 왜 저나 나무님은 그분을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을 했었을까요? 재미있는 현상이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9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박유하 교수는 독도와 위안부 할머니 관련한 묘한 발언으로 회자되기도 했죠.
오에 겐자부로의 최신작도 번역했던데, 번역은 참 유려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뚱딴지 같은 발언으로 회자되기 보단 번역으로 유명해졌으면 좋겠네요.

반딧불이 2010-04-19 20:57   좋아요 0 | URL
나무님께서는 참 많은 걸 알고 계시네요. 번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거 번역한 거 맞아? 하는 심정으로 보게되는 경우였어요. 유려하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그런데 나무님은 남자분 맞으시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04-20 12:37   좋아요 0 | URL
네, 남자입니다.

반딧불이 2010-04-2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후에 허걱~ 하고 놀랄일은 없겠군요.
 


슬픈 과녁/이정원

 

 

비 그친 사이
고추잠자리 한 쌍 옥상 위를 빙빙 돌고 있다
두 마리가 하나로 포개져 있다

누가 누구를 업는다는 거
업고 업히는 사이라는 거

오늘은 왠지 아찔한 저 체위가 엄숙해서 슬프다

서로가 서로에게 서러운 과녁으로 꽂혀서
맞물린 몸 풀지 못하고
땅에 닿을 듯 말 듯 스치며 나는 임계선 어디쯤
 

문득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 있다
앉는 곳이 곧 무덤일
질주의 끝이 곧 휴식일 어느 산란처

죽은 날개는 너무 투명해서 내생까지 환히 들여다보인다.

 

아버지는 휘파람을 잘 부셨다. 해질녘이면 서쪽하늘을 바라보며 휘파람을 불곤 하셨다. 아버지 등에 업혀 휘파람 소리를 듣던 날이 있었다. 아버지 발등에 내 발을 올리고 걸음마를 하던 날도 있었다. 아버지의 바지자락을 붙잡고 올려다보면 아버지가 동화속의 키다리 아저씨처럼 커보였었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오빠생각’이라는 노래를 불러주셨다.‘뜸북뜸북 뜸북새’로 시작해 ‘비단 구두 사가지고 오신다더니’로 끝나며 여운을 잔뜩 남겨주던 노래. 노래가 끝나면 아버지는 늘 ‘그만 못 사왔네’하시며 다음에는 꼭 구두를 사다주겠다고 약속 하셨었다. 노래를 부를수록 약속은 무한정 연기되곤 했다. 구두도 없고 약속도 잊고 더 이상 아버지의 등을 탐할 수 없게 되었지만 아버지의 등에 대한 기억은 여전하다. 업히면 넓고 따뜻했다. 목덜미에 얼굴을 묻으면 다이알 비누냄새가 났다. 시큼한 땀 냄새가 나는 날도 많았지만 그것이 피붙이의 냄새인 것 마냥 향기롭기까지 했다. 어깨 너머로는 세상이 신작로처럼 뻥 뚫려 보였다.

 
무너져 내릴 만큼 마음 고단한 날. 따뜻한 등이 그리운 날. ‘누가 누구를 업는다는 거/업고 업히는 사이라는 거’나즈막이 소리 내어 읖조려 본다. 업고 업혀 다다른 곳이 삶과 죽음의 갈림길이라는 거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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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31 09: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31 12: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시작법을 위한 기도/박현수

 

 

저희에게

한 번도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을 주옵시며

나날이 낯선

마을에 당도한 바람의 눈으로

세상에 서게 하소서

의도대로 시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옵시며

상상력의 홀씨가

생을 가득 떠돌게 하소서

회고는

노쇠의 증좌임을 믿사오니

사물에서 과거를

연상하지 않게 하옵시며

밤벌레처럼 유년을

파먹으며 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소서

거짓 희망으로

시를 끝내지 않게 하옵시며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 있듯이

영원토록

살갗처럼 시를 입게 하소서

 

어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에게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 기도라고 여겼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뻔뻔스럽게 여겨져 기도는 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평소에는 안 찾다가 저 아쉬운 때만 찾는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것 같아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시인은 ‘한 번도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을 달라고 한다. ‘나날이 낯선/마을에 당도한 바람의 눈으로/세상에 서게’해달라고 한다.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과 낯선 눈으로 세상에 서는 것은 누군가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또 시인은‘회고는/노쇠의 증좌임을’믿고, ‘밤벌레처럼 유년을/파먹으며 생을 허비하지 않게’해달라고 한다. 시적 지향을 갖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담을 늘어놓는 시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경계하는 자기 확인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시인에게 기도는 절대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성의 골이 깊을수록 성취의 봉우리는 높을 것이다.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있'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시를 쓰기보다 시를 살것이다. 함께 기도하기로 하자.

 

   

위험한 독서  
박현수 (지은이) |

천년의시작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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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6 17: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7 11: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넙치 2010-03-27 0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멘!! 외치고 싶은 시네요.^^

반딧불이 2010-03-27 11:12   좋아요 0 | URL
아참. 기도가 끝나면 해야하는거지요. 아멘!!!

알로하 2010-04-29 16: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좋은 시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10-04-29 22:51   좋아요 0 | URL
알로하님 반갑습니다. 흔적 남겨주셔서 고맙구요.
 

 


명자꽃

 

 

                                                                    안도현

 
그해 봄 우리 집 마당가에 핀 명자꽃은 별스럽게도 붉었습니다
옆집에 살던 명자 누나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하였습니다   

나는 누나의 아랫입술이 다른 여자애들보다 도톰한 것을 생각하고는 혼자 뒷방 담요 위에서 명자나무 이파리처럼 파랗게 뒤척이며 명자꽃을 생각하고 또 문득 누나에게도 낯설었을 초경(初經)이며 누나의 속옷이 받아낸 붉디붉은 꽃잎까지 속속들이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꽃잎에 입술을 대보았고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내 짝사랑의 어리석은 입술이 칼날처럼 서럽고 차가운 줄을 처음 알게 된
그해는 4월도 반이나 넘긴 중순에 눈이 내렸습니다 
 

하늘 속의 눈송이가 내려와서 혀를 날름거리며 달아나는 일이 애당초 남의 일 같지 않았습니다 명자 누나의 아버지는 일찍 늙은 명자나무처럼 등짝이 어둡고 먹먹했는데 어쩌다 그 뒷모습만 봐도 벌 받을 것 같아 나는 스스로 먼저 병을 얻었습니다

나의 낙은 자리에 누워 이마로 찬 수건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어린 나를 관통해서 아프게 한 명자꽃,
그 꽃을 산당화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될 무렵 홀연 우리 옆집 명자 누나는 혼자 서울로 떠났습니다

떨어진 꽃잎이 쌓인 명자나무 밑동은 추했고, 봄은 느긋한 봄이었기에 지루하였습니다  나는 왜 식물도감을 뒤적여야 하는가, 명자나무는 왜 다닥다닥 홍등(紅燈)을 달았다가 일없이 발등에 떨어뜨리는가,
내 불평은 꽃잎 지는 소리만큼이나 소소한 것이었지마는
명자 누나의 소식은 첫 월급으로 자기 엄마한테 빨간 내복 한 벌 사서 보냈다는 풍문이 전부였습니다 
 

해마다 내가 개근상을 받듯 명자꽃이 피어도 누나는 돌아오지 않았고, 내 눈에는 전에 없던 핏줄이 창궐하였습니다 
 

명자 누나네 집의 내 키 만한 창문 틈으로 붉은 울음소리가 새어나오던 저녁이 있었습니다
그 울음소리는 자진(自盡)할 듯 뜨겁게 쏟아지다가 잦아들고 그러다가는 또 바람벽 치는 소리를 섞으며 밤늦도록 이어졌습니다

그 이튿날, 누나가 집에 다녀갔다고, 애비 없는 갓난애를 업고 왔었다고 수런거리는 소리가
명자나무 가시에 뾰족하게 걸린 것을 나는 보아야 했습니다
잎이 나기 전에 꽃몽우리를 먼저 뱉는 꽃, 그날은 눈이 퉁퉁 붓고 머리가 헝클어진 명자꽃이 그해 첫 꽃을 피우던 날이었습니다

 

 
집 앞에 한 무더기 명자나무가 있다. 봉오리들이 금방이라도 필 것처럼 물이 올랐다. 명자꽃은 봄꽃 중 가장먼저 나와 눈을 맞춘다. 날 선 바람 속에 피는데 참으로 희한하게도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명자꽃은 그 아름다움을 잃고 만다. 머지않은 꽃을 기다리며 시를 읽는다.

시인은 흔하디흔한 사랑을 노래했다. 그것도 바라보기의 최종심금인 짝사랑이 소재다. 첫사랑이든 짝사랑이든 사랑은 일종의 병이다. 누구나 앓는 인류의 지병인 셈인데 어느 누구도 치료제를 만들지 않는다. 스스로 사랑의 예방접종을 하고 항체를 만들어야 한다. 가능할까?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꽃, 산당화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가진 꽃.
이 꽃의 한 살이와 사랑을 신묘하게 얽었다. 꽃이 피듯 사랑이 싹트고 잎이 나듯 파랗게 뒤척이고 식물도감을 뒤척이는 사이 명자누나는 꽃이 진 추한 밑동까지 다 보여준다. 서사와 시간성은 산문시의 특징이다. 이 시는 산문시의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더불어 희미하게나마 농촌 원체험 세대로서의 경험과 산업화로 인한 도시빈민의 삶까지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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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17 01: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7 1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밤바 2010-03-22 0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와 일상의 언어가 쉬이 구분되지 않는 요즘에, 안도현의 시야 말로 정녕 詩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는 듯 합니다.
멋부림없이 자늑자늑 읊어가는 저 추억의 아스라함 속에서 저 또한 마음이 먹먹해집니다.
좋은 글 보여주셔서 감사^^

반딧불이 2010-03-22 01:47   좋아요 0 | URL
한용운 같기도 하고 백석 같기도 하고 또 그런것이 안도현이란 생각도 하면서 명자나무 가지를 꺾어다 놓고 읽어본답니다. '자늑자늑'이라는 말씀이 정말 딱 맞아 떨어지는 것 같아요.

읽어주셔서 저도 감사 ^.~

blanca 2010-04-19 2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명자꽃이 진짜로 있군요. 우아! 이 시를 읽으니 시인이 소설가보다 한 수 위라는 조정래샘 말에 아주 극렬하게 동의가 갑니다. 반딧불이님이 명자꽃을 보면서 시를 읽는 모습이 너무 부럽네요. 아름다워요!

반딧불이 2010-04-20 00:02   좋아요 0 | URL
아 블랑카님..요즈음 명자꽃 철이랍니다. 집앞에 지금 한창 피었어요. 시골에서는 이 꽃을 보면 여자들이 바람난다는 속설도 있다고해요. 주변에 흔한 꽃이니 블랑카님도 한번 보세요. 반드시 반하실거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