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법을 위한 기도/박현수
저희에게
한 번도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을 주옵시며
나날이 낯선
마을에 당도한 바람의 눈으로
세상에 서게 하소서
의도대로 시가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옵시며
상상력의 홀씨가
생을 가득 떠돌게 하소서
회고는
노쇠의 증좌임을 믿사오니
사물에서 과거를
연상하지 않게 하옵시며
밤벌레처럼 유년을
파먹으며 생을 허비하지 않게 하소서
거짓 희망으로
시를 끝내지 않게 하옵시며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 있듯이
영원토록
살갗처럼 시를 입게 하소서
어떤 절대적인 힘을 가진 자에게 자신을 위한 무언가를 갈구하는 것이 기도라고 여겼다. 나를 위해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뻔뻔스럽게 여겨져 기도는 해보지 못했다. 오히려 평소에는 안 찾다가 저 아쉬운 때만 찾는다고 버럭 소리를 지르거나 화를 낼 것 같아 두려운 마음도 들었다.
시인은 ‘한 번도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을 달라고 한다. ‘나날이 낯선/마을에 당도한 바람의 눈으로/세상에 서게’해달라고 한다. 성대를 거친 적이 없는 발성법과 낯선 눈으로 세상에 서는 것은 누군가에게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또 시인은‘회고는/노쇠의 증좌임을’믿고, ‘밤벌레처럼 유년을/파먹으며 생을 허비하지 않게’해달라고 한다. 시적 지향을 갖지 못하고 과거의 추억담을 늘어놓는 시에 대한 비판이면서 동시에 그것을 경계하는 자기 확인 의지를 내포하고 있다.
시인에게 기도는 절대자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반성하고 경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반성의 골이 깊을수록 성취의 봉우리는 높을 것이다. '삶이란 글자 속에/ 시가 이미 겹쳐있'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시를 쓰기보다 시를 살것이다. 함께 기도하기로 하자.
위험한 독서
박현수 (지은이) |
천년의시작 | 2006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