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가

詩/김민서


해사한 소국들의
얼굴 위로 햇살이
투스탭으로 건너가더니
금천교 너머 조선의
땅에 비 내립니다

인정전 빈 뜰에서
시간의 주름은
쥘부채처럼 펼쳐지고
화계 위 굴뚝에 갇힌 꽃사슴의 눈길
만질 수 없어도 느낄 수 있는
당신의 체온처럼 따사롭습니다

몇 백 년 전이던가요
고단한 시간의 다리 위에서 그대가
젖은 지우산 아래 곁을 내주던 것이
당신의 궁에는 여전히 비 내리고 나는
우산도 없이 내의원 담장을 끌며
부용지에 이르렀습니다

인적이 드문 궁 뜰 너머 서울의 하늘은
먼 나라 하늘처럼 푸르고
나는 부용정 그늘에 젖어 하릴없이
담장을 넘는 호랑나비 한 마리를 봅니다
나비는 언제나 바람을 몰고 와서
바람을 남기고 사라지는데
나비의 오는 곳과
가는 곳을 나는 모릅니다

나비와도 같고
바람과도 같은 당신
온몸으로 출렁이는 그대의 바람 속에 서서
나는 뜨거워진 체온을 식히며
한때 나의 꿈이었던 그대와
나의 불가해한 인연을
마음껏 서러워하겠습니다  

 

어제 저녁 거리에서 돌풍과 천둥번개를 만났다. 예술의 전당 근처에서였다.  갑자기 하늘이 검은 보자기를 펼쳐놓은듯 캄캄해지더니 자동차 지붕을 뚫을듯이 비가 쏟아졌다. 차를 멈추고 한참 거리를 내다봤다. 소나기 채찍을 맞은 단풍잎들은  바람에 등 떠밀려 알지 못할 곳으로 마구 흩어졌다.  겨울은 저렇게 급하게 잎을 보내야할 이유가 있는 걸까? 기다리지 않아도 와야할 것은 오고 보내지 않아도 가야할 것은 다 간다. 남겨진 자는 '마음껏 서러워'하는 노래를 부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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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11-12 16: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은 블로그에서 '파란여우'님을 보내드렸는데, '반딧불이'님도 송가를 불러 주시네요. 어쩌면 '파란여우'님에 대한 노래인지도 모르겠어요.
근래 영영 이별을 자꾸 하며 저도 송가를 부르곤 합니다. 이태석 신부님의 삶을 다룬 영화 <울지마, 톤즈>에서 신부님이 수단의 학생들에게 이 노래를 가르쳐 줬더군요. "사랑해 당신을 정말로 사랑해 당신이 내 곁을 떠나간 뒤에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른다오" 눈물이 울컥 나는 노래였습니다.
또 하나의 아름다운 송가를 들려주서셔 고맙습니다.

반딧불이 2010-11-12 19:26   좋아요 0 | URL
겸사겸사 '송가'가 생각났습니다. '파란여우'님은 더 넓은 곳에서 새로운 둥지를 트시겠지요. 아쉬움과 미련이 교차하는 날입니다.

양철나무꾼 2010-11-12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낮엔 또 봄날 같더라구요.

그래도 아직 비바람에 떨어지지 않은 고운 잎이 남아 있으니까요.
문장의 배치를 살짝 바꿔보는 건 어떨까요?
서러워 마음껏 부르는 노래로요~^^

반딧불이 2010-11-12 23:23   좋아요 0 | URL
겁이나서 저는 아직 현관문도 열어보지 못했습니다.
페이퍼 제목을 말씀이신가요?

blanca 2010-11-12 2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간의 주름은 쥘부채처럼 펼쳐지고...
나의 불가해한 인연을 마음껏 서러워하겠습니다.

이런 좋은 시를 읽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옮겨 적어 놓을게요. 눈물나는 송가입니다.....

반딧불이 2010-11-12 23:25   좋아요 0 | URL
시인의 마음이 블랑카님께 전이가 된 모양입니다. 마음에 드셨다니 저도 기쁩니다.

비로그인 2010-11-12 23: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을 그냥 보내드리기가 못내 아쉬웠는데 반딧불이님의 '송가'가 제 아쉬움을 대신 달래주네요. 전 그저 댓글 할 줄 얹겠습니다. 허락해주신다면요...

반딧불이 2010-11-12 23:27   좋아요 0 | URL
제가 영광입죠. 얼마든지 언제까지나 환영합니다.

cyrus 2010-11-14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서재글 경향은 시군요. 방금 나무꾼님의 서재에서 정호승 시인의 시랑
플러스 나무꾼님이 쓰신 시를 감상했는데,,^^ 저도 이제 시집을 읽어봐야겠네요. 올해 읽은 시집이라면 보들레르의 <악의 꽃> 밖에 없네요. 암울하고 음침한 시로 악명높죠. -_-;;

반딧불이 2010-11-14 01:33   좋아요 0 | URL
고등학교 1학년때 겉멋들어 처음 읽었던 시죠. 오늘도 서너권 시집을 봤지만 보들레르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다시 읽어봐야할텐데 그 때가 언제일지..
 

 

 


 

 

 

 

 

 

오래전 어느 세미나에서 이문재 시인에게 여쭈었던 말이 있다. 최근의 한국문단이 두 개의 M신을 모신다고 하는 비판이 있는데 한 말씀 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주저 없이 자기도 M신을 모신다고 했다. 물론 그가 말한 M신은 Money도 Media도 아니 文神이었다. 참으로 통쾌하고 뻐근한 감동이었다.

여기 그 文神을 모시는 사람을 또 만났다. 이옥이다. 그는 祭文神文 즉, <문신께 고하는 글>까지 지었다. 이옥은 그가 배냇니를 갈지 않았을 때부터 문신에 종사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보면 내게는 그가 곧 文神처럼 보인다.

내가 본래 천성이 게으르고 능히 스스로 부지런하지 못하여 전후로 읽은 책이 <서경書經>은 겨우 사백 회, <시경詩經>은 전후 백 회인데 그중에 아송雅頌은 그 갑절이었다. <주역周易은 삼십 회, 공자·맹자·증자·자사의 책은 <주역>보다 이십 회 많이 읽은 정도이다. 내 성정이 <이소離騷>를 가장 사랑하여 어느 때이건 일찍이 입에서 읊조리지 않은 적이 없었으나 또한 천 회를 채우지는 못하였고, 그 밖의 것은 대체로 눈으로 섭렵하였으니 서산書算을 들어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책 한 권을 수십 번씩 읽었다. 두 번 이상 읽은 책이 몇 권 안되는 나로서는 기가 질리는 일이다. 아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명심보감은 제법 읽은 듯하다. 오래전이지만 지금의 한국학중앙연구원이 정신문화연구원이었을 때, 청계서당에 다닌적 있다. 훈장님께서는 매일 50 번씩 소리내어 읽을 것과 써 올 것을 주문하셨다. 퇴근 후 허겁지겁 달려가서 오십독을 하고나면 허기가 져서 허리가 휘고 목이 쉬었다. 내 시험답안지를 보신 훈장님은 곧 문리가 트일것이라고 하셨지만, 나는 두학기를 다 마치지 못했다. 남은 것은 훈장님 것을 본따 만든 서산(書算) 두개와 지은이를 알 수 없는 시 한 편 뿐이고 공부에는 때가 있다는 옛말을 다시 확인하는 씁쓸한 후회가 배경화면처럼 깔려있다.
 
이옥의 나이 스물대여섯에 적은 글이니 문신과 함께한지 이십여 년이다. 돌이켜 생각하니 나는 내 청춘을 너무 낭비했다. 그 죄를 누구에게 물어야하나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해지더니 눈시울이 매캐했다. 그 많은 이유가 핑계와 변명으로 요약될 수 밖에 없는 지금 나를 적시는 이 눈물은 슬픔의 살을 뚫고 나오는 뼈와 같다.  



아, 같은 봄이로되 연꽃과 국화의 경우에는 반드시 느리디 느려 꽃피기가 어려우니, 복사꽃 오얏꽃이 일찍 피어남에 비교하지 못하지만 이것이 어찌 봄의 잘못이겠는가? 연꽃과 국화가 봄을 저버린 것이다. 고요히 생각해봄에 얼굴이 붉어지고 위로 열이 올라 내가 차마 그 말을 많이 하지 못하겠다. 다행스럽게도 그대 문신이 나를 낮고 비루하게 여기지 말고, 나의 어리석은 성품을 더욱 도와주어 이전의 나를 한번 씻어준다면, 내가 비록 불민하나 또한 마땅히 새해부터는 조심조심하여 오직 그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을 도모하겠다. 금일은 세모라, 내가 느낌이 많아 붓꽃을 엮어 안주로 삼고 연지를 술항아리로 삼아, 심향 한 줄기 가늘고 파르스름하게 실오라기처럼 피어오르는데, 제문을 들고 문신에게 고한다. 
문신은 이를 흠향하시라.

 
입동이 지났으니 소설 대설이 멀지 않았다. 뒤이어 동지는 오고 밤은 더욱 길어질 것이다. 이옥의 저 간절한 제문 앞에 꿇어 이 겨울을 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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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1-10 0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캬아~~~ 명문입니다. 진짜!!
본격적으로 슬슬 추워진다고 하지만, 어느새 겨울은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예전에는 저도 이런 명문장을 발견하면 알라딘 서재에 올리기도 했었는데,
이런 좋은 문장을 다른 서재에서도 감상할 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

반딧불이 2010-11-10 10:16   좋아요 0 | URL
문장도 좋은데 그 진솔함이나 간곡함이 느껴져서 저도 덩달아 웃다가 쓸쓸해지다가 이렇게 숙연해지기도 하네요. 고맙습니다. 늘...

양철나무꾼 2010-11-10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이옥을 읽다보니,
김탁환의 소설 속 그들이 생각나더라구요~^^

이옥은 물론 좋았고,이문재님도,님도 다 좋아지려고 해요,ㅋ~.

반딧불이 2010-11-10 17:02   좋아요 0 | URL
저는 나무꾼님의 통통튀는 상상력과 언변을 이미 좋아하고 있습니다. 김탁환은 아직 제게 오지 않았군요.

2010-11-10 19:3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1 1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1 11: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1 11: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1 15: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11 18: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이옥 전집 2권에는 <봉성문여>에 실린 글 67편이 수록되어 있다. 2편을 제외한 모든 글이 삼가현으로 귀양갔을 때의 풍속을 정리한 글이다.   지방마다 다른 사투리, 경상도에서는 여자 이름에 심(心)자를 많이 쓴다는 것, 사당패와 도둑의 이야기, 다리가 여섯 달린 쥐이야기 등 보고 겪은 모든 일을 낱낱이 적어두었다. 당시로서는 아무런 쓸모가 없었을 것이지만 민속연구자들에게는 자료로서 톡톡한 값을 하지 않을까 싶다. 

재미난 글들이 많지만 특히 마음에 관한 글들이 도드라진다. 

     
 

 걱정이란 마음 가운데 있는 것인데 마음이 몸에 있으면 몸을 걱정하고, 마음이 처하는 곳에 있으면 처하는 곳을 걱정하고, 마음이 만난 때에 있으면 만난 때를 걱정하는 것이니, 마음이 있는 곳이 걱정이 있는 곳이다. 그러므로 그 마음을 이동하여 다른 곳으로 가면 걱정이 따라오지 못한다. 지금 내가 술을 마시면서 술병을 잡고 흔들어보면 마음이 술병에 있게 되고, 안주를 덜어 목구멍으로 넘기면 마음이 안주에 있게 되고, 손님에게 잔을 돌리면서 나이를 따지면 마음이 손님에게 있게 되어, 손을 펼칠 때부터 입술을 닦는 데에 이르기까지 잠시 걱정이 없다. 신변에 걱정이 없어지고 처한 곳에 걱정이 없어지고 때를 잘못 만난 것에 대한 걱정이 없어지니, 이것이 내가 술을 마시면서 걱정을 잊는 방법이요, 술을 많이 마시는 까닭이다.

 
     

 

     
 

 마음이란 한 몸을 주재하는 군주이다. 매어두지 않으면 달아나고, 막지 않으면 허둥거린다. 지인(至人)은 그것을 융해시키고, 성인(聖人)은 그것을 억제한다. 평범한 사람은 쉽게 움직이므로 잘 간직하지 않으면 잃어버려서 모든 병이 이로부터 나와 허를 엿보고 실을 덮친다. 마음을 존양하는 방법은 반드시 일(一)에 속해 있어야한다.

 
     

 

     
 

 집을 꾸미는 것은 그 몸을 꾸미는 것만 못하고, 그 몸을 밝게 하는 것은 그 정신을 밝게 하는 것만 못하다. 그 집이 얼음같이 맑더라도, 그 마음은 먼지와 같이 탁할 수 있다. 또 나는 우리 시골 사람이라, 기(氣)가 그 거처에 따라 변하는 것임에 본래 비루하고 가난하나, 한 개의 경연(벼루의 일종)을 쓰고 하나의 부들자리를 깔 뿐이다.

 
     

 

일생동안 마음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을것이지만 특히 이옥은 이 충군의 기간동안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려 몹시 애를 쓴 듯하다. 마음이 어디에서 생겨나는지 그 마음을 어떻게 간직해야 하는지, 먹고 입는 육체의 평안보다 또 정신보다도 마음을 맑게 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았던 듯 싶다. 그가 이렇게 마음에 집착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임금에 대한 원망의 말은 한마디로 나오지 않지만 밖으로는 자신의 욕망을 다스리는 노력의 일환이었으리라. 그리고 안으로는 마음을 비워 천지만물이 자신을 통과해 표현되고 활동되는 것으로 믿었던 때문일 것이다.  

이옥에게 있어 글은 자신이 주체적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천지만물이 자신의 몸을 빌어 쓰여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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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09 1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5: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11-09 16: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cyrus 2010-11-10 0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읽었던 옛 문장을 모아놓은 책들은 선집 형식이라서 좋은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그 작가에 대한 더 좋은 글을 접할 수 없어서 아쉬웠답니다. 그런데 반딧불이님 덕분에 이옥
전집을 알게 되면서 읽는 내내 정말 주옥같은 글과 재미있는 글들이 많이 있어서 좋습니다. 이 책, 4권까지 있던데 반딧불이님은 완독하실거 같습니다.^^

반딧불이 2010-11-10 10:13   좋아요 0 | URL
이옥의 전집은 전부5권으로 되어있더라구요. 4권은 한문, 5권은 영인본이에요. 그러니 제가 읽을 수 있는 건 3권뿐이죠. 2권을 보고있지만 궁금해서 3권도 여기저기 마구 들여다보면서 읽고 있는 중이에요. 사이러스님도 제법 읽으셨지요?

cyrus 2010-11-10 14:34   좋아요 0 | URL
영인본까지 포함해서 다섯권으로 이루져있군요.
도서관에는 영인본이 소장되지 않았는가보네요.
저도 이제 2권을 읽으려고 합니다. 어떤 내용이 있을지
기대가 됩니다.^^

blanca 2010-11-10 00: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정결하고 위로까지 주는 페이퍼입니다. 마음 가는 데 걱정이 따라간다,는 말 너무 와닿네요. 부는 마음대로 흐느적대지 말고 마음 단속도 잘 해야 할까봐요.

반딧불이 2010-11-10 10:15   좋아요 0 | URL
이옥은 이 글에서 마음은 일(一), 즉 하나에 묶어두어야한다고 해요. 블랑카님은 이미 일(一)에 묶어두고 계시잖아요. 이미 단속의 대상이 아닌듯 한걸요.
 

 

부용지에서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차올라

온몸에 금빛 출렁이는

은행나무를 보거나

 

사람들 모두 다녀간 이후

고요한 연못에 홀로 드리운 부용정  

닫힌 듯 미래로 열린

물속의 문을 보노라면

 

나는 말없이 떠난 자가

성긴 빗방울로 돌아와

문 두드릴 때

수많은 기다림의 나이테로

파문져 한 몸 되는

못물이고 싶다

 

물이 되기 위하여 물은

더 여위어야한다 

 

 바야흐로 은행나무의 계절이다.  은행나무는 암수 딴 그루이다. 암그루는 수그루를  저만치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고 황금빛으로 출렁인다. 아름다운 거리다. 모름지기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켜야할 거리가 있는 법. 은행나무의 사랑법을 배울 일이다. 

저물녘 실상사를 찾았다. 예전 대원각이었을 때 그곳에서는 고기를 굽고 풍악을 울리곤 했었다. 그 기운이 언제 걷혔는지 고즈녁한 산사의 느낌이 나를 사로잡았다.  지는 해가 녹인 황금물을 쏟아부었는지 은행나무는 황금촛대처럼 서 있었다.  

나무는 떨켜를 만들어 가지끝으로 가는 물을 차단했을 것이다. 나뭇잎들은 뿌리로 부터 물이 오기를 목이말라 기다렸을 것이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목이 타들어갔을 것이다. 가을 단풍은 모든 나뭇잎이 목이 졸려 내지르는 비명이다. 머지 않아 생의 건널목을 건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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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1-05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운사에도 그런 은행나무가 있어요.

오늘은 후와님 서재를 거쳐서 왔어요.
후와님 글의 답시 너무 좋아요,이 말씀도 꼭 드리고 싶어요~^^

반딧불이 2010-11-05 14:02   좋아요 0 | URL
지난달에 선운사에 갔었는데 꽃무릇만 눈이 무르도록 보고 왔네요. 진작 알았더라면 함께 보았을텐데요.

후와님의 시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그냥 좋다고 하기엔 너무 성의가 없는 것같아 적었는데 다시 읽어보니 제 잘난척이 되고 만것 같아요. 제 의도는 그런게 아니었는데 말이죠.

cyrus 2010-11-05 2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잘 읽었습니다. 밖에 노란색으로 물든 은행나무 이파리를 보면
가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어서 좋은거 같아요^^
그리고 이 글과 전혀 관련은 없지만,,
프라이팬에 볶은 은행나무 열매 먹고 싶어지네요..^^;;
(위의 댓글과 비교가 되네요...ㅠ_ㅠ )

반딧불이 2010-11-05 23:23   좋아요 0 | URL
저한테는 그 노란 은행잎이 경고장으로 보일 때도 종종 있는걸요.

아. 저희동네는 가로수가 은행나무인데요. 저도 가끔 주워다 구워먹어요~

스트레인지러브 2010-11-05 2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무에도 자웅이 있는지는 처음 알았네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열매를 맺는다는 게.... 특이하네요.
제가 이과 쪽(생물 쪽)에 지식이 없어서일수도 있습니다만.

반딧불이 2010-11-05 23:26   좋아요 0 | URL
사실을 말하면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으면 수그루의 꽃가루가 바람에 날려 암그루에게 닿아 수정을 하는 거지요. '바라보는 것만으로도'는 제 표현이구요.

스트레인지러브 2010-11-05 23:36   좋아요 0 | URL
헤에, 그럼 은행은 한 그루만 심어놓으면,
은행이 열리지 않겠네요. 그런 것도 있었군요..

반딧불이 2010-11-05 23:46   좋아요 0 | URL
그렇죠. 평생 열매를 한번도 맺지 못하는 은행나무도 있겠죠.

기웃 2010-11-0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김현 선생님의 '행복한 책 읽기'가 걸려 있네요. 읽은지 꽤 오래되었지만 소중한 글귀들이 꽤 많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거리'라고 하니 '행복한 책 읽기'에서 진정한 친구는 옆에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초조하거나 불편하지 않고 편한 게 진정한 친구가 아닌가-하고 언급했었죠.

반딧불이님이 말씀하신 은행나무의 '거리'는 수학에서 말하는 실수가 아닌 허수의 공간인 것 같네요. 혼자만 있으면 존재하지 않는 서로 곱해야지만 음의 공간/'거리'없음이 보이는- 그 미지의 보이지 않는 거리가 아닐까요..^^

반딧불이 2010-11-06 12:50   좋아요 0 | URL
제게도 행복을 전염시켜준 책이었어요. '책읽기의 괴로움' 역시 괴로움보다는 행복쪽으로 기울게 해주었구요. 이름 뒤에 '선생님'을 분명하게 붙여 부르시는 '기웃'님 반갑습니다.

실수나 허수 같은 수학용어들을 저는 잘 몰라요. 다만 암수 은행나무의 거리, 부용정과 부용지의 거리, 못물과 빗물의 순환과정을 생각했었어요. 물이 다시 물이되기 위하여 증발해야하듯이 '나'도 '나'가 되기 위해서 '나'를 여위어야하는 구나...생각했지요.
 
인문/사회 분야 주목할만한 신간 도서를 보내주세요.

 

 

 

 

 

 

 

이 책은 가격으로나 관심으로나 11월의  주목 신간도서의 1위다.  주목 신간도서의 리스트를 만드는데 책값을 고려해야한다는 조건은 보지 못했으니 일단 책값은 무시하기로 한다. 에코라는 이름을 보면 늘 떠오르는 다른 이름이 있다. <장미의 이름>을 번역한 이윤기와 <장미의 이름 읽기>를 쓴 강유원이다. 얼마전 심장마비로 별세했다는 이윤기의 소식을 들었을 때도 나는 이들 세 사람을 함께 떠올렸었다.  

다양한 예술장르를 넘나들며 리스트를 만들고 거기에서 당대의 세계관을 읽어낸다는 소개글이 관심을 부추겼다. 내가 만드는 리스트라고는 마트에 갈 때 사야할 물건 리스트가 고작이다. 냉장고에 붙어있던 이 리스트도 정작 마트에 갈 때는 빼먹고 그냥 간다. 그러니 있으나마나한 리스트다. 가장 세속적인 리스트가 무수히 만들어졌으나 정작 그 세속적인 일에도 쓰이지 못하고 폐기된 내 리스트의  에코가 이 <궁극의 리스트>일지도 모르겠다. 

 

 책을 읽고 양을 잃었다니? 저자가 목동인가? 그림을 보니 위의 양은 책을 읽고 아래 양은 뒤집어져있다. 양이 책을 읽고 변신이라도 했단말인가? 별별 생각을 다하다 소개글을 보았더니 동서고금 독서박물지라고 한다. 그래도 책과 양의 관계는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책에 관한 이런 궁금증 정말 견디기 쉽지 않다. 소제목들을 살펴보니 궁금한 것이 한두개가 아니다. '동서양 책장 넘기는 방법의 차이', '책점 보기' , '이명과 필명', '근시' 등등.  책과 관련된 이야기들임에는 분명하다. 양은 끝내 안나온다. 본문에는 나오겠지.....? 

 

 

 

 

                             .    

 프로이트는 개인 무의식을 연구했고 융은 프로이트와 입장을 달리하여 집단 무의식을 연구했다. 의식이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은 두 사람 모두 일치하는 견해이다. 융의 <원형과 무의식>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내가 가진 의식만으로는 무엇을 해도 다른 사람과 크게 다른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다른 사람과 크게 달라지려면 무의식을 계발해야 한다는 것인데 결정적으로 나는 이 방법을 모르겠다. <천재적 광기와 미친 천재성>은 어쩌면 이것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목차에 나오는 강박증, 강박인격, 정신착란 등의 용어들이 프로이트의 그것과는 좀 다른 것이면 좋겠다.  온갖 단서를 들이대며 범인으로 몰고가는 형사콜롬보같은 프로이트는 그만 보고 싶기 때문이다. 

 

 

 바다가 보고싶어 강화도에 간 적이 있다. 시커먼 뻘밭을 길게 드러내고 바다가 널부러져 있었다. 내가 원한 바다가 아니라는 걸, 바다의 얼굴이 여러 개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최소한 이 책 표지의 바다는 서해바다는 아니다. 자루비노로 가는 17시간 동안의 뱃길에서 멀미로 널부러진 내몸을 낱낱이 핥고 가던 넘실거리는 혓바닥를 가진 그 바다도 아닌 것같다. 최소한 하얀 거품을 물고  달려오는 바다, 그렇게 달려와서는 흰 종이 한 장을 내밀고는 돌아가는 바다처럼 보인다.  

이 책에는 내가 가끔 보고 싶어하는 바다 뿐만 아니라 내가 알지 못하는 바다의 모든 것이 들어있는듯 하다.  

 

 

 

 

'노벨상과는 완전히 다른 그러면서도 매우 비슷한' 노벨상이 하나 더 만들어졌다. '비천한' '보잘것 없는'이라는 뜻이 덧붙여졌다.  노벨상보다 분야도 다양하다. 그런데 상금은 어찌되나?  

근데 신간도서 추천하라면서 알라딘 중교샾에 반값도 안되는 5400원으로 두 권이나 올라와 있는건 무슨 경우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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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11-04 1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오신산의 책은 흥미로울 듯 싶습니다. 읽게 되시면 꼭 서평 남겨 주세요^^

반딧불이 2010-11-04 12:40   좋아요 0 | URL
자오신산을 쓰루가야 신이치라 읽는 모양이군요. 책을 읽고 양을 잃다(讀書亡羊)가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네요. 읽게되면 말씀나누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4 15:04   좋아요 0 | URL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저자가 중국 사람 아닌가요? 일본에서 그 사람을 그리 부르는가 보죠?

반딧불이 2010-11-04 18:02   좋아요 0 | URL
우잉? 전 닥나무께서 잘 아는 작가인줄 알았네요. 저자가 쓰루가야 신이치라고 쓰여있고 전일본에세이스트 클럽상인가를 수상했다길래..저는 일본인으로만 알고 있었는걸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4 18:53   좋아요 0 | URL
아,저는 <천재적 광기와 미친 천재성>을 말씀 드린건데요^^; 이 책의 저자가 중국인 자오신산이거든요.
반딧불이님은 <책을 읽고 양을 잃다> 얘긴지 아셨나 보네요^^ 이런 재밌는 엇갈림이......

반딧불이 2010-11-04 20:02   좋아요 0 | URL
못살아..지금까지 남의 다리 긁고 있었던거네요 ㅋㅋ 오늘 아침부터 이상하게 여러가지가 엇갈리고 헛갈리는 날이네요. 어찌되었거나 죄송합니다.

파고세운닥나무 2010-11-04 21:00   좋아요 0 | URL
즐거운 엇갈림입니다^^

cyrus 2010-11-04 17: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11월 신간평가 페이퍼에서 <궁극의 리스트>가 대세이군요^^
이거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ㅎㅎ
정말 이번 페이퍼를 작성하는데 내용이 알쏭달쏭하면서도
드러내지 않은 책들이 많아서 선정하는데 힘들었습니다.^^;;
좋은 페이퍼 잘 읽었습니다.

반딧불이 2010-11-04 18:0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여요. 사이러스님께서는 이미 구입하시고 리뷰까지 쓰셨는데 말이에요. 저도 이번 책은 정체불명의 것들이 많아서 한참 들여다봤어요.

교고쿠도 2010-11-04 18: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재적 광기와 미친 천재성...갖고 있는데 기대보다는 그닥이었습니다 ㅜ.ㅜ언어로 형용하기는 좀 어려운데...

반딧불이 2010-11-04 20:03   좋아요 0 | URL
벌써 읽어보셨군요.언어로 형용하기 어렵다시니까..더 궁금해지는데요.

cyrus 2010-11-04 2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여러 평가단원분들의 신간도서 페이퍼를 보면 볼수록
재미있네요. 소개된 책 한 권은 꼭 다른 평가단원분이 소유하고 있는 현상,,,
역시 신간도서평가단원들답습니다.^^

반딧불이 2010-11-04 21:27   좋아요 0 | URL
저는 신간도서 한권도 안갖고 있는데요. 사이러스님. 그럼 전 평가단원 자격 없는거죠.ㅋㅋ

전 평가단원 하기전에는 신간에 전혀 무관심했어요. 오히려 보고싶은 책들은 거의가 구간이고 그나마 절판되거나 품절된 책이 더 많았어요. 그래서인지 가끔 제가 쓴 리뷰들의 목록을 보면 철지난 올드패션이어서 제 서재를 찾아오시는 분들이 존경스럽기조차 했어요.

cyrus 2010-11-05 00:02   좋아요 0 | URL
아이쿠,,, 제가 잘못 생각하고 있었네요^^;;
죄송합니다. 반딧불이님.
저도 신간도서에 대해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답니다.
어느 정도 재화(?)가 있어야지 신간도서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지,
그나마 신간도서를 접할 수 있는 것은 도서관뿐이랍니다.
그리고 저도 주로 읽는 것이 고전(우리나라 고전 포함)들이라서
추천이나 댓글을 해주신 분들을 보면 정말 감사하기도 한답니다.
그래서 반딧불이님이 제 서재에 들려주신 점에 대해서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다이조부 2010-11-06 1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궁극의 리스트 가 제일 눈길을 끄네요.

매일 매일 신간이 쏟아져 나오니까, 책홍수 속에서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가늠하기 쉽지 않은데, 주인장 서재 나침반 삼아서 책읽기 시도해 봐야겠네요 ㅋㅋ

반딧불이 2010-11-06 12:59   좋아요 0 | URL
제게는 궁극의 리스트가 제목 때문에 가장 끌리는 책이에요. 무게중심이 궁극에 있는것이 더 끌리게 하구요.

근데 제 서재를 나침반 삼으시면 안드로메다로 가실지도 모르는데요~^.~

스트레인지러브 2010-11-06 18: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움베르트 에코에서부터 압도적인 포스를 느끼는군요.
'책을 읽고 양을 읽다'... 요즘 다치바나 다카시의 '지의 정원' 읽고 있는데, 그건 2009년 출판, 반면 이 책은 2000년 출판이라, '좀 빨리 나왔으면 어땠을까' 하는 느낌도 받네요. 일전에 기타노 다케시의 1997년 책이 2009년에 번역되어 나온 거 보고(특히 지금 총리 무능하다고 씹어대는 장면에서) '왜 지금 초판을 내지' 하는 생각도 든 터라...
내용을 알아먹을 수만 있다면 세 번째 책은 정말 끌리네요
5번째 같은 경우, 요즘 지마켓 중심으로유행하는 '오픈마켓' 때문인 것 같습니다. 신구판 관계없이 파격적인 가격에 책을 떨이하는 까닭에 소비자에게는 좋지만 요즘 서점업계를 교란시킨다고 신문에서 본 거 같네요. 아마 그런 쪽에서 나온 책이 알라딘 중고샵에 올라온 것 같아요.

반딧불이 2010-11-06 20:50   좋아요 0 | URL
마음님께서는 현지에서의 출간년도와 우리나라에서의 번역연도까지 챙기시는군요. 저도 앞으로는 좀 눈여겨 봐야겠는걸요.

중고샵에 나오는것 까지는 이해하겠는데요. 알라딘 직배송 중고샵에 있는건 좀 그런것 같아요. 신간평가단원들에게 중고샵에 내놓지 말고 하면서 말이에요.


다이조부 2010-11-06 22: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옆에 10단 서재에 있는 책 중에서 한 권을 읽고 있어요.

이어령의 지성에서 영성으로~ 우연의 일치지만 반갑네요. ^^

지성영성 이랑 더불어 같이 진도 나가는 책이 동일 저자의 젊음의 탄생 인데 그럭저럭

잘 읽히네요.

마음에 안 드는 구절을 꼽자면, 이념놀이 에 빠져서 잃어버린 10년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는

고개를 갸우뚱 했지만 말이죠~

반딧불이 2010-11-07 01:34   좋아요 0 | URL
아..그러시군요. 저는 아직못읽고 있어요. 리뷰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