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세상 문고판으로 <나의 개인주의>를 먼저 구입했는데 <문명론>에도 '나의 개인주의'가 실려 있었다. 일본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의 자제가 들어가는 '학습원'이라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나의 개인주의'는 이 학습원에서 소세키가 행한 강연의 제목이었다. '자기본위'라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생겨났는지 쉽게 설명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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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직업으로 삼고 있는 교사라는 것에 대해서 조금도 흥미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나에게 결여되어 있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교실에서 영어를 가르치는 일이 이미 귀찮고 따분한 것이었기 때문에 방법이 없었습니다. 나는 시종일관 엉거주춤한 자세로 틈만 나면 나의 본령으로 날아가겠지, 날아가겠지 하는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본령이라는 것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없는 것 같기도해서 어디를 향해서도 결단을 하고 날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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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소 문학이란 무엇인가 하는 개념을 근본적으로, 그리고 자력으로 만들어내는 방법 외에는 나를 구할 길이 없다고 자각하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완전히 타인본위여서 근본이 없는 부평초와 같이 그 근처를 되는 대로 표류하고 있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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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때부터 문예에 대한 나의 입각점을 확실히 하기위해서, 확실히 하기보다는 새롭게 건설하기 위해서 문예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서적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자기본위(自己本位)라는 네 글자를 간신히 생각해 내어 이 '자기본위'를 입증하기 위해서 과학적인 연구라든가 철학적인 사색에 탐닉하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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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저술한 <문학론>은 그 기념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실패의 유해에 지나지 않습니다. 게다가 기형아의 시체일 뿐이었습니다. 혹은 멋지게 건설되지 않은 채 지진으로 무너져버린 미완성 시가의 폐허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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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은 실패로 끝났을지 모르지만 그때 확실히 포착했던 자기 자신이 주인이고, 다른 사람은 손님이라는 신념은 오늘날의 나에게조차 특별한 자신감과 안정감을 부여해 주고 있습니다. 나는 그러한 신념의 연속으로 오늘까지 계속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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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진행된 논지를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 번째로 자기 개성의 발전을 완수하려고 생각한다면, 동시에 타인의 개성도 존중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두 번째로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권력을 사용하려고 한다면 그것에 부수되는 의무라는 것을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세 번째로 자기의 금력을 나타내려고 한다면 그것에 동반되는 책임을 중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 요컨대 이러한 3개의 조항으로 귀결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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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이해하기 쉽게 말하면 당파심이 없고 옳고 그름이 분명한 그런 주의입니다. 붕당을 만들고, 단체를 조직해서 권력과 금력을 위해서 맹목적으로 활동하지 않는다는 의미로서의 개인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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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의견의 차이는 아무리 친밀한 사이라 할지라도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내 집에 출입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조언은 할지언정, 그 사람들 각자의 의견을 발표하는 데에 억압을 가하는 듯한 일은 다른 중대한 이유가 없는 한, 결코 한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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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적 도덕이라는 것은 개인적 도덕에 비해서 훨씬 단계가 낮은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외교적 수사는 대단히 찬란합니다만, 도덕심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기를 치고, 속임수를 쓰고 계략을 사용하는 등 엉망진창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국가를 표준으로 삼는 이상, 국가를 하나의 단체로 보는 이상, 상당히 저급한 도덕을 감수하며 태평스럽게 견디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개인주의의 기초를 생각해 보면 이것이 대단히 우월한 위상으로 부각되어 오는 것을 어찌할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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