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지고 있는 책은 웅진 출판에서 1995년 5월 25일 발행한 '20세기 일문학의 발견 01'초판본으로 '꿈 열흘 밤'과 '마음'이 같이 묶인 <꿈 열흘 밤, 마음>이다. 박유하의 번역이다.  이후에 '마음'만이 따로 출판되었다.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의 품에 들어오려 하는 사람을 팔을 벌려 껴안아 주지 못하는 사람 - 그가 바로 선생님이었다. -64 

 
     

 

   
 

 사랑이 갖다 주는 만족감을 맛보고 있는 사람은 좀더 따뜻한 말을 하는 법입니다. 하지만 ...... 하지만 말입니다, 사랑은 죄악입니다. 당신은 그걸 알고 있습니까? -79

 
   

 

   
 

 나는 내 자신조차도 믿지 못하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믿을 수 없게 되어 버린 겁니다. 자신을 저주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는 거죠. -83

 
   

 

   
 

 전에 그 사람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기억이, 이번에는 그 사람의 머리에 발을 올려놓으라고 시키는 겁니다. 나는 미래에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현재의 존경을 물리치고 싶은 겁니다. 나는 지금보다 더 외로울 미래의 나를 견디기 보다, 외로운 현재의 나를 참아내고 싶은 겁니다. 자유와 자립과 자아에 넘치는 현대를 살아가는 현대인은 모두가 그 대가로서 이 고독을 맛보지 않으면 안 될 겁니다. -84

 
   

 

   
 

그러다가, 결국은 내 과거를 병풍처럼 당신 앞에 펼쳐 보야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당신을 존경하는 마음이 일었습니다. 당신은 남이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에 신경쓰는 일 없이, 내 가슴으로부터 어떤 살아있는 것을 끄집어 내려고 하는 결심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내 심장을 깨고 거기에 흐르는 따뜻한 피를 빨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지금  스스로 내 자신의 심장을 깨서, 그 피를 당신의 얼굴에 끼얹으려 합니다. 내 심장의 고동이 멎었을 때, 당신의 가슴에 새로운 생명이 깃들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185 

 

 
   

 

   
  냉철한 머리고 새로운 사실을 말하기보다, 뜨거운 혀로 평범한 견해를 말하는 편이 진짜 살아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피의 힘으로 몸이 움직이기 때문입니다. 말은, 공기에 진동을 전할 뿐 아니라, 보다 강한 것에 강하게 부딪쳐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0  
   

 

   
  육체건 정신이건 우리들의 능력은 전부 외부의 자극에 의해 발달하기도 하고 망가지기도 하는 것이겠지만, 어느 쪽이건 간에 자극을 점점 강하게 해 줄 필요가 있는 건 물론이어서, 잘 판단하지 않으면, 아주 험악한 방향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데도 자신을 물론 옆사람도 모르고 있게 될 우려가 생깁니다. -236  
   

 

   
  나는 또다시 인간의 죄를 깊이 느꼈습니다. 그 느낌이 나를 매달 K의 무덤으로 가게 만듭니다. 그 느낌이 나로 하여금 장모님의 간호를 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 느낌이 아내에게 잘 하라고 명령합니다. 나는 그 느낌 때문에, 길 가는 모르는 이에게 채찍질 당하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이런 단계를 지나는 사이에, 남에게 채찍으로 맞기보다 스스로가 스스로를 때려야 한다는 기분이 듭니다. 나는 할 수 없이, 죽었다는 생각으로 살아가자고 결심했습니다. -307  
   

 

   
  그런데 한창 더운 여름에 메이지 천황이 서거 했습니다. 그때 나는 메이지의 정신이 천황에서 시작되어 천황에서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강하게 메이지의 영향을 받은 우리들이 그 뒤에 살아남아 있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시대에 뒤처지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아내한테 그렇게 노골적으로 이야기를 했습니다. 아내는 웃으며 상대하지 않았지만 무엇을 생각했는지, 갑자기 나한테 그럼 순사라도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놀렸습니다. -309  
   

 

   
  그리고 나서 약 한달이 지났습니다. 장례식날 밤, 나는 언제나처럼 서재에 앉아, 예포소리를 들었습니다. 나한테는 그 소리가 메이지 시대가 영원히 사라졌다는 것을 알리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은 노기 대장이 영원히 떠난 것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했습니다. 나는 호외를 손에 들고 나도 모르게 순사다, 순사다 하고 말했습니다. -310  
   
   
 

 세이난 전쟁이라면 메이지 10년이니까, 메이지 45년까지는 35년의 거리가 있습니다. 노기 대장은 이 35년동안 죽자 죽자 생각하며 죽을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나는 그런 사람한테 있어서, 이제까지 살아온 35년이 고통스러울지, 아니면 칼로 배를 찌른 한 순간이 고통스러울지, 어느 쪽이 고통스러울지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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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세운닥나무 2010-04-19 1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말씀하신 판본으로 책을 보았습니다.
박유하 교수는 남자인 줄 알았는데, 여자분이시더군요.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편집위원 세미나 사진에서 여자분인 걸 알게 되었답니다.

반딧불이 2010-04-19 13:00   좋아요 0 | URL
헉..여자분이시군요. 그것참. 왜 저나 나무님은 그분을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을 했었을까요? 재미있는 현상이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4-19 16: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박유하 교수는 독도와 위안부 할머니 관련한 묘한 발언으로 회자되기도 했죠.
오에 겐자부로의 최신작도 번역했던데, 번역은 참 유려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뚱딴지 같은 발언으로 회자되기 보단 번역으로 유명해졌으면 좋겠네요.

반딧불이 2010-04-19 20:57   좋아요 0 | URL
나무님께서는 참 많은 걸 알고 계시네요. 번역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책을 읽으면서 이거 번역한 거 맞아? 하는 심정으로 보게되는 경우였어요. 유려하다는 말씀에 공감해요.

그런데 나무님은 남자분 맞으시죠?

파고세운닥나무 2010-04-20 12:37   좋아요 0 | URL
네, 남자입니다.

반딧불이 2010-04-20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후에 허걱~ 하고 놀랄일은 없겠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