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침내 나는 나무 아래로 들어섰어. 잠시 그늘 아래서 거닐 생각이었는데, 그곳으로 들어가자마자마치 어떤 ‘지옥‘의 음울한 동심원* 안으로 들어선 것만 같은기분이 들더군. 가까이 있는 급류에서 멈추지 않고 한결같이곤두박질치며 들려오는 소음이 바람 한 점 없고 나뭇잎 하나움직이지 않는 수풀의 애절한 정적을 신비한 소리로 가득 채웠는데, 맹렬한 속도로 하늘에 쏘아 올려진 지구의 소리가 갑자기 귀에 들리게 된 것만 같았지.

*동심원: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 알리기에리(1265~1321)는 《신곡》에서 지옥이
동심원 구조로 되어 있으며, 그 중심에는 사탄이 있다고 썼다. - P40

검은 형체들은 나무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거나 누워 있었고, 나무 몸통에 몸을 기댄 채 앉아 있거나 땅에 달라붙어 있었는데, 어둑한 빛 속에서 반쯤은 모습을 드러내고 반쯤은 그늘에 지워진 채 고통과 포기와 절망을 나타내는 모든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어. 절벽에서 또 다른 폭발이 일어나더니 발아래 흙이 살짝 흔들리더군. 작업이 진행 중이었네. 작업 말일세! 그리고 그곳은 작업을 거드는 몇몇 사람이 현장에서 물러나 죽으러 오는 장소였던 거지. - P40

그들은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어. 그건 아주 분명한 사실이었네. 그들은 적이나 범죄자도 아니었고, 이제는 이 세상에 속한 존재도 아니었어. 푸르스름한 어둠 속에서 혼란스러워하며 누워 있는 질병과 굶주림의 검은 그림자일 뿐이었지. - P41

합법적인 기간제 계약이라는 명목하에 온갖 구석진 해안에서 끌려와 편치 않은 환경에 내던져진 채 낯선 음식을 먹다가 병들어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나면 기어 나와 쉴 수 있게 허락되었던 거야. 이 빈사 상태의 형체들은 공기처럼 자유로웠고, 거의 공기처럼 희박했어. 나무 아래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눈들이 보이기 시작하더군.  - P41

그러다가 아래를 힐끗 내려다보니 내 손 바로 옆에 얼굴이 하나 보였어. 뼈만 남은 형체가한쪽 어깨를 나무에 기댄 채 길게 드러누워 눈꺼풀을 천천히들어 올리고는 움푹 꺼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는데, 거대하고 공허하면서도 보이는 게 없는 듯한 흰자위가 안구 깊숙한 곳에서 깜박거리더니 서서히 꺼져갔다네.  - P41

그 남자는 젊어보였어. 거의 소년이었지. 하지만 자네들도 알다시피 그들의나이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가. 나는 그 선량한 스웨덴 선장의 배에서 얻어 주머니에 넣어둔 비스킷 하나를 그에게 건네주는 것 말고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어. 손가락이 천천히오므라들더니 그것을 쥐더군. 다른 움직임은 없었고 다른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어.  - P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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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엄마의 반란 - 갈라 드레스/ 뉴잉글랜드 수녀/ 엇나간 선행 얼리퍼플오키드 3
메리 E. 윌킨스 프리먼 지음, 이리나 옮김 / 책읽는고양이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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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릿하고 재밌다. 뭔가 가슴이 시원해지면서 통쾌하다. 다들 한 방 멕이는데 일가견이 있다! 우리 여성들의 삶을 마구 응원하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아, 사랑스런 여인들... 사라 펜, 엘리자베스 & 에밀리 배브콕, 루이자 엘리스, 해리엇 & 샬럿 섀턱을 창조한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을 찬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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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쌍돛대 유람선 넬리호는 돛을 전혀 펄럭이지 않은 채 닻 쪽으로 움직이다가 정지했다. 이미 밀물이 들어와 있었고 바람도 거의 불지 않았는데, 배는 하류 쪽으로 내려갈 예정이었으므로 정박한 후 조수가 바뀌길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 P7

바다로 통하는 템스강의 직선 수로는 끝없이 이어지는 물길의 시작점처럼 우리 앞에 펼쳐져 있었다. 멀리 보이는 앞바다에서 바다와 하늘은 이음매도 없이 이어져 있었고, 그 빛나는 공간 속에서 조수를 따라 흘러온 바지선들의 그을린 돛은 니스 칠을 한 스프리트*를 반짝이며 뾰족하게 솟은 붉은 캔버스 천의 무리를 이룬 채 정지해 있는 듯 보였다. 안개가 깔린 낮은 강기슭은 바다로 평평히 뻗어가다가 사라지고 있었다.

*스프리트: 돛을 펴는데 쓰는 작은 園材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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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호실>

이반 드미트리치는 웃으면서 앉았다.
"그러니까 인간의 평안과 만족이 그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다고 칩시다."
그는 계속했다.
"그래서 고통을 경멸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아야 한다고 칩시다. 하지만 선생님은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선생님은 현자입니까? 아니면 철학자입니까?"
"아니요, 나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런 생각을 전파해야 한다고 봐요. 이것이 합리적인 것이니까요."
"나는 선생님이 인생을 이해하고 고통을 경멸하는 것과 같은 일에 대해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살면서 고통을 당한 적이 있어요? 혹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십니까? 어렸을 때 혹시 맞은 적 있나요?"
"아니요, 부모님은 체벌을 혐오하셨습니다." - P248

"우리 아버지는 잔인하게 저를 때렸습니다. 아버지는 고집도 세고공무원 생활을 지겹도록 오래 한 끔찍한 사람인데 코는 길고 목은노란 사람이었죠. 아버지 얘기는 이만 하고 이제 선생님 얘기를 하죠. 평생 그 누구도 선생님을 건드리지 않았고, 그 누구도 겁을 주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아서 선생님은 황소처럼 건강하단 말입니다. 아버지의 보호 하에 자라서 부모님 돈으로 공부도 하고 졸업과 동시에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선생님은 20년 이상 무상으로 제공되는 아파트에 살았고, 난방도 전기도 하인도 있는 데다 일도 하고 싶은만큼 해도 되고, 심지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단 말입니다. .. - P248

... 게다가 선생님은 날 때부터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서 그 무엇도 선생님을 걱정시키지 못하고 그 어떤 변화도 없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일은 준의사를 포함한 다른 개새끼들한테 맡기고 따뜻하고 조용한 곳에 앉아서 돈을 모으고 책을 읽으면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고상한 상념에 빠지거나 (이반 드미트리치는 의사의 빨간 코를 보며 말했다) 술이나마셨죠. 
한 마디로 말해 선생님은 삶을 본 적이 없고 인생을 전혀 모르며, 이론적으로만 현실이라는 것을 접해본 사람이죠. 선생님이 고통을 경멸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놀라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걱정과 삶, 고통, 죽음에 대해 내외적으로 경멸하는 것이나 삶을 이해하는 것과 진정한 행복과 같은 모든 것이 러시아의 게으름뱅이에게 가장 적합한 철학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선생님이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상황을 본다 칩시다. 뭣하러 참견한단 말입니까? 어차피 둘 다 언젠가는 죽을 거고 때리는 사람이 실은 아내를 때리면서 자기 스스로를 경멸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요? 술독에 빠져 사는것은 어리석고 보기 좋지 않지만, 술을 마셔도 죽고 안 마셔도 죽는단 말입니다. 어떤 여편네가 오는데 이가 아프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통증은 통증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것이고, 누구나살면서 병에 걸리기 마련인 데다 우리 모두는 결국 뒈지는데요. 그러니 여편네한테 내가 사색에 잠겨서 보드카 마시는 걸 방해 놓을생각 말고 꺼지라고 말하게 됩니다.  - P249

... 젊은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을 얻으려고 한다 칩시다. 다른 사람이라면 대
답하기 전에 생각을 좀 할 텐데 선생님은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거나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식의 준비된 대답을 해준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이냔 말입니다. 물론 해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곳 철창에 갇혀서 고통당하는데 이 상황은 아주 좋은 데다 합리적입니다. 그 이유는 이 병실과 따뜻하고 쾌적한 선생님의 서재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기때문입니다. 달리 하는 일도 없고, 양심에 거리낌도 없으며, 자신을 현자라고 느낄 수도 있는 이 얼마나 편리한 철학이란 말입니까... 아니요, 선생님, 이것은 철학도 사유도, 폭넓은 사고도 아니며 게으름이고 고행 수도이며, 불분명한 의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말입니다... 맞아요. 바로 그거죠!" - P250

이반 드미트리치는 또다시 화를 내며 말했다.
"고통을 경멸한다지만 손가락이 문틈에 끼이면 분명 목청껏 소리를 지를 걸요!"
"그건 겪어봐야 알겠죠."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온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만약 선생님의 몸에 마비가 오거나 어떤 바보나 뻔뻔한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직위를 이용해서 선생님을 공개적으로 모욕했는데도 그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요? 그러면 선생님으로부터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조언을 들은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실까요?"
"독특한 발상이군요." - P250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흘러내리는 듯한 달빛이 쇠창살안으로 들어왔고 바닥에는 그물 모양을 한 그림자가 보였다. 무서웠다.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또 맞을까봐 두려움에 숨죽이며 누워있었다. 마치 낫을 든 누군가가 낫으로 그의 가슴과 창자를 찌르고 돌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통증으로 인해 베개를 깨물고 이를 악물었다. 혼란속에서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무섭고 괴로운 생각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지금 달빛을 받아서 검은 그림자 같은 형상을 한이 사람들은 이 같은 통증을 수년째 매일 겪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는 20년이 넘도록 이러한 사실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까? 그는 고통을 몰랐고, 통증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으니 그의 잘못은 없다. 하지만 니키타처럼 거칠고 완고한 그의 양심은 가책을 느끼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한을 느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있는 힘껏 소리치며 니키타를 죽이고 호보토프와 감독관과 준의사를,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죽이기 위해 속히 달려가고 싶었지만 가슴속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두 발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운과 셔츠의 가슴 부분을 잡아당겨서 찢고는 의식을 잃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 P286

다음날 아침 그는 두통과 이명을 느꼈고 온몸이 아
팠다. 어제 자신이 쓰러졌던 일을 기억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부끄럽지는 않았다. 어제는 겁이 나서 달빛조차 두렵긴 했지만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했다. 
이를테면 철학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가진 불만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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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크 스타킹 한 켤레 - 19, 20세기 영미 여성 작가 단편선
세라 오언 주잇 외 지음, 정소영 옮김 / 문학동네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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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와 장소를 초월한 다양한 계층의 여성들의 삶을 그려낸 11 명의 여성 작가와 13 편의 뛰어난 단편을 읽는 즐거움에 한껏 빠져들 수 있는 단편집이다. 진정으로 좀 부족하다 싶은 작품이 하나도 없을 만큼 뛰어나다. 케이트 쇼팽의 '아카디아 무도회에서', '폭풍우', 그리고 표제작인 '실크 스타킹 한 켤레', 캐서린 맨스필드의 '작고한 대령의 딸들'은 『셀레스틴 부인의 이혼』(케이트 쇼팽, 푸른사상, 2019년)과 『가든파티』(캐서린 맨스필드, 강, 2010년) 등의 작품집을 통하여 이미 읽었지만 다른 역자의 문장으로 다시 읽어봐도 역시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들이다..



급속한 도시화, 자본화로의 발전을 이루는 과정에서 드러나는 혼란과 과도기의 사회상, 인식의 변화를 포착하여 작품으로 구현한 여성 작가들의 단편들을 다양하게 경험해 볼 수 있었다. 이디스 워튼의 「다른 두 사람」과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는  "결혼의 신성함이나 결혼 관계에 대한 기존의 관념이 흐려지면서 그와 함께 결혼을 대하는 여성의 태도에 나타난 변화를 보여"주었던 단편이다. 이디스 워튼의 단편이 주로 뉴욕 중상류층의 결혼을 모티브로 하고 있는데「다른 두 사람」도 동일하다. 두 번의 이혼 경력이 있는 여성과 결혼한 남성의 결혼 생활에서 두 명의 전 남편과 엮이는 상황이 예기치 못하게 자주 발생하게 되고 이야기는 남성의 시각에서 서술이 되는데 상황은 묘하게도 여성이 주도를 하게 되는 그 상황들이 뭔지 모를 긴장감을 형성한다. 메리 E. 윌킨스 프리먼의 「뉴잉글랜드 수녀」의 여성 주인공도 '미혼' 대신 '비혼'이라는 새로운 선택을 함으로써 남성에게 종속되지 않는 자신의 삶을 독자적으로 이어나가려 한다. 



특히 기억에 남을 작품은 여성의 히스테리를 다룬 유명한 단편이면서 그 주제 뿐만 아니라 서술 방식에서도 획기적인 방식으로 평가받았던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였다. 뛰어난 자질을 갖추었지만 아직은 성숙하지 못한 사회적 분위기로 인하여 억압받고 좌절한데서 비롯한 여성들의 히스테리는 이 시대를 다룬 남성 작가들에게 있어 여성들을 무시하고 폄하하는 주요 소재로 등장했다. 여성의 히스테리를 억압된 감정의 표출로 보지 않고 여성의 태생적 연약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치부했다. 이 단편의 여성 화자도 작가가 되려는 열망을 가지고 있지만 끊임없이 억압하고 비하하면서 보호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남편의 정신적 폭력으로 인하여 좌절한다. 그러한 감정의 억압을 겪으면서 서서히 발현되는 히스테리 증상을 개성적인 문장으로 창조해 내는 과정은 실로 뛰어난 것이어서 작가가 이룬 성과를 찬양하게 된다. 여성의 사회 진출을 막는  사회를 비판하고 그러한 사회를 그려낸 여성 작가의 뛰어난 심리 묘사는 가히 압도적이었다. 이것이 바로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남성, 특히 고압적이고 폭력적이며 잔인하기까지 한 남편의 억압에 피해자로서 가해자에게 행한 복수를 다룬 세 작품도 기억에 남을 듯하다. 수전 글래드펠의 「여성 배심원단」, 엘런 글래스고의 「제3의 그림자 인물」, 조라 닐 허스턴의 「땀」 세 작품인데 조라 닐 허스턴의 「땀」은 같은 인종. 동일한 계층 내에서도 오랜 시간 침묵을 강요당하는 '흑인' 여성이라는 성별 억압의 구조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그 복수의 성공이 더욱 당연하게 생각되기도 한다. 반면에 엘런 글래스고의 「제3의 그림자 인물」에는 숨진 딸 아이의 막대한 유산을 차지하기 위하여 아내를 정신병자로 몰아 감금하고 죽게 만든 남편을 단죄하기 위하여 고딕 양식을 차용한다. 매력적이면서 의사라는 신분을 가진 남편의 힘에 맞서기에는 너무 약한 아내의 처지를 상쇄할 수 있는 힘을 부여하고자 '죽은 딸'이 영혼의 모습으로 등장할 뿐 아니라 결국 복수를 이루게 되는 장치로서 고딕 양식은 적절한 수단이 된다 할 수 있다. 

수전 글래드펠의 「여성 배심원단」은 살인 사건의 진상을 알아가는 과정을 통하여 억압 당한 채 살아낸 한 여성의 결혼 생활의 모습을 추리소설의 기법으로 풀어낸다. 남편을 살해한 살인 사건의 피의자로서 수감된 여성을 위하여 옷가지를 챙기러 온 이웃의 두 여성이 피의자인 친구의 부엌에서 그녀의 삶을 재구성해 나가는 과정은 한편으론 눈물겹다. 가장으로서 경제적으로 무능하면서 아내에게 가난을 강요하였고 폭력을 일삼았던 남편은 이제 살해됨으로써 아무 죄가 없는 피해자가 되었다. 여성은 극도로 가난한 삶을, 폭력적인 남편을 감내하면서 온갖 나쁜 소문에 시달렸는데 어떠한 이해도 받지 못하고 수감되었고 사건을 조사하는 남성 보안관과 검사는 그녀의 부업을 보며 살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자라고 끊임없이 비판을 한다. 그럴 권리는 어디에도 없는데 말이다. 두 여성은 가난과 폭력이라는 굴레를 감내한 삶에 같은 여성으로서의 인식을 공유함으로써 그녀의 삶에 무죄라는 판결을 내리게 되는 것이다. 그녀가 살인을 했든 안 했든 두 여성은 깊은 이해에 도달하게 되는데 같은 여성이라면 아마도 충분히 공감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편으론 너무 속이 시원해서 위의 세 작품을 읽으며 오랜만에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경험하기도 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전환기에 발표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은 현실 속에서 여성들이 처한 여러가지 시대적 고민들과 문제들을 적극적으로 작품으로 표현하려 하였다. 작품 속에 등장하는 여성들이 처한 상황이나 처지가 다름에도 불구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남기려 애썼던 작가들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그야말로 주옥같은 단편들을 많은 독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들이 제시한 삶의 단면을 통하여 현재 우리의 삶을 바라볼 수 있는 시각을 갖게 되고 이해할 수 있다면, 그리고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 하고 책을 덮었을 때 기꺼이 '공감'하게 된다면 소설이 추구하는 '보편성'이라는 명제는 충분히 획득하고도 남음이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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