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호실>

이반 드미트리치는 웃으면서 앉았다.
"그러니까 인간의 평안과 만족이 그의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안에 있다고 칩시다."
그는 계속했다.
"그래서 고통을 경멸하고 어떤 일이 일어나도 놀라지 않아야 한다고 칩시다. 하지만 선생님은 무슨 근거로 이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선생님은 현자입니까? 아니면 철학자입니까?"
"아니요, 나는 철학자는 아니지만 모든 사람에게 이런 생각을 전파해야 한다고 봐요. 이것이 합리적인 것이니까요."
"나는 선생님이 인생을 이해하고 고통을 경멸하는 것과 같은 일에 대해 스스로 잘 안다고 생각하는 근거를 알고 싶습니다. 살면서 고통을 당한 적이 있어요? 혹은 고통이 무엇인지 알기는 하십니까? 어렸을 때 혹시 맞은 적 있나요?"
"아니요, 부모님은 체벌을 혐오하셨습니다." - P248

"우리 아버지는 잔인하게 저를 때렸습니다. 아버지는 고집도 세고공무원 생활을 지겹도록 오래 한 끔찍한 사람인데 코는 길고 목은노란 사람이었죠. 아버지 얘기는 이만 하고 이제 선생님 얘기를 하죠. 평생 그 누구도 선생님을 건드리지 않았고, 그 누구도 겁을 주지도 않고 때리지도 않아서 선생님은 황소처럼 건강하단 말입니다. 아버지의 보호 하에 자라서 부모님 돈으로 공부도 하고 졸업과 동시에 좋은 직장을 얻었습니다. 선생님은 20년 이상 무상으로 제공되는 아파트에 살았고, 난방도 전기도 하인도 있는 데다 일도 하고 싶은만큼 해도 되고, 심지어 하기
싫으면 안 해도 된단 말입니다. .. - P248

... 게다가 선생님은 날 때부터 게으르고 의지가
 약해서 그 무엇도 선생님을 걱정시키지 못하고 그 어떤 변화도 없도록 노력해 왔습니다. 일은 준의사를 포함한 다른 개새끼들한테 맡기고 따뜻하고 조용한 곳에 앉아서 돈을 모으고 책을 읽으면서 아무 짝에도 쓸데없는 고상한 상념에 빠지거나 (이반 드미트리치는 의사의 빨간 코를 보며 말했다) 술이나마셨죠. 
한 마디로 말해 선생님은 삶을 본 적이 없고 인생을 전혀 모르며, 이론적으로만 현실이라는 것을 접해본 사람이죠. 선생님이 고통을 경멸하고 그 어떤 경우에도 놀라지 않는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걱정과 삶, 고통, 죽음에 대해 내외적으로 경멸하는 것이나 삶을 이해하는 것과 진정한 행복과 같은 모든 것이 러시아의 게으름뱅이에게 가장 적합한 철학이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선생님이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상황을 본다 칩시다. 뭣하러 참견한단 말입니까? 어차피 둘 다 언젠가는 죽을 거고 때리는 사람이 실은 아내를 때리면서 자기 스스로를 경멸한다는 걸 알고 있는데요? 술독에 빠져 사는것은 어리석고 보기 좋지 않지만, 술을 마셔도 죽고 안 마셔도 죽는단 말입니다. 어떤 여편네가 오는데 이가 아프답니다... 그래서 어쩌라고요? 통증은 통증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느끼는 것이고, 누구나살면서 병에 걸리기 마련인 데다 우리 모두는 결국 뒈지는데요. 그러니 여편네한테 내가 사색에 잠겨서 보드카 마시는 걸 방해 놓을생각 말고 꺼지라고 말하게 됩니다.  - P249

... 젊은이가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조언을 얻으려고 한다 칩시다. 다른 사람이라면 대
답하기 전에 생각을 좀 할 텐데 선생님은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라거나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식의 준비된 대답을 해준단 말입니다. 
그런데 이 환상적인 ‘진정한 행복‘이라는 것이 무엇이냔 말입니다. 물론 해답은 없습니다. 우리는 이곳 철창에 갇혀서 고통당하는데 이 상황은 아주 좋은 데다 합리적입니다. 그 이유는 이 병실과 따뜻하고 쾌적한 선생님의 서재 사이에 그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기때문입니다. 달리 하는 일도 없고, 양심에 거리낌도 없으며, 자신을 현자라고 느낄 수도 있는 이 얼마나 편리한 철학이란 말입니까... 아니요, 선생님, 이것은 철학도 사유도, 폭넓은 사고도 아니며 게으름이고 고행 수도이며, 불분명한 의식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란 말입니다... 맞아요. 바로 그거죠!" - P250

이반 드미트리치는 또다시 화를 내며 말했다.
"고통을 경멸한다지만 손가락이 문틈에 끼이면 분명 목청껏 소리를 지를 걸요!"
"그건 겪어봐야 알겠죠."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온유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만약 선생님의 몸에 마비가 오거나 어떤 바보나 뻔뻔한 인간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직위를 이용해서 선생님을 공개적으로 모욕했는데도 그가 처벌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어떨까요? 그러면 선생님으로부터 인생의 의미를 이해하고 진정한 행복을 찾으라는 조언을 들은 다른 사람들의 심정을 이해하실까요?"
"독특한 발상이군요." - P250

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흘러내리는 듯한 달빛이 쇠창살안으로 들어왔고 바닥에는 그물 모양을 한 그림자가 보였다. 무서웠다. 안드레이 예피미치는 또 맞을까봐 두려움에 숨죽이며 누워있었다. 마치 낫을 든 누군가가 낫으로 그의 가슴과 창자를 찌르고 돌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통증으로 인해 베개를 깨물고 이를 악물었다. 혼란속에서 그의 머릿속에 갑자기 무섭고 괴로운 생각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지금 달빛을 받아서 검은 그림자 같은 형상을 한이 사람들은 이 같은 통증을 수년째 매일 겪어야 했다는 것이었다.
어째서 그는 20년이 넘도록 이러한 사실을 몰랐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을까? 그는 고통을 몰랐고, 통증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으니 그의 잘못은 없다. 하지만 니키타처럼 거칠고 완고한 그의 양심은 가책을 느끼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오한을 느꼈다. 그는 벌떡 일어나 있는 힘껏 소리치며 니키타를 죽이고 호보토프와 감독관과 준의사를,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을 죽이기 위해 속히 달려가고 싶었지만 가슴속에서는 그 어떤 소리도 나오지 않았고 두 발도 말을 듣지 않았다. 
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가운과 셔츠의 가슴 부분을 잡아당겨서 찢고는 의식을 잃고 침대 위로 쓰러졌다. - P286

다음날 아침 그는 두통과 이명을 느꼈고 온몸이 아
팠다. 어제 자신이 쓰러졌던 일을 기억하기는 했지만 그로 인해 부끄럽지는 않았다. 어제는 겁이 나서 달빛조차 두렵긴 했지만 난생 처음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했다. 
이를테면 철학하는 별볼일 없는 사람들이 가진 불만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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