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든파티》중 <만에서At the Bay>

˝아, 남자들이란!˝
스탠리가 출근 전에 하는 꼬락서니라니.. 온 집안 여자들을 다 들먹이면서 귀찮게 한다. 돈 벌어 오는게 무슨 그리 유세를 떨 일이라고...
아내 린다, 처제 베럴, 장모님과 세 딸들, 거기에 물론 하녀인 앨리스까지 모두 자신의 종처럼 부리며 군림하려 든다. 하지만 이 집 여자들은 은근히 그이의 말을 무시하거나 못들은 척 모르는 척 하면서 스탠리 놀려먹기를 즐긴다.^^
가부장제의 속박에서 벗어나고 싶은 건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여자들만 남은 집안의 평화로운 하루가 손에 잡힐 듯 들어온다.
 


베럴은 식탁에 앉아 차를 따라주었다.
"고마워!"
스탠리가 한 모금 마시더니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어! 설탕을 안 넣었잖아."
"아, 미안해요."
그러고도 베럴은 설탕을 타주는 게 아니라 설탕통만 밀어주었다. 이건 무슨 뜻일까? 스탠리는 스스로 설탕을 타며 푸른 눈을 둥그렇게 떴다. 눈동자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스탠리는 처제를 흘깃 쳐다보고 등받이에 기댔다.
"별일 없지? 응?"
스탠리는 칼라를 만지작거리며 무심한 척 물었다.
베럴이 고개를 숙였다. 손가락으로는 접시를 돌리고 있었다.
"없어요." 
베럴이 가볍게 말했다. 그러고는 고개를 들더니 스탠리에게웃음을 지어 보였다.
"무슨 일이 있겠어요?"
"아, 아. 그렇겠지. 그냥 처제가 좀....." - P290

"장모님, 빵 한 쪽 잘라주세요. 합승마치가 올 때까지 십이분 남았어요. 제 신발은 하녀한테 닦으라고 줬나요?"
"그래. 준비 다 돼 있어."
페어필드 부인은 아주 차분했다. - P292

스탠리는 의자를 밀고 일어섰다.
 "장모님, 신발 좀 갖다주실 수 있어요? 그리고 처제, 식사 다 했으면 대문으로 가서 마차 좀 잡아줘. 이자벨, 엄마한테 가서 모자 어디에 뒀는지 물어봐. 잠깐만, 너희들 내 지팡이 가지고 놀았니?" - P292

하녀 앨리스까지도 불려 나왔다.
"혹시 지팡이를 부엌에서 부지깽이로 쓰진 않았겠지?"
스탠리는 린다가 누워 있는 침실로 달려갔다.
"정말 이상하군. 내 물건은 하나도 제 자리에 붙어 있지를 않아.
이제 내 지팡이까지 치워버렸어!"
"지팡이, 여보? 어떤 지팡이?"
린다가 모른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날 걱정해주는 사람은 없는 건가? - P293

... ... 무심한 여자들 같으니! 남자들이 자기들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하는 건 당연하고, 지팡이 하나 제대로 챙겨주지 않으려 들다니. 켈리가 말들 위로 채찍을 휘둘렀다. - P294

"다녀오세요, 형부."
베럴이 다정하고 즐거운 목소리로 인사했다. 인사하기는 쉽지! 베럴은 손을 눈가에 대고 햇살을 가리며 한가히 서 있었다. 더욱 화가 나는 것은 스탠리도 하는 수 없이 인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스탠리는 베럴이 돌아서서 가볍게 깡총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스탠리가 가버려서 속이 시원한 모양이다. - P295

실제로 그랬다. 거실로 달려 들어오며 베럴이 외쳤다.
"갔어!"
린다도 방에서 소리쳤다.
"베럴! 스탠리 갔어?"
페어필드 부인이 무명옷을 입은 아기를 안고 나왔다.
"갔어?"
"갔어요!"
아, 이 편안함. 그 사람이 집에 없을 때는 얼마나 다른지. 서로를 부르는 목소리조차 달라졌다. 비밀이라도 나눈 듯 다정하고 정겨운 목소리였다. 베럴이 식탁으로 갔다. - P294

"어머니, 차 한잔 드세요. 아직 따뜻해요."
베럴은 이렇게라도 이제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축하하고 싶었다. 방해할 남자가 없으니. 이 완벽한 하루가 그들의 것이었다.
"아니, 됐다."
이렇게 말하긴 했지만 아기를 위로 들어올리며 
"우르르르까꿍!" 하는 모습이 페어필드 부인도 같은 심정이라는 걸 말해주었다. 아이들은 닭장에서 나온 병아리들처럼 방목장으로 달려나갔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던 하녀 앨리스도 같은 기분이 되어 아껴 써야 할 물탱크의 물을 아낌없이 써댔다.
"아, 남자들이란!"
앨리스는 이렇게 말하며 찻주전자를 물통에 넣고 더 이상 공기방울이 올라오지 않는데도 그대로 잡고 있었다. 찻주전자가 남자라서 익사라도 시키려는 듯이. - P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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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깜짝 놀랄만큼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세계의 부유한 곳, 그것도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 P162

 세계를 바라보는 이들의 방식은 원숙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서, ‘현대적인 것‘의 주된 획득물이자 진지한 논쟁과 토론을 제공하는 정당 기반의 전통적 정치 형태를 분쇄하는 데 필요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들의 방식이다. 전혀 진지하지 않을 뿐더러 괴팍하기 그지없는 이들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 세계에는 현실적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타인의 고통을 그저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거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미덥지 않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부유한 나라들이 이곳저곳에 있다는 식으로 이 세계를 구별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리라.  - P163

마찬가지로 전쟁, 엄청난 불의, 테러리즘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 바가 아무것도 없는 뉴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텔레비전 상에서 보는 것들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수십 억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선심을 베푸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 P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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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리가 보여주는 연민은 우리의 무능력함뿐만 아니라 우리의 무고함도 증명해 주는 셈이다. 따라서 (우리의 선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연민은 어느 정도 뻔뻔한(그렇지 않다면 부적절한) 반응일지도 모른다. 특권을 누리는 우리와 고통을 받는 그들이 똑같은 지도상에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의 특권이 (우리가 상상하고 싶어하지 않는 식으로, 가령 우리의 부가 타인의 궁핍을 수반하는 식으로) 그들의 고통과 연결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숙고해 보는 것, 그래서 전쟁과 악랄한 정치에 둘러싸인 채 타인에게 연민만을 베풀기를 그만둔다는 것,
바로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과제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는 고통스런 이미지들은 최초의 자극만을 제공할 뿐이니. - P154

7.
현실이 일종의 스펙터클이 되어가고 있다는 주장은 깜짝 놀랄만큼 지역성을 띠고 있다. 이런 주장은 이 세계의 부유한 곳, 그것도 뉴스가 오락으로 뒤바뀌어 버린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극소수 교육받은 사람들이 세계를 바라보는 습관을 보편화하고 있는
셈이다. - P162

 세계를 바라보는 이들의 방식은 원숙하기 이를 데 없는 것으로서, ‘현대적인 것‘의 주된 획득물이자 진지한 논쟁과 토론을 제공하는 정당 기반의 전통적 정치 형태를 분쇄하는 데 필요한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모든 사람들을 일종의 구경꾼으로 보는 것이 바로 이들의 방식이다. 전혀 진지하지 않을 뿐더러 괴팍하기 그지없는 이들의 방식으로 보자면, 이 세계에는 현실적인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다.  - P163

그렇지만 타인의 고통을 그저 쳐다만 보는 구경꾼으로 존재하거나, 구경꾼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미덥지 않은 특권을 지닌 사람들이 살고 있는 부유한 나라들이 이곳저곳에 있다는 식으로 이 세계를 구별하는 것도 우스꽝스러운 일이리라. 마찬가지로 전쟁, 엄청난 불의, 테러리즘 등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아는바가 아무것도 없는 뉴스 소비자들의 사고방식에 근거해 타인의 고통에 반응할 수 있는 능력을 일반화하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자신들이 텔레비전 상에서 보는 것들에 전혀 단련되어 있지 못한 텔레비전 시청자들도 수십 억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은 현실에 선심을 베푸는 호사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 P163

현대성의 시민들, 스펙터클이 되어버린 폭력의 소비자들, 전쟁터에 직접 가보는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도 그 참상을 세세히 말하는 데 정통한 사람들은 진실해질 수 있는 가능성을 비웃도록 단련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좀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지 않도록
온갖 일을 다하는 사람들도 존재할 것이다. 위험에서 멀리 떨어져 의자에 앉은 채 우월한 위치에 있다고 주장하기란 얼마나 쉬운 일인가. 실제로 전쟁 지역에 가서 증인이 되어 왔던 사람들의 노력을 ‘전쟁 관광‘이라고 비웃는 행위는 주기적으로 일어나는 일인데, 전쟁 사진을 일종의 가식으로서 보는 논의들에서 심심찮게 볼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 P164

이런 정서를 지닌 사람들은 전쟁의 모습을 담은 이미지에 관심을 갖는 것은 천박하거나 저급한 흥미라고, 즉 상업적인 병적행위라고 주장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포위되어 있을 당시의 사라예보에서는 폭격의 와중이나 저격수의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서도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을 호통치는 사라예보 주민들의 고함소리를 쉽게 들을 수 있었다.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목에 두른 장비때문에 쉽게 눈에 띄었다. "시체들 사진을 찍으려고 포탄이 터지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요?" - P164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자주는 아니었지만, 때때로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은 그렇게 하기도 했다. 폭격의 와중이나 저격수의 총탄이 빗발치는 와중에 거리에 나와 있는 사진작가는 [사진에 담으려고 자신이 좇고 있는 민간인들만큼이나 살해될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포토저널리즘 작가들이 훌륭한 기사거리를 찾겠다는 일념만으로 당시의 포위 현장을 보도하려는 용기를 냈고, 그러기를 갈망했던 것도 아니었다. - P165

사라예보의 상황을 보도하고 있던 사진작가들 중 풍부한 경험을 갖고 있던 대부분의 사진작가들은 전투가 지속되던 와중에 가만히 있지만은 않았다.
 "게다가 사라예보 주민들은 자신들이 겪고 있는 참화가 사진으로 기록되기를 원했다." 희생자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재현되는 데에 관심을 보인다.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고통이 뭔가 "유일무이한 것"으로 보여지기를 원한다.  - P165

1994년 초, 포위 상태에 놓여 있던 사라예보에서 일 년 이상 거주해 왔던 영국의 포토저널리즘 작가 폴 로우는 절반 이상이 파괴되어 버린 어느미술관을 빌려 자신이 찍어 왔던 사진들을 전시했다. 이때 그는 몇 년 전 자신이 소말리아에서 찍었던 사진들도 함께 전시했다.
그 당시까지도 파괴되어 가고 있던 자신들의 도시를 찍은 새로운 사진을 간절히 보고싶어 했던 사라예보 주민들은 소말리아의 사진들이 포함된 데에 적잖이 언짢아했다. 로우는 소말리아의 사진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전문 사진작가이며, 그저 자신이 자랑스러워하는 두 개의 작품을 전시했을 따름이었던 것이다.  - P165

사라예보 주민들로서도 언짢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연했다. 자신들이 겪은 고통을 타인들의 고통과 나란히 보여준다는 것은, 사라예보가 겪은 수난을 그저 [잔악 행위의] 또 다른사례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양자의 고통을 비교하는 것(어느 지옥이 더욱 나쁜가?)이었다. 사라예보 주민들은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는 아프리카에서 발생한 잔악 행위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반발했다. 의심할 여지없이, 사라예보 주민들의 분노에는
인종주의의 기미가 엿보였다. 그들은 보스니아인들이 유럽인이라는 점을 이방인 친구들에게 쉴새없이 지적해댔다. 그렇지만 이 전시회에 체첸이나 코소보, 또는 그밖에 다른 나라들의 민간인들이 겪은 잔악 행위의 사진이 포함됐더라도 사라예보 주민들은 반발했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통을 다른 어떤 사람의 고통에견주는 것을 참지 못하는 법이다." - P166

9.
... ...이 사진 속의 죽은 병사들은 놀랄 만큼 살아 있는 것들에 무관심하다. 자신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람들, 자신들을 보고 있는 사람들, 즉 우리에게 말이다. 그렇지만 왜 그들이 우리의 시선을 끌려고 노력해야 하는가? 그들이 우리에게 무슨 말인가를 꼭 들려줘야만 하는 것일까?
[그들이 말해준다 해도] ‘우리‘ 즉 그들이 겪어 왔던 일들을 전혀 겪어본 적이 없는 ‘우리‘ 모두는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알아듣지 못한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들이 무슨 일을 겪었는지 상상조차 할수 없다. 

"우리는 전쟁이 얼마나 끔찍하며, 얼마나 무시무시한 것인지, 그리고 어떻게 그런 상황이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해할 수도, 상상할 수도 없다." 

전쟁이 벌어지던 바로 그때에 포화 속에 갇혔으나 운 좋게도 주변 사람들을 쓰러뜨린 죽음에서 벗어난 모든 군인들, 모든 언론인들, 모든 부역 노동자들, 독자적인 모든 관찰자들이 절절히 공감하는 바가 바로 이점이다. "그리고 그들이 옳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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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진이 자아내는 친숙함은 현재, 그리고 얼마 안 된 과거를 둘러싼 우리의 감각을 형성해 놓는다. 사진은 [감각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일종의 참조점을 규정해 놓으며, 그 판단의 근거를나타내는 일종의 토템 기능을 한다. 말로 된 표어보다 한 장의 사진이 사람들의 정서를 훨씬 더 구체화하는 것이다. 게다가 사진은좀더 먼 과거를 둘러싼 우리의 감각을 구성하는 데, 그리고 교정하는 데 도움을 준다. 여태껏 알고 있지 못했던 사진이 유포되어우리에게 사후적으로 충격을 주는 경우가 그렇다. 오늘날 모든 이들이 알아보는 사진은 특정 사회가 한번쯤 생각해 보자고 선택해놓은 것, 그도 아니면 그러리라고 표명된 것을 구성하는 일부이다. - P130

우리는 이런 사고방식을 ‘기억하기‘라고 말하는데, 결국에 가서 이것은 일종의 허구가 된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집단적 기억이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집단적 죄의식 같은 그럴싸한 관념들의 일부일 뿐이다. 그렇지만 집단적 교훈은 존재한다. - P131

모든 기억은 개인적이며 재현될 수도 없다. 기억이란 것은 그기억을 갖고 있는 개개의 사람이 죽으면 함께 죽는다. 우리가 집단적 기억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기하기가 아니라 일종의 약정이다. 즉, 우리는 사진을 통해서 이것은 중요한 일이며 이것이야말로어떤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려주는 이야기이다. 라고 우리의 정신 속에 꼭꼭 챙겨두는 것이다.  - P131

이데올로기는 뭔가를 구체화할 수 있는 이미지, 즉 중요하기 그지없는 공통 관념을 담고 있으며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예측 가능하도록 움직이게 하는 재현적 이미지의 저장소를 만들어 둔다. 곧장 포스터로 만들 수 있는 사진들, 가령 원자폭탄 실험 뒤에 생긴 버섯구름, 워싱턴 DC의 링컨 기념관에서 연설하고 있는 마틴 루터 킹 2세, 달에 착륙한 우주 비행사 등의 사진들은 중요한 사건들의 핵심을 전달해 주는 시각적 등가물이다. 이런 사진들은 중요한 역사적 순간들을 기념우표들보다 훨씬 더 흥미롭게 상기시켜 준다. 실제로 위에서 언급한 순간들, (원자폭탄 사진을 빼고는) 일종의 개선식 같은 이 순간들은 기념 우표에 담겼다. 나치의 강제수용소 사진이 실린 전지우표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다행스러운 일이다.
- P131

시간이 흐를수록, 기억한다는 것은 어떤 이야기를 떠올린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진을 불러낼 수 있다는 것이 되어버렸다. W.G. 제발트 같이 19세기와 초기 모더니즘의 문학적 엄숙함에 깊이 물든 작가조차도 잃어버린 생명, 잃어버린 자연, 잃어버린 도시풍경을 다룬 자신의 비탄하기 이를 데 없는 이야기들에 사진을 끼워 넣으려 했다. 제발트는 단순한 애가 시인이 아니었다. 그는 전투적인 애가 시인이었다. 상기하라, 그는 자신이 상기하는 것을 독자들도 상기하기를 바라마지 않았다. - P135

가슴이 미어질 듯한 사진들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던져줄 수있는 능력을 좀체 잃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런 사진들은 뭔가를 이해하는 데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사는 우리가 뭔가를 이해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러나 사진은 뭔가 다른 일을 수행한다. 사진은 우리를 쫓아다니며 괴롭히는 것이다.  - P137

보스니아 전쟁을 찍은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 중의 하나, 즉 『뉴욕타임스」의 해외 특파원 존 키프너가 다음과 같은 언급을 붙여놓은 사진을생각해 보라. "이 적나라한 이미지는 발칸 반도에서 벌어진 전쟁을 영원히 잊지 못하도록 만들 것들 가운데 하나이다. 세르비아의어느 민병대 병사가 죽어 가고 있는 이슬람 여인의 머리를 무심하게 발로 차고 있다. 이 이미지는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 이미지가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것을 말해주는 것은 결코 아니다. - P137

이 이미지를 우리에게 제공한 론 하비브라는 사진작가가 밝힌 바에 따르면, 우리는 세르비아가 보스니아를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던 첫 번째 달인 1992년 4월 비옐지나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주도]에서 이 사진이 찍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 사진에서 제복을 입은 세르비아 민병대의 젊은 병사, 머리 위쪽으로 선글라스를 낀 채 약간 들린 왼쪽 손의 검지와 중지 사이에는 담배를 끼고 있고, 오른손에는 장총을 들고 있는 병사를 볼 수 있다. 그는 두 사람의 몸 사이에 낀 채 얼굴을 보도에 묻고 누워 있는 여인을 오른발로 차려 하고 있다. 이 사진은 우리에게 그 여인이 이슬람교도라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는다. 비록 그 여인을 이슬람교도라고 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 P137

 도대체 왜 그 여인과 나머지 두사람은 세르비아 병사들의 시선을 받으며 그곳에서 죽은 듯이(그런데 왜 ‘죽어 가는‘일까?) 누워 있는 것일까? 사실상, 이 사진은우리에게 알려주는 바가 거의 없다. 전쟁은 지옥이며, 말끔하게차려 입은 젊은이가 총을 든 채 무력하게 누워 있는 (그도 아니면이미 죽어버린) 살쪄 보이는 늙은 여인의 머리를 발로 찰 수도 있다는 점만을 빼고 말이다. - P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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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지만 1990년대 유럽의 남동부에서 저질러진 전쟁범죄를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뭐니뭐니해도 발칸제국이 유럽의 일부로 여겨진 적이 결코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는 것이리라).  - P112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16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머나먼 아시아 국가에 살던 외래인들은 런던, 파리, 그밖에 유럽 수도들에서 개최된 인종 전시회에서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대중에게 공개되곤 했다.  - P112

 『폭풍』을 보면 트린퀼로는 칼리반을 본뒤 칼리반을 영국에서 전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휴일 날의 바보들 치고 은전 한 잎 순순히 내지 않을 친구는 없을 거야. [.....] 영국 놈들은 절름발이 거지한테는 단 한 푼도주지 않지만, 죽은 인디언을 구경하는 데에는 한 푼의 열 배도 아깝게 여기지 않으니 말이야."8)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의 희생자를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망각한 채, 자신들보다 어두운 피부를 지닌 이국인들을 잔혹하게 대하는 광경을 사진에 찍어 전시하는 것도 똑같은
일이다. - P112

 비록 적이 아닐지라도, 타자는 (백인들처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에 실린 유명한 사진에 찍힌 사람, 부상을 입은채 목숨을 구걸해야만 할 운명에 처한 그 탈레반 병사에게도 아내와 자식, 부모와 형제 자매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아들이자 형제인 그 병사가 살육되는 장면이 찍힌 저 세 장의 컬러 사진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그 사진들을 보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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