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지만 1990년대 유럽의 남동부에서 저질러진 전쟁범죄를 이해할 수 있는 최고의 방법 중 하나는 뭐니뭐니해도 발칸제국이 유럽의 일부로 여겨진 적이 결코 없었다는 사실을 상기해보는 것이리라).  - P112

대중에게 공개된 사진들 가운데 심하게 손상된육체가 담긴 사진들은 흔히 아시아나 아프리카에서 찍힌 사진들이다. 저널리즘의 이런 관행은 이국적인(다시 말해서 식민지의) 인종을 구경거리로 만들던 1백여 년 묵은 관행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16세기부터 20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아프리카인들, 그리고 머나먼 아시아 국가에 살던 외래인들은 런던, 파리, 그밖에 유럽 수도들에서 개최된 인종 전시회에서 마치 동물원의 동물처럼 대중에게 공개되곤 했다.  - P112

 『폭풍』을 보면 트린퀼로는 칼리반을 본뒤 칼리반을 영국에서 전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휴일 날의 바보들 치고 은전 한 잎 순순히 내지 않을 친구는 없을 거야. [.....] 영국 놈들은 절름발이 거지한테는 단 한 푼도주지 않지만, 죽은 인디언을 구경하는 데에는 한 푼의 열 배도 아깝게 여기지 않으니 말이야."8) 자신들이 저지른 폭력의 희생자를전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망각한 채, 자신들보다 어두운 피부를 지닌 이국인들을 잔혹하게 대하는 광경을 사진에 찍어 전시하는 것도 똑같은
일이다. - P112

 비록 적이 아닐지라도, 타자는 (백인들처럼) 보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지는 사람 취급을 당한다. 그러나 『뉴욕타임스』에 실린 유명한 사진에 찍힌 사람, 부상을 입은채 목숨을 구걸해야만 할 운명에 처한 그 탈레반 병사에게도 아내와 자식, 부모와 형제 자매가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그들 중 누군가가 자신의 남편이자 아버지이며, 아들이자 형제인 그 병사가 살육되는 장면이 찍힌 저 세 장의 컬러 사진을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아직 그 사진들을 보지 못했더라도 말이다. - P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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