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책 읽어야쥐~~~
아이 씐나 씐나
따끈따끈 신간 어제 도착~~
조르주 페렉 읽고 싶어 몇 번 시도했건만
도서관 가서 책 보곤 그 두께에 놀라 포기하다 에세이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녹색광선의 새책입니닷!
첫장에 페렉 아저씨 웃는 얼굴, 완전 프랑스인 같아요. 사실은 유대인입니다. 부모님이 폴란드에서 이주해 오신 유대인이셨죠. 아버지는 제2차 대전에 자원입대해 전사하셨고, 어머니는 어린 페렉을 먼저 프랑스 남부로 피신시킨 후 파리 탈출을 시도하다 나치에 붙잡혀 1943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사망합니다. 이와 비슷한 경우를 얼마 전 읽었던 제발트의 <이민자들>에서도 봤죠. 아들을 영국으로 먼저 보내놓고 부모님 두분은 결국 수용소에서 사망했다던 이야기였어요.

책머리에
한 남자가 빌랭 거리 24번지 앞에 서 있다. 남자의 이름은 조르주 페렉. 페렉은 남다른 실험 정신과 감수성, 독창적인 언어 감각으로 20 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이자 20 세기 유럽의 가장 중요한 작가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녹색광선 편집부)


항상 사건들, 기이한 것들, 비일상적인 것들만이 우리에게 말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신문 1면에 실리는 5단 표제 기사나 굵은 글씨의 헤드라인처럼 말이다. 기차는 탈선하는 순간 비로소 존재하기 시작하고, 더 많은 승객이 사망할수록 더 많은 기차가 존재한다. 비행기 또한 납치되는 순간 비로소 존재감을드러내고, 자동차는 오로지 플라타너스 나무에 충돌하는 운명만을 지닌다. 일 년에 52번의 주말이 있고, 52번의 결산이있다. 사망자가 많을수록 뉴스에는 좋은 일이고, 숫자가 계속증가한다면 더욱 그럴 것이다! 마치 삶이 스펙터클한 것들을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처럼, 의미심장하거나 중요한것은 항상 비정상적인 것처럼, 하나의 사건 뒤에는 어떤 스캔들, 균열, 위험이 있어야만 한다. 대(大) 자연재해나 역사적 격변, 사회적 갈등, 정치적 추문 등..…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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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냥 2023-12-23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표지는 프랑스영화 <빨간 풍선>의 한 장면인가 봅니다…

은하수 2023-12-23 16:16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비가 그치고 반짝이는 거리에 우산 쓴 노인일까요?
빨간풍선도 들고 있는거 같아요. 아이가 들고 있는 건 아닌 거 같은데...
회색 양장본에 표지 사진도 제목의 분홍색도 아주 감각적으로 보여요^^
정성들인 녹색광선의 책이네요.

잠자냥 2023-12-23 18:01   좋아요 2 | URL
오래전에 본 영화라 기억이 희미하기는한데, 프랑스에서는 워낙 유명한 영화라 아마 맞을 것 같아요. 꼬마가 종일 빨간 풍선하고 같이 다니는 사랑스러운 영화랍니다!
 

*코로나는 거버넌스와 자유를 재정의했다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 _ 궈징


팬데믹의 원인은 ‘돌봄 노동‘ (살림)을 비하하고 ‘자연 파괴‘ (죽임)를 추구해 온 인간의 경제 활동이다. 그리하여 많은 이들이팬데믹의 대안으로 돌봄 윤리에 관심을 보이지만, 이런 흐름은지금 여기의 ‘여성 해방‘과는 거리가 멀다. 팬데믹의 결과로 또다시 여성들이 강도 높은 보살핌 노동을 도맡고 있기 때문이다.
돌봄 노동의 내용은 그 자체로도 재평가해야 하지만, 페미니스트들은 돌봄이 공적 영역의 가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 그 자체에 대한 찬양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 P203

현재 인류가 욕망하는 주된 가치인 물질적 풍요와 경쟁과 승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고,
많은 가치 중에 ‘돌봄‘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단 돌봄 노동의 의미와 구체적 내용이 무엇인지 이해가 필요하고 돌봄노동에 대한 인식론적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 P203

팬데믹 시대에 국가의 역할, 개인의 자유, 경제 활동, 봉쇄와방역의 조건, 극도로 성별화되고 계급화된 ‘집‘의 의미, 정치 지도자나 자본가들이 ‘결정할 수밖에 없는‘ 현재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진단, 인류의 미래에 대한 구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 P209

근본적인 사유의 전환을 요청하려면 각자가 자기의 공간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광범위하게 기록하는 토대가 마련되어야 한다. 구체성을 획득하지 못한 추상적인 논의로는 이 시대를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양한 《우리는 밤마다 수다를 떨었고, 나는 매일 일기를 썼다》들이 나와야 한다. - P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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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얼마 되지 않는 금화들은 젊은 날의 행복했던 시간들, 수금화가 아닌, 추억이 깃든 기념품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너그럽게 그것을 내놓았다. 남편은 그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한 적이없다. 그는 그녀에게 빚졌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결국 망각의물 속에 침몰된 이 보물을 바친 대가로 모든 것을 다 보상해 주었을 눈물 맺힌 눈길 하나 받지 못했다. 그런 눈길은 대범한 마음을가진 이들에게는 힘겨운 날에 빛을 발하는 영원한 보석과 같다. - P94

그녀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모르소프 백작은 그녀에게 살림에 필요한 비용을 주는 것을 번번이 잊곤 했다. 그녀가 여성의 수줍음을 극복하고 돈을 청구하면 그는 꿈에서 깨어나듯 했다. 한번도 그녀가 마음 졸이는 일이 없도록 배려해 준 적이 없었다. 이망가진 인간의 병적인 성질이 드러났을 때 얼마나 공포에 사로잡혔겠는가! 그가 처음으로 미친 듯이 분노를 터뜨렸을 때 그녀는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 P96

여자의 삶을 지배하는 위압적인 존재인 남편이 무가치하다는 것을 인정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잔인한 생각들에 시달렸던가. 두 차례의 출산이 얼마나 끔찍한 재앙을 동반했던가. 거의 사산아나 다름없는 아기들이 얼마나 소름끼치는 충격을 안겨 주었던가. ‘이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겠어!
매일매일 새로이 낳아 주겠어!‘ 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용기가 필요했던가. 게다가 여성에게 구조의 손길을 내밀어야 하는 사람이 장애물일 뿐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의 좌절이란!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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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초에 목소리들이 있었다
-선녀는 참지 않았다 _ 구오




흥미로운 현상은 이 책 《선녀는 참지 않았다》에 들어 있는 열편의 이야기처럼, 한국의 전래 동화에는 주로 ‘불쌍한‘ 남성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서구의 동화는 ‘백마탄 왕자‘처럼 용기와 책임감, 여성을 보호할 수 있는 
자원이 있는 규범적 남성성을 지닌 인물(물론 실제로는 아니다)이 주인공인 경우가 많다.  - P216

우리의 전래동화에서는 여성이 남성을 구하고, 보호하고, 위로해주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가부장 없는 가부장제 사회‘다. 즉 남성이 성역할을 못함으로써 여성이 이중 노동을 하고, 그러면서도 남성의 자존심이 상하지 않도록 감정노동까지 해야 하는
‘식민지 남성성 사회‘이다. 남성이 남성의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더욱 고통스럽다.  - P216

이른바 ‘페미니즘의 대중화‘ 이후 수많은 여성주의 책들 속에서 《선녀는 참지 않았다》가 의미를 지니는 이유다. - P217

남성 사회를 구성하는 기본 원리를 이해하고 새로운 상상(콘텐츠)을 떠올리기 위해서는 여성주의 시각 혹은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다시 쓰기 (re-writing), 다시 생각하기(re-thinking)가 중요하다. 
여성주의는 남성의 주장이 틀렸다는 사유가 아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세계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이는 반드시 성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장애인, 동성애자, 유색인종의 관점에서 재해석되는 경우도 많다. 백설공주가 왕자와 결혼했다가 가정 폭력으로 이혼하여 ‘일곱 난쟁이‘ 중 한 명과 다시
사랑에 빠진다거나 계모가 위험에 빠진 공주를 돕는 《흑설공주》 같은 작품이 그것이다.
- P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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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벌판> 베트남 작가 응웬옥뜨 소설
작은 배를 타고 오리 몇마리를 방목하며 유목생활을 하는 삶 어디에도 나와 디엔이 바라는 정상적인 삶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엄마가 뜨내기 옷감장수와 떠나버린 후 아버지는 평범한 생활을 포기해 버렸다. 남매는 그래서 더 힘겨운 시간을 이겨내야만 한다. ‘끝없는 가난‘이란 말로 표현되는 삶이라니.. 아내가 떠나버린건 아이들 잘못이 아닌데 모든걸 놓아버린듯한 아버지의 모습은 사실 납득하기도 힘들고 용서하기도 힘들다. ˝제발 정신 차려.˝ 하고 크게 소리치면서 양 어깨를 마구 흔들어주고 싶다.
읽는 내내 가슴이 답답할 정도로 희망이 보이질 않는다. 이런 삶이 언제까지 계속될런지... 하...





유목생활은 우리에게 서글픈 마음을 갖지 않도록, 천막을 접을 때 무덤덤한 마음으로 다른 벌판을 향해 떠날수 있도록, 다른 샛강의 물줄기를 아무렇지 않게 따라갈 수 있도록, 더 이상 그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고 더이상 그 무엇에도 애착을 갖지 않을 것을 강요했다. 더욱이 우리는 벌판에서 오리를 치는 다른 무리들보다도정처가 없었다. 아버지의 연애가 나날이 짧아졌기 때문이다. - P99

아버지는 종종 평범한 모습을 보였다. 
사람들(‘사람‘속에 우리 남매는 포함되지 않는다) 속에서 아버지는 마냥 즐거운 양 웃음 띤 얼굴로 말하곤 했다. 여러 번 나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못했고, 그럴 때마다 옛-날-의-아-버지를 다시 만난 듯한 생각이 들었다. 마을 사람들이여러 차례 우리 천막을 찾아왔다. 사람들이 들를 때마다 아버지는 나를 불러 "얘야, 마른 생선 몇 마리 구워서 가져 오너라. 아버지가 이 아저씨들하고 한잔 해야겠구나..."라고 말했다. - P100

디엔 녀석도 즐거운 마음으로 빈술병을 들고 가게에 들러 술을 받아왔다. 아버지가 단지 이름을 불러주는 것만으로도 디엔은 신이 났다. "디엔아……… 디엔…………." 하지만 그런 즐거움은 잠시뿐이었다. 

사람들의 그림자가 사라지고 나면 아버지의 모습은연극을 방금 마친 배우와 같았다. 망연자실 넋도 빠져나가고, 고독에 겨운 창백한 얼굴을 하고, 범접할 수 없을만큼 냉랭한 자세를 취했다. 
우리 남매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다보아야 했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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