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정, 문학편집자의 마음~
너구리 김경희, 저자의 마음

총 10명의 출판인, 작가 인터뷰가 담겨있다.


부끄럽지 않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 애정의 다함에 대해 나는 나를 자꾸만 의심해야 한다. 한순간의 안도가 한 권의 책을 망칠 수 있다. 어려운 이름, 책, 그렇다고 당신에게 내 싸다구를 후려쳐달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내 귀싸대기는 내가 치는 걸로.

2017년 8월, 한여름 오밤중에 트위터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내볼까지 알싸해지는 이 문장들을 읽자마자 달처럼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일구월심 책을 사랑하는 사람은 많아도 자다가도 벌떡, 있다가도 불쑥, 잠잠한 일상의 수면에 "나는야 폴짝 뛰어올라 책 얘기를 꺼내고 애정을 다짐하는 이는 흔치 않다. 김민정. - P25

경력 20년의 문학편집자. 출판사 대표. 그간 500여 권의책을 기획하고 그중 몇몇은 베스트셀러로도 만들고,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문학동네시인선을 론칭한 장본인. 은퇴한 노교수의글을 모아 ‘밤이 선생이다』를 펴내 황현산이라는 시대의 어른을발굴하고, 박준이라는 무명 시인의 이름을 지어다 시 독자 10만부 시대를 열어젖힌 편집자. - P25

"말로 안 나오면 글로도 안 나와요. 말해보는 게 중요하죠. 많은분이 글을 쓰면 좋겠어요. 글 쓰는 일이 녹록지 않은데, 저도 계속 쓰려고요. 쓰는 삶이 주는 맛을 알아버렸어요. 나를 위한 글쓰기에서 출발했지만 타인을 위한 행위가 될 수 있는, 내가 살아가는 시대를 담을 수 있는 작가가 되고 싶어요." - P88

인터뷰 이후,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 그사이 《찌질한 인간 김경희》는 진화했다. 내용을 대폭 보완해 빌리버튼 출판사에서 단행본으로 발간됐다. 이로써 너구리는 같은 제목으로각각 두 권의 책을 가진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가 됐다. 그에게 상업출판과 독립출판의 거리는 ‘남들처럼 사는 것과 나답게 사는 것‘ 사이를 재어보고 질주하고 넘나드는 고민의 흔적이자 진동이다. 출판사에서 쓴 『찌질한 인간 김경희의 책소개를 읽고 너구리는, 그냥 서러워 눈물
찔끔 흘렸다. - P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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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산이 지는 것은 여물고자 함이니 복사꽃

봄이 무르익지 않은 휴일, 이와사 아키코가 평소 인연이 없던시내 백화점까지 나간 것은 아만다 페리의 그림책 원화전을 보기위해서였다.
"아쉽지만 나는 시간이 없으니 엄마나 다녀와 굿즈샵에 그림엽서가 있으면 기념으로 사오고."
딸 미쓰하도 이 그림책 작가의 팬이니까 같이 가자고 권해보았지만 아니나 다를까 깨끗이 거절하기에 혼자 가게 되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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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사람들> 헨리 제임스
짙은 초록색 양장본, 그리고 금박을 입힌 듯한 영문 제목과 한글제목, 작가의 이름까지... 촛불을 밝힌 케이크는 무슨 의미인지 아직 모르지만. 읽기보다는 소장용으로 더 어울릴 듯한 책등도 멋지긴 하다.

˝미국 독립의 심장부 뉴잉글랜드에서 진보와 개혁의 성지로 꼽히는 보스턴을 배경으로, 남북전쟁의 상흔과 영광을 나눠 가진 전후 세대의 욕망, 갈등, 분투를 숨가쁘게 담아낸˝ 작품이라는데, ‘보스턴 사람들‘이 단지 불특정 다수의 보스턴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에 그치지 않고 ‘보스턴 결혼‘을 실천하는 신여성을 함의한다는 점과 ‘레즈비어니즘‘의 뉘앙스를 복잡미묘하게 증폭시키는 퀴어한 글쓰기로 인하여 ‘보스턴 사람들‘에게 외면당했을지 모른다고 해서 더 호기심이 인다.

1장
"올리브는 10분쯤 있으면 내려올 거예요, 선생님께 그렇게 말해달라더군요. 10분쯤이라니, 정말 딱 올리브다워요. 5분도 아니고 15분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확히 10분인 것도 아니라 9분도 11분도 될 수 있죠. 선생님을 보게 돼서 기쁘다는 인사를 전하라는 말도 안 했어요. 기쁠지 아닐지 모를 일이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게 되는 상황에 절대로 처하고 싶지 않아서죠. 아주 정직한 사람,
그게 올리브 챈설러예요. 정직의 화신이죠. 보스턴에서는 그 누구도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아요. 나로서는 이 사람들이 전부 어떻게 생겨먹은 사람들인지 모르겠어요. 뭐, 어쨌든 전 선생님을 뵈서 무척 기쁘답니다." - P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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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우리가 아는 최선을 다해 ~~ 8장 푸른색 근무복 아래의 비밀스러운 자아들

형의 죽음으로 인한 고통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는 저자의 심경의 변화가 느껴지는 시점이다.


8개월 후, 그날의 클로이스터였던 형의 병실에서 우리는 약혼을발표했다. 몰래 맥주를 가지고 들어가 일회용 플라스틱 컵으로 건배를 했고 형의 얼굴은 놀라움으로 빛났다.
그로부터 불과 4개월 후, 타라와 나는 형이 누워 있는 침대 곁을 번갈아 지키며 잠든 형을 깨우지 않기 위해 소리를 죽인 채텔레비전을 봤다. - P163

그런 밤 중 하나였다. 늦은 밤, 크리스타 형수와 미아, 타라 그리고 내가 형을 돌보고 있었다. 형이 하는 말은 더 이상 앞뒤가 맞지 않던 시기였다. - P163

그런데 그런 형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치킨 맥너깃을 먹겠다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맨해튼의 밤거리로 뛰어나가 소스와 치킨 너깃 한 아름 사 들고 돌아오던 그때보다 더 행복했던 적이 없었다. 침대를 둘러싼 채 우리는 우리가아는 최선을 다해 사랑과 슬픔과 웃음이 가득한 소풍을 즐겼다. - P164

돌이켜보면 그 장면은 피터르 브뤼헐의 <곡물 수확>을 떠올리게 한다. 멀리까지 펼쳐진 광활한 풍경을 배경으로 농부 몇몇이 오후의 식사를 즐기는 모습 말이다. 배경 중간쯤 교회가 있고 그 뒤로 항구 그리고 황금빛 들판이 아스라한 지평선까지 굽이쳐 펼쳐진다. 화면 앞쪽에는 큰 낫으로 곡물을 거두는 남자들과그것을 한데 묶느라 허리를 굽힌 여자가 보인다. 
맨 앞쪽 구석에는 일을 하다가 배나무 아래에 앉아 식사를 하는 아홉 명의 농부들이 다소 희극적이면서도 애정을 담아 묘사되어 있다. - P164

브뤼헐 이 명작을 바라보며 나는 가끔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흔한 광경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람들은 주로 농사를 지었고 그들 중 대부분이 소작농이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평생 노동을 하고 궁핍한 삶을 살아가면서 가끔 휴식을 취하고 다른 이들과 어울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도 일상적이고 익숙한 광경을 묘사하기 위해 피터르 브뤼헐은 일부러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광활하게 펼쳐진 세상의 맨 앞자리를 이 성스러운 오합지졸들에게 내주었다.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 - P164

여기서 일하면서 나는 메트라는 웅장한 대성당과 나의 구멍을 하나로 융합시켜 일상의 리듬과는 거리가 먼 곳에 머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일상의 리듬은 다시 찾아왔고 그것은 꽤나 유혹적이었다. 그리고 나는 스스로가 영원히숨을 죽이고 외롭게 살기를 원치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들과의 소통에서 만들어지는 운율을 깨닫는 것은 내가 자라서 어떤 어른이 될 것인지를 깨닫는 것처럼 느껴진다.  - P191

내가 삶에서 마주할 대부분의 커다란 도전들은 
일상 속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도전들과 다르지 않다. 인내하기 위해 노력하고, 친절하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특이한 점들을 즐기고 나의 특이한 점을 잘 활용하기 위해 노력하고, 관대하기 위해 노력하고,상황이 좋지 않더라도 적어도 인간적이기 
위해 노력하는 것. - P192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재킷 주머니에서 작은 공책을 하나 꺼내 들고 머리에 떠오르는 포부들을 몇 개의 문장으로 적는다. 과거에는 대부분 수동적인 태도로 메트와 메트의 소장품들을 일종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 관찰했다면 이제는 새로운 태도를 취할 수 있을 것 같다. - P193

... 예술을 흡수하는 데 오랜 시간을 보냈지만
이제는 그러는 대신 예술과 씨름하고, 나의 다양한 측면을 모두동원해서 그 예술이 던지는 질문에 
부딪쳐보면 어떨까? 미술관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덤벼볼 만한 가치가 있는 숙제 같다. 예술을 경험하기 위해 사고하는 두뇌를 잠시 멈춰뒀다면 다시 두뇌의 스위치를 켜고 자아를 찾아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그렇게 하면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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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장ㅡ알려지지 않은 진정한 반탁운동과 그 귀결~~
남은말 : 1946년 5월의 대분기

미군 진주를 전후해 임시정부 절대 지지를 구실로 인공 타도를 주장했던 송진우·장덕수·허정 등 한민당 핵심들은 이 시점에서 더 이상 임시정부 지지를 주장하지 않았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은 인공 타도를 위해 임시정부의 명성과 위광을 활용하려했을 뿐, 임시정부 자체를 봉대할 본심이 없었다. 장덕수는 임시정부를 그대로 두고 독촉중협을 장래 한국 정부로 만드는 것이 미군정의 생각이라고 했고, 허정은 대외관계로 군정이 임시정부를 부인해서 독촉중협을 조직했는데 곧 행정권을 이양받을 것이며, 송진우는 일체를 이승만에게 맡겨서 일을 처리하자고 주장했다." 임시정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승만은 임시정부가 공인될 수 없기 때문에 임시정부의 김구와 몇 사람을 끌어
들여 독촉중협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 P403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미군 진주 이후 임시정부 절대 지지를 내세우고 인공 타도를 외치며 미군정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군정의 요직을 독차지한 한민당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명확해졌다. 정무위원회(=독촉중협)가 국무회의가 되고 한국 정부의 토대가 되는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자, 과감하게 임시정부와의 연관성을 끊어버리려 한 것이다. 손안에 들어온 권력을 임시정부와 나누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 P404

미국 문서와 이승만 문서가 공개되고 나서야 우리는 미로처럼 뒤엉켜 도저히 영문을 알 수 없었던 해방정국부터 신탁통치 파동에 이르는 과정의 미스터리를 풀 수 있게 되었다. 독촉중협은 이승만 중심의 우파 정치 블록이었다는 기존의 이해와 달리, 국무회의이자 민의의 대표기관으로 미국 외교문서에 등장하는 정무위원회의 실체였으며, 미군정으로부터한국 정부로 승인받아 행정권을 이양받을 주체였던 것이다.  - P404

미군정의 속내가 가장 명확하게 드러난 지점은 개별 정치인 및 정파에 대한 재정적 후원과 공작이었다. 1946년 5월 미군정은 표면적으로 좌우합작운동을 지지한다고 했지만, 정치자금에 대한 미군정의 정책은 전혀 다른 얘기를 하고 있었다. 먼저 하지 장군은 이승만에게 1,000만 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했다. 친일파가 중심이 된 대한경제보국회라는 일종의 정치적 보험조직이자 엽관운동 단체가 중개 역할을 했다. 대한경제보국회 회원 10명이 조선은행에서 200만 원씩 대출을 받아 총 2,000만 원의 정치자금을 마련했고, 그중 1,000만 원을 이승만에게 헌납했다. 조선은행은 개인에게 10만 원 이상 대출할 수 없었으므로 2,000만 원의 정치자금 대출은 하지 중장의 특별명령에 따른 것이었다고 할지라도 명백한실정법 위반이었다. 이들은 어떠한 담보도 제공하지 않았으며, 정치적 결정에 따른 것이었으므로 상환하지도 않았다. 특정 정치인을 위해 조선은행의 발권력을 남용한 엄청난 규모의 정치자금 조달과 제공이었고 정치자금 스캔들이었지만, 한국인들에게는 철저히 비밀로 감춰졌다. 그 비밀은 하지 중장과 미군정 수뇌부, 이승만, 대한경제보국회, 한민당지도부 정도만 알고 있었다. - P416

정치자금의 측면에서 상황을 헤아려보면, 미군정은 이승만에게+1,000만 원, 김규식에게 +300만원, 김구에게 0원, 여운형에게 0원,박헌영에게 
240만 원을 제공한 것이다. 
정치자금의 지원 규모가 해당정치인 및 정파에 대한 미군정의 선호도를 반영한다고 봐도 된다. 정치적기회의 측면에서도 불균등이 발생했던 것이다. 미군정은 1945~1946년에 두 차례의 대실패에도 불구하고 이승만에게 정치적 구심이 될 수 있는 전력을 다한 후원을, 김규식에게는 1946년 중반 이래 정치적 기회와 립서비스를, 김구에게는 1946년 이래 침묵 속 감시와 비협력을, 여운형에게는 회유와 공작을, 박헌영에겐 진주 직후 냉담함과 1946년 중반 이후전력을 다한 정치적 탄압을 제공했다. 
최소한 1946년 하반기까지 미군정은 이승만-한민당 블록을 중심으로 한 우익 진영에게 전폭적인 지원을제공하고 기대를 걸고 있었던 것이다. - P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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