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에서 미야자키 하야오의 <바람이 분다>를 봤다.
아시다시피 2차대전 당시 일본 함상 전투기 제로센의 설계자인 호리코시 지로에 대한 이야기다. 이 제로센 전투기는 2차대전 말기에 일본의 가미카제 전투기로 사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하야오의 마지막 작품은 하야오의 작품으로는 아주 드물게 성인물(뭐 생각하시는 그런 성인물은 아니고 소년소녀들의 이야기가 아닌 주인공들이 어른이라는 그런 이야기다.)이고 2차대전 당시의 일본이 배경인 시대물이다. 하지만 그 내용을 보면 역시 동화에 가깝다. 일본 제국주의 전쟁을 미화했다느니하는 비판이 많았다. 견문 일천한 소생이 보기에 미화가 맞기는 하지만 전쟁을 미화했다기 보다는 비행기를 선망한 한 개인과 그 개인이 꾼 꿈을 미화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
전쟁은 파멸이니 하는 이야기가 몇 번 나오고 지로의 약혼녀가 결핵으로 죽어가는 등 반전의 메시지가 나오기는 하지만 무슨 통렬한 반성이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지로가 비행에 대한 꿈을 쫓는 한 사람의 선량한 인간이었다고 하더라도 그 자신의 꿈이 일본 제국주의 군부의 지원으로 형태를 이루게 되고 꿈의 실현이 결국 전쟁의 도구로 쓰이게 된다면 그 꿈은 뭐 더 이상 아름다운 꿈은 아닌 것이다. 지로 자신이 쓸쓸하게 말하고 있듯이 자신이 설계해서 날려보낸 수백 대의 비행기는 한 대도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으니, 이 영화는 대체 무슨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시대물로 만들지 말고 그냥 판타지로 갔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야오 작품의 주요 테마인 ‘비행’이 이런 식으로 마무리 되는 것이 너무 아쉽다.
그렇거나 말거나 어쨋거나 하야오의 그림을 사랑하는 돼지로서는 이것이 그의 마지막 작품이니 이런저런 골 복잡한 생각들일랑은 모두 쓸어모아 어디 다락방 같은 곳에다가 꼭꼭 갈무리해놓고 그냥그냥 뭉게뭉게 흰구름 가득한 높고 푸른 하늘과 더 넓게 펼쳐진 초록의 들판, 그 따뜻하고 정감가는 그림들과 쓸쓸한 음악을 들으면서 두 시간이 너무 아깝게 숨죽이며 보았다. 앞으로 두번 다시는 이런 종류의 그림을 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문득 눈물 콧물이 주책없이 줄줄 흘러나리었다.ㅜㅜ
아시다시피 <바람이 분다>는 폴 발레리의 시 <해변의 묘지>에 나오는 유명한 구절을 인용한 것이다. 찾아보니 <해변의 묘지>는 의의로 상당히 긴 시인데, 천학 소생에게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난감한 내용이기는 하나 어쨌든 문제의 문구가 등장하는 마지막 연을 옮겨본다.
바람이 인다!……살려고 애써야 한다!
세찬 마파람은 내 책을 펼치고 또한 닫으며,
물결은 분말로 부서져 바위로부터 굳세게 뛰쳐나온다.
날아가거라, 온통 눈부신 책장들이여!
부숴라, 파도여! 뛰노는 물살로 부숴 버려라
돛배가 먹이를 쪼고 있던 이 조용한 지붕을!
김현 번역이라고 하는데 원문에 충실한 ‘바람이 인다. 살려고 애써야 한다’는
흔히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로 많이 인용되고 있다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