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길을 잘 가던 개가 갑자기 전봇대 앞에 멈춰서서 한쪽 다리를 번쩍 처들고 오줌을 찍!!하고 지리는 이유는 아시다시피 바로 영역 표시의 본능 때문이다. ‘냄새를 맡아봐봐, 킁킁킁... 찌린내가 나지? 여긴 내 나와바리야!’
책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우리 알라디너 여러분들 중에도 분명히 소장하고 있는 책에 ‘이건 내 책이야,’ 하는 어떤 표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두루두루 계시리라 짐작한다. 소생도 물론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뭐 개도 아니고 곰도 아니어서, 책에다가 오줌을 찍 째릴 수도 없고 손발톱에 날을 세워 책을 마구 할퀼 수도 없는 노릇이다. 영장류답게, 개나 곰과는 다르게, 좀 멋스럽게 표시를 해야한다. 그래서 책에 자기 인감도장을 찍기도 하고 휘날리는 싸인을 해대기도 하고 그런 것이다. 그런 분들 많이 계시죠? 예전에 알라딘에선가 예스24에선가 책도장을 판매하기도 했다.
장서표(藏書票)는 소장자의 취미에 따라 자신의 문장이나 미술적 도안에 성명을 배합하여 목판, 동판 등으로 인쇄한 후 책 표지 안쪽에 붙인 것을 말한다. 책이 귀중품으로 취급되던 15세기 후반 독일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장서표에는 국제공용 표식으로 ‘~의 장서에서’ 라는 의미의 라틴어 ‘Ex-Libris’를 명기하도록 되어있다. 애서가들의 필독서인 <서재 결혼 시키기>의 원제가 <Ex-Libris>다.
서양에서는 별도의 종이에 판화를 찍어 책에 붙이는 장서표를 사용한 반면 동양에서는 책의 빈 페이지에 직접 도장을 찍는 장서인(藏書印)을 사용하였다. 네이버 두산백과에는 “한국의 장서표로 처음 소개된 것은 1995년 2월 ‘현화랑’에서 개최된 ‘장서표전’(남궁산 판화전)이다” 라고 나와있다.
<윤광준의 생활명품>을 보니 판화가 남궁산이 새긴 장서표가 나온다. 평론가 하응백의 장서표는 책 속에 물고기가 산다. 허응백은 전국구 낚시꾼이라고 한다. 검색해 보니 <나는 낚시다>라는 에세이집도 내신 분이다. 바다의 사나이, 마린보이 한창훈의 장서표도 보인다. 등대가 붉을 밝히고 있다. 지혜의 상징이자 아테네 여신의 상징인 올빼미가 눈을 부라리고 있는 장서표의 주인인 안상운은 변호사다. 박범신, 정태춘-박은옥, 박완서의 장서표도 보인다. 남궁산이 새긴 문화예술인 56인의 장서표에 관한 이야기 <인연을, 새기다>라는 책도 있다. 소생도 장서표 하나 갖고 싶은데, 생각해보면 가지고 있는 책에다가 일일이 장서표를 찍어 붙이는 것도 참 수고로인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