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는 맥주를 좋아한다. 소생은 특별히 좋아하는 술은 없다. 한 때는 라벨 수집 목적으로 와인을 좀 마시고 이런저런 책도 보고 공부도 좀 하고는 했지만 돈도 많이 들고 무엇보다도 소생의 무딘 혀가 와인의 오묘한 맛을 구별해내지 못했다. 와인 마실 팔자가 아닌 것이다. 게다가 아내도 와인보다는 맥주를 좋아한다. 750ml 한 병을 사면 하루 이틀 사이에 처리를 못한다. 개봉하고 며칠 지나면 와인이 산패라고 하나 뭐라나 하여튼 맛이 간다. 작은 용량의 병도 있지만 종류가 많지 않다. 그래서 요즘은 맥주라벨을 수집한다. 병뚜껑 수집은 부수입이다.
말했듯이 아내는 맥주를 좋아한다. 거의 매일 저녁 작은 병 하나 정도는 드신 후에 주무신다. 전에는 카스를 즐겨 드셨는데 맥주에서 소독약 냄새가 난다나 어쩐다나 이른바 카스파동 이후에는 카스를 버리셨다. 호가든도 좋아하셨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호가든이 OB맥주와 제휴해서 우리나라 OB공장에서 생산하게 되면서 맛이 달라졌고 그래서 역시 버리셨다. 요즘은 버드를 즐겨 드신다. 가격도 적당하고 입 맛에 맛다고 하신다. 다행이다.
몇 년 전에 유럽에 갔을 때 독일, 오스트리아 이런 나라에는 맥주, 와인 등 술만 취급하는 대형마트가 있었다. 처음에는 그냥 이마트 같은 마트인줄 알고 먹을 것 좀 사려고 들어갔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햐~ 술술술 술밖에는 없는 것이었다. 실로 엄청난 양의 술술술에 깜짝 놀랬다. 아~ 주당들의 천국이 예 있으니! 아마도 애서가가 멋진 서재에 감탄하듯이 주당들이 여기 온다면 가슴이 둥실둥실 벅차올라 터질 지도 모른다는 한심한 생각도 해봤다.
맥주에 대한 책이 여러권 나와있다. 창해에서 나온 <맥주>, <맥주견문록>, <500 비어>는 읽었고 집에 책도 있었는데 지금은 집나가고 없다. 몇 년 전 대처분시 처분되었다. 지금 생각하니 또 아깝다. 창해판 맥주는 다시 사고 싶다. 처분했다가 다시 사고 다시 샀다가 또 처분하고 이게 뭐 시계불알도 아니고 왔다갔다 갔다왔다. “더이상 이래선 안돼! 중심을 잡아야 해!” 하다가도 “시계 불알이 중심을 잡게 되면 시계는 이미 죽은 것이야”하는 생각도 든다. 역시 오락가락. 횡설수설. 아이고 답 없다.
2012년 영국 일간지 기자가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맛이 없다"고 했다는데, 카스나 하이트나 마셔보면 싱겁고 맛이 없기는 없다. 지난해부터인가 주세법이 바뀌어 소규모 양조장에서도 맥주 제조가 가능하다고 한다. 이제는 각 지역에서 만든 다양한 수제맥주를 맛 볼 수 있게 되었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먹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참 부지런한 사람들이다. 이른바 수제맥주의 춘추전국시대가 안전에 도래했다. 춘추전국시대는 당대의 석학들이 자기의 주장을 펼치며 논쟁하던 백가쟁명의 시대고, 오패칠웅이 자웅을 겨루던 군웅할거의 시대다. 독특한 풍미를 뽐내는 로컬 맥주들이 우후죽순처럼 자라나고 그 향기로 백화가 만발하여 주당들의 구미를 인정사정없이 잡아 당기는 그런 멋진 세상을 기대해 본다. 소생의 맥주 라벨 수집도 보다 풍요로워질 것이다. 병뚜껑 수집도 덩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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