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소퍼즐
직소퍼즐을 샀다. 1000조각짜리 고흐의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를 샀다. 퍼즐은 여러 가지 다양한 모양으로 불규칙하게 잘라져 있는 조각들을 제자리에 끼워 맞춰서 하나의 전체 그림을 완성해 나가는 도구이다.
결혼을 하여 남편의 직장을 따라 이곳으로 온 지가 이십 오 년이 다 되었으니 이제 여기가 고향처럼 느껴진다. 아는 분의 소개로 지금은 재개발이 된 임대아파트를 얻어 새 생활을 시작했다. 열 평의 작은 공간에서 남매를 낳아 길렀다. 잠시만 살다가 고향인 대구로 다시 돌아갈 계획이어서 살림살이들도 다 풀지 않고 살았다. 그러나 인생이 어디 사람의 마음먹은 대로 되는 것이던가.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내일을 위해 오늘을 저당 잡히지 말아야겠다는 교훈은 그때 얻은 것이다.
그 무렵, 건강이 좋지 못했던 남편은 고통으로 밤잠을 설치다가 아침이면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출근을 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남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가슴은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리곤 했다. 새벽이면 아침밥을 준비하고 밤새 달인 한약을 먹이고, 점심 때 먹을 것은 보온병에 담고 도시락 싸서 출근을 시키곤 하였다. 그때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가 없었다. 두 아이의 양육비, 남편 약값, 아파트 임대료, 각종 세금, 또 약간의 저축으로 사는 것이 힘에 겨웠다.
고흐는 불꽃같은 삶을 살았고 보통의 사람들이 가늠할 수 없는 열정으로 그림을 그렸다. 한 조각의 마른 빵, 부족한 커피, 남루한 외투와 닳고 닳은 구두, 딱딱한 나무의자로 짐작할 수 있는 스산한 삶을 살았지만 화가가 된 이래 그 궁핍함 때문에 캔버스 밖을 기웃거리지 않았다. 나는 그런 고흐를 좋아한다.
졸업과 동시에 다른 분야는 기웃거리지도 않고 교육계에 발을 들여놓은 남편은 자주 교육현장의 부조리와 병폐를 토로하곤 했었다. 바람직한 교육은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주입식 지식의 습득이 아니라 좋은 책을 읽고, 참된 친구를 사귀고, 학급활동, 동아리 활동을 통한 취미생활과 특기 살리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는 전인교육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 남편은 인문계 고등학교의 교사의 일을 힘들어했다. 현실은, 소위 말하는 명문대학의 진학률로써 교사의 능력과, 학교의 평판이 판가름이 났다. 학생들의 인격함양과 정서순화에는 관심이 소홀했다. 결국 이상주의자라는 질시 속에 상처를 안고 교직을 떠나야했다.
쓰지 않는 방을 깨끗이 치웠다. 손님이 올 때만 가끔 꺼내 쓰던 커다란 상을 펴고 그 위에 1000개의 퍼즐 조각을 올려놓았다. 퍼즐은 맞추는 사람을 배려해서 A, B, C, D의 네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우리의 인생과 닮았다. 순서대로 맞추어간다면 내 인생은 지금 세 번째 부분의 퍼즐을 맞추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만한 세월 위에 나는 서 있다. 퍼즐 조각 뒷면이 각기 다른 네 가지의 색깔로 칠해져 있었다. 마치 사람이 유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의 삶을 다른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 가족은 마흔의 나이에 대학원에 진학한 남편을 따라 서울로 이사를 하였다. 그리고 십여 년의 세월을 원주로, 대구로, 청도로 전전하다가 다시 이 도시로 돌아왔다. 남편은 뒤늦게 자신의 길을 찾았지만 세상에 뿌리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사회의 토양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견고하고 배타적이었다. 실력이나 열정, 성실성, 정직함은 제쳐두고 배경을 보자고 하고, 유력자를 내놓으라고 했다. 자신 외에 내세울만한 그럴듯한 그림이 없는 남편으로서는 한 뼘 뿌리내리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흔들리지 않는 나무로 서려면 얼마나 더 외풍에 시달려야 할지는 모르겠다.
퍼즐은 인생에 다름 아니다.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그까짓 것, 어려울 것이 없어 보이지만 막상 달려들어 보면 만만한 것이 아니다. 우선 완성된 그림이 머릿속에 들어있어야 하고 비슷한 색깔들을 눈여겨봐야 한다. 예닐곱 개의 조각을 연달아 맞출 때도 있지만 거의 한나절이 다 가도록 한조각도 맞추지 못할 때도 있다. 그 때는 깨끗이 항복을 하고 물러나야 한다. 몇 시간 동안 쉬면서 다시 전열을 가다듬어야 한다. 그러고 나서 다가가면 아까는 보이지 않던 그림이 의외로 쉽게 눈에 띄기도 한다. 퍼즐은 한 번에 한 개씩만 맞춰 넣을 수 있다. 아무리 빨리 하고 싶어도 여러 개를 한 번에 맞출 수는 없다. 그리고 내가 맞추고 싶은 부분을 고집스레 붙들고 있어서도 안 된다. 여의치 않으면 포기하고 다른 부분을 들여다볼 줄 아는 여유가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누구나 직선 코스로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기를 원한다. 우리 부부의 삶도 다를 바 없었다. 다시 시작하느라 십 년이나 늦게 출발한 것을 만회하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던가. 조바심을 치며, 곁눈질 하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려온 세월이었다.
내가 퍼즐을 맞추고자 마음을 먹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속도의 노예가 되어 욕망의 그릇을 채우기에 급급했던 젊은 날의 시행착오를 되풀이 하지 않으려는 나름의 결심 때문이다. 그러려면 후반전의 삶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때로, 세상의 모든 일을 잊고 멈춰 서서 신이 주는 메시지를 듣고 싶은 까닭이다. 나는 퍼즐을 들여다보고 있는 순간에는 다른 아무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일종의 마음을 비우는 작업이다.
퍼즐을 반 넘어 맞추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빈 공간은 넓다. 나는 인생의 반환점을 이미 돌았지만 아직도 살아볼 만하다. 신이 나에게 맡겨준 일도 해야 하고, 하고 싶은 일들도 있다.
그림 <별이 빛나는 밤에>에는 하늘과 구름과 별과 달과 나무와 교회와 마을이 있다. 바로 우리가 사는 세상이다. 화가는 빈한한 삶을 살았지만 그림에서 느껴지는 에너지는 역동적이고 무한하다. 나는 그림을 보며 그런 에너지가 나에게도 전이됨을 느낀다.
퍼즐의 남은 빈 공간은 내게 주어진 시간의 끝자락의 삶이고 바로 내가 살아야 할 미래의 시간이다. 남편이 자신의 자리에서 할 일을 다 마치고, 내 몸을 통해 세상에 온 나의 두 아이가 스스로의 힘으로 뿌리를 내리고 바람을 견뎌나갈 수 있는 든든한 나무로 설 때 쯤, 인적 드문 곳에 우리 부부가 몸을 누일 수 있는 작은 오두막과 과수원을 장만할 생각이다. 그러면 오두막 옆에 등나무를 심고 하얀 벤치를 마련하리라. 이것은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나에게 한 약속이다. 내가 오랜 세월동안 놓치지 않고 간직해 왔던 밑그림이다.
햇빛이 눈이 부시게 빛나고 향기로운 바람이 옷깃에 스치는 등꽃의 계절이 오면 연한 보랏빛 등꽃이 만개한 등나무 아래에서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남편은 늘 꿈꾸어왔던 과실나무를 돌보고 있는 황혼의 모습을 상상해 보곤 한다.
우리 부부가 함께 맞춰야 하는, 남아있는 퍼즐 조각이다. 겸허하게 살아가야할 인생이다.

***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가끔 들어와 보고는 제 게으름을 탓하지 않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께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랜만에 글 하나 올립니다.
저로서는 조금은 의미가 있는 글입니다.
일 년 전쯤, 알라딘에서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직소퍼즐을 샀습니다.
이 수필을 쓰기 위해서였습니다.
쉬엄쉬엄 하느라 한 달은 걸려 맞췄을 겁니다.
수필은 완성되어 얼마 전 모 문학사 공모전에서 수필부분 최우수상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