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부터 늦은 가을까지 사람들이 북적이는 경주 보문호수이다.
올해는 경주에 대해 좀 더 깊이있는 공부를 해볼 참이다.
겨울 저녁 인적이 드문 보문호숫가를 친구와 산책을 했다.
몇년 전, 유방암을 앓았고 수술을 햇다.
오 년이 지났으니 한고비는 넘김 셈이다.
자그마한 체구인데 뿜어져 나오는 에너지는 다이나믹하다.
그것 때문에 병을 이긴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과학선생님이어서 생각도 합리적이다.
병을 알고 그 병을 다스려 나가는 과정이 담담하지만 단호했다.
병을 이기기 위해 '되는 것'과 '안되는 것'을 분명히 했다
그리고 번호를 매기듯히 그 하나하나를 실천해 나갔다.
그런 투병 과정에는 남편의 도움은 전혀받지 못했다.
남편의 위로나 배려, 보살핌 같은 것도 안되는 것 중의 하나였다.
보통의 사람들이면 본질은 물건너 가고 그것 때문에 싸우고 마음 아파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이 친구는 그런 문제들을 밀쳐놓고 자신의 몸에만 집중했다.
드디어 병을 이겨냈다.
그리고 이년여 동안 날마다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빠 힘내세요'하는 율동을 하고,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듯이 이마며 볼에 뽀뽀를 했다는 것이다.
나는 친구의 말을 들으며 울다 웃다 했다.
이 친구는 두해 전쯤 퇴직을 했다.
요즘은 그랬던 남편에게서 하루에 한 번 정도 '점심은 드셨는지요?' 하는 문자가 온다고 했다.
나는 내 친구에게 말했다.
'그대를 의지의 한국인으로 명하노라'
이 이야기를 나보다 한 십 년쯤 젊은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모두다 이구동성으로 의지의 한국인은 내 친구가 아니라 그녀의 남편이라는 거였다.
오늘 아침, 예수쟁이라 교회에 가면서 나보다 좀 먼저 가야 하는 남편을 현관에서 불러세웠다.
그리고 안아주며 말했다.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사실 지난 연말 언성을 높이며 싸웠드랬다. 그래서 냉전 중이었다.
정말 하기 힘든일이었지만 내가 누군가.
의지의 한국인의 친구가 아닌가.
저녁에는 소파에 나란히 누워 '나는 가수다'를 보았다.
삼 일마다 새로이 작심을 하면 좀 더 나은 '내'가 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