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돈나
오쿠다 히데오 지음, 정숙경 옮김 / 북스토리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회사원으로 오랜 세월 찌들어(?) 그 생활이 삶의 전부로 굳어진 사람을 "회사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에 진중권의 책에서 회사원으로 사는 현대인들을 비꼬는 그 용어를 보고 웃으며 동의했다. 그들을 빗댄 사진, 조각 같은 게 무척 날카롭고 우스꽝스러웠다. 일본의 영향을 깊게 받아 온 우리네 회사 조직도 일본식이어서 회식과 접대 그리고 상사에 대한 충성 따위가 무척 비슷해 조직생활을 할 때 보이지 않는 압박감에 숨이 막혀오곤 했다. 그렇게 해야만 조직이 무너지지 않고 유지된다는 듯 진한 보수성을 띠고 국가주의처럼 굳건한 통일성과 집단성을 강조하는 것이 답답해 조직에서 결국 떨어져나왔다.

 

오쿠다 히데오가 주로 그려내는 반정부적, 무정부적 주인공들의 반골성향이 꼭 내 얘기 같아서 그의 작품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더하기 유머까지 작가의 가벼움 속에 콕콕 박혀 있는 사회비판이 내게는 잘 맞는다. 그리고 쉽게 술술 풀어 쓴 유쾌한 이야기라 아주 빠른 속도로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책은 "깔깔깔" 웃을 일은 없었지만-그게 못내 아쉽다. 오쿠다 히데오 답지 않아.- 한국과 일본의 회사문화를 접해본(주위를 둘러보면 어디에나 회사인이 있게 마련이다.) 누구나 공감하게 된다.

 

이 책은 총 다섯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져있고, 책의 제목이 된 "마돈나"라는 단편은 중년아자씨들의 로망을 그려내고 있다. 아저씨들은 어쩔 수 없는건가. 판에 박힌 지루한 일상 속에서 느닷없이 등장하는 어린(반드시 어려야 한다!!) 이상형은 아무 매력도 없어 보이는 아자씨들을 꿈과 환상의 세계로 이끄나보다. 주인공은 『달과 6펜스』의 찰스처럼 안정된 생활도 가정도 버리고 타히티로 떠나버릴 용기도 없다. 뭐, 아무나 고갱이 될 수는 없으니까.

 

40대 중반을 주인공으로 한 각각의 단편들은 조직 속에서 일어나는 조직과 개인 그리고 개인끼리의 갈등을 그려내고 있다. 그 상황들이 아주 현실적이어서 한 번쯤은 고민했을 법한 얘기들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까운 이의 상례에 반쯤 풀어헤친 넥타이 차림으로 술을 들이붓고 주위에 방해가 될 만큼 떠들며 밤을 새는 외롭지만 마음만은 소년인 중년 형아들을 떠올려본다. 고독한 청춘(?)들이여! 일어나 분개하라! 나는 그냥 그런 머슴이 아니라고 소리치자! 언제까지나 소년머슴이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면장 선거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오쿠다 히데오, 『공중그네』에 이어 두번째로 읽는 이라부선생의 치료기가 그다지 재미가 없다. 일단 오쿠다의 책은 한번 잡으면 빠른 속도로 읽게 되는데, 이번 편은 작가의 열의가 안보인다. 역자의 '옮긴이의 말'에는 작가에 대한 칭찬일색이었지만 가볍고 유쾌한 농담 같아서 마음 편히 읽고 신나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무척 기대했는데. 일본의 저명인사 비틀기에만(패러디) 너무 신경을 써서 그런지 배경지식이 없어 잘 모르니 더 와닿지가 않는건지도 모르겠다. 오쿠다 히데오의 책만 벌써 네 번째로 읽는데, 전작주의를 망설이게 만든 책이다. 벌써 또 한권 사놨는데 어쩐다지.

 

지맘대로 사는 이라부의 막무가내식 태도는 철딱서니 없어보이지만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다. 누구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갈망을 품고 있지만 무인도에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니 남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다. 현대인이 겪는 각종 신경병증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상식을 넘어서는 이라부의 무례하기까지 한 자유로운 진단에 통쾌함을 느낀다. 지나치게 타인을 신경쓰며 사는 현대인들을 작가는 코믹을 가장해 꼬집는다. 그런데 이번 편은 이라부의 유머가 안먹힌단 말이지. 힘 빠진 이라부를 보는 게 탐탁지 않다. 그렇다고 지맛대로 사는 행태를 바꾼 건 아닌데, 환자를 자기식대로 주무르던 방식에 힘이 덜 실린 것 같아 아쉽다. 더 많이 간섭하고 더 심하게 괴롭히던 이라부가 더 좋은데. 조금 더 무례하게 굴어도 괜찮을 텐데, 이라부가 귀차니즘에 빠진 걸까. 작가에게 소재가 떨어진 걸까. 늘 비슷한 방식으로 접근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거겠지. 시리즈물이 한결같이 재밌기란 어려운 법이지.

 

유머는 남녀노소, 계층을 뛰어넘어 호응을 부른다. 터무니없는 일도 거부할 수 없는 힘을 지니고, 고집불통인 사람도 나긋나긋하게 만든다. 그러고보면 진짜 권력은 유머에서 나오는 게 아닐까.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내고 사랑이 목마르다면 남을 웃겨야함을 되새긴다. 유머가 부족할 때 철저히 낮아지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웃기는) 연습을 하고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 대해 끊임없이 상상해야 할 것이다. 남을 웃기는 일은 그만큼 정성이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자기 스스로 유쾌해져야 하겠다. 유머로 시작해서 유머로 끝나는 오쿠다의 이야기에 유머가 조금 부족해 아쉬움을 토로해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수비의 기술 2 NFF (New Face of Fiction)
채드 하바크 지음 / 시공사 / 2012년 5월
평점 :
품절


모든 운동의 기본이 수비라고 생각하며 야구는 수비맛이라고 늘 주장해 왔다. 타격이 좀 약해도 수비가 뛰어나면 그 선수에 대한 평가가 너그러워진다. 수비 잘하는(잘 할 수밖에 없게 생긴) 잘빠진 야수 옵하야들을 보면 눈이 빠르게 돌아간다. 몸.매.(?) 때문에? 나 그렇게 응큼한 사람 맞다.

물론 수비만 잘하고 타격이 정말 안되는 사람을 보면 쌍욕(?)을 하곤 하지만 수비실력이 아까워 토해내는 한숨 쯤 되는 거라고 해두자. 가끔 큰(홈런) 거 빵빵 터뜨려도 거북이처럼 허둥지둥 달리며 공을 놓치는 실책을 하는 아해들은 정말 사절이다. 수비의 기술이라면 과연 어떤 비밀을 알려줄지 두근두근해 하며 읽기 시작했다.

 

아파리치오 로드리게스라는 가상인물을 주인공의 동경대상으로 설정했다고 책에서 언급됐지만 실존인물인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유격수인 루이스 아빠리시오(에스빠냐식 발음으로)를 얘기하는 것 같다. 야구 꽤 좋아한다고 자처하지만 국내야구만 겨우 겉핧기로 아는 터라 메이저리그 야구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아빠리시오(aparicio)라는 수비왕(?)의 존재를 처음 찾아보게 됐다. 우리 종범신(타이거즈 이종범)보다 더 뛰어난 유격수가 있었구나. 작가가 그 수비영웅을 흠모해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짐작한다.

 

수비는 삶을 맞이하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망망대해의 한 가운데에 내던져진, 어쩔 수 없는 "인간"인 우리는 성장통을 겪지 않고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이니까. 십대 엔 자아를 펼칠 힘이 부족하고 이십 대에야 비로소 방황과 번뇌에 몸부림치며 청춘을 만끽(?)한다. 그때 이후로 마음은 늘 그 언저리에 있다. 동틀 무렵 하루 중 가장 싸늘한 시간, 술이 떡이 된 채로 생일을 맞은 선배를 분수대에 빠뜨리기로 사전모의 했다가 도리어 내가 당했던(?) 그날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 책은 작가의 허먼 멜빌,『모비 딕』에 대한 오마주 라고 보여진다. 전에 조잡한『모비 딕』번역본을 읽다가 도저히 책장이 안넘어가서 미뤄뒀는데 책을 읽고 나니 궁금하다. 원서를 읽을 능력이 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잘된 번역본으로 다시 읽어봐야겠다.

 

작가의 문학적 이해와 재기넘치는 문장들이 돋보인다. 그렇기는 하나, 등장인물들의 성장이 점점 궤도에 오르면서부터 소강상태가 된다. 그리고는 그 상태가 계속된 채로 흐지부지 되고 만다. 아빠피시오라는 입지전적인 인물에 무척 매료됐는데 이렇게 빼어난 소재가 묻힌 것이 아깝고 아깝다. 제목을 보고 기대가 무척 컸다. 도입부터 전개까지는 매력이 철철 넘치던 인물들의 이야기가 펼쳐져 독창적이고 흥미진진했건만 2권에서부터 개성을 잃고 이야기가 산으로 가고 결말은 산뜻하지가 않다. 이런 허술한 결말을 내는 책을 읽을 때마다 마무리가 말그대로 끝내주는 대작을 완성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한다.

 

작중 인물 중 어펜라이트 총장의 학문성과에서 영감 비슷한 걸 얻어간다. 긴가민가 했던 내 방법론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약간 부족한 이야기지만 그것만으로도 내게 큰 성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의 아름다운 정원
심윤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0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인물이나 사물에 대한 묘사 하나하나가 아름답고 고와서 마음이 누긋해진다. 한겨레출판 답지 않게(?) 문학적인 작품이다. 각다귀같다는 생각이 드는 거친 할머니의 폭력에 열이 오르지만 체념이 더해진 성숙미로 상처를 딛고 서는 소년의 성장이 놀라웁다. 살면서 끊임없이 괴로움만 느끼는 인간관계에 상처받아 또다시 상처받는게 두려워 어떻게 하면 피해볼까 궁리하곤 하는 나와 달리 소년은 도망가지 않고 묵묵히 견뎌낸다.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나보다 더 분명히 알고 있는 그 아이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낀다. 

 

암흑의 시대를 살았던, 지금의 우리와 다를 것 없었을 힘없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은 지독히 가난하고 그래서 너무나 인간적이다. 끊임없이 일어나는 인물들의 아픔과 싸움과 갈등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이야기에 끼어들어 등장인물 각자에게 말을 걸고 싶어진다. 그시대에는 어쩔 수 없었지만 지나고 보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알려주고 싶어 입이 간질거린다. 그렇다고 크게 달라질 리 없지만 당장 눈 앞에 있는 갑갑한 현실은 마주하지 않으면서 너그러운 척 들이미는 내 오지랖이 비겁하기까지 하다.

 

제목이 주제의식을 드러내지 못한다. 물론 정원이 종종 나오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제목을 붙일 만한 비중은 아닌데 마땅한 제목을 찾지 못해 그런 건 아닐까 싶다. 도입부에서 정원이야기부터 시작해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공간인 줄 알았는데 그런 것도 아니고 마무리에 급히 끼워넣은 듯한 정원 장면이 어설프다. 그리고 이야기의 중심도 조금 어긋난 것 같다. 그 끔찍한 시대이야기를 하려던 것인지 의도가 그려지다 말다가-이 책이 나올 때가 정치적 상황이 민감했던 것도 아닌데(?) 말을 조심하려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공선옥,『내가 가장 예뻤을 때』와 비교해 수준이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소년의 성장이야기를 하려면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것일텐데 인물들과의 긴밀성이 이어지지 않는다. 문학성도 뛰어나고 심리나 대사의 재미난 묘사에 웃음이 터지지만 그뿐이다. 흔히 보기 어려운 어른스러운 아이의 힘겨운 성장기는 늘 가슴을 울리지만 이 이야기는 뭔가 모자라다. 개운치가 않은 거다. 갈등이 해소되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세상일이 5지선다문제의 답처럼 똑 떨어지는 법은 없지만 1인칭 관찰자시점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면서도 마무리가 마뜩찮다. 난 도대체 무라카미 하루키식 용두사미꼴 마무리가 싫다고. 말을 꺼내면 뭘 말하려는 건지 확실히 해달라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대장부의 삶 - 옛 편지를 통해 들여다보는 남자의 뜻, 남자의 인생
임유경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3월
평점 :
품절


어어? 이거 뭐지?

이 책에 대한 독자평이 좋고 옛글을 접하리라는 기대를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저자가 글을 엮다 말았잖아. 한글로 해석한 편지글의 출전이 안나와 있는거다. 선현들의 편지글을 실어 그들의 솔직한 속내를 들여다보련다는 저자의 뜻은 이해하겠으나 어떻게 자기가 쓴 글들도 아닌데 원문을 싣지 않은건지. 고문을 전공한 거 맞나? 저자소개를 보니 대학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사람이다. 이래도 돼? 한자어로 된 원문을 실어도 물론 다 이해하기 어렵고 대충 보기 일쑤겠지만 그래도 원문에 글쓴이의 진짜 의도나 느낌이 들어있지 않은가. "어이없다" 는 표현은 뭐라고 할까. 사람을 얕보는 듯한, 쌀쌀한 느낌이라 꺼려져서 듣는 것도 좋아하지 않고 쓰는 일은 거의 없지만 이번만큼은 어이없다고 할 밖에......

 

편지글을 해석한 글은 아주 훌륭하다. 아무래도 저자 자신의 해석만은 아닌 듯하다. 여기저기 원문을 해석해 둔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다는 것 같으니(서문에도 그리 나와 있고) 그건 그렇다 쳐도 이미 해석한 글에 덧붙인 저자 나름대로의 해석은 더더욱 무용하다. 말그대로 사족(蛇足)이다. 이미 충분히 이해할 만한 해석을 해두었으면서 쓸데없이 해석을 되풀이하고 있다. 물론 가끔 출전을 알려주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 별 깊은 의미도 없는 엮은이(이쯤되면 "저자"라고 부르기도 민망하다.)의 말들이 나열되고 있는데 지루하기 짝이 없다. 초등학생 수준의 교훈을 강독(?)한다. 순수 창작글이 아닌 이상 참고문헌을 밝혀두어야 할 텐데 어디에도 참고문헌이 나와있지 않다. 독자를 뭘로 보고 책을 낸 건지 참으로 대담하기까지 하다.

 

이 모든 허술함에도 우리가 익히 알 만한 이름높은 옛선비들의 글이 마음에 울린다. 순수하고 진솔해서 읽다보면 지그시 웃게 된다. 읽는 사람마저 덩달아 너그러워지는 것 같고 의기에 차고 가슴이 아려온다. 아주 멀고 먼 수백년 전 조상들의 삶이 가까이에서 들려온다. 의관을 정제한 근엄한 선비의 차림을 한 그들이 잘 아는 친구처럼, 때로는 나처럼 한심한(?) 고민도 하고 쪼잔하게 보일 만한 얘기도 서슴없이 하는 것이 신기하다.

 

한시도 한문도 어려워 매번 마음만 먹고 한자공부를 시작했다가 접기를 반복하지만 그래도 괜찮은 글을 대했을 때 그가 어떻게 문장을 썼는지 정도는 확인할 수 있게 해줘야지. 이런 글을 읽을 때 귀찮지만 일부러 모르는 한자를 찾아보는 수고가 필요한 법인데 하, 이것 참 난감하다. 나처럼 뭣모르는 애도 답답해 하는데 하물며 뭘 좀 아는 사람은 어떨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