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
케네스 벤디너 지음, 남경태 옮김 / 예담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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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그림, 음식, 역사 모두 내가 좋아하는 것만 골라 글을 쓴 작가에게 묻고 싶다. " 날 알아요?" 

그저 나와 관심사가 통했을 뿐인데도 고맙고 반가워죽겠다.  

역자의 번역도 무척 좋다. 특히, 살강 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든다. 보통 역자였다면 이른바 젠체하는, 그림설명에 쓰일 법한 선반이나 뭐 한자어로 썼을 것을 솔직한 우리말로 풀어낸 것만으로도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그 외에도 많은 표현들이 자연스럽다. 인문학 전공자 특유의 날카로움도 묻어난다. 원작이 뛰어났을 수도 있고. 괜찮은 원작을 망치는 오역이 넘쳐나는데도 이 정도의 번역을 만나는 게 쉽지 않으니.

 

그림에 문외한이면서도 관심은 많아서 그림책을 자주 들춰보아도 그림이 늘 새롭다. 이 책에 나오는 그림은 더욱 새롭다. 일반적인 명화가 아니라 음식을 주로 그리거나 음식을 먹거나 음식을 앞에 둔 사람들 위주라서 처음 보는 그림들이 무척 많다. 인간의 주본능인 식욕을 드러내는 것이 금기시 된 이유도 어렴풋이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 책을 읽고 더 공감할 수 있다. 알고는 있어도 곧잘 잊고 사는 우리의 먹는 행위 자체(음식이 되는 과정)의 잔인성을 인식하며 충격을 받는다. 이 책에 여러번 언급함으로써 그 사실을 더욱 각인시키는 듯하다. 작가의 인문학적 지식의 폭넓음에 감탄하게 된다. 음식그림 속에 담긴 이야기-유래, 유행, 상징성, 우화, 화가의 현실인식 등등-의 풍부함은 두 말 할 필요도 없다. 그림 설명이 한번에 그치지 않고 또다른 이야기를 이어나가면서 다시 또 앞에 나온 그림에 대한 부연설명과 함께 그림끼리 비교도 해가며 자세한 이야기를 덧붙인다. 그러다 보면 앞에 나온 그림들을 다시 찾아서 책을 여러 쪽 집어서 앞뒤로 읽어가느라 정신이 없을 정도다. 따라서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시간이 좀 걸린다. 그렇게 손이 많이 가는 만큼 즐겁다.

 

아름다운 그림들이 자꾸만 눈에 들어온다. 채소그림이 그렇게 아름다운 줄 처음 알았다. 아드리안 코르테의 "아스파라거스"라는 그림을 보는 순간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난 그랬다) 아스파라거스가 우리식 채소가 아니어서 실제로 본 적이 거의 없는데 아까 우연히 본 영화에서 아스파라거스를 보고 이 그림이 또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의 "물잔과 단지"라는 그림은 가슴에 오래도록 남는다. 완벽한 구도와 형태감 뿐만 아니라 색감이 단순하면서도 조화롭고, 질감도 만져질 듯 실감나서 오래도록 바라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 그림을 실제로 한번 보고 싶다. 정물화에 이렇듯 마음을 빼앗길 줄이야.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보면서 내 취향을 깨닫는다. 마음이 오래 머문다. 내 눈에 들어 온 그림들을 몇 번이나 다시 본다.  

 

그림이 너무 작아서 알아보지 못한 설명들이 있다.

돋보기로 들여다봐야 할 것 같고 그래도 잘 안보일 것도 같다. 오주석 선생의 그림책처럼 설명에 따라 각 부분을 확대한 그림들도 실어놓았다면 더할 나위 없었을 텐데 그 점이 못내 아쉽다. 이건 출판, 편집의 문제이리라. 오주석 선생의 책 이후로 제일 재미난 (음식)그림해설서다. 저자의 못다한 이야기들을(있다면) 더 듣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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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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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여행길에서 애초에 사주기로 했던 남의 나라 햄버거를 사주지 않는다고 조카녀석 입이 댓발이나 나와 그 녀석과 비행기 안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그 아이의 취향을 맞춰주려고 내딴엔 최선(?)을 다한 속사정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고-복도를 사이에 두고 언니 옆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아이와 자리가 떨어져 있어서- 볼이 잔뜩 부어있는 그 녀석이 내 얘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에라, 책이나 읽자고 펼쳐든 이야기다.

 

조금은 싱숭생숭한 기분에 읽기 시작한 이야기에 어느새 빠져들어 눈물을 쏟는다. 비행기 안에서 조카와 벌인 신경전 때문에 사람들의 눈총을 받은 것도 잊고 얼굴에 서럽게 눈물칠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소리내지 않고 울어야 하는 것이 힘겨웠다. 식구 많은 집의 사연은 언제나 내 마음을 톡 건드린다. 분명 다른 이야기인데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는 가지 많은 집의 이러쿵저러쿵 말 많고 탈 많은 작은 일들이 무척 낯익다.

 

이런 인생도 있구나 하는 믿기 힘든, 어디서 들어본 듯한, 어린시절 동네꼬맹이들이 무턱대고 믿지 않으면 화장실에서 똥누다가 죽네 어쩌네 엄포를 놓았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듣다보면 머리가 어질어질거리는 이야기이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냥 혼잣말인지도 모를 그 말을 진지하게 믿고 답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배시시 웃다가 울컥하다가 가슴이 아리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또 음~ 하고 공감한다.

 

이야기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까닭은 따뜻해서이다. 우스꽝스럽지만 내 친구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사람 사는 세상 어느 곳이든 숨어있거나 스며있거나 할 법한 일들에 방금 만난 사람이 다정히 말을 건다. 그래서 어느덧 기분이 묘하게 달콤해진다. 그렇지만 곧 삶이 그렇듯 쓰디 쓴 도라지물도 맛본다. 누구에게나 그냥, 일어나는 일이야.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우리는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한탄하고 억울해한다. 그렇게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게 삶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아서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과 길에서 만난 사람들.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이상 낯설지 않다. 당신들이 낯설지 않다. 그 사람이 나이고 너이니까. 

 

지구를 돌고 돌아 세상을 뒤지고 헤매고 다녀도, 넘어지고 다치고 죽을 것 같아도, 나를 둘러싼 세계가 죽음에 휩싸여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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캣칭 파이어 헝거 게임 시리즈 2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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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 『헝거게임』을 읽고 2, 3권이 있다는 걸 알면서도 1권의 내용이 너무 재미있고, 충격적이어서 더 이어갈 이야기가 있을까 과연. 하고 속단했다.

즐겨듣던 아프리카 야구방송(기아 타이거즈 편파방송, 리얼李방송국)BJ식 표현을 빌리자면,

"왐마!"

이렇게 재미있어도 되는거야?

2권의 흡입력은 1권을 뛰어넘는다. 본격헝거게임이 궁금하면 한글자(?)도 놓치지 마라.

깜짝 놀라게 빠져들었던 1권이 그저 뒤에 이어질 이야기를 위한 전초전 같을 정도다. 전에 박노자가 남북대치상황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상어에 전투용어가 많다고 한 적 있었는데-운전하면서 흔히 쓰는 "사각지대" 같은- 생존게임이 주제인 이야기를 읽다보니 내입에서도 온통 전투용어가 튀어나온다.

 

2권에서는 싸움이 더할 수 없이 과격해지고 격렬해진다.

감당하기 힘든, 너무나 피하고 싶은, 설마설마 하게 되는 '그럴 수 없는' 사건이 전개된다.

이거 해도해도 너무하는 거 아니야?

충격과 공포, 반전을 예기치 못한 순간에 터뜨려대면서 점점 빨라지는 심장박동을 감당하지 못할 만큼 흥미진진하게, 독자를 쥐락펴락하게 만든다.

옴마나, 수잔(작가)언니야, 무셔! 대단해! 놀라워!

그동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어 간질거리는 걸 어떻게 참고 지냈을까 싶을 만큼.

작가의 무한한 상상력에 넙죽 엎드리고 만다.

 

이건 상상이 아니야, 날마다 숨쉬는 우리현실이라고.

열일곱살 짜리 여자아이를 주인공으로 한 조금 유치한 판타지가 아니라, 그 아이의 목소리를 빌려

뒤틀리고 비뚤어진 세상에 소리친다. 이대로 계속 갈거냐고. 괜찮은거냐고.

그리고 우린 약자가 되어(우리 자신이 언젠 약자가 아니었던가)

똘똘 뭉쳐 우리 내부의 적, 외부의 적을 동시에 인식하고 맞서 싸운다.

헤이미치가, "진짜 적이 누구인지 기억하라" 고 한 뜻을 이해하고 가슴이 뜨거워진다.

이 책을 읽다보면 "들끓는" 심정이 되고 만다.

 

여행을 준비하는 한달 동안 책도 읽지 못하고 인터넷에 갇혀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책을 마저 다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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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 게임 헝거 게임 시리즈 1
수잔 콜린스 지음, 이원열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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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소설이나 영화 들은 보통 암울한 미래를 그려내곤 한다. 폐허가 된 도시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발버둥치는 추레해 보이는 사람들의 출구없는 삶이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어떤 거대하고 비정한 세력에게 억압당하는 상황이 불쾌할 만큼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난 이런 장르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현실은 언제나 자원의 희소성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본다. 모두가 풍요를 누릴 수 있다면 서로 더 가지겠다고 싸울 까닭이 있겠는가. 억압하는 자와 당하는 자. 지배하는 자와 복종하는 자. 결국 자원의 배분 문제로 귀결되는 게 아닐까. 모든 것은 소유의 문제라고 할 만큼  아주 유치하면서도 단순하다. 그리고 유치한 것이 때로는 가장 잔인하기도 하다.

 

몰입도가 뛰어난 이야기이다. 제목조차도 끔찍할 만큼 명쾌하다. 배경설정도 철저하고 현대사회를 풍자하는 듯도 하다.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이야기이면서 실은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되는 것이기도 하다. 성인이 아닌 미성년을 대상으로 벌이는 살인게임은 인간을 도구로 보는 비인간의 가장 솔직한 속내이다.  당하는 자가 주인공이라 우리도 모르게 그 아이를 응원하게 된다. 어떻게든 비인간을 이겨내라고. 가장 원시적으로 자연속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무척 흥미진진하다. 그런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탈패 여름전수 때 탈춤 연습 하던 중간에 산속에서 하던 서바이벌 게임과 다를 것이 없다. 장기전인지 단기전인지, 실제인지 가상현실인지가 다를 뿐. 그 당시에 느꼈던 내 공포감은  비슷할 것이다. 그저 죽는 시늉만 할 뿐인데도 내겐 아주 큰 충격과 공포였다. 전쟁놀이라는 것이 아니,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 자체가 생존게임이지.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 너를 밟고 일어서야 하는 비정한 세계. 그래서 더 독한 허무를 내뿜는다. 나는 과연 본능을 이겨낼 수 있을까. 상상만 해도 두려워 몸이 굳어버리는 아귀다툼 속에서.

 

번역이 자연스러워 읽기가 편하다. 역서는 늘 번역에 민감해지게 되는데 역자가 음악을 했던 사람이라 그런지 매우 자유롭고 유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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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사람, 타샤 튜더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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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샤 튜더, 대단한 사람이다. 난 겨우 청소, 설거지, 빨래 정도 집안일 하고 나면 하루가 다 가는데 이 사람의 하루는 240시간이라도 되는 건가. 손많이 가고 참 다양한 일을 하는 걸 보고 혀를 내두르게 된다. 그 속에 유머가 있고 그래서 여유롭게 삶을 즐긴다. "생산의 기쁨" 속에서 사는 삶이 얼마나 풍요롭고 알차고 멋진 일인지. 


몇년 전에 G마켓에서 타샤 튜더에 관한 책을 싸게 팔 때 살까, 말까 망설이다 안 산것이 아깝다. 뭐 지금 내게 꼭 필요한 책이라 이제야 타샤를 만난거라고 치자. 


타샤 자신이 쾌락주의자 라고 하는데 그 쾌락은 아주 부지런한 쾌락이다. 실컷 으스대고 거드름 피워도 될 만한 의미있는 쾌락. 그에 비해 대충 몸배리고맘배리는 놀라리 게으름뱅이 내 쾌락이 얼마나 보잘 것 없고 부끄러운지.


평범하고 단순한 인생이 무척 소중함을 몸소 보여서 가슴에 깊이 와닿는다. 무엇이든 가꾸고 손질하는 굳은살 박힌 손이 참으로 곱다. 타샤가 해내는 많은 일들을 헤아리는 것도 어지러울 정도다. 타샤 옆에 가면 "척척"소리가 들릴 것 같다. 그러면서도 느긋하다니 구식인데 촌스럽지 않고 편안하고 아름답다. 타사네집에서 타샤랑 며칠만 같이 살아봤으면 좋겠다. 타샤의 삶을 배우고 느끼게.


  옛날사람들처럼 직접 땀흘려 만드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동경한다. 생각해보면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닌데 언젠가부터 우리는 자신이 할 일을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힘으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자연인. 늘 마음으로만 그리면서 그렇게 살지 못하는 우리에게 명쾌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이 역자의 다른 책을 찾아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번역이 참 좋다. 몇군데 조금 어색한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꽤 괜찮은 번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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