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경꾼들
윤성희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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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여행길에서 애초에 사주기로 했던 남의 나라 햄버거를 사주지 않는다고 조카녀석 입이 댓발이나 나와 그 녀석과 비행기 안에서 실랑이를 벌였다. 그 아이의 취향을 맞춰주려고 내딴엔 최선(?)을 다한 속사정을 한 마디로 설명하기도 쉽지 않고-복도를 사이에 두고 언니 옆 자리에 앉아 있는 그 아이와 자리가 떨어져 있어서- 볼이 잔뜩 부어있는 그 녀석이 내 얘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는다. 에라, 책이나 읽자고 펼쳐든 이야기다.

 

조금은 싱숭생숭한 기분에 읽기 시작한 이야기에 어느새 빠져들어 눈물을 쏟는다. 비행기 안에서 조카와 벌인 신경전 때문에 사람들의 눈총을 받은 것도 잊고 얼굴에 서럽게 눈물칠을 한다. 나이가 들면서 소리내지 않고 울어야 하는 것이 힘겨웠다. 식구 많은 집의 사연은 언제나 내 마음을 톡 건드린다. 분명 다른 이야기인데 어딘가 모르게 닮아 있는 가지 많은 집의 이러쿵저러쿵 말 많고 탈 많은 작은 일들이 무척 낯익다.

 

이런 인생도 있구나 하는 믿기 힘든, 어디서 들어본 듯한, 어린시절 동네꼬맹이들이 무턱대고 믿지 않으면 화장실에서 똥누다가 죽네 어쩌네 엄포를 놓았던,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확인하기 어려운, 듣다보면 머리가 어질어질거리는 이야기이다. 농담인지 진담인지 그냥 혼잣말인지도 모를 그 말을 진지하게 믿고 답하는 사람들이 신기하다. 배시시 웃다가 울컥하다가 가슴이 아리다가 고개를 갸우뚱하다가 다시 또 음~ 하고 공감한다.

 

이야기에 깊이 들어갈 수 있는 까닭은 따뜻해서이다. 우스꽝스럽지만 내 친구의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사람 사는 세상 어느 곳이든 숨어있거나 스며있거나 할 법한 일들에 방금 만난 사람이 다정히 말을 건다. 그래서 어느덧 기분이 묘하게 달콤해진다. 그렇지만 곧 삶이 그렇듯 쓰디 쓴 도라지물도 맛본다. 누구에게나 그냥, 일어나는 일이야.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을 때 우리는 왜 내게만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건가 한탄하고 억울해한다. 그렇게 달달하면서도 씁쓸한 게 삶이라는 사실을 잊은 채.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믿어지지 않아서 이야기를 찾아다니는 사람들과 남아있는 사람들, 기다리는 사람들과 길에서 만난 사람들.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이상 낯설지 않다. 당신들이 낯설지 않다. 그 사람이 나이고 너이니까. 

 

지구를 돌고 돌아 세상을 뒤지고 헤매고 다녀도, 넘어지고 다치고 죽을 것 같아도, 나를 둘러싼 세계가 죽음에 휩싸여도 삶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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