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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9월
평점 :
연이어 두 번 읽었다. 이 책을 잡으면 중독적인 글에 이끌려 한번 읽고 나면 다시 읽고 책을 놓지 않으면 또 읽게 될 것 같다. 쉽게, 술~술 읽히는 글이 아니어서 더욱 그럴거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대학시절을 떠올릴 수밖에 없게 된다. 80~90년대에 대학을 다닌 사람이라면 더욱 공감하게 될 듯하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땐 학생운동이란 게 거의 의미가 없던 시기(이미 90년대를 지나버렸으니)라 조금 덜하겠지만 쇠파이프를 가볍게 들고 다녔던 선배들은 새록새록 그 시절의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 같다.
혼란한 시대, 하나의 인격체로서 "나"라는 존재를 인정받을 수 없던 그때. 수많은, 고유한 "나"들은 얼마나 외롭고 답답했을까. 국가와 시대가 우선이던 시기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휩쓸릴 수밖에 없었던 운명 앞에 속수무책이던 "나"들의 아픔을 그려냈다. 그리고는 대학 때 가장 존경하던 선배의 짤막한 메모(줏대는 중심이고 주체이다...정확히 기억이 안나네)와 닮은 글귀로 작가의 주제의식을 엿볼 수 있다. 방황하고 상처받은 주인공의 아픔을 쓰다듬는 그 글은 정민의 삼촌과 주인공의 할아버지와 이길용에게도 따뜻한 위안이 되었다. 물론 책을 읽는 이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되리라. 그 시절엔 누구라도 그럴 수밖에 없었겠다. 끊임없이 고민하고 갈등하고 헷갈렸겠다. 하나의 뜻이 아닌 내 목소리를 내면 바로 조직을 해치는 일이 되었을테니.
춥고 외롭고 다치고 고뇌하는 나를 저 우주 다른 한켠에서 보듬어 줄 또다른 내가 있다는 작가의 우주관이 내 세계관과 닿는다. 네가 있어 나는 외롭지 않다. 신비하고 따뜻한, 커다란 품을 지닌 넌 나의 우주.
지극히 문학적인 문장들과 어절로 이루어진 목차마저 시로 느껴져 가슴에 은은히 전해진다. 김연수는 어쩌면 마지막 문학세대가 아닐까. 중독성 강한 작가의 글을 계속 읽고 싶다.
그리고 여담이지만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던 일 중의 하나를 작가가 쉽게 설명해놓았다. 우습게도 이른바 운동권으로 인식되는 조직이나 밖에서 곧잘 자잘한 성추행이 일어나곤 했는데 그걸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분위기들이 있었다. 그런 일에 유난히 민감했던 내겐 그런 분위기 자체가 무척이나 충격이었다. 오래 전에 처음 봤던 선배가(동아리 선배가 알던 선배라 직접적으로 알지는 못했는데) 집에 돌아가는 길에 성추행을 시도했던 일을 친한 선배에게 최근에 털어놓은 적이 있었는데 '그럴 수도 있지.' 라며 별 것 아닌 일인 듯 받아들이는 거다. 보수적인 성향의 선배라 그런 건가 했는데 그 당시 분위기라는 작가의 말에 비로소 이해가 되었다. 조금 다르지만 그 사람들의 모순적인 행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냥 용인되는 분위기 따위를 이해한다는 거지 그 생각이나 태도를 이해한다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순전히 내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랬다. 우리 조직은 "금연(연애금지)" 철칙이 있었다. 조직력을 흐트러뜨리는 행위라고 금기시 된 반면에 다른 사소한(?) 일은 눈감아 주는 분.위.기.?? 어쩌다보니 "고발"(?) 하는 상황이 되어버린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