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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의 시간들
올가 토카르추크 지음, 최성은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1월
평점 :
모두가 주인공인 세상은 이상에서나 일어나는 일이겠다. 세상은 주인공과 주인공 아닌 지나가는 사람 1, 2...로 돌아가니까.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드는 공간이기도 한 태고에서는 모두가 주인공이다. 그 가운데서도 작가는 이지도르와 루타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나와 이지도르가 품은 기대와 달리 루타가 너무 일찍 떠나버렸다. 나중에라도 루타가 헐레벌떡 이지도르를 찾아와 쉴 새 없이 떠들어대는 이지도르 얘기를 들어줄 줄 알았는데 아쉽게도, 세상을 너무 일찍 알아버린 탓에 그냥 휑하니 속타는 애를 버려두고 가버렸네. 세상이 그렇듯 헛된 바람이 그저 덧없네.
가브리엘 마르께스, [백년동안의 고독]을 읽는 듯, 대하소설을 읽는 듯 세대를 거치고 거쳐 이야기가 이어진다. 설화처럼, 모닥불 피워놓고 둘레에 둘러앉아 듣는 옛날이야기처럼 편안하고도 그렇게 그렇게 흘러간다. 은밀한 목소리로 "옛날이야기 들려줄까?" 하며 손짓하는 것 같다. 밥 먹으라고 엄마가 불러도 들은 척도 않고 이야기를 듣고 있다. 으레 들어왔던 이야기와 조금 다르게 고요하고 담담하게 풀어나간다. 지나치게 빠져들지도 않고 그러려니 하고 듣게 된다. 다음 이야기가 너무 궁금해 빨리빨리, 전부 다 풀어놓으라고 보채지 않을 만큼이다. 딱 그 만큼 관찰자 시선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지나치게 처절하지도, 웃겨서 미친 듯 웃어재끼지도 않고 흘러 흘러 흘러가는 강줄기처럼, 저 구름처럼 평온하지 않았던 시대 마저도 인간 역사가 그래왔던 것처럼 그저 지나간다. 시체를 몽땅 파묻었던 구덩이를 다시 파헤쳐 시체들을 거둬들이고 난 뒤에도 인간은 변함없이 그 터에서 살아간다.
인간을, 인간이 만물 영장이라 믿는 것이 우스꽝스럽다는 것을 알려주듯, 만물을, 세상을 관조한다. 담담하게 보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야. 4가지로 세상을 정의내리려 했던 이지도르처럼, 어린아이가 만들었다는 게임에 빠져있던 포피엘스키처럼 단순한 것이 분명한 것이라고. 그래야 비로소 느끼게 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