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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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1.

최근에 읽었던 경제 관련 책은 [맨큐의 경제학] 이었습니다.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아 아직 3분의 1 밖에는 읽지 않았지만... 대충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말하는 개념과 아이디어, 한계 등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야기들이 무엇인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맨큐의 경제학]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끊임없는 사고 실험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경제학적 개념이나 양상을 소개해야되다보니, 변인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굉장히 단순화된 상황을 주고는 그 안에서 관련된 경제학적 개념을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기억에 남는 맨큐 교수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리카도의 비교 우위를 소개하는 장이었는데, 미국과 일본에서 농작물과 자동차만 생산 가능하다고 할 때, 미국은 농작물에 대해서 일본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니까 일본이 자동차를 생산하게 하고 미국이 농작물을 생산하도록 해야한다는 그런 예시였습니다. 과연 현실에서도 맨큐 교수는 그렇게 이야기할까요? 아마도 아니겠지요. 아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현실에서도 미국이 자동차를 생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가봐도... 미국이 농업 국가로 머물기보다는 제조업 중심의 국가가 되길 바랄테니까요. 

그렇다면 리카도가 이야기한 비교 우위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경제학 관련 책은 어떤 것을 읽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안 중에 하나가 - 어떤 분들에게는 정답지는 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라는 책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2. 

잘 알려진대로, 장하준 교수는 제도경제학자입니다. 물론 저는 경제학 문외한이라 제도경제학이 어떤 것인지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의 신작은 제도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지향점은 분명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가급적이면 여러 경제학적 관점에서 현상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혹자는, 예컨대 제도경제학자의 시선으로 신고전학파의 논리를 말한다는데에서 불분명한 관점만 제공되지 않겠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그렇게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책은 없었습니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심지어는 장하준 교수의 전작들도 관점은 명확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다양한 관점으로 경제학적 현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편으로, 책의 두께정도의 깊이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 더 두꺼웠다면, 조금 더 깊이 있는 서술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요? 대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접근성을 얻었습니다. 책은 쉽게 읽힙니다. 많은 숫자들을 가지고 와서, 꽤나 어려울 이야기들을, 그래도 쉽게 쉽게 써내려갑니다. 막상 독서를 끝내고 나면,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얼마 없지만, 어쨌든, 경제학 개념과 현상을 가깝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니겠지요. 


3. 

다만, 이 책의 독자층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저자인 장하준 교수는 이미 '진보적 경제학자'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진보라는 의미의 적확함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대중에게 장하준 교수의 위치는 왼쪽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을 '보수적'인 독자들이 찾을리는 만무합니다. 아니, 과연 일반 독자들이 이런 일반론적 경제학을 다룬 책을 읽으려고 할까요? 

결국 이 책은, 장하준 교수의 전작을 읽은, 그래도 자신의 경제 관점이 신고전주의적 관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게 될 책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타겟은 분명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아 경제학적 사유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경제 현상에 대해서 진보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원하는, 그런 독자에게는 의미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경제학적 현상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하고 있는 편이라, 혹여 신문의 경제란을 보면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책은 쉽게 읽히는 편입니다. 


4. 책의 인상 깊었던 부분

보상 원칙 (...) 사회 변화로 혜택을 본 사람들의 이익 총합이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크다면, 파레토 기준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사회는 개선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상 원칙은 일부 구성원에게 피해를 입히더라도 그 피해를 완전히 보상해 줄 수 있는 변화는 지지함으로써,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파레토 기준에 따른 극단적 보수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 근걸르 마련해 주었다. 물론 문제는 실제로 이러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12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딱 떠오르는 부분은, 한미 FTA에서의 농업 부분과 제조업 중 자동차 부분에서의 협상 장면입니다. 농업 부분에 대해서 미국에 양보하더라도 자동차 부분에서 더 많은 수익을 거두면 국가 전체적으로 이익이다라고 했던 이야기는 바로 위의 보상 원칙에 대한 이야기이겠지요. 그런데, 과연 자동차 부분에서 거둔 이익이 어떻게 농업 부분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국가 정책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듭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른다. 왜 그들에게 음식이 없는지를 몰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 부른다." (341쪽)
지금 읽고 있는 책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밥 굶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에게도 동일할 것이다. 이 가혹한 경쟁 구조를 고쳐서 치열한 교육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그 구조를 유지시켜 자신의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려 한다. - [병든 사회, 아픈 교육(조희연)] 중' 

결국 사회속에서 발생하는 격차에 대해서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시선이 암묵적으로 거부되는 그런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점점 '위기의 감수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제 상황의 해결을 개인이 하도록 등을 떠미는 사회의 모습이 점점 개인 간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양상으로 드러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헤크셰르-올린-새뮤얼슨 정리가 무역 자유화를 그토록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은 모든 자본과 노동이 동일(전문 용어로는 '균질')하고, 따라서 어느 산업 활동으로든 쉽게 이동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전문 용어로 말하면 생산 요소의 완벽한 이동성을 가정한 것이다. 
(앞부분) 그러나 현실에서는 보호 장치를 잃은 산업에 종사했던 대부분의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입은 피해는 복구할 수 없다. 생산 요소, 즉 자본과 노동은 그 물리적 성격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중략) 제철소에서 일하다가 재훈련을 받고 반도체 산업으로 직종을 전환한 사람을 몇 명이나 보았는가?
무역 자유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노동의 유연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자유 무역을 통해 비교 우위에 놓인 산업이 자연스럽게 육성되고 반대편의 산업이 자연스럽게 도태되면서 국가는 무역 자유화를 통한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교 열위에 놓인 산업에 종사하던 자본가와 노동자가 비교 우위 산업으로 자신의 직을 옮길 수 있다면 국가가 가장 효율적인 산업 구조를 가지게 되겠지요.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겠냐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자유 무역이 불러올 사회적 비용 - 노동 유연화에 따르는 재사회화 비용, 직업 훈련, 실업 급여 등 - 에 대해서는 '잘 될 거야'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부터 벗어버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를 특정 이론의 관점에서만 보면 특정 질문만 하게 되고, 특정한 각도에서만 답을 찾게 된다. 운이 좋아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못'이라면 손에 쥔 '망치'가 안성맞춤의 도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도구가 필요하다. (437쪽)
그래서 사람은 잡학다식해야합니다. 요즘들어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한 번 읽어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된 번역본을 구할 수 있다면,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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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 - 한 정신 의학자의 정신병 산업에 대한 경고
앨런 프랜시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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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4년 전이었던 듯 싶습니다. 저는 교대 4학년이었고, 저희 집 밑에 사는 그 남자 어린이는 초등학교 2학년 생이었습니다. 그 남자 어린이는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후에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뭐, 당연하지만 개구장이였고 어른들에게 늘 혼나는, 눈치없이 행동하는 그런 어린이였습니다. 

전학을 오고 나서 한 달이 조금 넘었던 것으로 기억이 납니다. 밑에 집 아이 엄마가 저희 집에 찾아왔습니다.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하고 왔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ADHD 검사를 받아보라고 말하였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제게, ADHD 진단을 받아야겠냐고 묻더군요. 

당연히 저는 펄쩍 뛰었습니다. 

우선 남자 어린이의 발달과정에 대해서 이해하고 있다면 남자 아이들의 정신 사나운 면은 아이의 성장 과정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두 번째로, ADHD 진단을 받아 약을 먹는 어린이들을 보아온 결과, 혹여라도 ADHD의 진단과 약의 투여가 아이에게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말하였습니다.

세 번째로, 아이가 전학온 지 한 달이 조금 지났기 때문에, 환경의 변화에서 오는 일시적인 현상일 수도 있으므로 조금 더 기다려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하였습니다. 

네 번째로, 선생님이 학교에서 아이를 편하게 다루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으신 것이라고 단정지어 말하였습니다. 학교 선생님이라면 ADHD 진단을 받아보라고 말하기 전에, 아이를 어떻게 케어할 것인지에 대한 교실에서의 대응 방안을 학부모에게 설명하는 것이, 전문가로서의 교사의 태도라고 말하였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어릴 때에는 ADHD 같은 것이 없었고, 그냥 산만한 아이들이 잔뜩 있었다는 옛 추억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만해도, 어릴 때 생활통지표에는 '산만함'이라는 말이 빠지지 않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했구요. '산만함'이라는 단어가 통지표에서 사라진 것인 중학교 2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되네요. 

밑에 집 아이 엄마는 제 말에 설득되어(!) 갔고, ADHD 검사는 받지 않는 것으로 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초등학교 5학년이고, 당연히 ADHD 증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 때 그 일이 있고 나서, 저는 경험적으로 제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경험적이라는 것은 언제나 오답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런 제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를 바랬고, 이번에 읽은 책인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은 제 생각이 그렇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주는 독서가 되었습니다. 


2. 

저자인 앨런 프랜시스는 미국의 정신과 의사입니다. 정신 질환을 진단하는 기준이 되는 '정신장애 진단 통계편람(DSM)'의 3판에 참여하였고, 4판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유명한 의사라고 합니다. 물론 그 유명함을 제가 확인할 수는 없겠습니다만, DSM은 미국에서 정신병을 진단할 때 주로 참고하는 색인 역할을 한다고 하니, 저자가 미국 정신의학 분야에서 꽤나 의미있는 인물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그런 저자가, 새로운 DSM-5의 출간을 우려섞인 시선으로 비판하는 책을 출간하였고, 그것이 바로 이 [정신병을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저자의 비판은 다음 단어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진단 인플레이션

저자는 자신이 참여한 DSM-3부터 그러한 진단 인플레이션을 막기 어려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신 의학자들은 욕심이 있었습니다. 누구나 척 보면 탁하고 정신병을 진단할 수 있는 색인 목록을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례를 모으고 병의 양상을 모으고 처방을 모아서 '기준에 기반한 진단법'을 하나의 편람으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정신 의학 분야는, 저자의 말로는, 어떤 분명한 치료법을 가진 분야가 아니라고 합니다. 내과나 외과처럼 눈에 보이는 증상을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정신 의학 분야에서는 분명한 정신병의 원인을 찾아내기도, 그것에 대해서 명확하게 처방하기도 어렵다고 합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정신병의 원인은 백인백색이라는 말입니다. 자라온 환경과, 인간 관계의 맥락과, 겪은 일들이 다 다르기 때문에 원인도 일목요연하게 정리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정신병의 진단과 처방에서 중요한 요소로 의사와 환자와의 관계 속에서 나오는 상담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병에 대한 '진단은 완전한 평가의 한 부분으로만 그쳐야 하는데도 이제 평가를 지배하게 되(117쪽)'어버린 일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의사들 - 특히 1차 진료기관의, 정신 의학을 전공하지 않은 - 은 편람을 참고하여 짧은 시간 - 책에서는 평균 7분이라고 말하고 있네요 - 이야기를 나눈 후, 뇌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정확하게 모르는 여러 항우울제, 신경약제를 처방해버리고, 그 약을 처방받은 환자들은 계속되는 약의 복용으로 심신이 망가져버리는 일이 발생한다고 저자는 꼬집고 있습니다. 

이런 진단 인플레이션에 불길을 끼얹은 것은 제약회사라고 저자는 강력하게 비판하고 있습니다. 약을 팔아 수익을 내야하는 제약회사가, 정신 의학 분야에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있으며, 그것이 약의 오남용으로 번지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특히, 10대 청소년들이 이러한 진단 인플레이션의 최대 피해자가 되고 있음을 저자는 안타까와하고 있습니다.
 
십대는 낮선 나라의 낮선 사람처럼 보인다. 아니면 이상한 나라에 떨어진 앨리스처럼 보인다. 아이에서 어른으로 변신하는 과정에는 혼란스러운 사건이 너무나 많이, 너무나 빠르게 벌어진다. 신체적 변화, 성적 성숙, 새로운 역할, 새로운 생각, 새로운 감정, 새로운 관계, 새로운 책임, 새로운 자유, 새로운 유혹. 세상을 새롭게 마주하는 십대는 어른들이 뻔히 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심란한 질문들을 던진다. 십대는 인생의 의미와 우주의 신비를 고민하고 종종 그것을 추상적인 방식으로 표현하여, 다음번 주택 할부금을 걱정하느라 바쁜 부모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십대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도 편하게 느끼지 못한다. 십대가 스스로 느끼는 정체성은 연약하고,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다. 존재론적 두려움, 기묘한 환상, 극단적인 감정, 근들거리는 자존감, 괴상한 옷차림, 일탈 행동이 넘친다. 쉼 없이 비디오게임을 하고, 음악, 영화, 취미 취향이 밉살스러울 때가 많다. 십대는 자신이 구박, 모욕, 따돌림, 오해를 받는다고 여기기 쉽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하지만, 도움을 거부한다. 친절한 관심을 적대적 간섭으로 오해한다. 부모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랑스러웠던 자식을 더는 이해할 수 없어서 당황하고, 최악의 미래를 상상한다. (중략)
좋은 소식은, 십대라는 경험이 보통 자기 제한적이고 일시적인 질병이라는 것이다. 혼란을 겪은 십대라도 대부분은 정상적인 어른으로 자란다. (291~293쪽)
어른들의 시선에, 10대는 무언가 문제가 있어 보이고, 저러면 안 될 듯 걱정하고, 근심과 갈등을 일삼다가 아이들을 어른의 잣대로 진단하기 시작하는 것이죠. 실은, 어른들도 그런 10대의 시절을 보냈으면서도, 아이들의 그런 모습은 도무지 용인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진단 인플레이션은 10대를 강하게 덮치고 있는 중입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학교 현장에서도 부쩍 많아진 질병들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너무나 쉽게 아이들을 ADHD로, 자폐로, 양극성 장애로 결론내리는 모습이 우리나라에서도 이제는 심심찮게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물론 시대가 변했긴 하지만, 30년 전, 제가 학교에서 학생으로 있을 때만 해도, 조금 산만하고, 말썽부리고, 개구장이라는 평을 받았던 친구들이, 아마 지금 이 시대로 왔으면, 분명히 여러 진단명을 달고 학교 안에서 생활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어엿한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제 친구들이, 만약에 지금 이 시대에서 초등학교 학생으로 생활한다면 심한 경우 약을 처방받고 하루 종일 맥없이 교실에 앉아 수업에 참여하는 둥 마는 둥 그러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굉장히 심각한 일입니다. 


2'

저자는 자신의 이런 견해가, 어떤 사람들에 의하여 함부로 사용되길 바라진 않고 있습니다. 즉, 그러한 정신병에 대한 진단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한 오용입니다. 

저자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말입니다. '조기 확인과 치료'를 통해, 정신적 어려움을 안고 힘들게 살아갈 수도 있는 이들의 짐을 덜어두는 것은 정신 의학의 기본적인 방향이라 말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 '진단 인플레이션'을 통한 무분별하고 무책임한 병명의 남발은 위험하다는 것이 저자의 확고한 주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의 미덕은, 책의 말미에 나온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확하지 않은 진단 때문에 고통받은 사례 및 적절한 상담과 투약으로 자신의 짐을 덜어낸 사례를 통해,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도록 진단하고 처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하여 저자는 독자들이 염두에 두면 좋을 지침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약하자면, 의사와 상담하되 여러 차례에 걸쳐서, 여러 의사와 하면 좋으며, 진단과 처방에 앞선 길고 따뜻한 상담이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 자신의 증상에 대해서 섣부른 자가 진단을 내려서도 안되지만, 의사의 처방을 스스로 살펴보고 분석하려는 태도도 잃지 않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이상 증세에 대해서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자연이 치유력을 발휘할 시간을 주고' 그것을 위해서 뻔히 도움이 되는 활동 - 충분한 운동과 수면, 좋아하는 일과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하기 등 - 을 하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3.

이 책의 영어 제목은 Saving Normal 입니다. 정상을 구하는 것. 책의 첫머리는 정상과 비정상에 대한 저자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정상은 비정상이 아닌 것이며, 비정상은 정상이 아닌 것이라는, 그런 보편적이고 초월적인 정의가 없는 상황에서, 계속 정상이 비정상에 의해 침식당하는 상황을 이 책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결국, 이 책을 읽어야 할 이들은 책임있는 진단을 수행해야 할 정신 의학 분야 종사자 및 제약업계 관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진단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한, 무지의 올무에 걸린 우리들은 언제라도 비정상의 경계선 안으로 깊숙이 빠져들어갈 위험이 있기 때문인 것이지요. 

한 편, 기왕에 이 책을 읽은 일반 - normal? - 인들은, 조금 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여유를 가질 수 있어야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더 편하게, 조금 더 자신에 대해서 여유있게... 참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4. 인상깊었던 부분들

정신 장애는 증상의 표출이 선명하고, 극심하고, 저절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만 진단해야 한다. 일상의 문제를 다루는 최선의 방법은 문제를 직접 해결하거나 문제가 사라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지, 정신 장애 진단으로 질병화하거나 약물로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약품 처방에 성급하게 의존했다가는 우리의 자연적 치유력이, 전통적으로 사용해 온 회복의 경로들이 단절된다. 가령 가족과 친구와 공동체에게 지원을 구하는 것, 인생에 필요한 변화를 가하고 지나친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것, 취미나 흥미, 운동, 휴식, 기분 전환, 속도 조절을 추구하는 것 등등. 스스로 문제를 극복하면 상황이 정상화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게 되고, 도움을 주었던 사람들과 가까워진다. 반면에 약을 먹으면, 설령 실제로는 그렇지 않더라도 어쨌든 남들과 다른 사람, 아픈 사람이 되어 버린다. 진정한 정신 장애를 겪는 사람은 약품 처방을 받아야만 항상성을 되찾을 수 있지만, 일상적인 문제를 겪는 사람에게는 처방이 항상성을 훼방할 뿐이다. (69쪽)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부분이,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을 잃고 슬픔에 빠져버린 사람에게 우울증 진단을 하고 약을 처방하는 것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물론 크지만... 그런 슬픔과 어려움은 실은 인간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그런 류의 것입니다. 물론, 이길 수 없는 슬픔이 몰려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야말로 의학의 도움이 필요하겠지만, 문제는 너무 쉽게 우울증 진단이 남용되고 있는 미국의 현실에 대한 저자의 비판이 잘 드러난 부분입니다. 

약으로 최고의 결과를 얻는 방법이 뭔가 하면, 사실은 그 약이 필요 없는 사람을 치료하는 것이다. 자연적으로 나았을 것 같은 사람들이 최고의 플라세보 반응률을 보이기 때문이다. (중략) 볼테르의 말을 빌리자면, 가끔 의학은 자연이 병을 치료하는 동안 환자를 기쁘게 하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161쪽)
플라시보 효과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가끔, 사람에게는 정신적인 만족이 육체적인 회복을 거두게 하는 부분도 있을테니까요. 감기에 대한 격언이 이를 잘 증명하고 있지 않습니까. '감기약을 먹으면 7일만에 낫고, 감기약을 먹지 않으면 1주일 뒤에 낫는다'는. 물론 감기약이 플라시보는 아니겠지요. 먹으면 증세를 완화시키면서 조금은 덜 힘들게 해주는 부분도 있으니까요. 그러나 어떤 경우에는 약을 먹고 나면 꼭 괜찮아지는 것 같은 그런 느낌도 있잖습니까?

그러나, 정신병에서의 플라시보는 좋지 않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입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플라세보 효과가 일으키는 심각한 문제가 하나 있기는 하다. 그 때문에 사람들이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증상에 대해서 사실은 필요하지 않은, 게다가 가끔은 해로운 약을 비싼 돈을 주고 계속 사 먹는다는 것이다. (156~157쪽)' 정신병에 쓰이는 약이 가지고 있는 부작용과 해로움은, 아마 감기약이 가지고 있는 부작용과 해로움에 비한다면 새발의 피가 되겠지요. 먹지 않아도 나을 수 있다면, 정신적 어려움은 먹지 않아야 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주의력 결핍 장애가 날뛰다 (214쪽 이하)
미국에서도 ADHD의 과진단이 문제가 되고 있는 듯 합니다. ADHD에 대해 저자는 6쪽에 걸쳐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증상은 일시적일 때도 많다. 가족, 또래 집단, 학교에서 받은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성 증상인 경우이다. 아이가 덜 성숙해서 그럴 때도 있다. 물질 남용이나 다른 정신 장애가 문제일 때도 있으므로, 그 경우에는 관찰 기간 동안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문제가 지속적이지만 손상이 심각하지 않다면, 다음 단계는 교육이나 심리 치료를 지향해야 한다. 확실한 진단과 투약이라는 최후의 단계는 이전 단계들에서 적절히 반응하지 않은 아이에게만 쓰도록 미뤄야 한다. (중략) 서둘러 진단하고 무신경하게 약을 처방하라는 제약 회사의 메시지가 논의를 압도하여, 그저 덜 자란 정상적인 아이들을 조기부터 약을 복용하는 정신 질환자로 바꾸고 있다. (219쪽)'

참... 첫 머리에 제가 겪은 사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니, 참 화가 납니다. 멀쩡한 초등학교 2학년 짜리 남자 어린이를, 1달 조금 넘는 기간동안 겪어본 교사가, 우리나라의 상황에서라면 뻔히 그 결과가 예상되는, ADHD 진단을 받아보라는 말을, 학부모에게 쉽게 할 수 있을까 싶습니다. 제가 교사라서 더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라도 진단과 투약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할 것입니다. 진단과 투약은 아이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스스로에게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낙인찍어버리는 그런 결과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5. 정신 의학과 사교육

정신 장애에 관한 한, 지금은 최선의 시절이자 최악의 시절이다. 왜 최선인가 하면, 효과적인 치료법과 실력 있는 의사가 많기 때문이다. 왜 최악인가 하면, 치료가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과잉 치료를 받고 치료가 필요한 사람은 치료를 못 받는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실력 없는 의사가 부정확한 진단과 부적절한 치료를 제공하는 경우도 너무 많다. 여러분은 우리의 정신 보건 체계가 자동적으로 여러분에게 유효한 보살핌을 제공하리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좋은 선택지와 나쁜 선택지가 마구 섞여 제공되며, 체계 자체도 잘 조직된 상태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중략)
그렇다면 기회와 위험이 결합된 이 상황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똑똑하고 정보를 많이 아는 소비자들이 으례 갖춘 회의적인 태도, 이른바 '구매자 경각심'을 권하고 싶다. 치료를 시작할 때 여러분은 자동차나 집을 살 때, 혹은 친구나 배우자를 고를 때와 똑같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중략) 절대 함부로, 혹은 수동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 (333~334쪽)
위 인용부분에서, '정신 장애', '정신 보건 쳬계' 등의 단어에 '사교육'이라는 단어를 넣어 읽으면, 묘하게 우리나라의 현실과 오버랩됩니다. 

우리나라도, 실은 지금 사교육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으니까요. 사교육이 필요하지 않은 학생은 과잉 사교육을 받고, 사교육이 필요한 학생은 사교육을 못 받는 사례가 저희 반 안에도 있으니까요. 사교육의 좋은 선택지와 나쁜 선택지가 마구 섞여 제공되고 있으며, 사교육 체계 자체도 잘 조직되었다고 보기 어려우니까요. 

그러면서, 사교육을 선택할 때에는 함부로, 수동적으로 선택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지요. 아이의 이상 행동 - 점수가 조금 떨어지면 - 에 즉각 학원을 옮기는 것으로 반응하는 학부모가, 아직도 꽤나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옮기는 학원이나 과외가 오랜 고민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제가 십 수년동안 과외를 하면서 늘상 겪었던 일이니까요. 

이 책에는 우리나라의 사교육이 처한 문제의 본질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언급이 많습니다. 현상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다고 할 수 있을까요? 사교육을 고민해야하는 공교육 교사로서, 여러 생각을 할 수 있는 독서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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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은 넓다 - 항구의 심장박동 소리와 산동네의 궁핍함을 끌어안은 도시
유승훈 지음 / 글항아리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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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이 책은, 이번 5월 연휴, 부산 2박 3일을 계획하면서 읽어보려고 샀던 책입니다. 

5월 연휴 기간에 부산에는 가지 못했었고, 이 책은 부산 여행에는 직접적인 도움이 되지는 않는 책입니다. 


1. 

그런데 인문학이란 무엇일까? 문학, 사학, 철학을 통칭하는 단어가 인문학일까? (중략) 인문학을 강조하는 정치가, 기업인들의 말을 잘 살펴보면 그들 대부분은 '시장과 경제의 논리'에 서 있다. 즉 경제 효용의 시각에서 인문학을 보고 있다. 그들이 인문학을 주목하는 이유는 인문학이 창의력과 아이디어를 샘솟게 하고, 이것이 곧 새로운 상품 개발과 이윤 획득에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경영과 이윤을 뒤따르는 인문학이 그 자체의 존재 가치를 지닐 수 있을까?
인문학은 사람을 중심에 두고 생각한다. 즉 사람의 생각과 말, 시간과 공간을 연구하면서 궁극적으로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는 인간학이다. 그러므로 인문학이야말로 휴머니즘을 지향하는 학문이며, 인문학자라면 소외된 사람들의 생활과 문화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중략)
인문학은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다. (8~9쪽)
이 책은 저자의 '인문학'에 대한 정의대로, 사람을, 특히 범인(凡人)을 그 중심에 놓고 쓴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평범한 사람들 중에서도, 특히 부산에 사는 사람들의 모습에 초점을 두고 쓴 책입니다.

부산은 참 묘한 곳입니다. 일본과 가까운 탓에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기도 했고, 6.25 때에는 임시수도로 기능하면서 전국의 - 심지어는 북한의 - 사람들이 모두 모여드는 공간이기도 했습니다. 어찌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에 의해서 다양한 모습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드러났던 곳이 부산이라는 도시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모습이, 지금의 부산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센텀시티와 감천동 같은 공간이 한 도시 안에 펼쳐지는 곳. 그 나름대로의 모습을 인정하고 용인하면서 공존하여 가는 곳. 부산이라는 도시야말로 인문학적으로 한 번 쯤은 살펴볼만한 공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4년 전에 부산의 2박 3일이 그래서 기억에 새롭습니다. 화려하기 이를데 없는 해운대 한 쪽에 자리잡은 단촐한 해운대역의 느낌이라든지, 동해남부선을 타고 다니던 부산 도심의 다양한 풍경들. 보수동 헌책방 거리의 고즈넉함을 건너면 자갈치 시장이 주는 활기참과 맞닥뜨리는 그런 느낌들. 부산이라는 도시가 주는 매력은 그런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이 책에서는 그러한 부산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부산 밀면, 노래방과 찜질방은 여러 모양들이 섞여들어 하나의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어 향유하는 부산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실은 어쩔 수 없는 것이었는데... 그럴 수 밖에 없었는데...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낸 부산의, 혹은 부산 범인(凡人)들의 삶의 모습들을 예찬하고 있다고나 할까요?


2. 

그러나, 대부분의 이야기들은, 실은 부산이 아닌 곳에서도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책을 주욱 읽어내려가다보면, 저자의 사람사는 이야기는 굳이 부산을 배경으로 하지 않아도, 어디를 배경으로 하더라도 통용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말씀입니다. 

저자의 사람사는 이야기가 사람사는 모양을 그만큼 잘 아울렀다고 할 수도 있고, 차라리 부산에만 한정하지 않고 조금 더 넓은 공간을 뒤에 두고 했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한. 가령 부산 문화의 장에서 소개한 조내기 고구마의 이야기나, 온천 이야기, 혹은 해수욕장 이야기는 굳이 부산을 배경으로 두지 않아도 무방한 이야기였으리라 생각합니다. 

같은 의미로, 산동네 - 달동네가 아닌 - 이야기나 동해안 별신굿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그런 뜻에서 '바운스 조용필, 바운스 부산'의 제목이 달려 있는 절은... 부산의 리바운딩을 바라는 저자의 따뜻하다못해 조금 부담스러운 정도의 부산 애정이 드러나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특별히 저자가 부산에서 나서 자란 부산 토박이도 아닌데... 조금은 생경한 느낌이 드는 부분이 몇몇 군데 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드는 아쉬움은, 차라리 부산에서만 가능한 이야기, 예컨대 위에서 언급하였던 부산 밀면 이야기나, (절)영도 및 영도 다리 이야기, 혹은 조내기 고구마의 이야기를 하면서 특별히 시배지로 추정되는 영도 이야기를 조금 더 강조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기왕에 [부산은 넓다]라는 제목을 달았다면, 넓은 부산에서'만'의 이야기를 조금 더 강조하였으면 어땠을까라는 느낌이 든달까요?

결국 저자는 자신의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 - 인문학적 사유 - 를 책에 담기 위해 부산을 배경으로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부산이 중심인 책은 아니다는 의심이 책을 읽는 중간 중간에 번뜩 번뜩 듭니다. 


3. 

그렇다고 할지라도, 이 책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서울 토박이로 살아온 저 같은 이에게는 너무나 먼 도시인 부산이라는 도시가, 조금은 더 가깝게 다가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많은 여행 관련 책들이 있습니다. 여행지를 소개하고, 맛집을 알려주고, 교통편과 숙소를 소개해주는 그런 책들이 대부분인 가운데, 도시의 속내를 살펴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이런 책들을 찾아서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은 꽤나 행운인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부산에 방문하게 된다면 - 네 번째의 여정이 되겠네요 - 이전과는 조금 더 다른 방문이 되리라 기대할 수 있는 독서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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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1927, 미국 - 꿈과 황금시대
빌 브라이슨 지음, 오성환 옮김 / 까치 / 2014년 7월
평점 :
품절


1. 

이 책을 고른 까닭은, 작가인 빌 브라이슨 때문입니다. 빌 브라이슨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라는 책을 지은 작가입니다. 이 책을 굉장히 인상깊게 읽은 까닭에, 저자의 최신작을 믿고 구매할 수 있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인상깊었던 까닭은, 저자가 과학에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꽤나 읽을만한 - 물론 고등학교 수준의 과학 지식을 가진 이에게 말이죠 - 과학책을 썼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과학적 이론과 과학자에 대한 책입니다. 유명한 발견과 이론을 소개하고, 그를 둘러싼 과학자들을 이야기하는. 그러나 빌 브라이슨은 과학자는 아닙니다. 유시민 씨가 자신을 지칭하며 썼던 단어인 '지식소매상'에 어울리는. 그럼에도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너무 깊지 않게 과학사와 과학적 발견, 과학자를 소개하면서도, 핵심적인 이야기는 놓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가지도록 책을 썼습니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이었지만, 읽는 내내 흥미를 북돋게하는 이야기들을 '끊임없이' 쓰는 그런 작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빌 브라이슨의 신작인 [여름, 1927, 미국]을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2. 

이 책은, [거의 모든 것의 역사]처럼 그렇게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찰스 린드버그 이야기를 하다가, 대서양 횡단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대서양 횡단 이야기를 하기 위해 대서양 횡단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그 중에 특이할만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빠졌다가, 그 이야기와 관련된 이야기로 또 나가고... 그러다가 다시 찰스 린드버그에게로 돌아오는. 천상 이야깃꾼에게 어울리는 그런 글솜씨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굉장히 재미나게 책이 읽히는 편이고,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금새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이야기의 주된 흐름은,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을 통해 이어집니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은 당시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계기였다고 저자는 생각하는 듯 합니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로 인해서 린드버그의 비행이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규모의 숭고하고 자연스럽고 화합을 유도하는 기쁨의 순간을 이 세상에 실현했다는 것만을 말할 수 있을 뿐이다. (516쪽)
그러한 거대한 흐름은, 미국이라는 사회가 이전에는 가질 기회가 없었던 일체감이라는 감정을 준 하나의 계기라고 저자는 받아들인 듯 싶습니다. 이 책은 5월의 미국에서 9월의 미국까지,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의 성공과 거대한 퍼레이드의 열풍을 큰 줄기로 하여 세세한 미국의 일상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복원해두고 있습니다. 


3. 

이런 책이 즐거운 이유는, 지식의 조각을 꿰어낼 수 있는 틀을 준다는데 있을 것입니다. 

야구를 좋아하니 베이브 루스를 알고 있고,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단독 횡단이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간단하게나마 알고 있으며, 알 카포네와 금주령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영화에서 본 적이 있고, 1929년의 대공황에 대해서도 유난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이 책은 이 모든 이야기들을 1927년 위에서 줄줄 엮어서 제공하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저자의 생각들이 드러나 있지만, 기본적으로 이 책은 지적 유희를 위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즘 역사 관련 책들이 이런 방식으로 쓰여지는 것들을 많이 봅니다. 시대사에 대한 것도 아니요, 국가를 조명하는 것도 아닌, 특별한 이야깃거리를 가지고 이런저런 역사적인 사건들을 꿰어맞추는 것. 저자의 역사적 시선이 그만큼 탁월해야 하겠고, 저자의 역사적 지식도 그만큼 풍부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쓰여진 책은 어쨌든 독자를 만족시키겠지요. 읽을 거리가 넘쳐나니까요. 


4.

다만... 이 책은 베이브 루스와 루 게릭을 모르거나, 대서양을 건너가는 것이 왜 그리도 중요한지에 대한 관심이 없거나, 혹은 1920년대의 미국 사회와 생활에 크게 관심이 없는 독자라면 피하는 것이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전형적인 킬링 타임용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 치고는 분량은 좀 많은 - 500쪽이 조금 넘는 - 편이기도 하구요. 

다만, 미국과 미국의 역사에 관심은 조금 있는 편이라, 1920년대, 대공황 직전의 미국 사회의 가장 흥청거렸던 시기에 대한 느낌을 강하게 받을 수 있어서 저는 좋았습니다. 

생각해보니, 인상깊게 보았던 뮤지컬 '시카고'도 이 시기 직전을 배경으로 하였다고 할 수 있겠네요. 1927년의 미국의 여름은, 미국 사회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있는 시기였다고 생각했기에, 저자는 이 당시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겠지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이 책을 출간한 까치는, 아마도 예전 까치글방 출판사이겠지요? 얼마 전에 문발리 헌책방 골목에서 까치글방 책 중 절판본에 8만원, 10만원 택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경악했던 기억이 있는데... 까치글방은 좋은 책들을 많이 내는 출판사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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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부터, 이용하는 온라인서점을 알라딘으로 바꾸었습니다. 다른 곳을 이용하다가... 독서인을 위한 알라딘의 여러 편의가 제게 도움을 주는 듯 싶어, 한 10년 이용하던 곳을 떠나서 알라딘에서 구매하기 시작했습니다. 앞으로도,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모여지내기 좋은 곳으로 계속 만들어 가 주세요. 기대하겠습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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