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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의 경제학 강의 (반양장) - 지금 우리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 교과서
장하준 지음, 김희정 옮김 / 부키 / 201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최근에 읽었던 경제 관련 책은 [맨큐의 경제학] 이었습니다. 시간이 그다지 많지 않아 아직 3분의 1 밖에는 읽지 않았지만... 대충 경제학에서 중요하게 말하는 개념과 아이디어, 한계 등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이야기들이 무엇인지는 알게 되었습니다.
[맨큐의 경제학]을 읽으면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끊임없는 사고 실험이었습니다. 아무래도 경제학적 개념이나 양상을 소개해야되다보니, 변인을 강력하게 통제하면서 굉장히 단순화된 상황을 주고는 그 안에서 관련된 경제학적 개념을 끌어내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기억에 남는 맨큐 교수의 이야기는 이런 것이 있었습니다. 리카도의 비교 우위를 소개하는 장이었는데, 미국과 일본에서 농작물과 자동차만 생산 가능하다고 할 때, 미국은 농작물에 대해서 일본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지니까 일본이 자동차를 생산하게 하고 미국이 농작물을 생산하도록 해야한다는 그런 예시였습니다. 과연 현실에서도 맨큐 교수는 그렇게 이야기할까요? 아마도 아니겠지요. 아마 이런저런 이야기를 덧붙이면서, 현실에서도 미국이 자동차를 생산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누가봐도... 미국이 농업 국가로 머물기보다는 제조업 중심의 국가가 되길 바랄테니까요.
그렇다면 리카도가 이야기한 비교 우위론이 현실에서 어떻게 적용될 수 있는가.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경제학 관련 책은 어떤 것을 읽어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안 중에 하나가 - 어떤 분들에게는 정답지는 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 [장하준의 경제학 강의]라는 책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합니다.
2.
잘 알려진대로, 장하준 교수는 제도경제학자입니다. 물론 저는 경제학 문외한이라 제도경제학이 어떤 것인지 자세하게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장하준 교수의 신작은 제도경제학에 대한 이야기만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자신의 지향점은 분명하겠지만, 이 책에서는 가급적이면 여러 경제학적 관점에서 현상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자세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물론 혹자는, 예컨대 제도경제학자의 시선으로 신고전학파의 논리를 말한다는데에서 불분명한 관점만 제공되지 않겠냐라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그렇게 다양한 시선을 제공하려고 노력하는 책은 없었습니다. 많은 책을 읽은 것은 아니었지만, 심지어는 장하준 교수의 전작들도 관점은 명확한 편이었습니다. 그러니 이 책은 다양한 관점으로 경제학적 현상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 점에서 의미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한 편으로, 책의 두께정도의 깊이만을 기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조금 더 두꺼웠다면, 조금 더 깊이 있는 서술을 기대할 수 있었겠지요? 대신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접근성을 얻었습니다. 책은 쉽게 읽힙니다. 많은 숫자들을 가지고 와서, 꽤나 어려울 이야기들을, 그래도 쉽게 쉽게 써내려갑니다. 막상 독서를 끝내고 나면, 기억 속에 남는 것은 얼마 없지만, 어쨌든, 경제학 개념과 현상을 가깝게 접할 수 있다는 것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기회는 아니겠지요.
3.
다만, 이 책의 독자층이 누가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모호한 측면이 있습니다. 저자인 장하준 교수는 이미 '진보적 경제학자'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습니다. 진보라는 의미의 적확함에 대한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필요하겠지만, 어쨌든 대중에게 장하준 교수의 위치는 왼쪽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을 '보수적'인 독자들이 찾을리는 만무합니다. 아니, 과연 일반 독자들이 이런 일반론적 경제학을 다룬 책을 읽으려고 할까요?
결국 이 책은, 장하준 교수의 전작을 읽은, 그래도 자신의 경제 관점이 신고전주의적 관점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읽게 될 책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래서 타겟은 분명합니다. 경제학을 전공하지 않아 경제학적 사유를 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경제 현상에 대해서 진보적 관점에서 바라보기를 원하는, 그런 독자에게는 의미있는 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러 가지 경제학적 현상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면서도 명료하게 하고 있는 편이라, 혹여 신문의 경제란을 보면서 어려움을 겪는 분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책이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책은 쉽게 읽히는 편입니다.
4. 책의 인상 깊었던 부분
보상 원칙 (...) 사회 변화로 혜택을 본 사람들의 이익 총합이 손해를 본 사람들에게 보상하고도 남을 정도로 크다면, 파레토 기준에 어긋난다 하더라도 그 사회는 개선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보상 원칙은 일부 구성원에게 피해를 입히더라도 그 피해를 완전히 보상해 줄 수 있는 변화는 지지함으로써,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파레토 기준에 따른 극단적 보수주의에서 벗어날 수 있는 이론적 근걸르 마련해 주었다. 물론 문제는 실제로 이러한 보상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굉장히 드물다는 사실이다. (128쪽)
이 부분을 읽으면서 딱 떠오르는 부분은, 한미 FTA에서의 농업 부분과 제조업 중 자동차 부분에서의 협상 장면입니다. 농업 부분에 대해서 미국에 양보하더라도 자동차 부분에서 더 많은 수익을 거두면 국가 전체적으로 이익이다라고 했던 이야기는 바로 위의 보상 원칙에 대한 이야기이겠지요. 그런데, 과연 자동차 부분에서 거둔 이익이 어떻게 농업 부분의 손실을 만회할 수 있을지에 대한 국가 정책적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점이 듭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음식을 나눠주면 사람들은 나를 성인이라 부른다. 왜 그들에게 음식이 없는지를 몰으면 사람들은 나를 공산주의자라 부른다." (341쪽)
지금 읽고 있는 책 중에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자기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고 '밥 굶지 않고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어느 부모에게도 동일할 것이다. 이 가혹한 경쟁 구조를 고쳐서 치열한 교육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실제로 많은 부모들이 그 구조를 유지시켜 자신의 부를 자식에게 물려주려 한다. - [병든 사회, 아픈 교육(조희연)] 중'
결국 사회속에서 발생하는 격차에 대해서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시선이 암묵적으로 거부되는 그런 사회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점점 '위기의 감수성'을 잃어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문제 상황의 해결을 개인이 하도록 등을 떠미는 사회의 모습이 점점 개인 간의 격차를 심화시키는 양상으로 드러나도록 하고 있습니다.
헤크셰르-올린-새뮤얼슨 정리가 무역 자유화를 그토록 긍정적으로 그릴 수 있는 것은 모든 자본과 노동이 동일(전문 용어로는 '균질')하고, 따라서 어느 산업 활동으로든 쉽게 이동할 수 있다고 가정하기 때문이다. 전문 용어로 말하면 생산 요소의 완벽한 이동성을 가정한 것이다.
(앞부분) 그러나 현실에서는 보호 장치를 잃은 산업에 종사했던 대부분의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이 입은 피해는 복구할 수 없다. 생산 요소, 즉 자본과 노동은 그 물리적 성격이 고정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중략) 제철소에서 일하다가 재훈련을 받고 반도체 산업으로 직종을 전환한 사람을 몇 명이나 보았는가?
무역 자유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저자는 노동의 유연성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고 있습니다. 자유 무역을 통해 비교 우위에 놓인 산업이 자연스럽게 육성되고 반대편의 산업이 자연스럽게 도태되면서 국가는 무역 자유화를 통한 이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서 비교 열위에 놓인 산업에 종사하던 자본가와 노동자가 비교 우위 산업으로 자신의 직을 옮길 수 있다면 국가가 가장 효율적인 산업 구조를 가지게 되겠지요. 그러나 그게 말처럼 쉽겠냐는 것이 저자의 이야기입니다. 자유 무역이 불러올 사회적 비용 - 노동 유연화에 따르는 재사회화 비용, 직업 훈련, 실업 급여 등 - 에 대해서는 '잘 될 거야'라는 낙관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부터 벗어버려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망치를 쥔 사람은 모든 것을 못으로 본다."라는 말이 있다. 어떤 문제를 특정 이론의 관점에서만 보면 특정 질문만 하게 되고, 특정한 각도에서만 답을 찾게 된다. 운이 좋아서 해결해야만 하는 문제가 '못'이라면 손에 쥔 '망치'가 안성맞춤의 도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면 다양한 도구가 필요하다. (437쪽)
그래서 사람은 잡학다식해야합니다. 요즘들어 하이에크의 [노예의 길]을 한 번 읽어볼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제대로 된 번역본을 구할 수 있다면, 한 번 읽어봐야겠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