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레놀은 생존 자체가 최우선의 목적이 되고 있는 이 험악한 북부 땅에서 꿈을 이루려고 모여드는 사람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것이 아무리 반나절 동안의 전격적인 발굴이라하더라도 이곳에 모여들기 위해 사람들이 소비해야 되는 시간은 결코 짧지 않다. 또한 그들이 포기하거나 잠시 방기해 두었어야할 일들 또한 작지 않을 것이다.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수 있는 롭스 같은 자가 예외적인 경우일 뿐,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하루를 버티는 것이 힘든 시기일 것이다. 오레놀은 그런 생각을 어떻게 표현할지 잠시 고민했다. - P3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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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2 (양장) - 숙원을 추구하는 레콘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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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전반부를 마무리짓는 권이다. 3권부터는 시기가 급격하게 건너뛴다.

1권에서 벌려둔 다양한 음모와 모략의 귀결을 찾고, 이를 토대로 새로운 사건의 흐름을 전망하게 하는, 1부의 마지막이라고 봐야겠다.

전작인 드래곤 라자, 폴라리스 랩소디 처럼 눈물을 마시는 새도 정치 시스템에 대한 틀을 베이스에 깔고 있다. 왕이 무엇인가. 나가의 수호자들이 자신의 여신을 감금하며 신의 힘을 함부로 빌려쓰는 것으로부터 한계선 북쪽과 남쪽의 봉건적 시스템은 급격하게 왕국의 시스템으로 전화한다. 그렇게보자면, 눈물을 마시는 왕에 대한 이야기인 이 책은, 인간의 정치제도에 대한 음모와 모략, 그리고 이상향을 다룬 책이라고 봐도 무방할 듯 하다.

2권에서는 유료도로당이라는 집단이 등장한다. 아마도 이 유료도로당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집단으로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지 않나 싶기도 하다. 삶의 목적을 가지고 길을 걷는 이들의 의지를 통행료로 환원할 뿐, 걷는 길을 평가하지는 않는. 통행료를 낼 수 없는 이들의 처지를 함부로 동정하여 원칙을 훼손하진 않지만 그 길 위에서 함께 걷는 이들이 동행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 어찌보면 타자 님은 고대 공동체에의 이상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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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도로당은 사람임을 판단하기 위해, 품성도 지성도 감성도 고려하지 않는다. 오로지 통행료를 지불할 수 있는가 없는가로 사람임을 판단한다. 물신주의라고? 아니다. 오히려, 우리가 품성과 지성과 감성을 제멋대로 평가하여 저지를 수 있는 판단의 삿됨을 막는 것이다. 사람은, 그저 사람이기만 하면 된다. 그들이 어떤 품성을 가지고 있고 얼마나 지성 넘치며 감성으로 가득찼는지는 중요치 않은 것이다. 우리가 그런 것들로 사람을 바라보기 시작할 때, 본연을 잃고 그저 도구로써 사람을 바라보게 될 뿐이다.

그래서 유료도로당은 길을 걷는 목적을 평가하지 않는다. 그저 값에 맞는 비용을 지불할 수 있다면,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그렇기에 신을 잃은 불쌍한 이들도 동편 한 닢에 그들의 노정을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사모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겼던 것은 유료 도로당의 사람을 보는 관점이었다.
이곳에서는 사람을 사람으로서 존재하게 하는 모든 요소가 무시되고 있었다. 여행자의 품성과 지성과 감성 따위는 유료 도로당에게 조금도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여행자가 통행료를 지불하느냐 지불하지 않느냐의 이분법만이 존재했다. 사람에 대한 가장 큰 모욕일 수 있는 그 장면에서, 그러나 사모는 동시에 정반대의 의미도 발견했다. 여행자의 외모와 종족과 고향같은, 어떤 사람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본질적으로 사람다움과는 별 관련이 없는 것들 또한 유료 도로당의 고려 대상이 되지 않았다.
보좌관은 말했다. ‘저 두억시니들은 통행료 안 냈다.‘
사모는 그 말을 뒤집어 보았다. ‘통행료를 내면 저들은 여행자다. - P114

"여행자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길을 걷는 자들입니다."
"그럼 우리 유료 도로당은 무엇인지 말해 주겠소?"
"우리는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누구를 위해?"
"자신의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보좌관은 천천히 케이건에게 고개를 돌렸다.
"케이건 드라카. 저 두억시니들은 목적없이 쏟아져 아무렇게나흐르는 흙탕물이 아니오. 당신들을 쫓는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있소. 그리고 우리는 자신의 목적을 찾아 길을 걷기로 결심한 사람들을 위해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오. 그 목적이 무엇이든 상관없소. 우리는 그들의 목적이나 꿈을 평가할 수 없고 그러고 싶지도 않으니까. 그래서 우리는 그 의지를 통행료로 확인하오.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우리가 준비한 길을 걸을 수 없소. 그들은 다른 길을 찾아야 할 거요. 이건 말이오, 케이건, 완전히 저 두억시니들과 우리의 문제요. 저 두억시니들이 당신들을 쫓는다고해서 마치 크게 배려해 준다는 듯이 그냥 통과시키느니 말라느니 말할 권리가 당신네들에겐 없소. 그것은 참견이오. 그것도 오만한." - P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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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 1 (양장) - 심장을 적출하는 나가
이영도 지음 / 황금가지 / 200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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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을 마시는 새가 연재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간다. 작가는 서른의 나이에 이런 이야기를 쉴 새 없어 쏟아 내었었다. 이제 하이텔도 없어지고, 작가의 나이도 쉰이나 되었지만, 이야기의 스케일과 짜임새는 지금 다시 읽어도 정말… 감탄을 금할 길이 없다.

이영도 작가의 글은 끝까지 읽어야 그 규모가 한 눈에 들어온다. 벌써 너댓번의 독서라 이야기의 내용을 다 알고 있는 터, 그래서인지 작가가 벌려두는 갈등과 사건들이 이후에 어떻게 합치되고 분기할지를 떠올리며 더더욱 소름돋곤 한다.

왕이 없던 시대, 왕을 소망하는 자들의 이야기가 첫 권을 장식한다. 신을 죽이려는 계획을 벌이는 자들에 맞서 신을 잃은 이들의 (섣부른) 슬픔과 분노가 권의 끝을 달군다.

작가의 표현을 빌어 1권의 감상을 마무리 해 본다.

많은 이들이 오해하지만 소망은 사라지기는 할지언정 절대로 충족되지는 않는다. 불이 언제나 더 많은 땔감을 소망하지만 땔감을 공급한다고 해서 불이 충족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땔감이 공급되면 불은 더욱 커진다. 소망 또한 마찬가지다. (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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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이들이 오해하지만 소망은 사라지기는 할지언정 절대로 충족되지는 않는다. 불이 언제나 더 많은 땔감을 소망하지만 땔감을 공급한다고 해서 불이 충족되지는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땔감이 공급되면 불은 더욱 커진다. 소망 또한 마찬가지다. - P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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