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끝의 온실
김초엽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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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스포일러를 배제하는 방식으로 감상평을 두드리지만, 그래도 혹시 이야기를 읽지 않으셨다면, 감상도 읽지 않으시는 것을 추천.




워낙 핫한 작가라, 이런저런 소설을 다시 읽어봐야지 결심한 마당에 꼭 읽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집어 들었습니다.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이야기들은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요소들입니다. 더스트 시대. 모든 것을 향해 뻗어가고자 하던 인간을 제한된 공간에 가두어버리는 아이러니. 그리고 더 이상 뻗어나가지 못해서인지, 서로의 욕망이 단호하게 충돌하며 결국은 멸망을 향해 가던 인간의 무리들. 프림 빌리지 속에서 누군가는 공동체의 이상을 발견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인간 군상의 한계를 절감했을 수도 있습니다. 인간의 미래를 공동체적 이상향에 있다고 생각하는 저로써는 조금 더 고민해 볼만한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져서 조금 더 주목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레이첼과 지수(희수)의 묘한 엇갈림. 과연 지수의 패턴 조절이 레이첼의 감정을 만든 것일까. AI가 한창 메인 스트림으로 올라오는 이 묘한 시기에, 스필버그의 'A.I.'처럼, 과연 모든 것이 트랜지스터의 연결로 이루어진 레이첼 속에 있는 인간을 향한 마음은 레이첼의 것인가, 패턴의 영향인가.


SF가 만들어 주는 이야기 울타리의 확장 속에서, 결국 우리가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는 '지금 우리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더스트가 모두 지나가 한 때의 이야깃 거리가 되어버린 시대에 한 연구원(아영)이 이상 현상을 발견하고 이의 원인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만난 이야깃 속 이야기들이 주된 줄거리를 이어갑니다.


그러나, 이야기의 얼개가 단선적이라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아마라와 나오미도, 레이첼과 지수도, 그들이 만나고 겪는 관계 속에서 그들은 한 방향을 바라볼 뿐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히려 이럴 요량이면 인물 바깥의 이야기에 조금 더 힘을 주었어도 되지 않나 싶은. 프림 빌리지의 야닌과 대니를 그렇게 보내버리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이는 레이첼과 지수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고 아마라와 나오미에 대한 이야기도 아닐 뿐더러, 프림 빌리지에 대한 이야기도 아니게 되어버리는. 결국 이야기는 프림 빌리지에서 마무리되지만, 그리고 프림 빌리지가 지닌 공동체의 이상이 인류의 생존에 기여하지만, 결국 그 이상에 공감하지 않는 이들은 배제시켜버리는 이상이라면 이를 이상향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싶기도 합니다.


아쉬움은 이야기가 전개되는 방식에도 있습니다. 아영이 모스바나를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인물들이 들려주는 진술 - 액자식 구성 - 로 이야기가 흘러가는데, 아영이 만난 아마라와 나오미도, 지수의 진술도, 그저 흘러가는 이야기 위에 아마라/나오미가, 지수가 얹혀진 것은 아닌지 하는 의문도 듭니다. 굳이 다른 입을 빌어서 내러티브를 펼쳤는데, 그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 굳이 아영의 서사를 만들었는데 흘러가는 이야기 속에서 아영은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아버린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럼에도, 김초엽 작가의 작품을 또 읽어 볼 생각입니다. 이야기를 흘려보내는 방식에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양한 생각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이야기도, 덮고 나서의 아쉬움이 좀 있지만, 읽는 내내 흐름에 올라타 집중하며 읽을 수 있었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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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은 어떻게 문명을 만들었는가 - 인간의 문명과 역사를 이끈 놀라운 수학에 관하여
마이클 브룩스 지음, 고유경 옮김 / 브론스테인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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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 우리 생활에, 혹은 문명에 끼친 영향에 대해 나열하는 책은 꽤 많지만, 이 책은 그 책들 중에서도 더 성공적인 듯 싶다.


많은 책들이 다루는 이야기들을 딛고, 이 책은 한 걸음 씩 더 나아가고 있고, 그리고 그 한 걸음은 조금 더 통찰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사실, 이런 류의 책은 너무 많다. 피타고라스니 탈레스니 뉴턴과 라이프니츠 중 누가 먼저니 가우스니 페르마니 등등등. 그리고 이야기들도 거의 대동소이한 편이다. 그래서 항상 읽으면 결국 같은 이야기인데 왜 읽었나 싶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 책은 꼭 한 발자국씩 더 나아가서 좋았다. 로그(지수)와 허수에 대해 한 걸음 더 나아간 것도 좋았고, RSA에 대해 조금 더 서술한 부분도 좋았다. 아니, (비록 번역을 거쳤지만) 이런저런 설명을 세련된 문장으로 하는 부분도 좋았다. 군더더기 없다는 느낌.


그렇다. 이 책의 제목은 수학이 문명에 기여한 것에 대한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영어 제목이 더 나아보인다. The Art of More.


결어 부분은 곱씹어볼만 하다. 우리는 수학의 '신비'에 대해 말하려고 하지만, 수학은 신비로운 학문이 아니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수학은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붙어 있으면서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런 학문이다. 즉, 페르마의 마지막 정리니, 골드바흐의 추측이지, 완전수니, 이런 것들이 수학적 신비가 아닌, 그 자신의 신비로움으로 여겨질 때, 수학은 조금 더 모두에게 다가설 수 있는 셈이라고 저자는 여기는 듯 하다. 자꾸 수학에 금박칠을 하면서 알지 못하는 무언가를 상징하는 놀라운 힘으로 서술하는 이들이 있는데, 결국 저자의 표현대로 '엘리트주의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수학적 사고를 상대'하기 위해 '모두를 위해 존재'하는 수학으로의 가치와 역할을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음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수학의 다양한 영역을 챕터 제목으로 하여 수학사에 기반하여 스토리를 토대로 각각의 영역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한 발자국 씩 더 나아간 저자의 통찰을 보여주어 마음에 들었다. 이런저런 수학사 관련 책들보다 핵심적인 내용들을 잘 담고 있어서 이를 잘 읽어내면 많은 쓸모가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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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보다 데이터 문해력 - 서울대 통계학과 정성규 교수의
정성규 지음 / EBS BOOKS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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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자료', 요즘 말로 하면 '데이터'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알아두면 좋은 배경 지식들을 작게 쪼개어 말해보고 있는 책입니다. 이 책을 보며,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데이터'란 용어를 중첩적으로 사용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습니다.


데이터 무제한, 이라는 말에서는 주고받는 정보를 말하지만, 이 책의 데이터는, 앞선 말 그대로 '자료', 특히 수로 나타나는 자료를 의미합니다. 수로 나타나는 이러한 자료들을 처리하는 학문을 좁게 통계학이라고 말하구요. 이 책은 통계가 가진 의미부터 통계를 보거나 다룰 때 알고 신경쓰면 좋을 것들을 알려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졌다 볼 수 있습니다.


책의 인용구 중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처럼 불확실한 것은 없지만, 천 사람의 인생의 평균처럼 확실한 것도 없다. - 엘리저 라이트


이 문구가 현대 사회에서 통계가 가진 강력한 역할을 암시하는 듯 합니다. 아인슈타인의 말처럼,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지만, 신도 천 번쯤 주사위를 던진다면 무언가의 결괏값으로 수렴함을 보실 수 있겠죠? 통계는 그렇게 무언가를 설명하기 위해 불확실함 사이에서 결론을 찾아가는 학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이 때, 통계가 결론을 내리기 위해 사용하는 기법을 이 책에서는 설명하면서, 그러한 과정에서 놓치거나 신경써야 할 부분을 사례나 예시와 함께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그게 한 눈에 잘 들어오지 않고, 서로 연결해서 이해하긴 쉽잖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저자는 아마도 핵심 개념이나 용어를 짧게 끊어서 다루면 조금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듯 하지만, 책의 챕터가 너무 잘게 나뉜 덕에 내용 흐름을 파악하는 것도 계속 끊어진다는 느낌이 독서 내내 듭니다. 그리고 다루는 개념이나 용어의 체계도, 교양 서적처럼 읽기에는 좀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통계 데이터가 넘치는 사회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현대 사회 속에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것 중 데이터 리터러시도 한 손에 들어갈 듯 합니다. 몇몇, 가령 0%의 확률이 모여 100%를 이루는 것이 통계, 라는 식의 설명을 적절한 예시와 함께 설명한 부분 등, 데이터가 가진 속성을 알려주는 탁월한 비유가 있어서 데이터의 성질을 이해하는데 크게 도움을 받을 수 있었지만, 앞선 말대로 개념이나 용어가 흐름 없이 던져진다는 느낌도 좀 받았고, 독서의 3분의 2쯤을 지나가는 시점에서는 좀 집중해서 읽히지 않는다는 생각도 들어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래도 두고 기회가 되면 다시 한 번 읽으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책인 듯 싶어, 도장 찍고 서가에 꽂아두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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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우 시티 멜로우 팝 - KIMKIMPARKKIM’S KOREAN MELLOW POP LP GUIDE 100
김김박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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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팝 장르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브레이브 걸스의 역주행 덕분(!)이었다. 하지만 막상 롤린 보다는 운전만해, 라는 곡에 확 꽂혔다. 덕택에 유튜브에서 시티팝 노래를 잔뜩 모아다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고, 드라이빙 뮤직으로 지금도 간간히 듣고 있다.

개인적으로 듣기 좋은 시티팝 곡은, Chuo Freeway(HiFi Set)이다. 우연히 인터넷 서핑 중에 듣게 되었는데,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터라 따라부르진 않지만 들을 때마다 그 분위기가 너무 좋게 느껴진다. 트리오의 어울림 덕택인지도.

그래서, ‘한국형 시티팝’을 표방한 이 책에 관심이 갔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밀히, 멜로우 팝은 시티팝은 아니다.

노래에 대한 견문이 옅어 맞게 이해했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대강 아는 노래들을 통해 유추해보자면, 멜로우 팝은 그루브를 가미한, 약간 근적임이 있는, 재즈와 보사노바 풍이 묻은 파퓰러 장르라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기대 밖의 독서가 되기도 하였다.

우선, 다양한 곡을 멜로우 팝의 정형으로 제시하고 있지만 그 궤를 잘 이해하지 못하겠다. 네 명의 칼럼니스트가 각자 소개하는 곡들에는, 개인의 취향이 각자 드러날 뿐이다. 항상 공저를 만날 때는 그런 느낌이 강하게 든다. 좋게 말하면 서로의 전문성을 존중하는, 나쁘게 말하자면 각자 책 내기가 쉽잖아 지면을 나누어 각자의 몫으로 책을 내지 않았나 싶은 그런. 각자의 부분을 엇갈려 배치한 덕에, 일관된 견해를 알아보기 어렵고 그저 서로의 취향만 어지러울 뿐이다.

또한, 인상비평적 접근이라 버거운 느낌이 든다. 물론, 한정된 지면에 많은 노래를 수록하기 위한 고충임은 이해하지만, 각자의 취향이 짧게 짧게 끊어져 제시되는 페이지를 따라가기가 버겁다.

간간히 나오는 아는 곡들과 아는 이름 덕에 끝까지 읽을 수 있었지만… 솔직히 멜로우 팝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는지는 모르겠다. 차라리 네 명의 저자가 모여 이야기나누며 음악을 소개하는 대담 방식이라면 조금 거 풍성하고 밀도있는 책이 되었으려나?

책날개에 첨부된 큐알 코드가 유튜브 플레이 리스트로 연결된다니, 그걸 들으며 취향을 골라내 보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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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지도 - 잃어버린 세계와 만나는 뜻밖의 시간여행
트래비스 엘버러 지음, 성소희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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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와 함께 해 왔던 많은 도시와 자연과 구조물들이 점점 유적지라는 이름으로 인간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다. 조금만, 조금 더 멀어지면 아마도, 이 책의 제목처럼 사라져버려 더 이상은 찾을 수 없는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렇게보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곳들은 운이 좋은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지금은 디지털 텍스트의 시대이고, 비록 나는 종이로 보았지만 누군가의 어딘가에는 디지털 방식으로 아카이빙될테니, 그 이름을 잃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이름을 잃은 곳도 많을 것이다. 인간이 키워 낸 테크놀로지는 이들의 존재를 지우는 대신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기로 한 듯 하지만, 그것은 최근의 일일 뿐, 다만 얼마 전까지는 기억도 하지 못한 채 너무나도 많은 것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이 책은 사라져가는 도시, 자연, 구조물을 두 세 장의 지면에, 그나마도 큼직큼직한 사진 몇 장과 지도를 함께 실어, 어찌보면 불친절해 보일만한 구성을 갖고 있다. 조금 더 자세하게, 빽빽하게 소개하면 좋으련만, 이 책은 많은 부분을 덜어낸 채, 간결하게 소개하고 안내하고 있다.

그래서 더 호기심이 돋고, 역마살을 자극하는지도 모르겠다. 꼭 가 보리라. 비워진 여백을 내 발과 눈으로 채우리라.

좋은 책이다. 너무 많은 정보가 미덕인 것처럼 여겨지는 시대에, 사라져가는 장소들의 이미 지워져버린 많은 빈 공간 사이에 군데군데 자리잡은 텍스트는, 묘한 독서의 느낌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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