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전기 - 축복과 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그 땅의 역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지음, 유달승 옮김 / 시공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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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시공사 책이네요. 실은 알면서도 읽었지만, 요 근래에는 알기 때문에 더 이상은 팔아주어선 곤란하겠다, 라는 생각을 강력하게 가지고 있는 출판사입니다. 시공사 책으로 감상글을 쓰는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예루살렘 전기]는, 예루살렘이라는 도시의 일대기입니다. 마치 사람의 일대기처럼, 약 3000년 전에 생겨나 긴 시대를 겪어온 예루살렘이라는 땅의 이야기를 연대기 형태로 쓴 것입니다. 

 

이 책의 서술 의도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 나온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그 누구의 땅도 아니라, 그 땅을 살아낸 모든 사람의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그 수십 쪽의 에필로그를 위해, 저자는 팔레스타인 지역에 처음으로 거주민이 자리잡은 때를 시작으로 해서, 그 땅을 거쳐간 수많은 민족과, 종교에 대해서 연대기 순으로 주욱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어내면, 예루살렘이라는 도시를 다만 유대인의 도시라고 이야기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단지 예루살렘이 유대교와 이슬람교, 그리스도교의 성지라서가 아닙니다. 종교와 함께 그 땅을 살아내었던 민족이 가진 그 땅에 얽힌 인연과 이야깃거리가, 그 민족과 강고하게 연결되어 있는 까닭에, 이제 그 땅은 한 공동체를 살아내는 사람들에게 의미있고 가치있는 땅이 되어버린 것이죠. 시리아 사람들에게도,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도, (당연히) 유대인들에게도 그 땅은 자신들의 공동체와 연결되어 가치를 가지는 땅임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습니다. 

 

책은 정말 깁니다. 성경의 구약 시대와, AD 70년의 예루살렘 성의 함락, 그리고 십자군 전쟁의 부분까지는 흥미롭게 읽힙니다. 오리엔트 땅을 살아내었던,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나라들이 예루살렘을 어떻게 거쳐갔는지는 새로운 관전 포인트입니다. 그러나... 십자군 전쟁 이후부터는 조금 밀도가 떨어집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아랍의 역사는 약간은 많이 생소한 부분이기에, 제게도 꽤나 생소한 편이고, 그래서 밀도가 떨어지는 편입니다. 그러나, 그 부분부터 현대의 '6일전쟁'까지, 이야기는 줄기차게 이어지기 때문에, 흐름을 놓치면 읽기가 쉽잖습니다. 게다가, 저자는 가깝게 자리잡은 사건들은 그 연대기를 바꾸기도 합니다. 그리고 줄기차게 나오는 사람, 사람들. 고유명사의 홍수에서 허우적거리다보면, 자연스레 책을 읽던 눈은 감기고, 책갈피를 찾아 북마크해두고는 잠을 청하게 됩니다. 

 

대신에 저자는 어마어마한 사료를 토대로 예루살렘에 얽힌 오만가지 이야기를 다 써내려가고 있습니다. 흥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많고, 잘 읽어내면 아랍의 여러 시대를 한 번에 아우를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800쪽에 가까운 분량은, 한 번에 책을 읽어내려가기에는 정말 부담스럽습니다. 저도 한 달 정도 꾸준히 읽다가 15세기 접어들면서 흐름을 놓치고는, 결국 놓친 흐름 그대로 끝을 보았습니다. 조금 정제되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을 조심스레 피력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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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의 반란 - EBS 다큐프라임 화제작!
EBS <놀이의 반란> 제작팀 지음 / 지식너머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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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필이면 시공사의 임프린트 책이네요. 실은 알면서도 읽었지만, 요 근래에는 알기 때문에 더 이상은 팔아주어선 곤란하겠다, 라는 생각을 강력하게 가지고 있는 출판사입니다. 시공사 책으로 감상글을 쓰는 마지막 책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레 예측해봅니다. 

 

 

[놀이의 반란]은, EBS의 동명의 기획 프로그램 3부작을 책으로 옮긴 것입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책을 읽으면서 EBS에서 방영한 3부작 중 첫 편을 보았던 기억이 났습니다. 

 

놀이에 대한 관심을 가진 것은, 실은 꽤 오래 전부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사교육에서 잔뼈가 굵은 지라, 계속 아이들을 이런저런 경로로 맡게 되는데, 아이가 가지고 있는 학습 상황에서의 문제점을 찾아올라가다 보니까, 너무 빠른 사교육의 투입, 혹은 어른주도적인 교육 방향의 결정 등이 그 이유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아이들에게는 어떻게 해야하는가를 생각하다보니, 제가 어릴 때 놀던 것들이, 마찬가지로 경험적으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어린 나이 때는 놀면 되지 않은가, 나도 꽤나 놀았는데, 라면서 말이죠. 그런 막연하던 놀이에 대한 생각이, 보드게임이라는 놀이 수단을 알면서 조금 구체적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교직에 들어서면서는 제 경험 뿐만 아니라 아이들에게 대한 투입과 산출로써도 조금 더 체계적으로 정리되는 가운데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 가운데 이 책을 만났습니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는, 아이들에게 놀이가 놀이 그 자체로 소개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이고 있으며 그것이 아이들의 발달 과정에서 문제로 작용한다는 것입니다.

 

사전에서는 놀이를 "신체적, 정신적 활동 중에서 식사, 수면, 호흡, 배설 등 직접 생존에 관계되는 활동을 제외하고 '일'과 대립하는 개념을 가진 활동"으로 규정하고, (중략) 아이들에게는 사회의 습관을 익히고 심신을 발달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이 놀이 (후략). (p 6)  

놀이가 가진 가장 유의미한 개념은, 바로 놀이가 사회성을 익히는 통로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놀이가 인지능력에도 창의력에도 유의미한 효과를 드러내겠지만 (p 8), 놀이는 함께함으로써 놀이하는 대상에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회성의 신장을 돕는 역할을 한다는데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즘은 많은 곳에서 놀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부모는 기왕에 노는 것에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는 틀을 입히길 원하고, 많은 사설 기관에서는 이런 부모의 니즈에 부합하는 '교육적' 놀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제공하고 있는 것이 현재의 모습입니다. 놀이의 이익도 누리고, 교육이라는 열매도 따먹으려는 이런 시도는, 실제로 아동들이 제대로 놀지도 못하면서, 교육적 프로그램이라고 하는것이 끼치는 교육적 효과에 대한 실체도 확인하기 어려운 지경에 이르러, 도대체 아이가 무엇을 하는지도 모르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책은 완곡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바는, 놀이를 통해 무언가를 성취하겠다는 목적 의식을 버리고, '그냥 놀아줘라'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냥 놀아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미칠 수 있을까요? 그래도 놀이를 빙자한 이런저런 교육 프로그램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것보다는 더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것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내심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놀이라는 것이 아이들에게 주는 긍정적인 효과를 계량하고 측정할 수 있는 도구는 당연히 없습니다. 다만... 어릴 적에 행복하게 놀았던 경험을 가지고 살아가는 어른이, 아닌 어른들보다는 더 행복해하지 않는가라는 경험에 기댄 주장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어릴 적에 정말 걱정 근심 없이 행복하게 놀았던 제 기억으로는, 이 책이 설득력있게 다가온다는 것을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놀이에 대한 더 많은 이야기를 찾아보고, 학교에서 실제로 놀게 해 볼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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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 규슈 빛은 한반도로부터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유홍준 지음 / 창비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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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엘 가야겠다, 라는 생각을 불현듯 하게 된 것은, 동학년 선생님 한 분이 방학을 맞이하여 20일 정도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돌아보는 해외여행을 떠나시며, 옆 반 선생님은 11월에 결혼하시고 바로 1주일 동안 프랑스와 이탈리아를 돌아보는 신혼여행을 떠나신다는 사실에 마음이 들떠오르던 차에, 요즘 장안의 화제인 [꽃보다 할배]를 지속적으로 보고 있노라니, 프랑스를 가는 것은 박봉 신세에 쉬운 일은 아닌데, 일본 정도라면, 저가 항공사와 게스트 하우스를 잘 이용하여 비수기에 떠난다면 괜찮겠구나, 라는 생각의 꼬리 끝에 피어오른 한 떨기 꽃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차피, 여행의 목적은 역사적인 유물이나 유적과 관련된 것이어야하니, 기왕이면 일본의 천년고도인 교토 쪽으로 일정을 잡자, 라고 생각하던 찰나에, 마침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1 규슈]가 나왔길래 얼른 사서 보고야 말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토는 3권이라니 조금 더 기다려야 한다는 생각에 살짝 안타까왔지만, 조금 기다리면 3권도 보란듯이 나오겠죠. 



유홍준 교수의 책은 언제라도 실망한 적이 없었습니다. 제 20대의 가장 기억에 남는 독서라면,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꼽겠습니다. 역사를 지식으로, 머리로, 앎으로 좋아하는 이들은 많지만, 역사를 발로, 눈으로, 마음으로 받아내는 이들은 많지 않습니다. 제가 그랬더군요. 이 땅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고 민족의 발자취를 좋아한다고 곧잘 떠들어냈지만, 막상 발로 거치고 눈으로 응시하고 마음으로 받아본 적은 한 번도 없는 찰나에, 1995년엔가 처음 접한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1권과 2권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던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민족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조금은 관조적인 시선을 띄고는 있지만, 제 휴가의 대부분은 아직도 이 땅에 발딛고 살아간 분들의 흔적을 쫓아다니기에 여념이 없네요. 민족이라는 개념이 근대적인 개념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제국주의적인 사고라고 생각한다 할지라도, 그래도 나의 조상은 한반도 땅에서 지금 제가 사용하고 있는 비슷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비슷한 사고과정을 겪었을 가능성이 크니, 그 동질감이 작다고 하기는 어려움이 있겠지요. 그런 유홍준 교수가 일본 답사기를 써 냈습니다. 


일본편을 읽으면서 가장 깊이 생각했던 것은, 일본 역사에 대해서 참 무지하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아무래도 일제 강점기 탓에 일본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보니, 일본에 대한 이야기에 애써 귀기울이려고 하지 않은 탓이 가장 클 겝니다. 책을 잡고 가장 먼저 했던 행동이, '규슈가 어디지?' 라면서 애써 책의 안팤을 뒤적거리면서 규슈의 위치를 머릿속에 넣는 것부터 했어야 하니까요. 


 유형이든 무형이든 문화 유산의 보존에서 절대로 훼손해서는 안 되는 것은 진정성이다. (p 317)

그렇게 쓰여진 일본편 1 규슈 - 빛은 한반도로부터, 는 규슈에 처음 발디딘 '도래인'의 흔적을 찬찬히 밟아나가는 것으로 이루어집니다. 한반도 땅을 거쳐 일본에 새로운 청동기 문화를 이루어낸 야요이 인들,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 백제인들, 가야인들, 그리고 임진왜란 때 끌려가 생활도자 문화를 비롯한 일본의 도자 문화에 일대 혁신을 일으킨 조선인들. 그렇게 현해탄을 건너 규슈 땅에 들어선 한반도에 거주하던 사람들의 흔적을 통해, 일본 땅에 이루어진 문화에 한반도의 사람들이 기여한 것에 대한 자부심, 그러면서 그것을 받아서 더 나은 것으로 바꾸어내기도 한 일본인들에 대한 경탄이 이 책에 함께 묻어 있습니다. 


단순하게, 일본의 문화를 우리나라 것의 아류로 볼 것도 아니요, 일본의 더 낫게 평가받는 - 예컨대 도자 문화 - 문화를 함부로 폄훼할 것도 아니라는 것을 저자는 강력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주장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대해서도, 우리나라와 중국의 조공 문화를 그 문맥의 이해 없이 단순하게 갑과 을의 관계로 치환하여 낮추어보려는 시선과, 그로 인해 우리나라에서 건너간 다양한 문화의 양상을 단순하게 중국의 아류 쯤으로 폄훼하는 시선을 준엄하게 그러면서도 조심스레 충고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자의 이런 생각 아래에는, 문화 유산을 바라보는 저자의 '진정성'이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런저런 감정으로 한껏 거칠게 이야기해대고 있지만, 그러나 당시를 살아낸 이들도 과연 그랬겠느냐, 그들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영향을 받으면서 공존공생해나갔던 모습과 마음을 보면서, 저자는 진정성을 가지고 문화 유산을, 그리고 문화 유산이 드러내는 우리나라와 일본의 옛 조상 사이의 관계를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듯 합니다. 



책의 가장 좋은 점은, 모든 시각적 자료가 컬러라는데 있습니다. 물론... 요즘 나오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는 전부 컬러더군요. 그러나 1권부터 5권까지 당시에 사 보았던 제게는, 6권부터 바뀐 양질의 종이에 컬러로 된 인쇄가 썩 마음에 듭니다. 한껏 들뜰 수 있거든요. 


또한 저자는, 문화 유산에 얽힌, 혹은 문화 유산과 관련 없더라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박하게 풀어내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이 책에서도 굉장히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 하나 나옵니다. 


도에 뜻을 두고, 덕에 근거하고, 인에 의지하고, 예에 노닐라.

志於道 據於德 依於仁 遊於藝 (p 298)

문화 유산을 발로 찾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만지는 것이, 결국은 遊於藝의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하나 안타까웠던 것은, 저자가 일본과 우리나라를 이해시키려는 것이, 약간은 꼰대스러운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유홍준 교수의 '진정성'이라면, 충분히 별 말이 없어도 독자들을 이해시켰을텐데... 이 책이 나오게 된 시간적 배경인, 현재 우리나라와 일본의 역학적 관계가 굉장히 좋지 않은 시기임을 인식하였다고 하더라도, 꽤나 많은 지면을 할애해서 독자를 '납득'시키려고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잔소리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같은 분들이, 진정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이런 책들을 써내려간다면, 양국의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가깝지만 먼 관계성에의 인식이 자연스럽게 녹아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일본의 벼농사 및 청동기 시대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음을 보여주는 야요이 문화의 주요한 유적지인 요시노가리 역사공원을 다녀온 것, 그리고 일본의 도자 문화의 혁신을 가지고 온 조선 도공들의 삶의 궤적을 훑어 본 것, 그리고 일본 메이지유신의 중심지 가고시마 답사기, 그리고 백제의 왕족이 건설했다고 알려진 마을인 미야자키 남향촌 답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아무래도 신석기라든지, 조선 도공의 발자취 같은 부분들이 일본 역사의 주된 흐름에서 비켜서 있는 부분인지라, 2권과 3권을 더욱 기대하게 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번 겨울에 교토를 다녀오려면 어서 빨리 3권도 나와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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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서울
최종현.김창희 지음 / 동하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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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라는 공간은 우리나라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꽤나 의미있는 공간입니다. 일단 수도이고, 그 이상으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문화, 예술, 역사가 밀집해 있는 공간입니다. 과연 서울이 한반도에서 의미있는 공간이 된 것은 언제인가요. 백제의 온조왕이 수도를 정한 AD 18년? 혹은 조선의 태조가 경복궁을 법궁으로 정하고 천도한 1394년? 책의 시작은 서울의 지금의 서울과 시공간적으로 연결을 시작하는 바로 그 시기를 밝히는 것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책의 첫 1부는 마치 심도있는 답사기와 같은 모양새를 보여줍니다. 고지도를 들여다보고, 사료를 꼼꼼하게 복기하여, 그 길을 하나하나 차근차근히 걸어보는 것으로 서울의 시작을 반추합니다. 아니, 어찌보면 답사기를 넘어서는, 시공간을 복원하여 제시하는 듯한 입체감을 줍니다.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남경역의 위치를 추론하는 장면과, 남경역에서 남경행궁으로 들어가는 길을 추론해내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서울은, 그 발자취를 뒤돌아보면 어디론가 사라져 온 길을 찾을 수 없는 곳입니다. 켜켜이 더께어 앉은 세월의 두께는 깊고 두꺼우나, 도대체 무엇이 앉아있는지는 알 수 없는 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요즘 장안의 화제인 '꽃보다 할배'를 보면서 감동했던 부분이 있습니다. '할배'들과 '짐꾼'이 찾은 프랑스의 국경도시 스트라스부르, 그 곳의 거대한 시간과 공간을 점유해온 노트르담 성당의 입지를 보면서, 지금과 옛날이 그렇게 한 공간에 이질감없이 어울리고 있다는 사실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리나라는... 스트라스부르의 노트르담 성당 만큼이나 오랜 세월을 지내온 서울의 옛날이 과연 지금과 어떻게 어울리고 있는지를 생각해본다면... 서울의 옛날은 마치 거대한 콘크리트의 물결 속에 외로이 서 있는 하나의 섬 같은 그런 입지를 보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색함 속에서, 옛것은 망가지고 묻히고 닳아서 그 위에 아주 다른 새것이 또 얹어지고, 그것이 다시 망가지고 묻히고 닳으면 아주 다른 새것이 또다시 오고... 서울의 역사는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 와중에 저자들은, 망가지지 않고 묻히지 않고 닳지 않은 고지도와 고문서를 가지고, 이제는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서울의 예전을 다시 우리의 일상으로 불러들이고 있습니다. 


도시가, 서울이라는 오랜 삶의 터전이, 그 시공간적인 역사성을 가지려면, 지나간 것을 지금의 것에 연결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이 책은 강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저자들은 정말 큰 노력을 했고, 그것은 서울을 살아가고 있는 독자의 마음을 공명시켰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1부의 노정을 통해 현재의 서울에 역사적 시간을 둘러얹었다면, 2부와 3부에서는 그 중에서도 '서촌'에 주목하여 그 공간 위에 역사적 시간을 얹고 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안타까왔던 것은, 인왕산의 품에 넉넉히 안겨 조선의 법궁 경복궁을 내려 섬기며 지내온 '서촌'의 역사적 시공간성이, 이제 어떻게 망가지고 묻히고 닳아 없어진 후 무언가 아주 다른 새것이 얹어지게될지, 그에 대한 두려움이 크게 다가온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이전부터 북촌의 공간이 어떻게 과거와 분절되고 있는지를 익히 들어온터라, 적어도 서촌의 공간은 시공간적 과거가 현재와 어울릴 수 있는 방식으로 성숙하기를 막연하게나마 바라고 있었습니다. 책의 2부와 3부에서 저자들은 왕족의 공간으로, 벌열의 공간으로, 중인들의 공간으로, 그 공간적 연속성을 지켜온 서촌에 대해 언급하다가, '팔지 말아야 할 것'을 팔아버리고 '살 수 없는 것'을 산 몇몇 친일 인물들에 의해서 연속성을 훼손당한 이후로 계속 그 단절이 심화되어 가는 것을 안타까와하는 마음을 가득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저자들의 고민은 과연 서촌이 북촌의 전철을 밟게 되지 않을까라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자들은 2부에서 서촌에서 바라본 인왕산, (폐허의) 경복궁 등을 배경으로 하는 다양한 그림들 - 특히 겸재 정선 - 의 시선을 좇으면서 서촌이 가지고 있는 고즈넉한 매력을 엄밀하게 고증하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왕족이, 벌열 양반이, 중인들이 이 곳에 터잡고 산과 내를 벗삼았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인왕산과의 어울림은, 결국 일제 시대에 모두 단절되고 맙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속상한 부분은, 인왕산에서 흘러나와 청계천으로 들었을 시내가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모두 복개되었다는 부분이었습니다. 옛것과의 단절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자연경계에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이 그것을 심화하였으며, 이제 서촌은 옛것의 흔적을 찾으려면 고지도를 뒤지고, 폐쇄 등기부등본을 탐색하고, 발품을 팔고 경치를 내리보면서 공부해야 찾을 수 있는 그런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만 더 지나면 공부해도 찾을 수 없는 그런 공간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개발과 보존의 명제는 항상 대척점에 서서 양자택일을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에게 철학이 부재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이 책은, 서촌을 탐사하면서 독자에게, 과연 '너의 철학은 무엇이냐'라고 되묻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하리라 여깁니다. 책을 읽기 전, 북촌이 과거와 분절되어간다는 정도의 막연한 인식만 가지고 있던 제게, 이 책은 옛것과의 어울림에 대해서 깊이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역할을 해 주었습니다. 



서울은 매력적인 공간입니다. 아이를 낳고, 아이들과 서울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천만 인구가 사는, 활기와 생기가 넘치는 현대적인 공간인 서울을 가득 느낄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옛 공간을 찾아다니는 길은 망망대해를 헤엄치다가 외따로이 서있는 고도(島)에 정박한다는 느낌을 늘상 받아왔습니다. 이 책은 서울의 옛 모습을 저자들의 노력으로 현재에 얹음으로써, 지금의 서울에서 옛날을 오버랩할 수 있는, 그래서 서울의 의미를 중층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단초가 되었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늘상 학교를 오고가며 지나쳐 온 '대광고등학교'가 이제는 고려시대 남경에 들어오는 사람들을 맞이하던 '남경역'으로 그 의의를 확장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이번에는 서촌이지만, 저자들은 서울의 곳곳을 둘러볼 의지를 책의 머리에서 밝히고 있습니다. 서울을 발딛고 사는 처지에, 서울의 시공간적 역사성을 체화할 수 있는 또다른 기회가 저자들에 의해서 계속 만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저자들의 에필로그처럼, 3부의 말미에는 서촌을 살아낸 인물 쪽에 치우친 감이 있습니다. 그래도 덕택에 윤동주 시인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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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렉트릭 유니버스 공학과의 새로운 만남 18
데이비드 보더니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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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다시' 읽으려고 했던 이유는, 6월 말 실과 시간에 아이들과 전기회로 꾸미기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옛날, 제가 '국민'학교를 다닐 때와는 다르게, 요즘은 전기회로 꾸미기 키트가 나와서, 옛날처럼 납땜질을 할 필요없이, 블럭을 끼워서 회로를 연결하여 새소리도 나고 불도 켜지게 만드는 것이 가능해지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전기회로도를 배운 후에, 아이들에게 콘덴서나 트랜지스터에 대한 설명을 해줘야하는데... 콘덴서는 저장하고 트랜지스터는 증폭시킨다, 정도 말고는 지식이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실은... 고등학교 다닐 때 그렇게 열심히 물리 공부를 했는데, 전류가 뭐고, 전압이 뭐고, 저항이 뭔지 배우고 V=IR 이런 것도 줄창 외웠는데... 막상 수업시간에 설명을 해주려고 하니까 기억이 가물가물... 머리가 '타불라 라사'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난 책이, 예전에 한창 물리/화학 기초 실험 수업을 들을 때 관심을 가지고 구매했던,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책인 [일렉트릭 유니버스] 였습니다. 데이비드 보더니스의 책은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시리즈로 네 권을 번역하여 출간했었는데,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판매할 때 네 권을 한 번에 구매해서는 다 읽은 책, 중간에 접은 책, 손도 안댄 책이 있는 책입니다. '생각의 나무' 출판사 하니까... 작년 이맘때 부도가 난 출판사이죠. 요즘 한창 온라인 서점에서 할인판매하는 사이즈 좀 되는 책 -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같은 - 이 '생각의 나무' 출판사에서 나온 책입니다. 상당히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책들을 냈었는데... 안타깝게 부도가 나는 바람에, 많은 도전적인 출판사들을 낙담케한 일이 벌써 작년 이맘때의 일입니다. 


여하튼... 분명히 읽지 않았다고 기억했던 [일렉트릭 유니버스]를 한 3분의 1정도 읽고 나니까, 읽었던 기억이 났습니다. 한 번 읽었었고, 별 임팩트가 없어서 기억을 하지 못한 채, 전기에 대한 지식을 위해 다시 책을 집어 들었고... 다시 한 번, 지식적으로 도움이 되는 책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면서 책 읽기를 마쳤습니다. 


저자의 다른 책인 [E=mc^2] 같은 책은 상당히 괜찮았습니다. 문과생이다보니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대해 이해할 기회가 없었는데, [E=mc^2] 같은 경우는 읽으면서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대해서 상당히 알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괜찮은 독후기억이 있습니다. (물론... 책을 읽은지가 벌써 5년 전이라 지금은 다시 가물가물한 상태가 되었네요) 그러나, [일렉트릭 유니버스]는 전기에 대한 지식을 담은 책은 아닙니다. 볼트와 와트가 나오고, 라디오와 레이더가 나오며, 한 입 베어문 사과와 트랜지스터가 나오지만, 그런 것은 관련 지식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관련된 이야기를 풀어내기 위해서 나오는 소재일 뿐입니다. 이 책은 편안하게 전기와 관련된 여러 흥미로운 옛날 이야기를 접할 수 있는 책일 뿐, 전기에 대한 지식을 전달해주는 책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전기에 대한 고등학교 물리 이상의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한 독자라면 상당히 버거울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이야깃책이라도, 트랜지스터에 대한 간단한 용어들 - 실리콘 - 도 나오고, 코일을 돌돌 감아서 전기를 흘려보내면 자석이 되는 이야기도 나옵니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이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전기 관련 지식이 있어야 책을 부담없이 읽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책은 문외한이 읽기에는 버거우며, 지식을 갈구하는 이들이 읽기에는 저술 목적이 어긋납니다. 따라서 이 책은 누구를 초점으로 한 책인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마지막 장에 나온 '뇌 그리고 그 너머' 챕터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신경도 전기적 신호로 제어되고 활동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저자는 그 작용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엔돌핀과 아드레날린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정도는 설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자의 덕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하튼... 2학기 시작과 함께 아이들에게 콘덴서와 트랜지스터에 대한 설명을 해 주려던 제 계획은, 제게 아무런 지적 도움도 주지 못한 [일렉트릭 유니버스] 때문에 실패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다시 한 번 책을 탐색해서 도움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아주 무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저자가 군데군데 불러들이는 이야기를 통해서, 전기에 관련된 많은 발명 뒤에는 사람 사는 모습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까요. 결국 이 책은 유명한 과학자가 들려주는 이야깃책입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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