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기행 - 어느 인문학자의 눈으로 바라본 올레, 돌챙이, 바람의 풍경들
주강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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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본문에는 쓰지 않았으나, 제주도 자체가 거대한 테마파크의 섬이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만들어진 역사'라는 홉스봄의 표현처럼, '만들어진 섬'이 된 것입니다. 수많은 상징과 이미지가 만들어지고 가공되어 진실한 역사인 양 우리 곁에 다가와 있습니다. (4쪽) 


국내의 이곳 저곳을 다닐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가족들과 집에만 있을 수는 없는 탓도 있겠고, 어릴 적부터 궁금하던 곳을 여기저기 다녀보고 싶은 욕망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구요. 인상적이었던 곳은 부산, 그리고 군산이었습니다. 부산이라는 도시는 시간이 흘러갔던 흔적을 마치 슬라이드처럼 한 몸에 담고 있는 도시였던 기억이 있습니다. 군산은 옛날이 현재와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을 했더랬습니다. 부산은 옛날 위에 지금을 조금씩 덧쌓아 올린 곳이라는 생각을 했고, 군산은 옛날이 아직까지 그대로 남아있는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실망했던 도시는 전주였습니다. 옛날을 덮어쓴 현대, 그러나 그 욕망은 옛것을 향하고 있다는 생각. [제주기행]을 쓴 저자가, '제주'를 포착한 것 이상으로, 전주라는 도시는 '만들어진 옛것'이 되어버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전주를 조금 더 알고, 포장된 전주가 아닌, 숨겨진 전주를 다시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러한 기행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결국에는 도시의 외피가 아닌, 속내를 관통할 수 있는 안내서가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명소와 맛집을 알려주는 여행기는 많지만, 그 뒤에 숨겨진 그 땅이 살아온 이야기를 하는 책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 면에서 [제주기행]은 제주도라는 섬을 인문학적으로 포착한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는 흔히 변경에 남아 있다. 중앙에서 성립한 문화가 변경으로 번져나가게 되지만, 그 중앙은 변화가 빠른 까닭에 잃어버리기도 잘 하는 법. 변경은 변화가 느리기 때문에...... (하략) (356쪽) 


제주도를 포착하면서 저자가 취한 하나의 표상은 '변경'이라는 이미지입니다. 폐주 - 광해군 - 가 귀양오던 곳,  쿠빌라이 칸의 거대한 목장 구실을 하던 곳. 제주도는 그 너머가 망망대해라는 이유만으로 세상과 절연한 곳으로 인식되었고, 세상을 넘어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 출륙금지령 - 변경 취급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람이 가장 먼저 맞닿는 곳이 되었고,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세상의 끝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제주도는, 그래서 여러 부분에서 아직도 오롯이 옛 모습을 짊어지고 있습니다. 이 땅에서는 모두 잊혀진 것, 아직도 제주도는 제주 방언을 가지고 있고, 곶과 자왈이 만나 이룬 숲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다에 몸 담그는 잠수 - 잠녀, 혹은 해녀라고 하는 - 가 아직도 자신의 일을 하고 있으며, 어마어마한 신들이 자신의 위용을 뽐내고 있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상처도 많습니다. 아직 채 70년도 지나지 않은 제주 4.3 항쟁의 아픔은, 공식적으로 1만 4032명의 희생자를 낸 채 아직도 제주도 안에서 삭혀지고 있습니다. 1901년의 이재수의 난은 옛날 그 영화대로 - 1999년. 박광수 감독. 이정재, 심은하 주연의. 부산의 한 영화관에서 본 기억이, 이 책을 읽으면서 어렴풋이 납니다 - 새것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의 희생으로 마무리됩니다. 


그러나 제주도는 일본에서 동남아시아를 지나는 해상루트의 전초 기지로써 변경으로써가 아닌 시작점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습니다. 



하나는 중앙 관력에서 바라보는 변경에 위치한 페리퍼리(periphery)로서의 제주도, 다른 하나는 일본 등 외국과의 최선단 접촉점에 서 있는 프론티어로서의 제주도이다. 페리퍼리와 프론티어라는 상반된 제주도의 역사적 위상은 중앙의 일방적 지배 구조, 이에 대처하는 제주도민의 주체적 삶의 방식이 빚어낸 역사적 유산으로, 오늘날에도 그 유산은 갈등을 안은 채 지속되고 있다. (허남린, 책에서 재인용, 416쪽) 


고려 중기 이전에는 '탐라국'으로써 독립적인 위치를 영위하였던 시절부터, 무수한 신화로 남아있는 제주도의 주체적 위상까지. 이 책에서는 제주 땅이 지닌 독자적이며 독립적인 삶과 문화에 대하여 계속 이야기하고 있기도 합니다.


제주도는 단지 이국적이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가지고 있는 섬일까요? 볼거리, 즐길거리, 누릴거리 많은 휴양섬일까요? 제주도에도 그 옛날부터 사람이 살았고, 그 사람들이 삶을 살아내면서 문화를 남겼고, 흔적을 남겼고, 신화를 품었으며, 현재에 이르렀음을 알지 못한 채, 그 섬에 다다른다면, 우리는 그 섬의 지나온 세월과의 교감없이, 잘 꾸며진 테마파크에서 꾸며진 감격과 감동을 가득 안은 채, 그 뒤에 숨겨진 세월의 감격과 감동은 절대 알수도, 느낄 겨를도 없이, 아마 잘 꾸며진 일상에서 잘 꾸며진 삶을 다시 살아가는 것에 그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인문학적인 시선으로 땅을 조망하고, 땅을 살아온 사람들의 흔적을 탐색하는 책으로써, 이 책 [제주기행]은 만만치 않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의미있는 책이라 생각하고, 내년 초 쯤 제주도를 가려고 계획하고 있는 제게는 제주도라는 장소에 대한 프롤로그 격의 역할을 충분히 한 책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처음 세 장에는 '바람, 돌, 여자'라는 삼다도로써의 제주도를 조망하고 있고, 4장과 5장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귤과 해녀 - 잠수 혹은 잠녀 - 를 제주도의 역사 속에서 살펴보고 있습니다. 6장에서 8장은 곶자왈, 테우리, 화산을 통해 제주도가 가진 자연환경의 특징 - 화산섬 - 과 함께 변경으로써의 위치로 인해 누리게 된 말목장의 역사 및 고스란히 보존된 원시림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9장에는 궨당 - 괸당 - 문화, 10장에는 먹거리 문화를 통한 제주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11장부터 15장까지는 제주도의 역사를 신화부터 현재까지 분절하여 짚어내고 있습니다. 


제주도의 맛집과 명소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이 책을 한 번 쯤 읽으면, 다른 분들이 좋다고 하는 곳에도, 다른 분들은 미처 관심갖지 않는 장소에도 모두 다 관심이 갈만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른 제주도에 대한 책을 더 읽어내고, 내년 초의 제주도 행을 준비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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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영어는 왜 실패하는가 - 대한민국에서 영어를 배운다는 것 함께 걷는 교육
이병민 지음 / 우리학교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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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1,680시간 가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하버드대학의 로저 브라운에서 시작된 (중략)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언어 습득을 시작한다. 그리고 만 1세를 지나고 만 2세를 지나 만 3세가 되면서 폭발적으로 언어 습득이 빨라지다가 만 4세가 되면 거의 자신의 모국어를 완성하게 된다. 이때 아이들은 주변에서 들려오는 수많은 언어 소리에 노출되며 이 언어를 사용하는 주변 사람들과 간단없는 상호작용 및 교류를 한다. 이를 만약 아이가 만 4년 동안 깨어 있는 시간에 주변 사람들과 끊임없이 언어로 상호작용을 하는 과정으로 본다면, 그 시간은 아래와 같은 방식으로 표현되고 산출될 수 있을 것이다.


8시간×365일×4년=11,680시간


8시간은 아이가 하루 평균 깨어 있는 시간으로 언어로 소통한 시간이다. 그렇게 365일, 4년을 계산하면 11,680시간이 나온다. 아이들은 세상에 태어나 만 4세가 될 때까지 적어도 이 정도의 언어 노출을 경험한다. 이 정도의 시간이 한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충분조건은 아니지만 자신의 언어를 습득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라면, 영어와 같은 외국어를 자신의 추가적인 언어로 만드는 데 적어도 이 정도의 노출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237~238쪽)


11,680시간 정도가 지나면, 아이들은 모국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됩니다. 11,680시간, 도대체 어느 정도의 시간일까요?


11,680시간은 실로 어마어마한 시간이다. 이 시간을 다음과 같이 바꾸어 생각해보면 시간의 양을 실감할 수 있다. 만약 하루 8시간의 영어 노출을 4시간으로 줄인다면, 11,680시간을 채우는 데 8년이 필요하다. 이 4시간을 2시간으로 줄인다면, 11,680시간을 채우기 위해서는 16년이 필요하다. 다시 2시간을 하루 1시간으로 줄이면 같은 시간을 채우는데 32년이 걸린다. 이를 풀어서 설명하면, 적어도 하루에 1시간씩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영어를 사용하고 듣고 말해도 11,680시간을 채우는 데 무려 32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엄청난 기간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모국어를 배우기 위해서 이만큼 엄청난 양의 언어에 노출되는 것이다. (239쪽) 


월화수목금토일, 매일매일 쉬지 않고 네 시간 씩,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에 노출된다면, 아마도 8년 정도면 영어를 모국어처럼은 아니겠지만, 모국어와 유사하게 사용할 정도는 되겠군요. 


그런데 저자는 단순한 언어 환경에의 노출이 영어를 사용하는 능력을 향상시킨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말을 배우려면 아이는 인간세계에 태어나서 실제로 말을 하는 사람과 어울려야 한다. 즉 인간의 언어 세계에 살아야 하며 아이의 주변에 언어가 지천으로 널려 있어야 한다. (중략)

그런데 이런 언어 환경은 다른 사람들과 교류하고 어울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TV, 카세트테이프, CD-ROM, 비디오만 듣고 본다고 말을 배우는 것은 아니다. 말을 하는 인간과 접촉하고 교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서 발달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물론 언어 습득도 정상적이지 않다. 인간은 부모와 형제, 그리고 주변 또래들과의 소통과 어울림, 놀이를 통한 상호교류를 통해 말을 배운다. (130쪽) 


그렇게 말하면서 저자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아이의 부모는 청각장애인이었다. 그 아이는 태어나서 3년 6개월이 될 때까지 TV만 보면서 생활했다. 물론 부모의 보살핌을 받았지만, 부모가 아이에게 정상적인 말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언어 입력을 받지 못했다. 이 아이의 언어 발달은 정상적이었을까? 불행히도 정상적 언어 발달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 아이를 유아원에 보내서 어른이나 또래 아이들과 6개월 정도 어울리게 하면 어떻게 될까? 아이는 또래 아이들과 유사한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보였다. 아이의 여동생이 태어났다. 동생은 오빠와 달리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보여줄까? 동생은 정상적이었다. 이유는 바로 오빠 때문이다. 오빠와 접촉하고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아이는 정상적인 언어 발달을 보여주었다. (130~131쪽) 



내부그룹, 외부그룹, 확장그룹


과연 우리나라는 부모, 형제, 그리고 주변 또래들과의 소통과 어울림, 놀이를 통한 상호교류를 해 나가면서 영어라는 언어를 습득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자는 카츠루라는 학자의 영어권 분류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습니다. 카츠루에 의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크게 세 개 권역, 즉,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내부그룹과, 영어를 제2언어로 사용하는 외부그룹, 그리고 그렇지 않은 확장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확장그룹에 속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지도 않고 있고,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의 경험도 없습니다. 즉 우리나라는 내부그룹도, 외부그룹도 아닙니다. 그런데 확장그룹에 속한 여타의 나라들처럼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도 아닙니다. 확장그룹에 속하는 국가 중에서, 어떤 나라들은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하기도 합니다. 저자는 스웨덴, 노르웨이,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벨기에, 룩셈부르크, 핀란드 등을, 모국어를 가지고 있으면서 영어권 국가의 식민지 경험도 없는데도 영어를 더 잘 사용하는 국가로 예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확장그룹 중에서 영어를 잘 사용하는 위의 국가들은 주요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인구 규모가 중소 규모에 속한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이러한 중소 규모의 국가들은 경제적인 필요상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환경이 이루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중소 규모의 국가들은, 의외로 다민족 국가들이 많습니다. 처음부터 여러 언어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영어를 추가적으로 배우기에 크게 거부감이 없는 환경이라는 말이죠. 저자는 국어로 플레이시어(네덜란드어의 변종)와 프랑스어, 그리고 독일어를 배우는 벨기에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영어를 하나 더 배우는 것은 필요를 자극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중소 규모의 국가들은, 그들의 경제적 필요를 위해서 영어를 배우기도 한다고 봅니다. 영어권 영화의 경우, 중소 규모 국가에서는 자국민의 시청을 위해 굳이 영어를 사용한 영화를 더빙할 필요를 못 느낀다고 합니다. 그냥 영어로 방송하던지, 혹은 자막 처리를 하던지 하는 것이 더 경제적이라는 말이지요. 우리나라처럼 인구 5천만 정도의 규모를 가지고 있다면, 마치 스페인처럼, 굳이 영어를 배우지 않더라도 생활하는데 크게 어려움도 없을 뿐만 아니라, 영어를 한국어로 번역할만한 여러가지 경제성이 충족되지만, 핀란드 같은 나라는 5백만의 전체 인구보다 더 많은 6백만의 한해 관광객을 맞이하다보면 영어라는 언어가 그렇게 무시할만한 규모는 아니게 여겨진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보니, 영어를 통해 세계화/국제화에 더 가까와져야 할텐데, 우리나라도 중소규모 국가들처럼 영어가 일상에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보니,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다른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모국어 혹은 제2국어로 사용하는 내부그룹이나 외부그룹의 경우, 우리 생각처럼 영어에 목매고 있지 않다는 이야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캐나다의 경우, 영어를 국어로 사용하고 있지만, 퀘벡 주의 경우에는 프랑스어가 공용어로 영어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영어를 제2국어로 사용하는 필리핀, 인도, 말레이시아, 케냐, 우간다 같은 나라들이 영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마어마한 발전을 이루고 있지도 않습니다. 국제화/세계화라는 키워드가, 수출을 주로 하는 무역국가인 우리나라에게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겠지만, 그것이 영어를 모든 국민이 잘 해야 한다는 논리로 귀결되지는 않는다는 것을 저자가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영어에 대한 욕망, 엘리트를 향한 욕망


그런데 우리나라는 왜 이렇게도, 영어를 사용할만한 여건이 만만찮은데도 영어를 향한 욕망이 넘실대고 있는 것일까요?


세계적으로 영어의 내부그룹을 제외하면 여기저기서 목격되는 일반적인 현상은 영어는 소수 엘리트들의 언어라는 점이다. 영어가 사회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외부그룹인 싱가포르나 말레이시아, 필리핀이나 인도를 비롯해서 거의 세계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수백 년간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와 파키스탄이지만 그 나라 대학생들이 영어를 더 잘 하려고 얼마나 무진 애를 쓰는지 모른다. 영어가 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는 이런 나라에서도 영어를 둘러싼 편차가 심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영어가 엘리트들의 언어이기 때문에 영어에 대한 욕망이 더욱 기승을 부리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원어민들이 대량으로 우리나라에 유입되고 그들이 전체 인구의 어느 임계점을 넘어서 그들과 우리가 영어로 소통해야 하는 상황이 빈번하게 발생하지 않는 이상, 전체 또는 대다수 한국인들이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거나 이중언어로 사용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상황은 인류의 언어 접촉이나 교육의 역사에서 볼 때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니다. (117쪽) 


저자의 진단은, 영어에 대한 욕망이 결국 엘리트를 위한 욕망이 투사된 것이라고 볼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이들 숙제를 도와주거나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상에서 실제로 영어로 대화하거나 영어를 사용한(118쪽)' 경험을 가지기에 너무나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이렇게 영어를 향한 욕망이 넘실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 저자의 판단입니다. 


실은 그렇습니다. 저만해도, 영어로 대화한 경험은 손에 꼽을 지경입니다. 학교에서나 영어로 대화할 기회가 있었지, 특별하게 비즈니스때문에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우리나라 국민 중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영어로 말하고 들을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얼마 사용하지도 않을 영어를, 온 나라가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여서 배우려는 이유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질문을 "내가 오늘 이것을 꼭 들었으면 좋겠다, 하는 주제가 있으세요?"라고 바꾸면 "우리 애가 영어를 굉장히 잘했으면 좋겠다. 그 노하우를 듣고 싶다."는 대답이 바로 돌아온다. 나는 다시 묻는다.

"다른 질문을 하나 드릴게요. 자녀가 영어를 얼마만큼 잘했으면 좋겠는지, 영어에 대한 기대치가 어느 정도인지 누가 한 번 말씀해주세요."

"자유로운 의사소통……."

"자유로운 의사소통! 좋은 얘기예요. 그런데 자유로운 의사소통이라는 게 도대체 구체적으로 뭘 얘기하는 거에요?"

"외국인하고 만났을 때, 영어를 써야 할 때, 그 때 자유롭게……."

"영어를 써야 할 때가 어떤 상황이에요? 해외여행 가서 면세점 가서 물건 살 때?"

"뭐든지……."

"뭐든지! 그러니까 모든 상황이네요. 예를 들어서 유엔 같은 데서 연설을 할 수도 있고, 미국 CBS 방송국 기자나 ABC 방송국 기자하고 한국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 인터뷰도 하고, 그런 걸 잘할 수 있는 정도, 그런 거에요?"

"상황이 되면……."

그렇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렇게 하고 싶은 게 일반적인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영어에 대한 기대치이다. 한 인간이 자신의 모국어뿐 아니라 일상의 모든 상황에서 다른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겠다는 것은 이중언어를 구사하겠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일반 국민들의 영어에 대한 기대치는 우리 사회가 이중언어 사회로 가야 함을 의미한다. (111~112쪽)


언제 어느 때나 필요한 순간에 영어로 프리 토킹을 하는 것이 영어 교육의 목적이다, 라는 이야기를, 결국 저자는 '이중언어 사회'에 대한 욕망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영어를 항상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닌 나라인데, 1년에 한 시간도 영어를 말할 기회를 애써서 가지려고 하지 않는다면 가지지 않을 수 있는 나라에 살면서, 영어로 프리 토킹을 언제 어느 때나 필요한 순간에 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은, 결국 우리나라가 영어도 모국어로 사용하여야 한다는 말 밖에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글의 앞에서도 인용한 내용을 뒷받침해주는 여러 사례를, 저자는 책의 다른 곳에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있다. 어떤 아이가 영어 교육용 CD-ROM을 가지고 놀았다. 게임, 이야기, 애니메이션이 나오는 유아용 영어 CD-ROM이었다. 아이가 이것을 한참 가지고 놀더니 엄마에게 와서 이렇게 말했다. "엄마 'Follow me'가 뭔지 알아?" 엄마가 궁금해서 아이에게 물었따. "그래. 그 뜻이 뭐야?" 아이는 이렇게 답했다. "응, '이리 와 봐. 내가 뭐 보여줄게'야." 엄마는 아이에게 CD-ROM을 보여주면 뭔가 영어를 많이 배우겠지 하는 욕심에 그것을 가지고 놀게 했는데, 아이가 2시간짜리 영어 교육용 CD-ROM에서 익힌 영어 표현은 "Follow me."였다. 그리고 그 뜻을 "이리 와 봐. 내가 뭐 보여줄게."로 이해했다. 엄마는 아이가 뭘 보고 그렇게 말했는지 궁금했다. Follow me라니, 그 뜻은 원래 "나를 따라와."라는 말인데 보여주긴 뭘 보여준다는 것인가?

유아를 위한 영어 CD-ROM에는 분명 follow me라는 표현이 나왔다. 그 밖에도 수많은 영어 표현이 있었다. 그런데 왜 아이는 그 표현만 배웠을까? CD-ROM 속 상황은 이랬다. 컴퓨터 화면에 애니메이션으로 남자아이가 등장하고, 그 아이가 거북이에게 말을 건다. 그리고 "Follow me."라고 말하면서 어디론가 간다. 그 장면과 follow me 표현이 아마도 기막히게 잘 조합이 되어 아이에게 이해가 되었던 모양이다. 

문제는 그것이 그 아이가 2시간 정도의 유아용 영어 CD-ROM을 수없이 가지고 놀면서 익힌 영어 표현의 전부라는 사실이다. 그 표현 외엔 거의 배운 것이 없다. 그 CD-Rom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어 표현은 그 아이에게 무의미한 자연의 소리, 즉 의미와 상황이 제대로 연결되지 않는 단순한 소리에 다름없었다. (152쪽) 


단순하게 오랜 시간 영어 환경에 노출한다고 해서 영어 활용 능력이 늘지 않는다면, 인간의 자연스러운 상호 교류 속에서 영어 환경에 노출되도록 해야하고, 그러려면, 우리나라도 이중언어 사회로 가야만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할 수 있는 환경이 되겠지요. 그리고 그 능숙한 사용으로 말미암아 엘리트 사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도 충족이 되겠지요. 


그래서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 - 속칭, 영어유치원이라고 불리우는 것을, 저자는 그 표현이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면서 다음과 같이 일컫고 있습니다 - 부터 영어를 향한 욕망은 넘실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나마 자연스러운 영어 환경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일부의 사람들이 영어를 조금 더 잘 구사하는 수준에 이르를 수 있겠지요. 



어마어마한 영어 사교육, 그러나 그 성공 여부는


그러나 그 성공 여부도 실은 불투명합니다. 저자는 소위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에서 원어민 강사와 어린아이 사이에 일어나는 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원어민 강사: What day is it today?

아이들: Sunny.

원어민 강사: No, what day is it today? What day is it today?

아이들: It's Tuesday.

원어민 강사: Sun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uursday, Friday, Saturday.

원어민 강사와 아이들:  Sunday, Monday, Tuesday, Wednesday, Tuursday, Friday, Saturday. (167~168쪽)


저자는 이런 형태의 상호 교류가 '영어 수업이지, 일상의 자연스러운 영어 대화 환경이 아니(168쪽)'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수백만원을 들여서 이렇게 영어를 투입하지만, 영어를 사용하는 환경은 인위적이고, 따라서 영어가 학습되는 형태로 아이들에게 투입되며, 그렇기 때문에 일상의 자연스러운 영어 대화 환경에서는 도저히 써먹을 수 없는 영어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책에 나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덧붙여볼까 합니다. 제 대학교 1학년 때 교양영어 강사 선생님은, EBS에 출강하시던, 연세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시고 석사 과정까지 이수하셨던, 국내에서 동시 통역사로 활동하셨던 분이셨습니다. 그 선생님께서는 한 학기 내내 영어로 수업을 하셨는데 - 죽을 뻔 했네요 - 제일 마지막 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한국어로 - 그래서 제가 알아듣고 기억하고 있는 것이죠 - 해주셨습니다. 남편이 미국 유학 갔을 때, 자신도 따라갔었는데, 한국에서 동시 통역도 했고 학위도 있어서 영어에 큰 어려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미국에 가서는 한동안 바깥에를 나가지 못했다고 하시더군요. 바깥에 나가면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매일매일 집에서 TV만 보셨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석 달 쯤 지나니 현지의 영어가 익숙해지기 시작해서 조금씩 활동하기 시작하셨다는. 우리나라에서 외국인들이 사용하는 영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맞추어진 영어입니다. 항상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우리나라 사람을 보면 조금 덜 빠르게 말하죠. 마치 우리가 외국인들하고 한국어로 소통할 때 조금 천천히 말하려고 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위의 예시처럼 배운 어린이들이, 조금 더 낫게 영어 사용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것은 일상적인 환경에서 자연스럽게 사용되는 영어는 아닙니다. 그것은, 영어 학습 환경 속에서 잘 훈련된 것일 뿐. 수학으로 말하면, 유형 문제는 잘 풀지만, 응용 문제는 잘 풀 수 없는 그런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영어를 능숙하게 사용한다고 해서 일이 다 풀린 것은 아닙니다. 


저자는 이런 이야기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G20 정상회의를 준비한 이창용 단장은 이렇게 말했다. "G20 정상회의 준비를 위해 해외 유학을 다녀왔거나 해외에서 직업을 가진 민간인을 채용했는데, 정부 일이라는게 영어만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더라." 당연한 말이다. 말만 유창하다고 일을 잘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름의 경쟁력을 가지려면 우리 문화,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시스템, 행정 경험, 우리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바탕에 깔려 있어야 한다. 그런 바탕이 없이 말만 잘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207쪽)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할 것입니까. 벌써부터 일주일에 사흘, 닷새씩, 영어 '학습'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은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할 수 없습니다. 


어느 날 내 연구실에 두 명의 학생이 찾아왔다. 한 학생은 중학생이고 다른 학생은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은 네 살 때 엄마와 함께 미국에 가서 로스앤젤레스에서 1년, 그리고 워싱턴 D.C. 근교에서 1년 정도 유치원을 다녔다. 중학교 2학년인 다른 아이는 미국에서 살았던 경험도 없었고, 전일제 유아 영어학원을 다닌 경험도 없었다. 그냥 평범하게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학생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미국에서 유치원을 다녔던 경험을 이야기할 때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그 학생은 그 시절의 기억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 물론 그 학생이 그 시절을 기억할 수 없는 것은 어찌 보면 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 시절을 이야기할 때, 그 학생은 항상 "엄마가 그랬어요."라는 식으로 말했다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쯤에 그는 한국에 돌아왔고, 돌아온 이후에 영어는 다른 아이들처럼 배웠다고 했다. 한국에 와서 그렇게 영어에 흥미를 가지고 깊이 공부한 것 같지는 않았다. 

한편 중학교 2학년 학생은 국내에서 영어를 배운 경험만 갖고 있었다. 조기에 영어를 배운 경험도 없었다. 그냥 우리가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약간의 영어 사교육을 받았고 영어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렇다고 영어에 아주 뛰어난 학생은 아니었다. 

현재 그 두 학생의 영어 능력이 궁금하여 영어로 몇 분씩 인터뷰를 했다.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중학교 2학년 아이의 영어 능력이 어린 시절 초등학교 입학 전에 미국에서 2~3년 살면서 미국 유치원을 다닌 아이보다 훨씬 나았다. 이는 충분히 설명이 되고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다. (175쪽) 


영어의 투입 시기가 빠를 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입니다. 영어를 많이 투입한다고 해서 영어를 잘 하게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저자의 또 다른 주장입니다. 차라리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휘를 배우는 것은 오히려 지적으로 훨씬 성숙한 어른들이 잘 배우고, 문장의 구조나 형식에 대한 이해나 습득도 아주 나이 어린 어린이들보다 인지적으로 성숙한 어린이가 더 잘 배운다. 발음은 어릴수록 낫다는 결과가 있지만, 그것도 언제가 결정적 시기인지 명확하지 않다. 즉, 말을 배울 수 있는 것은 한 시기가 아니라 여러 시기가 있고 그런 시기도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것이 아니라 민감한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결론이다. (145쪽)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기 위해 다양한 근거로 책의 3분의 1을 할애하고 있습니다. 


결국 영어를 배우는 데 나이는 수많은 여러 조건 중 하나에 불과하다. 영어를 배우는 데 교육 시간, 노출, 나이, 동기, 언어 습득 재능, 모국어, 다국어 사회 환경 등 수많은 변수가 있다.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영어 습득에 있어 '나이'보다 노출의 양이나 시간과 같은 변수가 더 중요하다 때문에 만약 우리 아이가 영어 원어민이 되는 것이 목표라면, 하루 빨리 미국행 비행기를 타는 것이 상책이다. 우리 아이가 평생 영어로 먹고살고, 미국에 가서 대통령은 못 되지만 주지사라도 한번 하고 싶다면, 하루라도 빨리 미국행 비행기를 태워 보내 한국어와 한국 문화를 잊고 철저하게 미국인이 되는 것만이 길이다.  (201쪽)


정말 미국인이 되라는 이야기이겠습니까. 원어민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기 위한 욕망은, 결국 영어권 '확장그룹'에 속하는 우리나라 환경에서는, 제아무리 어마어마한 비용을 들이더라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제 확신이기도 합니다. 



결론


저자는 결론 부분에서 일곱 가지 대안을 마련하면서, 공교육에서의 역할과 그 속에서의 교사의 자율적 가능성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저자의 이야기는 아니지만, 제 경험과 제 주변의 경험 이야기를 하면서 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저는 중학교 2학년 1학기 때까지 사전의 표제어 옆에 있는 발음기호의 정체를 몰랐습니다. 학교 영어 시간에, 새로운 단원을 시작할 때는 항상 샤프를 들고 긴장된 상태로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선생님께서 본문을 읽어주시면, 저는 샤프로 선생님의 발음을 본문 밑에 한글로 적느라 바빴습니다. 선생님이 'I have some bread'라고 읽으시면 저는 그 밑에 '아이 해브 썸 브래드'라고 적는 식으로 말이죠. 왜냐하면... 그렇게 적어두어야 나중에 본문을 읽으라고 저를 시키면 저도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었지요. 'have' 옆에 있는 '[hӕv]'가 뭔지 몰라서 벌어진 해프닝이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 1학기 여름방학 때, 동네에 있는 한 달에 3만 5천원짜리 영어 학원에서 처음으로 발음기호가 뭔지, S+V 가 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 때부터 영어 '학습'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영어였기 때문에 항상 영어 실력이 뒤떨어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니, 모의고사에 교과서 외 지문이 나오는 것이 일상이 되다보니, 독해 스킬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해야할까 고민하다가 - 학원에 다닐 형편이 안되니 - 혼자 서점에 가서 독해책을 하나 샀습니다. '리딩 튜터'라는 교재가 처음 나왔을 때, 가장 기초인 1권을 샀습니다. 독서실에 앉아서, 지문을 한 번 읽고 문제를 푼 후, 도무지 읽을 수 없는 지문과 풀 수 없는 문제에 절망하면서 지문에서 모르는 단어를 체크하였습니다. 거의 다 모르는 단어들이었지만 별도의 학습장에 꼼꼼히 적고 사전을 찾아가면서 뜻을 찾아 적고 외워 보았습니다. 그런 후에 다시 지문을 읽고 외운 단어를 지문의 문맥 속에서 확인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도 모르는 단어를 다시 한 번 체크하고는 다음 지문으로 넘어갔습니다. 한 예닐곱줄 되는 지문을 보는데 30분 이상이 걸리더군요. 하루에 세 개씩의 지문을 보았는데, 꼬박 두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데 1달쯤 지나, 100여개의 지문이 있던 1권을 끝낼 때가 가까와오니, 지문 세 개를 보는데 두 시간이 걸리던 것이, 삼십 분으로 줄어 있었습니다. 단어도, 독해 스킬도 향상된 셈이죠. 내친 김에 1권을 마치고 2권을, 2권을 마치고 3권을 보았습니다. 최상 난이도인 3권을 끝까지 보진 못했지만, 결국 고등학교 1학년 11월부터 1월까지 그 석 달 동안의 제 공부가, 고 3때 수능을 보고 대학별 본고사 영어 시험을 보는 디딤돌이 되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제 대학 선배 한 사람이, 군대를 다녀와서는 토익 공부를 시작하였습니다. 군대 가기 전까지는 고시 준비를 해야하나, 취업 준비를 해야하나 갈등하다가 그냥 군대나 가자 그러면서 군대를 갔는데, 갔다 와서는 고시 쪽은 접고 취업을 준비해야겠다면서 토익 학원을 등록하더군요. 3학년 1학기 여름부터 준비했는데, 그 전에는 토익에 대한 준비가 전혀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학원에 다니면서 준비하니까 8개월 뒤에는 비로소 900점을 넘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계속 토익 시험 점수를 높여가다가 취업에 성공해서, 지금은 좋은 회사 잘 다니고 있다는 말을 들었네요. 교사 월급보다는 뭐... 세 배 쯤 더 받는...? (쿨럭)


자녀의 영어 수준이 원어민 수준에 결코 도달할 수 없다면, 결국 영어 학습의 목표는 수능과 취직이겠지요. 그것을 위해서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영어교육에 모든 것을 쏟아붇는 것보다, 아이가 자라서 스스로 영어를 '학습'할 수 있도록, 어릴 때에는 여러 가지 면에서 - 특히 정서적인 부분 - 아이의 성장과 발달을 도울 수 있는 쪽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더 필요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이 책을 통해서 그러한 생각에 확신을 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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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4 17: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하리야헌처크 2017-12-24 17:53   좋아요 0 | URL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꾸벅.
 
누구를 구할 것인가?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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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영국의 철학자 필리파 풋이 1967년에 고안한 애초의 전차 문제는 짧고 간단했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전차 앞에 다섯 명이 서 있다. 기관사는 선로를 유지하여 다섯 명을 치어 죽일 수도 있고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선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다른 선로로 틀어 한 사람만 치어 숨지게 할 수도 있다. 기관사는 사람이 적은 선로로 방향을 틀어 다섯 사람 대신 한 사람을 죽여야 할까?' (9~10쪽) 

이 이야기는 마이클 센델의 유명한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첫 장에 나온 이야기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책을 쓴 저자는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여러분은 매우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중략) 원한다면 타로 카드를 읽거나 다트를 던져서 결정하셔도 됩니다. (중략) 여러분 중에서 이 사건을 타로 카드로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상당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겁니다. "그냥 내 의견이 옳다고 느껴져. 무엇도 나를 설득할 수 없어"라고요. (중략) 하지만 (중략) '무엇도 나를 설득할 수 없어'에 너무 안주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젯밤에 옳다고 느껴지던 것이 오늘 아침에는 잘못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은 다들 아시는 바입니다. (119~120쪽) 

누구나 느낌대로 결정하고 그 느낌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지만, 삶의 모든 국면에서 그렇게만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제의 결정이 오늘의 후회로 다가올 때, 그 결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우에야 상관 없겠지만, 만약에 개인을 넘어선 어떤 것에 영향을 끼친다면, '그냥 그렇게 결정한거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머리가 지끈지끈하지만 위의 이야기와 같은 '사고실험'에 참여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실제로 위의 이야기와 같은 사건 - '국민 대 대프니 존스' 사건 - 이 발생하였다고 하면서 실험을 현실로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현실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서 어떤 '근거'로 어떤 '결정'을 하는지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여러분이 탄 전차가 갈림길에 서면 '주저하지 말고 선택하라'

아울러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말할 수 있길. (142쪽) 

책의 이야기대로, 사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합리적으로 추론하여 근거를 추린 뒤에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직관적으로 결정한 후에, 그 결정을 설명할 근거를 찾는 식이지요.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하라는 말은, 정말로 사고실험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누가 일이 터졌을 때 앞뒤전후좌우맥락을 따져가면서 결정하겠습니까. 직관적으로 결정하겠지요. 


이 때, 결정의 근거가 '그냥'이라면 곤란하다는 것이 이 책의 이야기이며, 직관적인 결정을 위하여 윤리적 판단 능력을 가다듬어두라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유비 추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비는 두 사물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림처럼 아름다워요'라는 문장처럼요."

(중략) 하지만 유비는 대체로 비교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서 두 사물을, 또는 두 사람이나 두 사건을 비교해요.  

유비 추론이 강조되는 이유는, '국민 대 대프니 존스' 사건으로 주어진 실제화된 사건에서, 다른 여러 사건들과 비교하는 장면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건들과, 위 이야기를 실제화한 사건을 지속적으로 비교하면서 위 사건에 대해 판단하는 장면이 계속 나옵니다. 저자가, 우리의 판단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직관적으로 결정할 때, 보통은 우리가 이전에 결정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따를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결정이 우리 몸과 마음에 체화된 경우, 그것은 다른 결정의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겠지요. 비슷하게 보이는 두 가지 다른 사례를 명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다음 결정에 대한 근거의 기초를 닦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어진 이야기 속에서, 다섯 명 대 한 명을 결정하기 위하여, 저자는 다양한 철학/신학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센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적 관점이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중결과의 원리도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에 근거한 견해도 있습니다. 혹은 다섯 명 대 한 명을 결정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 배심원단의 결정에서는 배심원들의 직업에 따라 조금씩 미묘하게 주어진 철학/신학적 견해를 비트는 부분도 있습니다. 


정답은, 물론 없습니다. 아니,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정답이 있지만, 그 정답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겠지요.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도덕적 상대주의'라 하면서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의 견해를 인용합니다. 


스미스에 따르면 이런 천박한 사고는 "좋은 도덕적 의사결정과 도덕적으로 일관된 삶을 낳지 못한다. 이것은 도덕적 빈곤이다". (139쪽) 

결국, 정답은 없지만, 나는 행동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사유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는 정도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삶에 윤리적 태도의 확립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철학자들의 사유를 고민해야 하는 까닭은, 그들이 우리의 앞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갈등해야 할 많은 것들을 미리 고민해 준 바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결정하고, 그 결정을 합리화해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이, 적어도 '그냥'이어서는 안되지 않겠냐는 것이, 독서 후의 제 결론이기도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물론, 저는 위 이야기에 대한 제 견해를 아직 내리지 못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조금 더 공부해보고, 나름대로의 결정을 내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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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사 여행 - 역사기행으로 읽는 일본사
하종문 지음 / 역사비평사 / 201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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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대한 역사적 배경을 갖기가 쉽지 않았던 개인적인 까닭을, 일본의 우리나라에 대한 여러 차례의 침략과 그를 대하는 무례함이라고 설명하고 싶습니다. 1592년의 임진왜란, 1876년의 운요호 사건을 기점으로 한 국권의 침탈, 그리고 왜구의 긴 기간에 걸친 약탈 등이, 명확한 사과와 재발 방지 의지를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일본은 아직도 우리나라에게는 가깝고도 먼 나라임에 분명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유가 일본과 일본 역사에 대한 저의 무지함의 변명이 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기껏해야 [일본은 있다(서현섭)], [일본은 없다(전여옥 씨의 표절작품으로 드러난)] 정도의 일본 개설서 - 게다가 [일본은 없다]의 경우에는 저자의 표절이라는 윤리적 흠결까지 - 를 가지고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 수도, 알기도 어렵다는 생각을 요 근래에 해보게 되었습니다. 


직접적으로는, 벌써 2년째 공염불에 그치고 있는 일본 교토 여행 준비의 목적도 있을 것입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일본편]을 읽으면서, 일본 역사에 대한 대체적인 흐름을 알 필요를 느꼈고, 이런저런 인터넷 상의 추천글을 보고 이 책, [일본사 여행]을 선택했습니다. 



책이 쉽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그것은 책의 서술 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우선,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집니다. 첫 부분은, 일본의 43개 현을 훗카이도부터 오키나와까지 주욱 훑으면서, 각 현의 주요한 장소와 그에 따른 사건을 간략하게 안내하는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입니다. 예컨대, 어느 현의 어느 도시에는 이런 사건이 있었는데, 이런 유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식인 것이죠. 이 부분이 굉장히 어렵고 집중력이 떨어졌습니다. 일본 역사에 대한 좁고 부분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상태에서, 지리적인 특징에 따라 분절적으로 제시되는 역사적 사실을 받기가 버거웠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래서 집중력 없이 읽으면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일본 역사를 기술한 두 번째 부분인 '역사로 찾는 일본' 부분과 첫 부분인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이 바뀌면 어땠을까에 대한 생각을 했더랬는데, 막상 책을 다 읽고 나니, 책의 배치가 어쩔 수 없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역사로 찾는 일본' 부분이 앞부분에 오고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이 뒤에 자리잡았다면, 아마 뒷부분에 자리잡은 '답사로 찾는 일본' 부분은 사족으로 여겼을 가능성이 커보입니다. 부분을 모아 전체를 조망하는데 사용하는 책의 서술방식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초보 독자에게는 어렵게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의 분량에 비해 독서 시간은 굉장히 오래 걸렸습니다. 


하지만, 시도는 참 좋았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사실 한 나라의 역사는 땅에서 이루어지는 사람들의 삶의 총합일텐데, 막상 역사를 배우면서도 어디에서 살던 사람들의 이야기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받아들이는 삶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그 이해의 폭이 완전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첫 부분의 '답사로 찾는 일본'이, 뒤이은 '역사로 찾는 일본'을 읽는 내내 오버랩되면서 일본사에 대한 이해를 도와준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부분은, 역사를 다룬 두 번째 부분이 굉장히 알찼다는 것입니다. 역사를 다룬 여러 책을 읽어본 편이지만, 이 책은 정치사와 주요 사건을 주요한 맥으로 하면서도, 각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에도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특징을 드러냅니다. 당시 기층민의 삶의 양상을 드러냄으로써, 당시 시대 상황을 입체적으로 알 수 있도록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사람들의 일상생활이 모여서 역사의 흐름을 이루고 있다는 생각을 어느 정도 반영하여 책이 이벤트에 치우치지 않도록 배려한 흔적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자의 일본 역사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느낄 수 있습니다. 저자 약력대로라면 저자의 전공 분야는 현대사 쪽인데도 불구하고, 고대사와 중세사의 다양한 사건들에 대하여, 폭넓은 지식을 가지고 다양한 견해를 소개하려는 의도를 글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400여쪽에 이르는 많지 않은 두 번째 부분이지만, 알차게 실어내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 일본편]을 먼저 읽은 입장에서, 유홍준 교수의 책과 일본의 지명/인명에 대한 표기법이 달라서 - 예컨대, 유홍준 교수는 '어소', 이 책의 저자는 '고쇼' - 혼란스러움이 있었지만, 이 책의 저자는 표기 옆에 한자를 병기하여서 혼란이 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는 다양한 사진 자료가 - 비록 흑백이지만 - 포함되어 있어서 이해를 더할 수 있었습니다. 딱 적절한 크기와 분량의 사진과 그림, 도표 자료는 일본사에 대한 이해를 적절하게 도왔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분량은 적당하지만, 내용의 밀도는 읽기에 조금 버거운, 그럼에도 좋은 책을 통해서 일본사의 큰 흐름을 놓치는 부분 없이 알게 되었다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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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선생님도 몰래 보는 분수 나눗셈 사이언스 Why? 시리즈
이타바시 사토루 지음, 전선영 옮김 / 아르고나인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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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목적은 간단합니다. 개념을 알고 문제를 풀지 않으면...


<책 속의 한 장면>


이렇게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지요. 실제로 많이 벌어지는 일이며, 많은 분들이 경험한 일이기도 합니다. 


우선은, 학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주지 교과목을 중심으로 단원평가를 실시한 후, 일정 점수에 미치지 못하면 특별 보충을 실시하여 일정 점수 이상에 도달하도록 만듭니다. 일정 점수를 위하여 학교에서는 저런 식으로 아이에게 같은 문제를 지속적으로 풀립니다. 그래서 일정 점수 이상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 학생은... 아마도 수학에 대한 흥미나 관심이 늘어나는 경험은 하지 못할 것입니다. 


학원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나지만, 학교와 다른 점은 일정 점수 이상에 도달하도록 하는 과정이 생략될 가능성이 큽니다. 틀린 문제를 맞출 때까지 풀리지만, 학교보다 점검은 덜 하게 됩니다. 학교는 어쨌든, 아이에게 성실함이나 책임감을 가르칠 필요도 있는 전인교육 기관이지만... 제가 학원에서 일하면서 느낀 것은, 학원에서 아이들의 성실함이나 책임감을 강조하면 아이들도 힘들어하고 학원 원장님도 힘들어하시고 학부모들도 힘들어합니다. 학교는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가 아니지만, 학원은 효율성이 최고의 가치이니까요. 어쨌든.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벌어지는 이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는지, 저자는 아래와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방법 이전에 '왜 이렇게 되는지'에 대한 개념이나 원리를 먼저 생각하고, 문제를 풀기 위한 공식을 먼저 찾기 보다는 문제가 가진 의미를 먼저 생각해보며, 수학이 실생활에서 유용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고 실생활 맥락을 놓치지 않는다면 수학이 그리 어려운 과목은 아니라는 말을 저자는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책의 내용을 우리의 아이들에게 적용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자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인내가 선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 책은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수학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책을 읽은 분들 중에는, 이 책의 '방법'대로 적용해보다가 효과가 미미하다고 생각하면 다른 '방법'을 동원하는 경우가 있을 것입니다. 그런 '방법'들의 적용이 아이들의 수학 역량을 깎아먹는지는 않는지, 생각해봐야 할 문제입니다.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의 '분수의 나눗셈', 중학교 1학년 1학기의 '(음수) 곱하기 (음수)', 방정식을 배우면서 등장하는 '거리/속력/시간'을 활용한 문장제 문제, '(소)인수분해'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네 부분 다 우리나라 교육 환경에서는 유의미한 주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의 '분수의 나눗셈' 설명 부분은, 나눗셈을 곱하기 역수로 고쳐서 풀어내는 것에 대한 원리를 설명하면서, 나눗셈의 의미와 원리를 설명하는 방식으로 책이 구성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나눗셈의 기본 원리 및 분수/소수의 나눗셈을 분절하여 학습할 뿐만 아니라, 그 원리보다는 방법적인 측면에서 학습하는지라, 많은 학생들이 나눗셈의 의미와 양상을 알지 못한채 기계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어떤 어린이들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어떤 어린이들에게는 기계적인 사용이 오개념의 고착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따라서 나눗셈의 의미와 분수의 의미를 연관지으면서 분수의 나눗셈이 이루어지는 원리를 파악한다면 시간은 오래 걸리더라도 확실하게 이해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되겠지요. 


'(음수) 곱하기 (음수)'도, 단순하게 외워 풀이하는 것보다는 음수가 가진 실생활에서의 의미와 함께 (음수) 곱하기 (음수)가 이루어지는 양상을 설명함으로써 학생들에게 유의미한 이해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문장제 문제에 대한 설명은, 현재 우리나라에서의 수학 교육이 이루어지는 부분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수학 수업에서 우리는 필사적으로 공식을 외워서 더욱 빠르게 문제를 푸는 요령을 익혔다. 문장제의 몇 가지 패턴을 익혀서 통째로 암기한 것이다. 그러나 애초에 공식을 외우는 것부터가 당찮은 일이다.

문장제를 푸는데 공식은 필요 없다. 문장제가 어려운 것은 문제를 읽고 그 내용을 제대로 해석하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머릿속에 실생활에서의 장면을 떠올리고 그림으로 그려보면 문장을 읽고 해석하기가 편해진다. (50쪽) 

저는 유형별로 접근하는 몇몇 문제집을 굉장히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나의 유형을 연습시키고 비슷한 문제를 묶어서 풀리는 문제집. 그런 문제집은 학생 관리의 측면에서는 편리하지만 - 오답 유형이 정해지므로 그 부분만 따로 풀리면 되니까 - 아이들에게 문제가 지닌 의미를 파악하게 만들어주지는 않습니다. 특히 문장제 문제가 나오는 경우에, 유형별 방식으로 학습한 학생들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떤 학생들은 잘 해결해내기도 하지만, 어떤 학생들은 유형이 섞여서 나오거나 유형과 다르게 나오는 경우에 도통 갈피를 못잡고 문제해결을 못해내게 됩니다. 잘 해결해내는 학생들 중에서도, 자신이 해결한 문제만 잘 해내지 그렇지 않은 문제들은 해결하기 어려워하는 경우들을 겪습니다. 수학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는 것이죠. 


이야기가 조금 옆으로 샜지만, 이 책은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1학년 사이의, 자녀의 수학 교육에 대한 소신과 철학 - 아이의 역량을 믿고 개념과 원리를 중심으로 아이가 학습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겠다 - 을 가진 학부모님들과 교사들이 보면 어느 정도의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학교 현장에서도, 일정 성취에 도달하지 못한 학생들에게, 수학적 개념과 원리를 차근차근 되짚어줌으로써 학생의 근본적인 수학적 역량의 성장을 도울 수 있도록 더 노력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들어주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수학의 궁극적 필요성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는 생각을 밝힙니다. 


인수분해뿐만 아니라 수학 문제를 풀 때의 두뇌사용법, 즉 '수학적 사고'는 실제로 일상생활에 두루 쓸모가 있다. 수학적으로 사고하면 남을 능숙하게 설득할 수 있고, 문장을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가게를 번창시킬 방법도 생각할 수 있고 집안일도 척척 할 수 있다. (3쪽) 

저자는 이러한 관점 아래에서 실생활에서 사용되는 수학적 사고의 실제를 보여주고 있지만...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벤 다이어 그램과 인수분해를 이용한 유형별 분류의 방법이 정말 수학적 사고의 결과물인지... '수학을 잘하면 땡땡땡을 잘 할 수 있다'와 같은 수단으로서의 수학적 사고를 강조하기보다는, 수학 자체가 가진 매력과 흥미를 강조할 수 있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수학은 충분히 재미있고 가슴 설레이게 하는 학문이 맞거든요. (참고로, 저는 수학을 좋아하는 법학도이자 영문학도입니다. 꾸벅.)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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