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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구할 것인가?
토머스 캐스카트 지음, 노승영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11월
평점 :
이야기는 다음과 같이 시작됩니다.
영국의 철학자 필리파 풋이 1967년에 고안한 애초의 전차 문제는 짧고 간단했다.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 전차 앞에 다섯 명이 서 있다. 기관사는 선로를 유지하여 다섯 명을 치어 죽일 수도 있고 -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은 선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 다른 선로로 틀어 한 사람만 치어 숨지게 할 수도 있다. 기관사는 사람이 적은 선로로 방향을 틀어 다섯 사람 대신 한 사람을 죽여야 할까?' (9~10쪽)
이 이야기는 마이클 센델의 유명한 책, [정의란 무엇인가]의 첫 장에 나온 이야기로 더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이 책을 쓴 저자는 아마도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었기 때문에,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여러분은 매우 복잡한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중략) 원한다면 타로 카드를 읽거나 다트를 던져서 결정하셔도 됩니다. (중략) 여러분 중에서 이 사건을 타로 카드로 결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만 상당수는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겁니다. "그냥 내 의견이 옳다고 느껴져. 무엇도 나를 설득할 수 없어"라고요. (중략) 하지만 (중략) '무엇도 나를 설득할 수 없어'에 너무 안주하지는 않으셨으면 합니다. 어젯밤에 옳다고 느껴지던 것이 오늘 아침에는 잘못으로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은 다들 아시는 바입니다. (119~120쪽)
누구나 느낌대로 결정하고 그 느낌대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지만, 삶의 모든 국면에서 그렇게만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어제의 결정이 오늘의 후회로 다가올 때, 그 결정이 지극히 개인적인 경우에야 상관 없겠지만, 만약에 개인을 넘어선 어떤 것에 영향을 끼친다면, '그냥 그렇게 결정한거야'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머리가 지끈지끈하지만 위의 이야기와 같은 '사고실험'에 참여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이 책은 실제로 위의 이야기와 같은 사건 - '국민 대 대프니 존스' 사건 - 이 발생하였다고 하면서 실험을 현실로 끌어당깁니다. 그리고 현실 속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에서 어떤 '근거'로 어떤 '결정'을 하는지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결국, 이 책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여러분이 탄 전차가 갈림길에 서면 '주저하지 말고 선택하라'
아울러 왜 그 길을 선택했는지 말할 수 있길. (142쪽)
책의 이야기대로, 사실 사람들은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합리적으로 추론하여 근거를 추린 뒤에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직관적으로 결정한 후에, 그 결정을 설명할 근거를 찾는 식이지요. 근거를 바탕으로 결정하라는 말은, 정말로 사고실험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어느 누가 일이 터졌을 때 앞뒤전후좌우맥락을 따져가면서 결정하겠습니까. 직관적으로 결정하겠지요.
이 때, 결정의 근거가 '그냥'이라면 곤란하다는 것이 이 책의 이야기이며, 직관적인 결정을 위하여 윤리적 판단 능력을 가다듬어두라는 것이 이 책의 또다른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유비 추론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유비는 두 사물을 비교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림처럼 아름다워요'라는 문장처럼요."
(중략) 하지만 유비는 대체로 비교 기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밝히지 않고서 두 사물을, 또는 두 사람이나 두 사건을 비교해요.
유비 추론이 강조되는 이유는, '국민 대 대프니 존스' 사건으로 주어진 실제화된 사건에서, 다른 여러 사건들과 비교하는 장면들이 계속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건들과, 위 이야기를 실제화한 사건을 지속적으로 비교하면서 위 사건에 대해 판단하는 장면이 계속 나옵니다. 저자가, 우리의 판단이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문제를 직관적으로 결정할 때, 보통은 우리가 이전에 결정했던 것을 기억하고 그것을 따를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의 결정이 우리 몸과 마음에 체화된 경우, 그것은 다른 결정의 근거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겠지요. 비슷하게 보이는 두 가지 다른 사례를 명확하게 비교할 수 있는 능력의 배양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다음 결정에 대한 근거의 기초를 닦을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주어진 이야기 속에서, 다섯 명 대 한 명을 결정하기 위하여, 저자는 다양한 철학/신학자들을 끌어들이고 있습니다. 센델 교수의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주요하게 다루는 제레미 벤담의 공리주의적 관점이 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이중결과의 원리도 가지고 오고 있습니다. 프리드리히 니체에 근거한 견해도 있습니다. 혹은 다섯 명 대 한 명을 결정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는 이야기를 하기도 합니다. 책의 마지막 부분, 배심원단의 결정에서는 배심원들의 직업에 따라 조금씩 미묘하게 주어진 철학/신학적 견해를 비트는 부분도 있습니다.
정답은, 물론 없습니다. 아니,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정답이 있지만, 그 정답은 오롯이 자신만의 것이겠지요. 그러나, 저자는 이것을 '도덕적 상대주의'라 하면서 사회학자 크리스천 스미스의 견해를 인용합니다.
스미스에 따르면 이런 천박한 사고는 "좋은 도덕적 의사결정과 도덕적으로 일관된 삶을 낳지 못한다. 이것은 도덕적 빈곤이다". (139쪽)
결국, 정답은 없지만, 나는 행동에 대한 명확한 근거를 가지고,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을 정도의 사유를 해야 할 필요가 있다, 는 정도로 저자의 생각을 정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의 삶에 윤리적 태도의 확립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철학자들의 사유를 고민해야 하는 까닭은, 그들이 우리의 앞에서 우리가 고민하고 갈등해야 할 많은 것들을 미리 고민해 준 바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결정하고, 그 결정을 합리화해야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정이, 적어도 '그냥'이어서는 안되지 않겠냐는 것이, 독서 후의 제 결론이기도 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물론, 저는 위 이야기에 대한 제 견해를 아직 내리지 못했습니다.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조금 더 공부해보고, 나름대로의 결정을 내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