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자본』을 읽다 동아대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 총서 1
강신준 지음 / 길(도서출판)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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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행 교수가 쓰신 [자본론 공부]라는 책이 있습니다. 김수행 교수는 서울대 교수로 있으면서 서울대 유일의 마르크스 경제학자로 연구와 강의를 하시다가 정년퇴임하시면서 성공회대 석좌교수로 재직 중에 얼마전에 타계하셨습니다. 김수행 교수가 타계하셨다는 소식을 듣고는, 구입을 미루어왔던 [자본론 공부]를 구매해서 바로 읽어보았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읽기 편하게 쓰여진 책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내를 가지고 몇 번이나 읽다가 멈추었다가 다시 처음부터 읽기를 수차례. 얼마 전에 드디어 다 읽어내었지만, 과연 마르크스의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 설명하라고 한다면 도무지 모르겠다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는 독서였습니다. 


그러다가 강신준 교수가 쓴 [오늘 자본을 읽다]를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강신준 교수는 한 5년 전에 마르크스의 [자본]을 독일어 원전을 바탕으로 순차적으로 완역한 바 있습니다. 김수행 교수도 [자본론]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번역하여 출간한 적이 있지만, 김수행 교수의 번역 [자본론]은 영역본을 바탕으로 번역한 것인데 비하여, 강신준 교수의 번역 [자본]은 독일어 원전을 번역하여 낸 것이라는 차이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독일어 원전을 번역한 것이 번역의 단계를 한 단계 덜 한 것이기 때문에 조금 더 나은 측면이 있으리라는 생각을 내심 하고 있기도 하거니와.


강신준 교수가 쓴 [오늘 자본을 읽다]의 경우, 저의 경우에는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공부]보다 훨씬 읽기에 명료하고 편하다는 생각을 하면서 거의 한달음에 다 읽어낼 수 있었습니다. 굳이 그 차이를 언급하자면, 김수행 교수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에 [자본론]을 예시로 들었다는 생각이고, 강신준 교수는 [자본]에 대한 이야기를 해나가면서 자신의 견해를 조금씩 더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마르크스의 [자본]이 과연 이 시대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 언급하기에는 참 어려움이 있습니다. 저자는 금융 자본주의의 실패가 마르크스 경제학을 다시 불러오고 있다며, 결국 생산과 소비의 끊임없는 불일치에 대하여 신기루를 부여하는 금융 자본주의는 자본주의의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이 명확해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경제학은 이론일 뿐입니다. 마르크스 경제학 뿐만 아니라, 신자유주의 경제학도, 케인즈 경제학도, 고전경제학도 모두모두 하나의 짜여진 시스템을 가정하고 그 속에서 경제 주체들이 서로 맞물려 하나의 경제적 현상을 나타낼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모든 것은 그냥 이론일 뿐입니다.


그래서 시장은 실패하게 되어 있으며, 모든 경제 주체들은 이기적으로 행위하기에 노동자가 생산 수단을 갖는 순간 더 이상 노동자가 아니라 자본가연하게 되겠지요. 결국 복잡다단한 경제 주체와 자본의 드나듦은 하나의 시스템으로 설명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협동조합'에 대한 생각을 하였는데, 마침 저자의 결론도 '협동조합'으로 귀결되어 반가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답은 공동체 정신에 있을테죠. 국가 중심의, 민족 중심의, 개인이 형해화된 그런 집단주의가 아닌, 개인이 개인의 (재산권적) 자유와 권리를 충분히 향유하면서 만들어가는 공동체의 정신이 협동조합 시스템으로 어느 정도 구현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저자도 하고 있고, 독서한 저도 어느 정도 공감하게 되었습니다. 마침 우리나라에서도 협동조합법이 제정되어 조금씩 그 범위를 넓혀가고 있으며, 삶에서 다양한 협동조합을 만날 수 있으니, 자본주의가 가진 여러가지 어려움에 해답을 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가 있었으면 하는 바램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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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슴둘레 2016-02-25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자본주의 세상의 상식입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입니다. 협동조합도 마찬가지 입니다. 협동조합이 자본주의 경제법칙 내에 있다면 자본가 협동조합일 뿐입니다. 진정한 노동자 협동조합은 자본주의가 엎어지고 나서 생깁니다. 협동조합에 대한 과대한 믿음은 자본론을 읽지 않고 자본주의에 대해서 찬사를 보내는 유아적 몽상사회주의자와 다를 바 없습니다. 마땅히 협동조합에 대해서 알려면 자본주의 법칙에서 벗어난 사회주의 협동조합과 비교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단순한 비교를 한다면 형이상학입니다. 역사적으로 비교해보아야 합니다. 소비에트가 무너졌지만 소비에트 경제 활동영역은 여전히 노동자에게 역사적으로 존재했던 유물론적 세상입니다. 소비에트는 인간의 꿈에서 벗어나 현실에서 작동했던 사회입니다. 소비에트와 소비에트 협동경제를 사적유물론의 철학적 범주로서 인식하고 역사적으로 그리고 과학적으로 탐구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본주의에서 파시즘을 뒤엎고 사회주의를 내적으로 준비하는 협동조합이, 노동자적생산관계가 가야할 길이 보입니다.
 
메이지 유신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서울대 인문 강의 시리즈 6
박훈 지음 / 민음사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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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메이지 유신 이후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일본도 메이지 유신을 전후하여 일본 역사상 굉장한 인물들이 많이 출현하였고, 다이나믹한 근대사를 만들어왔기 때문에, 그에 대하여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계신데, 이 책은 그런 이야기는 하나도 없이, 다만 어떻게 메이지 유신이 성공할 수 있었는가를 18세기와 19세기 전반기의 정치/사회적 상황을 통하여 설명하고 있는, 지극히 학술적인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메이지 유신의 성공의 이유로,


1) 도쿠가와 막부 성립 이래로 2백여년 이상 지속되어 온 평화로운 시대

2) 1)에 따라 사무라이 계층이 점차 군사적 역할에서 벗어나게 된 것

3) 유교 사상의 확대로 인한 정치적 의식의 확산

4) 3)에 따른 일왕을 중심으로 한 수직적인 통치 질서 수립 의지의 확대

5) 4)를 바탕으로 정치/사회적 문제 - 개항, 메이지 유신 등 - 에 대해 국가 중심의 행동을 실천한 것

6) 열도라는 지리적 상황에서 오는 폐쇄적 상황 - 다른 나라에 의한 본토 침략을 한 번도 겪지 않은 - 과 항해 기술의 급격한 발달과 함께 닥치는 개방적 가능성 - 사면이 바다로 어느 곳으로든 상륙이 가능하다는 - 에서의 심리적 동요가 가지고 온 개항에 대한 적극적 대처


정도로 정리하여 이에 대한 근거를 들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의 갑신정변, 갑오개혁, 중국의 변법자강운동 등 동아시아의 다른 나라들이 근대화 과정에서 큰 희생과 좌절을 겪은 것에 비해서, 일본은 굉장히 부드럽게 근대화 과정을 수행하였기 때문에, 이에 대해 기록한 책에 관심을 가지고 한 번 읽어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다양한 자료를 토대로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고, 특히 18세기 이후의 뒤늦은 일본 사회의 유교 열풍이, 우리나라나 중국과는 다르게 일본의 근대화에 어떤 순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근대화 과정을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 일반화하여 동아시아의 근대화 과정에 치환하려는 일련의 시도에 대한 저자의 비판적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서구의 (우연적이고 일회적인) 근대화 과정과는 다른, 일본 고유의 근대화 과정을 일본의 사회 구조 및 정치 구조를 토대로 하여 설명하려고 한 것이 의미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그렇다보니, 과정의 일반화에 도달하지 못한 어려움이 있고, 그 때문에 같은 동아시아 국가인 우리나라와 중국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수평적 비교 분석에까지 이르지 못한 부분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에 대한 더 깊은 연구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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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나는 미학
노영덕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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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본격적인 관심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교대 1학년 때, '동서미술'이라는 수업을 들을 때부터 습니다. 학교 다닐 때 미술에 전혀 관심도 없고, 흥미도 없고, 재주도 없어서, 그냥저냥 12년을 보냈더랬는데...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하니, 미술에도 조금 더 흥미를 가져야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리고, '동서미술' 수업이 참 좋았습니다. 덕택에 - 과제 때문이긴 했지만 - 간송미술관 전시도 다녀왔고, 불교 미술이나 한국 미술의 여러 작품들을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래서 그 이후로 틈틈이 이런저런 미술 관련 책들을 읽어내고 있습니다.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 [한국 미술사 강의 1], [반고흐, 영혼의 편지], [미학 오디세이 1],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1], [개념 미술(한길아트)], [오주석의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 2], 그리고 얼마전에는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읽었습니다. 그리고 [뜻밖의 미술]이라는 책을 최근에 읽었구요. 그러다가 문학과 지성사에서 나온 [미술은 철학의 눈이다]를 읽기 시작했는데, 재미나게 읽다가 흐름을 놓쳐서, 그리고 흐름을 놓치니 다시 따라잡기가 어려워서, 다시 도전하기 전에 다른 책을 먼저 봐야겠다 싶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을 찾다가 이 책, [처음 만나는 미학]을 우연히 서점에서 보고는 읽기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책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되지, 뭐 이런저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붙이는가 싶으시겠지만, 실은 책을 읽은 후에 책에 대해서 별다르게 두드릴만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라고 두드리고 싶습니다. 그렇다고 책이 별로였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만약에 위에 주욱 이야기했던 책 중에, 꼭 다시 한 번 읽어야겠다고 한다면 저는, [오주석의 한국의 미 특강]과 [서양미술사] 그리고 이 책을 꼽아서 다시 읽어볼 듯 합니다. 이 책은 읽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아니고, 책의 내용이 난해하거나, 문장이 지저분하거나 하지도 않고, 그냥 앉은 자리에서 술술 읽히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내용은, 말 그대로 미학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진, 선, 미에서, 진에 해당하는 부분이 존재론과 인식론의 영역이고, 선에 해당하는 부분이 정의론의 영역이라면, 미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미학이라고 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책 한 권에 펼쳐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 시대에서는 진과 선에 종속된 미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면 18세기 이성주의가 발생하면서 인간의 이성에 - 혹은 인간 자신에 - 기댄, 인간으로부터 비롯된 미에 대한 사변은 진과 선에 대한 논의처럼 점차로 독립된 영역을 가지게 되었다라는 내용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입니다. 


그렇다보니, 이 책은 철학과도 그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자들의 사변의 대상이 되었던 진과 선처럼, 그에 딸린 미에 대해서 많은 철학자들이 이야기하고 밝히고 탐구하고 집중해온 그런 이야기들이 책의 내내 기록되어 있습니다. 책의 미덕은, 다양한 철학자들의 사유를 미학적인 관점에서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어렵거나 복잡하거나 한 것이 아니라 술술 잘 읽혀내려간다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책의 구성은, 처음 부분에는 미학에 대한 개관을 하면서 미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소개하고 있고, 그 이후부터는 시간의 흐름대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미에 대하여 철학자들은 - 사람들은 - 어떻게 생각해왔는지를 잘 풀어내고 있습니다. 


책의 특징은, 각 장마다 하나 이상의 영화를 소재로 하여, 영화 속의 미학적 관점, 그리고 그런 관점을 사유한 사람들의 사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보지 않은 영화라도 상관 없습니다. 하지만 보려는 영화였다면, 영화의 처음부터 결말까지 모두 이야기하고 있으니 피하는게 좋겠지요. 영화의 줄거리를 간단하게 소개하고, 저자의 생각에 미학이 개입하는 지점이라고 하는 영역을 소개한 후에, 그 이야기를 조곤조곤 이야기합니다. 영화평론이 아니기 때문에, 도입부의 독자의 흥미를 낚아채기 위한 가벼운 도구 정도로 영화를 사용할 뿐이어서 그리 크게 부담스럽게 받아들이지 않아도 무방하리라 생각합니다.


저자의 미학적 관점에 대하여서는, 문외한의 독자이기 때문에 감히 이렇다 저렇다 평가할 수는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문외한의 길잡이 도서로써 미학이라는 학문에 대해서 쉽게 시작할 수 있는 책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다만 어느 정도의 철학사적 지식이 있다면 더 쉽게 다가설 수도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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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과정 콘서트 - 통합교과수업을 위한 행복한 멘토링 교과서, 2014 세종도서 교양부문 선정도서 행복한 교과서 시리즈 7
이경원 지음 / 행복한미래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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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09 개정 교육과정에는 다음 부분이 있습니다. 


교과와 창의적 체험활동의 내용 배열은 반드시 학습의 순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예시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필요한 경우에 지역의 특수성, 계절 및 학교의 실정과 학교의 요구, 교사의 필요에 따라 각 교과목의 학년별 목표에 대한 지도 내용의 순서와 비중, 방법 등을 조정하여 운영할 수 있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개정되면서 점차로 교사의 교육과정에 대한 재량권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이라면 모두 다 가르쳐야 한다고 알고 있었고 그렇게 배우게 하였지만, 이제 학교와 교사의 재량에 많은 부분이 위임되었습니다. 학년별 목표를 지도하면서 순서나 비중, 방법 등을 조정하여 운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약에 교사의 재량권이 너무 과도하다면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교수-학습 과정에서 배제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문제가 있겠지요. 아직까지 성장과 발달의 과정에 있는 아이들에게, 과도하게 행사되는 교사의 재량권 아래에서의 교수-학습이,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교사가 자신에 대하여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아이들에게 '나를 따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만약에 그런 교사라면, 삶의 다양함을 믿지 못하는 사람이며, 아이들의 성장 가능성을 도외시하는 사람이며, 제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추종자를 만드는 것 밖에는 안 되겠지요. 따라서 교사의 재량권은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안에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교사는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을 통하여, 교수-학습의 범위와 핵심적으로 다루어야 할 내용을 분석하고 알게 됩니다. 저희가 사용하는 교과목의 책은, 저명한 전문가들이 모여서 학생들이 도달해야 할 핵심 성취기준에 맞추어 교수-학습의 내용이 이러면 좋겠다라고 제시하는 하나의 예입니다. 따라서 교사가 보기에 학생들이 핵심 성취기준에 도달하는데 더 좋은 방향과 방법이 있다면 교과서에 대한 비중 또는 교과서에서 제시하는 방법에 의존하지 않고, 교사가 핵심 성취기준에 도달하기 위한 더 효과적인 교수-학습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현재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으며, 위의 인용은 그에 대한 내용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요즘은 '교육과정 재구성'이라는 용어가 교직 사회에서 조금씩 확산되고 있습니다. '주제통합수업'이 '교육과정 재구성'의 방법적 측면이라고 볼 수 있겠구요. '프로젝트 접근법'에서 변형된 형태라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2. 이 때 교육과정의 재구성을 통한 주제통합수업을 진행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핵심) 성취기준의 분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핵심) 성취기준이야말로 교수-학습을 통해서 학생들이 도달할 지식과 기능과 적용/확장 영역의 기준을 밝힌 것이며, 성취기준을 분석하는 것은 주제통합수업을 의욕하지 않더라도 교사에게는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교수-학습의 주체 중 '교수' 쪽을 담당하고 있는 교사는, 각각의 교사가 자라온 배경과 환경, 배워온 지식과 삶의 방식이 다들 제각각입니다. 그러다보니 (핵심) 성취기준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더 핵심적인 부분과 덜 핵심적인 부분을 나누게 되는 듯 싶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핵심) 성취기준의 분석이 소그룹 단위에서 이루어지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조정의 절차가 필요하게 될 것입니다. (핵심) 성취기준의 분석을 통해 통합 주제를 선정하였다면, 주제를 실제 교수-학습 과정에서 구현할 방법을 찾게 될 것이고, 그 때 소그룹에서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핵심) 성취기준을 병렬적으로 모으거나, 혹은 자신이 볼 때에는 크게 중요해보이지 않는 부분이지만 다른 교사에게는 중요한 부분을 수용함으로써, 하나의 주제별 통합 단원을 만들어냅니다. 


지금까지 여러 권의 주제통합수업에 관한 - 혹은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의 원인이 위에 두드린 이유 때문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책마다 여러 단원의 주제별 통합 단원 예와 실제 진행과정에 대한 기록들이 주어져있는데, 하나의 주제 속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임에도 불구하고 각각의 활동이 과연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가에 대한 의문이 가시지 않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 책에 대해서도 그런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책에 소개된 열 단원의 주제별 통합 단원 사례를 보면서, 단원 내의 각 소주제가, 결국은 각 교과의 단원을 그대로 끌어와서는 적절한 위치에 그냥 놓기만 한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 그러나 어쩔 수 없습니다. 하나의 통합 주제 속에서 모든 교과의 (핵심) 성취기준을 용해시켜 하나의 유기체로 만들려면, (핵심) 성취기준이라는 고정된 형태의 기준이 없어져야 합니다. (핵심) 성취기준은 양날의 검인 셈입니다. (핵심) 성취기준은 교사와 학생을 보호하는 새장입니다. 안전하게 보호하고 그 때 그 때 먹여주고 마시게 해주고, 편히 쉴 수 있게 해주는. 대신에 새장 밖으로는 나갈 수 없습니다. 


결국 주제통합수업이 하나의 유기체로 녹여지려면, (핵심) 성취기준이 없어지거나, (핵심) 성취기준을 더욱더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습니다. 적극적이며 능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은, 교과라는 외피를 벗고 다른 교과로의 외피를 입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4. 결론이 이상한데... 그래서 교사는 많이 알고, 많이 배우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깨달아야 합니다. 


교직에 몸담은지 오래되지는 않았지만, 요즘들어 더 많이 실감합니다. 하나의 지식 - 또는 기능, 적용/확장 방식 - 을 제공하기 위하여 교사가 가지고 있어야 하는 지식 - 또는 기능, 적용/확장 방식 - 은 적어도 두 개 이상이어야겠구나, 라는 것 말입니다. 게다가 초등교사라면, 전 교과에 대하여 다 그렇게 알고, 배우고, 생각하고, 깨달아야겠지요. 



이 책은 경기도에 근무하는 교사가 자신의 교육과정에 대한 고민을 책으로 담아낸 것입니다. 경기도에서 시작된 혁신학교는, 그에 대한 평가는 각양각색이지만, 어쨌든 교육 현장에 큰 파장을 낳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입니다. 특히 교육과정의 재구성을 통하여 학생 중심의 배움을 실천해가려는 의지가 이 책의 곳곳에도 담겨져 있습니다. 


결국 학생 중심이란 활동 중심이라고 요약해도 큰 무리가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생들이 다양한 활동을 경험함으로써, 배움이 일어나고, 학생들에게 자연스레 체화되는 그것이 바로 활동 중심의 교육이 목적하는 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은 그런 학생 중심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학생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하고 있고, 다른 교사에게도 동참할 것을 실제 사례를 통하여 설득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위에서 이렇게 저렇게 두드렸지만, 짧은 교직 경력에, 혹은 교직 경력보다는 조금 긴 육아 경력으로 비추어보자면, 어쨌든 아이들은 활동하면 좋아하고 행복해합니다. 그 속에서 배움이 일어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학교에서나 가정에서, 저는 활동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교사이자 아빠이지만, 그럼에도 활동이 주어지면 아이들에게는 활동 그 자체가 교육이 되고 학습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문제는 활동 속에 (핵심) 성취기준을 어떻게 녹여낼 것인가에 대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그러한 목적 아래에서 구안된 10가지의 주제 통합 단원을 그 사례로써 제시하고 있고, 위에서 두드린대로 저는 조금 의문을 가지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아이들의 행복을 위해서는 이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에 대해서 저 또한 공감하고 있습니다. 


다른 책들처럼 교육과정 재구성 및 주제통합수업의 필요성을 쓴 앞부분은 조금 더 집중력있게 읽을 수 있었구요, 사례를 소개한 뒷부분은 간단간단하게 읽고 넘어갔습니다. 다만, 이 책은, 다른 책들과는 다르게, 사례 중에서 몇 가지는 좋은 모티브를 주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몇 가지 주제통합수업을 준비해볼까 싶습니다.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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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디어의 미래 - 디지털 시대, 지적재산권의 운명
로런스 레식 지음, 이원기 옮김, 윤종수 감수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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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인상적이었던 예시는 디즈니에 대한 부분이었습니다. 


디즈니 사는 신데렐라, 백설공주 같은 애니메이션을 통하여 큰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권리 없는 그 이야기들을 가지고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서는, 그 애니메이션에 대해서는 권리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하는 부분이 바로 그것입니다. 현대 사회가 이루어낸 혁신의 바탕에는, 마치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해아래 새 것은 없나니', 이전부터 존재하던 무언가가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바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이루어낸 혁신에 대하여 저작권이라는 재갈을 물림으로써, 더 나은 혁신으로 나아갈 돌파구를, 우리는 막아버리고 있다는 것이 저자가 말하려는 요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저자는 줄곧 이야기합니다. 저작권이라는 법적 권리를 없애자는 이야기가 아니라고. 다만 혁신을 막아버릴 정도로 과다한 통제에 대하여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즉, 이것은 진보 대 보수의 논쟁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아니, 차라리 모든 규제에 대하여 자유로움을 주장하는 보수적인 사람이라면 저작권이라는 굴레가 가지고 올 자유에 대한 제약을 강력하게 반대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가 결국은 조금 먼저 혁신에 도달한 댓가로 상업적인 권리를 모두 취하겠다는 이들에 대한 반대라고 보아도 무방하리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자는 자신의 논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이해하기 쉬운 여러가지 예를 들고 있습니다. 우분투나 아파치 서버 같은 예시가 그것입니다. 처음부터 오픈소스로 개방된 소프트웨어가, 댓가 없이 소프트웨어의 질적 향상을 위하여 노력해 온 사람들에 의해서 얼마나 쓸모있는 것이 되었는가에 대한 이야기 말입니다. 댓가 없는 혁신은 창의성을 죽일 것이다, 라는 외침이 실은 아주 설득력있는 주장은 아니라는 하나의 예시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마치 도심 속 녹지 공원 옆에 자리잡은 주택이 더 높은 댓가를 얻는 것과 다를바 없다고 저자는 설명하고 있기도 합니다. 인류의 많은 혁신이 바로 이런 도심 속 녹지 공원과 같은 '공유재'에 기반하여 그 나래를 활짝 펼칠 수 있었기 때문에, 지금 현재 저작권법의 효력 기간을 지속적으로 연장해가면서 저작물을 보호하는 추세는 공유재의 기반을 줄이는 것이고 따라서 혁신의 기반을 축소시키는 것이라는 저자의 주장은 상당히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저자는 결코 저작권법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저자는 자신이 쓴 이 [아이디어의 미래]가 통째로 복사되어 여기저기 공유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만, 현재의 저작물에 대한 보호는, 저작물이 일정 기간 이후에 공공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유재로써 인류에게 제공되어야 인류가 그에 기반하여 새로운 혁신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저작물에 대한 강력한 보호가, 인터넷이라는 도구가 인류가 사용함으로써 이전에는 경험할 수 없었던 더 강력하고 더 효율적인 혁신과 함께 성장하였음을 저자는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이러한 혁신도 없었겠고, 이러한 보호도 없었을 것이다라는 것이지요. 따라서 저자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어마어마한 정보가 오고가는 사회 속에서, 냅스터 같은 도구가 어떻게 혁신을 이루어냈고, 이러한 혁신이 어떻게 철퇴를 맞았는지를 보여주면서, 과연 이러한 보호가 인간의 삶의 편리함을 높여주는 기제가 되는지에 대한 의문도 피력하고 있습니다. 


결국,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조치는 인터넷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력에 비례하여 더욱더 강력해지고 세밀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 조치는 얼마나 효과적으로 저작물을 보호하고 있는가에 대한 의문도 저자는 지속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논지는 언제 어디서나 혁신과 창의성에는 자유 자원이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다. 자유 자원이 없으면 창의성은 죽고 만다. 따라서 특히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는 핵심 질문이 '자원을 통제하는 주체가 정부냐, 시장이냐?'가 아니라 '자원이 과연 통제가 돼야 하느냐?'는 것이 돼야 마땅하다. (51쪽)


책을 읽게 된 계기는,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저작권 강좌를 준비하던 중에, 저작권(지적재산권)에 대하여 한 번 쯤 생각해 볼 계기를 가지기 위해서였습니다. 학교에서는 매년 저작권 관련 수업을 몇 시간 이상씩 의무적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근무하는 학교에서도 2014학년까지는 한국저작권협회에서 나오는 강사들에게 저작권 관련 수업을 맡겼습니다. 그런데 이 수업이라는 것이, 저작권법 위반 사례 모음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남의 저작물을 댓가없이 함부로 사용하면 도둑질, 이 저작권 관련 수업의 전부라면, 어쨌든 이건 의미있는 교수-학습이라고 보기에는 무방하니까요. 그래서 조금 다른 수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고, 기왕에 법학을 전공한 터에 전문성(이라는 것이 있다면)을 살려서 아이들에게 유의미한 수업을 제공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습니다. 어쨌든, 제가 만든 수업용 자료도 저작권법 위반 사례 이상을 넘어서진 못하였지만, 이 책에서 모티브를 얻어서 그래도 마지막 부분에 생각할 거리를 하나 정도는 던질 수 있는 계기를 얻었습니다. 


과연 저작권법이 인류를 혁신에 도달하게 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작물을 석유나 기타 유형의 자원과 다르지 않은 하나의 자원으로 여긴다면, 이러한 비경쟁성 자원인 무형의 저작물에 대하여 혁신을 꿈꾸는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인류의 미래를 위하여 혁신을 실현할 수 있도록, 과거의 혁신이 조금 덜 제한됨으로써 자유롭게 이용될 수 있는 자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입니다. 어쨌든, 아인슈타인은 'E=mc2'에 대해서 저작권을 행사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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