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내가 평소에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공포를 유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달리 이 새로운 방식은 관점을 유도했다.

온라인 공간을 통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많은 이야기들은 소모와 휘발의 과정을 거쳐 내게 감정의 찌꺼기만 남긴다. 이제 이해하겠다. 왜 인터넷 공간이 이리도 감정의 격한 흐름들이 넘실거리고 있는지를. 그리고 정제되고 정리된 관점을 도통 만나기 어려운지도.

프로빈스타운에 도착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어느 날, 한 남자가 총기를 들고 메릴랜드에 있는한 신문사에 찾아가 기자 다섯 명을 살해했다. 기자로서 그건 분명 내게 중요한 사안이었고, 평소였다면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친구들에게 문자를 받았을 것이며, 소셜미디어에서 몇 시간동안 사건을 따라가며 뒤범벅된 설명을 모아 서서히 그림을 완성해 나갔을 것이다. 프로빈스타운에서는 학살이 일어난 다음 날 죽은 나무를 통해, 알아야 할 모든 명확하고 비극적인 정보를 10분 만에 파악할 수 있었다. 갑자기, 물리적인 신문(범인이 목표물로 삼은 바로 그것)이 비범한 현대적 발명품이자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발명품처럼 보였다. 그리고 내가 평소에 뉴스를 소비하는 방식이 공포를 유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와 달리 이 새로운 방식은 관점을 유도했다. - P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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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에세이에 대해서 좀 나이브하게 여기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혹은, 나이브한 에세이만 창궐해대는 시대와 공간을 살아가는 덕인지도.

이런 글(에세이라 불리우는, 노력하고, 시도하고, 시험하는 글)을 그림으로 그려보면, 주장 또는 서사라는 물길들과 글자라는 섬들이 한데 모여 한 편의 작품 혹은 한 작가의 작품이라는 다도해가 된다. 페이지가 작은 만이라면, 글자는 그 위에 간격을 두고 떠 있는 부표다. 그리고 그 사이로 온갖 것들이, 설교가, 대화가, 목록과 설문이, 낱장의 인쇄물이, 한 편의 에세이로 여겨질 수 있는 한 권의 책이 흐르거나 가라앉는다. 수면 아래에는 그렇게 침전된 모래톱이 쌓여 있다. 에세이에서 특별한 억양이 들려온다면, 그 억양이 만들어지는 곳은 그 해저일 것이다. (중략)

나는 어떤 에세이, 어떤 에세이스트를 꿈꾸는가. 현실 속 저자든 상상 속 저자든, 이 장르(물론 에세이를 장르라고 부르는 건 전혀 맞지 않지만)에서 이미 실현된 본보기이든 실현 불가능한 본보기이든, 내가 그 저자와 그 본보기에게 바라는 것은 정확함과 애매함의 결합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글쓰기의 정의이기도 하다.) 또 내가 바라는 것은 가르치고, 유혹하고, 혼란스럽게 하는 형식, 이 세 가지 일을 균등하게 수행하는 형식이다. (마이클 햄버거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에세이는 형식이 아니며, 그 어떤 형식도갖지 않는다. 에세이는 에세이의 규칙을 창조하는 게임이다.") 사실 이는 에세이만이 아니라 예술이나 문학 전반에 요구되는 조건이라고도 볼 수 있지 않을까? 어쩌면 하나의 범주가 모두를 대표하고 있으며, 내가 모든 예술 형식에 바라는 것을 이 범주가 정의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P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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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은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하는 것에서 비롯되지 않을 수도 있다. 문제가 발생하면 즉시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것, 디지털 기반의 세계가 낳은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그렇다보니, ‘엇! 이 길이 아닌가벼!’라는 한탄과 탄식이 더 많아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기사에서 이수진의 도서관을 소개하면서 가만히 돌아보면 혁신인 사례로 들었다. 말하자면 이미 존재하지만 새로운 맥락에서 보아야 의미가 생기는 아이디어와 도구를 통해 세계가 더 느리고 더 따뜻하고 더 지속적으로 개선되는 현상 말이다. (중략)

"아날로그란 어떤 문제를 느리거나 단순하거나 오래된 방식으로 풀어야 잘 풀린다는 것을 알아채는 겁니다." 바드칼리지의 연극과 교수 샌드러 골드마크Sandra Goldmark의 말이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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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전공자도 이해할 수 있는 AI 지식 - 구글 검색부터 유튜브 추천, 파파고 번역과 내비게이션까지 일상을 움직이는 인공지능 이해하기
박상길 지음, 정진호 그림 / 반니 / 2022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요즘 AI 관련 책을 틈틈이 읽는 까닭은, 올해 AI 선도학교 운영 업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맡으면, 이런 것이 뭔지 제대로 알고 해야겠다,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읽고 탐색하려 든다. 꼭 ‘비서 문제’ 같다. 어디까지 읽다가 탐색을 멈추고 고민하게 될까?

이 책은 엄밀하게 말하자면, 트렌드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약간의 수학 역량 - 그래도 고등학교 수학 정도는 대강 해결할 수 있는 - 을 지닌데다가 연관 용어 정도는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는 비전공자가 이해할 수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즉, 나는 대강 이해했고, 책이 괜찮다고 생각했으며, 하지만 아주 술술 읽힐 정도의 책은 아닌 정도의 난이도를 가지고 있다.

아무래도 알고리즘 이야기랑 계속 얽히는 모양새이다. 알고리즘 관련 책들 읽을 때 나왔던 이야기들이 중첩되는 느낌이고, 그러나 적절한 안내 - 텍스트 및 그림 - 가 이해를 명확하게 돕는 느낌이다.

이 책에서 특히 좋았던 부분은 자연어 처리 알고리즘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준 부분이다. 결국 모든 것을 수치화하여 처리하는데, 이를 과연 ‘지능’이라고 말할 수 있겠냐는 튜링과 존 설의 시대를 건너 뛴 대립에 대해, 적절한 안내와 예시 덕택에 조금 더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덩달아 우리의 뇌가 하는 전기 작용을 ‘이해’라고 이야기할 수 있는가에 대한 생각도 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작금의 트렌드 - 챗GPT 등 - 에 깊이 가 닿지는 못하지만 - 아무래도 출간일이… - 이에 대해 알 수 있는 정도의 서술은 제공하고 있다. 인공지능과 연관된 많은 중요한 이슈들을 꽤 세세하게 다루는 느낌.

같이 근무하는 학교 선생님들께도 한 번 읽어보시면 좋겠다 권해드렸다. 옆에 두고 열어보게되지 않을까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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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 에포크, 아름다운 시대 - 모네와 마네, 졸라, 에펠, 드뷔시와 친구들 1871-1900 예술가들의 파리 1
메리 매콜리프 지음, 최애리 옮김 / 현암사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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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코뮌의 와해 이후로 파리 박람회(올림픽이 열리던) 때까지의, 파리를 기반으로 살아가던 화가, 작가, 작곡가, 배우 등등등 소위 예술‘하던’ 이들과 이들의 삶에 영향을 미친 정치와 정치인들의 이야기를 연대기적으로 엮은 책이다.

문화인물사라고 하는 편이 책의 내용과 어울릴 듯 하고, 파리 코뮌이나 드레퓌스 사건 등 굵직굵직한 프랑스의 사건들을 바라보는 이들의 시선도 다채롭게 소개되고 있다.

가볍게 프랑스사를 훑었다는 느낌도 들고, 마네와 모네 같은 인상파 화가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유파가 어떻게 시대를 아우르게 되었는가 하는 이야기도 눈길을 끈다.

생각보다 길게 읽었지만, 책의 문제가 아닌, 너무 바빠서 읽을 틈이 없어 생긴 문제로, 책 자체는 다음 권을 사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몰입감이 있다. 다만, 너무 많은 인물들이 겉핥기 식으로 스윽 지나가는 덕에 누가 누구였는지 앞 페이지를 몇 번 들추기도 했고 결국 누군지 모른 상태로 지나간 것도 한 두 번 되는
터라 좀 아쉽다. 살아남은 자가 강하다, 는 격언이 이 책에서는 분량의 차이로 드러나는 것도 이 책의 특징인데, 빈센트 반 고흐의 경우, 짧은 생애를 살아낸 덕택인지 이야기 비중도 많지 않다. 여하튼 - 언제 읽을지는 모르지만 - 다음 권을 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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