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을 생각한다
김용철 지음 / 사회평론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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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시사IN]이라는 잡지의 창간독자입니다. 물론 그 전부터 보아왔던 것은 아니구요. 우연찮게 PD수첩을 통해 시사저널 사태에 관련된 탐사보도를 본 후, 마침 [시사IN] 창간 당시에 큰 결심(!)을 하고 정기구독을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어느덧 [한겨레21]과 [한겨레(신문)]까지 정기구독하는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 까닭에 저는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에 대한 내부고발로써의 양심선언에 대한 자세한 탐사보도를 접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당시만 해도, 수능을 치룬 연후라서 신문과는 그닥 크게 가까이 지내던 시기가 아니었던지라, 그 추이를 지켜볼 수 있었던 것은 참 우연한 기회였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김용철 변호사께서 이번에 사회평론社를 통해 [삼성을 생각한다(이하, 생각)]라는 책을 한 권 출간하셨더군요.


사회평론社의 책 중에서 기억나는 책이 하나 더 있습니다. [여러분! 이 뉴스를 어떻게 전해드려야 할까요? (이하, 여러분!)] 라는 책입니다. 전 국토를 들었다 놨다 했던 황우석 박사 및 연구팀이 가지고 있었던 윤리적 문제를 정면으로 건드렸던 PD수첩 방송의 전후를, 당시 담당PD였던 한학수 씨가 직접 기록한 [여러분!]은, 2007년 10월 수능을 준비하는 와중에 읽으면서 제게 상당히 큰 충격을 주었던 기억이 있는 책입니다. 그러다보니까,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을 읽으면서 여러모로 [여러분!]과 비교해보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생각]은, [여러분!]과는 다른 색깔의 책입니다. [여러분!]이 저자의 열정을 저널리즘으로 잘 세팅한 책이라면, [생각]은 저자의 체념을 지루하게 늘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김용철 변호사께서 책을 맛깔나게 쓰시지는 않았다는 말씀입니다. 나왔던 이야기가 마치 처음 나온 이야기인양 또 나오는 부분도 몇 부분되기도 하고, 한 편으로는 이게 사실일까 싶을 정도의 이야기들이 덜 정제되어 투박하게 튀어나오기도 해서 읽는 중간중간에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사실, 책 속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기가막히는 부분이 워낙에 많은데, 책을 조곤조곤 쓰셨다면 그 놀라움이 뼛속 깊이 스며들었을 이야기들이, 자주 거칠게 튀어나와서 불편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생각]에 담긴 저자의 진술이 모두 사실이라면, 삼성그룹은 참 큰 실수를 하고 있는 집단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자의 진술을 - 기억이라는 것의 불완전성을 생각한다면 약간의 오차는 있겠지만 - 신뢰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저자가 진술한 삼성그룹 내부에서의 지난 10여년간 벌어졌던 상식 외의 일들이, 실은 최근 2년간 이명박 정권 아래에서 보여진 삼성그룹과 관련한 다양한 사건들의 이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삼성그룹의 총수인 이건희 회장이 무거운 죄를 교묘하게 피해가면서 결국은 사면에까지 이르게 되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은 그런 면에서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를 삼성그룹이라는 소위 '초일류글로벌그룹'의 옳지 못한 행태를 통해 거칠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처한 위기와 삼성그룹이 하고 있는 커다란 실수는 무엇입니까? 제가 생각할 때, 그것은 바로 염치가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정당한 노력 없이 가진 자가 염치없이 그것을 행사하고, 가진 자가 되기 위해 염치없는 짓을 하고, 가진 자의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염치불구하고 살아가는 그런 이야기들이 두꺼운 책 한가득 적혀 있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1997년, 우리는 자식을 군대에 보내지 않은 대통령을 두지 않기 위해 투표했다고 말입니다. 가진 자의 도덕적 책무를 강조하던 이 사회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07년에 정반대의 선택을 하였습니다. 10년간 이 사회는 사회구성원의 윤리적 행동을 묵살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온 것입니다.

윤리라는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노력한 자가 자신의 댓가를 받지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댓가를 충분히 거두지 못한 이들과 댓가를 나눌 수 있는 것. 즉, 함께 살아갈 수 있도록 자신의 마음가짐을 어루만지는 것이 바로 윤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것이 인간됨이고, 인간이 살아내야할 이치인 것이죠.
 

한국 사회와 삼성그룹은, 당연히 해야할 바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잘 사는 것보다 바르게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을, 애써 외면하는 것이죠.

그래서 안타깝습니다.

저는, 바르게 살고 싶습니다. 그것이 잘 사는 것(well-living)이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다만 잘 사는 것(well-buying)에 그치는 저간의 사회의 모습이 두렵고 섬뜩하기만 합니다. 게다가, 저는 예비교사이기도 합니다. 교단에 섰을 때, 제 학생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야할지 벌써부터 겁이 납니다. 아니, 멀리 갈 필요도 없겠군요. 지금 제 뒤에서 잠들어있는 제 따놈들에게, 과연 저는

'정직하고 성실하게 사는 것이, 부유하게 사는 것보다 가치있는 일이란다'

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설령, 말했다고 치고, 제 아이들이 커서 제게,

'그딴 식의 가르침때문에 제가 도태된 것 아닙니까?'라고 따져묻는다면 저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생각]을 읽으면서, [여러분!]을 읽을 때와는 다른, 암담한 기분을 느꼈던 이유는 바로, 황우석 박사 사태때와는 다르게, 삼성그룹이 저지른 여러 행태에 대해서는 사회가 다른 잣대를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현재수익과 미래수익의 현실감일 수도 있지만...

삼성이 망하면 대한민국이 망한다.

이 말은 마치, '박정희 정권이 민주화를 지연시켰지만, 결국 경제성장을 이루어내지 않았는가?' 라는 말과 같습니다.

삼성그룹이 망해도 대한민국은 망할지 안 망할지 알 수 없습니다. 박정희 정권이었기 때문에 경제성장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섣부른 판단입니다.

이미 사회 전체가 잘먹고 잘살게 된 2010년에, 우리는 '더' 잘먹고 잘살기위한 욕망들로 가득찬 이 땅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염치가 없어지는거죠. 온 사회가 부(富)의 축적과 행사를 가장 큰 가치로 이루는 이 땅.


사필귀정이라는 말이 있죠.

김용철 변호사의 [생각]을 읽으면서 생각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위의 사자성어였습니다. 이 사회는 바른 것을 향해 다시 전진할 수 있을까요? 저자의 체념이 묻어나는 책을 읽으면서, 저도 체념이 듭니다.

그러나, 그렇게 머무를 수는 없죠. 사필귀정일테니까.


아에드 인 마이오렘 델 글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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