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큼 가까이 - 제7회 창비장편소설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80년대에 태어난 친구들에게 <응답하라 1994>는 전혀 낯설지 않다. 농구대잔치와 서태지와 아이들. 듀스와 룰라. 중간중간에 흘러나오는 익숙한 OST와 어렴풋이 기억나는 그 당시의 광고들과 드라마들까지. 청남방과 현진영의 티셔츠도 익숙하고, 누르스름한 사진속에서 문득 떠오르는 어렸을 적 추억들이 그렇다. 무엇보다도 50~60년대의 경제성장기와 70~80년대의 정치적 성장기를 거치면서 어느정도 안정된 90년대에 들어와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 어쩌면 한국 사회에서 가장 행복한(?) 세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보곤 한다. 어디 그뿐인가? 국민학교에서 초등학교로 변화했던 시대였고, 대중적인 컴퓨터의 보급이 이루어진 때이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기억에 남을 만큼 좋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큰 변화라는 의미이다.) 것은, 그리고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재개발, 신도시 건설과 같은 <도시의 변화>이다.

 

학년이 지나고 한해가 바뀌면, 항상 근처의 옛날 집들이 부서지고 새로운 주택이 들어서곤 했다. 유채꽃이 피어있거나, 작은 논과 텃밭이 있던 곳은 순식간에 메워지고 또다른 상가가 생기기도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엔 15층 짜리 아파트가, 그리고 몇년 뒤에는 20층대의 아파트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지상 주차장밖에 없었던 아파트 단지 옆에는 지하 주차장을 갖춘 또다른 아파트 단지들이 들어섰고, 신도시와 대규모 아파트 단지들이 세워지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제대로된 도로를 본 기억이 없다. 항상 지하철 공사중이었기 때문이다. 도로 바닥은 항상 철판으로 뒤덮여 있었고, 자동차와 사람들은 그 사이에서 이리저리 피해다니는 형국이었다. M마트가 생겼다고 해서 동네 사람들과 같이 장을 보러 간게 엊그제 같은데, 몇년뒤에는 부도심마다 대형 마트와 큰 규모의 쇼핑몰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남포동과 서면에 있는 영화관들이 하나씩 문을 닫더니, 이름도 괴팍한 멀티플렉스 영화관들이 속속 들어오기 시작했다. 30대가 된 요즘에는 초고층 빌딩과 화려한 오피스텔, 그리고 온갖 종류의 프랜차이즈 가게들로 거리가 뒤덮여 있다. 80년대 생들에게는 부동산의 변화는 시각적으로도, 그리고 경제적으로도 계속해서 변화의 압박을 주고 있는 셈이다.

 

*

 

정세랑 씨가 지은 <이만큼 가까이>라는 소설은 파주라는 도시의 변화와 함께 그곳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던 여러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저자의 어릴적 경험들을 모티브로 해서 지었다고 하는데, 무엇보다도 재미있는 소설이다. 요즘의 감각적인 느낌만을 담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과거의 향수에만 사로잡힌 누르스름한 빛깔만을 담은 것도 아니다. 군부대와 서울 근교 외곽 마을에서부터, 출판문화단지와 신도시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변화를 중심에 두고 서술하고 있다. 가장 큰 장점은 현재의 감각과 과거의 향수가 적재적소에서 빛을 발한다는 점. 재미있다라는 단조로운 표현이 이 책을 가장 잘 설명한다는 사실이 조금은 아이러니 하지만.

 

주인공의 주변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어렸을 적부터 조숙했던 민웅이. 통통하고 공부만 잘했지만, 커가면서 스키니해지고 멋져지면서 어느새 훈남이 된 찬겸이. 남자아이들 중에서 조숙한 친구가 민웅이라면, 여자 아이들 중에서 조숙한 편이었던 송이와 해외에서 살다온 주완과 주연. 그리고 수미와 동네 사람들. 서로 성격도 다르고, 집안의 분위기와 자라왔던 환경도 달랐고, 서로 다투었다가 다시 화해하는 일련의 사건들이 반복되었지만, 파주라는 공간에서 지내온 공통의 시간들이 그들을 서로 묶고, 연결시켜 주고 있었다. 같은 장소에서 함께 시간을 지낸다는 것. 평범한 단어이지만, 그 속에는 평범하지 않은, 특별한 일들을 감추고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있다.

 

시끌벅적함속에서 느껴지는 생기발랄함과 종종 벌어지는 사건들을 보면서, 최근에 읽었던 <빵과 수프, 고양이와 함께 하기 좋은 날>이 떠올랐다. <이만큼 가까이>에서는 고독감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는 찾아보기 힘들만큼의 사건들로 넘쳐난다. 계속해서 영상을 찍어야만 한다. 반면, 후자는 몇 안되는 등장인물과 특별한 사건마저도 없다. 같은 모습의 사진만이 찍힐 뿐이다. 자세히 쳐다보지 않으면 뭐가 바뀌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상실감과 세상에 관한 부조리를 느끼는 주인공과 송이, 주연의 모습에서는 내적인 고독감과 외로움이 늘씬 풍긴다. 제주로 떠나는 발걸음에는 아픈 기억을 잊으려는 도피의 마음이 깊숙히 자리잡고 있다. 그들에게는 아키코가 가진 내적의 편안함에 대해 한번 정도는 이야기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또 그런데 말이다. 이런 복잡함들이, 그리고 이런 신경쓰임이 지금 우리가 너희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하나의 증명이, 표식이 되지 않을까? 심사평에서는 이 소설을 두고 지난 시절에 대한 애도의 서사라고 말하고 있다. 부끄러운 기억들도 잊어버릴 추억도 아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리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사람들에게 더없이 고마운 선물이자, 삶을 돌아보고 반성하게 하는 성찰의 시간이 되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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