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국내편 2
이우혁 / 들녘 / 199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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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2 :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  이우혁 / 들녘 (1994)

[My Review MMXXXI / 들녘 6번째 리뷰] <퇴마록> 애니메이션이 개봉하면서 다시금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물론 '개봉작'을 영화관에서 직접 관람했다. 그리고 작가 이우혁이 "이것은 '퇴마록'이 맞다"고 인정할 만큼 싱크로율이 높은 작품이었다. 원작소설의 팬들이라면 다들 이 말에 공감할 것이다. 다만 '원작'과 '애니'와의 간극은 있다. 우선, 무려 30년이라는 '시공간의 차이'가 발생했다. 단순히 시간만 흘러간 것이 아니라 '원작소설'의 주무대가 된 공간조차 세월에 직격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1994년에는 '핸드폰'이 있긴 했지만 크기가 무려 '벽돌'만해서 벽돌폰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그런데 2025년에는 '스마트폰'을 전국민이 하나씩 가지고 있지 않느냔 말이다. 물론 올드팬들은 '향수'에 젖어 들고 '추억'에 흠뻑 빠져들 수 있겠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감동은커녕 '공감'조차 할 수 없는 대목일 것이다. 그래서 '퇴마록씨네마유니버스(이후 '퇴씨유')'가 필요할 것이다. 정확히는 '애니메이션'이 되겠지만, 뭐 어쨌든, 원작소설과는 사뭇 다른 '퇴씨유'의 세계관으로 대폭 바뀌어서 <퇴마록> 애니메이션이 올드팬과 젊은 세대를 모두 아우르는 접점을 제시하게 될 것이다.

그렇기에 '원작소설'과는 사뭇 다른 '애니메이션'의 줄거리가 어떻게 전개될지 몹시 궁금할 따름이다. 마치 '마블코믹스의 원작만화'가 <어벤져스>라는 MCU(마블시네마유니버스)라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다시 재정립한 것처럼 말이다. 첫 번째 애니에서는 <퇴마록 국내편 1권>의 내용을 십분 활용하여 네 명의 퇴마사들이 모두 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서교주가 폭주해서 악령으로 등장하는 '하늘이 불타던 날'을 주요 테마로 삼아 줄거리를 전개하였다. 하지만 올드팬들은 성당에서 '대악마 아스타로트'가 처음부터 등장하는 장면에서 전율했을 것이다. 원래는 <퇴마록 세계편 3권>의 마지막 장면인 블랙서클을 이끄는 마스터가 불러낸 악마였는데, 이를 살짝 비틀어서 <퇴마록 국내편 1권>에 나오는 '파문 당한 신부'의 클리세를 오브지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거기다 나중에 합류하는 '현승희'까지 함께 만나는 장면을 연출했기 때문이다. 거기다 현승희가 '애염명왕의 아바타라'였는데, 박신부 앞에 나타난 아스타로트를 제압하기 위해서 현승희의 몸에서 몸소 밖으로 힘을 표출하여 막아내는 장면까지 연출하였다. 아쉽게도 승희의 등장은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엔딩 쿠키영상'에서 성당에서 기절하여 쓰러진 현승희의 스마트폰 액정에 '현웅(승희의 아버지)'이 등장하였기에 <퇴마록 애니메이션 2편>이 굉장히 기대가 된다. 여기 <퇴마록 국내편 2>의 제목이 바로 '승희의 아버지'가 등장하고, 이 사건을 계기로 승희가 퇴마사들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짐작컨대, 애니메이션 <퇴마록 2편>은 승희의 합류를 다룬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로 시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리고 이현암의 무기인 '월향검'이 1편에서는 등장하지 않았기에, 2편에서는 '귀검 월향'에 대한 서사도 함께 서술해야만 한다. 그래야 2편의 주요 줄거리인 <생명의 나무 : 사악한 뱀신의 등장, 브리트라>를 제대로 보여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1편에선 해동밀교의 교주가 <해동감결>에 적혀 있는 예언을 바탕으로 서교주 자신이 해동밀교를 크게 부흥시킬 적임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면서 사악한 음모를 꾸미는데 반해서, 2편에서는 아마도 '잘못된 신앙심'으로 말미암아 '사악한 주문'조차 영생을 하려는 인간의 삐뚤어진 욕망으로 실현되는지 스펙타클하게 보여줄 것이다. 1편에서도 박신부와 이현암, 그리고 장준후가 보여주는 '퇴마합진'이 화려한 영상미를 보여줬다면, 2편에서는 새로 합류한 '현승희'가 더욱더 강렬한 '퇴마합진'의 힘을 보여줄 것이다. 왜냐면 현승희의 능력이 바로 '퇴마사들의 영능력'을 더욱 높여주고 '힘'도 증폭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원작소설 <퇴마록 국내편 2>에서 반드시 읽어야 할 부분은 '초상화가 부르고 있다'와 '귀검 월향', '생명의 나무'. 이렇게 세 편이다.

하지만 '태극 기공'에서는 현암이 한빈거사와 도혜 스님에게 각각 받은 '무예 실력'과 '70년 내공'으로 얼마나 대단한 기공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지 배경지식이 되는 내용이라 꼼꼼하게 읽어두면 좋다. 게다가 '영을 부르는 아이들'은 장준후의 능력과 선한 마음씨를, '낙엽이 지는 날이면'과 '귀화(鬼火)'는 이현암의 강인함 이면에 숨겨진 세심함을, '아무도 없는 밤'에서는 뒤늦게 발현되는 현승희의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엿볼 수 있다.

물론, 원작소설이 좀 낯선 세대들도 있을 것이다. '영을 부르는 아이들'에서는 친구에게 직접 전화통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친구네 '집전화'로 전화를 걸어서 '친구의 어머님'이 연락을 받고서 친구의 안부를 확인하는 것이 도통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낙엽이 지는 날이면'에서는 스마트폰에서 직접 받은 스트리밍으로 바로 '연주곡'을 다운받아 들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구태여 '레코드판(LP판)'을 사모으며 음악을 감상한다는 설정이 꽤나 올드해 보이고, '귀화'에서는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캐비넷 속 중요서류들'이 불에 타서 난감해 하는 직원들의 풍경이 꽤나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지금 같으면 '서버실'에서 화재가 나서 '데이터'가 모두 타버렸다고 설정을 바꿔야 할테니 말이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밤'에서는 난데 없는 '하이텔'이 등장해서 '랜선'도 아닌 '전화선'을 타고서 통신을 주고 받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지금은 구경하기도 힘든 '투견장의 살풍경'이 묘사되기도 했는데, 애견인구 1000만을 돌파한 현시점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다.

그러나 <퇴마록>은 이게 전부가 아니다. 퇴마사들이 사악한 악령을 퇴치하는 장면만이 아닌 '악령으로부터 구하려는 하나 뿐인 목숨과 순수한 영혼'에 대한 숨가쁜 이야기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비록 퇴마사들은 악령을 퇴치하다 죽을지언정 '단 한 사람의 목숨과 영혼'이라도 살려내려 들고, 심지어 '악령의 조종'을 받아 제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퇴마사들의 목숨을 앗아갈 지경에 이를지라도 퇴마사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기꺼이 내놓으려 든다. 이 얼마나 숭고한 사명감이란 말인가. 이게 진짜 멋진 모습이다. 마치 화재가 발생하면 뜨거운 불구덩이 속에 뛰어들어서 화마가 앗아가려는 '한 생명'을 구해내는 소방관의 모습과 겹쳐 보일 정도다. 우리는 자신의 안전을 염두에 두지 않고 위험한 현장에서도 맡은 바 책임을 다하는 분들을 '영웅'이라 부르지 않느냔 말이다. 퇴마사들도 바로 그런 영웅과 다를 바가 없다. 비록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서 활약을 하고 있지만 말이다. 과연 3권에서는 어떤 감동스럽고 영웅적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줄 것인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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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7
추공 지음, 이백 그림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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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7>  추공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2019)

[My Review MMXXX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7번째 리뷰] 판타지 소설을 읽다 보면 '세계관'이 갑자기 확장되는 순간이 찾아온다. 특히 '성장형 주인공'이 등장하면 어김없이 '세계관 확장'을 마주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세계관 확장'이 늘 긍정적이지만은 않다. 독자들마다 '호불호'가 갈리곤 하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무리하게 세계관을 확장시킬 경우에는 독자들에게 '혼란'만 가중시키는 꼴이 될 가능성이 높아서 그런다. <나 혼자만 레벨업>도 바로 그런 '수렁'에 빠져들고 말았다. E급 게이트에서도 간신히 목숨만 건질 수 있는 형편없는 실력의 주인공이 '시스템의 도움'으로 계속 레벨업을 할 수 있는 '플레이어'로 거듭나게 된다. 그렇게 D급, C급, B급과 A급을 넘어 드디어 S급 헌터의 실력을 넘어서게 되니, 국내에 한정된 세계관으론 더는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기왕 넘어버린 S급 헌터의 실력중에서도 극강의 레벨인 '국가 권력급 헌터'로 거듭나자, 이제 '성진우 헌터의 무대'는 제주도를 넘어 일본, 급기야 미국까지 진출하게 되었다.

그렇게 미국에서까지 '국가 권력급 헌터들'을 떡 주무르듯이 다루고 나자, 이제는 더 성장할 필요가 없을 듯 싶을 정도로 너무 성장해 버렸다. 그런 성진우 헌터 앞에 등장한 무대가 바로 '절대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지배자들'과 '군주들'의 전쟁이었다. 갑자기 바뀌어버린 '세계관'에 당혹해 할 독자들을 위해 살짝 정리를 하자면, 인간들이 사는 지구에 느닷없이 '게이트'가 열리고, 그 게이트를 통해서 다른 차원에서 넘어온 '마수'들에 의해 무참히 살육 당하는 인간들이란 설정은 다름 아닌 '절대자'에 의해 만들어진 두 존재, '일곱 지배자들'과 '아홉 군주들'이 안배(?)해 놓은 덫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저들끼리 싸우다 모든 것을 파멸시키고 '무(無)'로 되돌려놓자 저들의 여흥(?)을 위해서 싸움터를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구로 바꾸기 위해서, 지구를 '마력'이 넘치는 공간으로 만들기 위해서 열어 놓은 문이었던 것이다. 그 '마력'이 넘쳐나야 '지배자'와 '군주' 들은 자신들이 가진 마력을 효율적으로 뿜어낼 수 있는 공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인간을 도축하기 위해서 '사료(?)'를 먹이는 꼴이라고 설명하면 이해가 빠르려나... 암튼, '게이트'를 통해서 다른 세상에 가득했던 '마력(마나)'을 지구에 골고루 뿌리려 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헌터의 등장'은 뭐란 말인가? 어차피 '마력'이 넘쳐나게 되면 마력을 이겨내지 못하는 존재들은 죽을 수밖에 없다. 성진우의 엄마가 걸렸던 '익면증'도 바로 그런 증거 가운데 하나다. 마력을 감당하지 못하는 존재들은 애초에 살아남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마력에 적응해서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좋을 까닭은 없다. 그렇게 살아남은 소수는 어차피 '다른 공간'에 찾아온 지배자와 군주 들에 의해서 모조리 파괴될 운명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도 헌터들이 등장한 까닭은 조금이라도 빨리 지구 곳곳에 '마력'을 널리 퍼뜨리기 위해서다. 인간들이 '게이트 사냥'을 통해서 얻은 '마정석'과 '마나석' 따위를 에너지원으로 삼아서 쓰면 쓸수록 다른 공간의 물질인 '마력'을 지구 곳곳에 널리 퍼뜨릴 수 있고, 그렇게 마력이 충만해지면 지배자들과 군주들이 활동하기 더 좋기 때문에 '헌터들'이 유용하게 쓰였던 것이다.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지배자와 군주 들간의 싸움에서 '그림자 군주'가 지배자들과 싸우고 있는 도중에 동료 군주들에게 '배신'을 당했기 때문이다. 배신을 당한 까닭은 '그림자 군주'가 가진 힘이 너무도 강했기 때문이다. 바로 '그림자 군단'이 점점 늘어나게 되어서 '적들'조차도 자신의 군대로 삼아버리는 어마어마한 스킬능력이 두려워서 '그림자 군주'가 지배자들과 싸우고 있는 틈을 타서 '그림자 군주'를 홀로 왕따(?)시켜 버리고 배후를 친 것이다. 그렇게 '그림자 군주'는 소멸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림자 군주'의 죽음은 달랐다. 애초에 '죽음'을 맞이한 존재를 자신의 군대로 다시 소생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었던지라 '자신의 죽음'조차 극복(?)해낼 수 있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캐릭터가 바로 '성진우'였던 것이다. 그리고 군주들에 의해서 몰살 당할 위기에 처한 '지배자들'도 자신들이 소멸되기 전에 '파편'을 남겨두어 인간들에게 숨어 들었고, 그렇게 해서 여느 인간헌터보다 '초월한 능력'을 갖게 된 '국가 권력급 헌터들'이 탄생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헌터들이 아직은 마력이 충만하지 않은 지구에 먼저 찾아온 '군주들의 졸개(카미쉬)'를 처치하는데 빛나는 업적을 남긴 것이다. 뭐, 이렇게 설명을 늘어놓아도 헷갈리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결국은 직접 읽고 느껴야 '판타지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있을테니 말이다.

각설하고, 지난 줄거리에서 아홉 군주들 중 하나의 습격을 받아 '고건희 협회장'이 암살 당하고 말았다. 알고 보니, 고건희 협회장도 초기에 탄생한 헌터들 중 '국가 권력급 헌터'에 속했던 헌터였고, 그의 내면에는 '지배자의 파편'을 간직하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국가 권력급 헌터'만큼 실력을 뽐내지 못했던 까닭은 '헌터'로 각성했을 때가 70세에 가까운 나이였다는 점 때문이었다. 아무리 엄청난 힘을 가졌더라도 '노화된 몸'을 다시 원래대로 되돌릴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령의 나이에 각성한 것 때문에 '엄청난 마력'을 지녔음에도 별다른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존재감'만은 국가 권력급 헌터 못지 않았기에 대한민국 헌터협회를 이끌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군주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것 때문에 '그림자 군주'로 재각성한 성진우를 '군주'가 아닌 '인간의 편'에 서게 만드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인간인 성진우가 '인간'이 아닌 '군주의 편'에 설 수도 있었을까? 그랬을 수도 있다. 왜냐면 어차피 '게이트'를 통해서 마력이 점점 더 넓고 짙게 퍼지고 나면 지구는 '군주들의 사냥터'로 전락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차피 '마력'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은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고, 소수의 '헌터 인간'만이 살아남는 최악의 환경으로 변할 것이 틀림없고, 그렇게 살아남은들 결국엔 '군주들의 사냥감'이 될 운명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성진우'는 인간으로 남아 '사냥'을 당할 것인지, 아니면 군주로 남아서 죽음도 초월한 존재로 '영생'을 누릴 것인지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그런데 성진우는 '그림자 군주'로 각성한 뒤에도 '인간의 편'으로 남기를 바랐다. 왜 그랬을까? 무슨 이유 때문이었을까? 그리고 과연 '인간의 편'을 들기로 한 성진우는 나머지 군주들의 반격을 제대로 막아낼 수 있을까? 과거에도 한 차례 '패배'를 했던 그림자 군주였는데 말이다. 이제 마지막 한 권이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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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1 -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퇴마록
이우혁 지음 / 들녘 / 199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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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국내편 1 : 눈뜨라고 부르는 소리 있도다>  이우혁 / 들녘 (1994)

[My Review MMXXIX / 들녘 5번째 리뷰] 정말이지 2025년은 '퇴마록의 부활'을 알리는 새로운 기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애니메이션이 제작되어 개봉하고, 또 <퇴마록 말세편>의 후속편이 조만간(6월 예정) 출간된다고 하니 말이다. 작년에 우연히 꺼내든 <퇴마록>으로 리뷰를 하고 있던 것이 참으로 마침맞게 딱 떨어져 더욱 생생하게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더구나 이번에는 '오디오북'까지 오픈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오디오북'으로 감상을 시작하다가 그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장'하고 있던 <퇴마록>을 꺼내서 펼쳐놓았다. 그리고 눈으로 듣는 듯 생생하게 펼쳐지는 감동을 만끽했다. 더구나 애니메이션을 극장에서 관람하고 왔기에 내 눈앞에는 '이미지 영상'까지 화려하게 펼쳐지는 듯 했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 읽고 또 읽으며 상상만 했던 일이 무려 30년 만에 실제로 내 눈앞에서 펼쳐지게 된 것이다. 정말 감동이다.

이번에 '오디오북'에 참여한 성우진들은 내게는 꽤 낯선 분들이었다. 하긴 내게 익숙한 성우 분들은 빨간머리 앤의 '고 정경애'분, 달려라 하니 홍두깨 선생님의 '고 장정진', 그리고 맥가이버의 '배한성' 성우이니 말이다. 암튼 박신부 역에 '곽윤상 성우', 이현암 역에 '민승우 성우', 장준후 역에 '김율 성우', 현승희 역에 '이주은 성우', 그리고 나레이션에 '장민혁 성우'가 참여했단다. 지금은 낯선 분들이지만 앞으로는 기억할 것이다. 내게 <퇴마록>은 영원할테니 말이다. 지금도 '내 기억'속에는 어릴 적 성우 분들의 목소리가 생생하게 들리곤 한다. 그것처럼 <퇴마록>도 그러할 것이다.

그럼 도대체 왜 <퇴마록>에 열광할 수밖에 없을까? 94년도에 군생활을 하고 있을 때,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만해도 그저 '세기말 현상'으로 여겼을 뿐이다. 새천년을 맞이하기 전에 '세기말 분위기'가 정말 판을 쳤기 때문이다. 나라꼴도 엉망이어서 '삼풍백화점'이 폭삭 무너지더니 뒤이어 '성수대교'까지 아침 출근시간이 막 끝나갈 무렵에 들려온 소식에 정말이지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더구나 군을 제대하고 복학을 하니 IMF시대가 똭하고 차려졌다. 거리마다 노숙자들이 넘쳐났고 취업을 알아보고 있던 시절인데 기업들마다 '부도'할지도 모른다는 뒤숭숭한 이야기만 들려오던 우울한 나날이었다. 95년도만 해도 'OECD 가입'이라면서 선진국 운운하던 분위기는 어는 순간부터 싹 사라지고 '국가부도'라는 비상사태가 펼쳐지던 우울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그럼에도 젊은 청춘이었던 내 또래들은 넘쳐나는 에너지를 쏟아낼 곳이 필요했다. 가뜩이나 오렌지족이니 낑깡족이니 하면서 고급(?)지게 놀고 자빠졌어야 할 나이였으니 뭐라도 해볼 탈출구가 필요했었다. 그 당시의 나는 '가난'이란 짐을 짊어지고 있었기에 누군가처럼 흥청망청 노닐 수는 없었다. 그래서 빠져든 것이 '판타지 세계'였다. 무일푼이던 내가 빠져들 수 있는 '최적의 코스'였다. 그렇게 나는 당시 한국사회에서 찾아보기 힘들던 '새로운 세계'로 탈출 아닌 도피를 한 셈이다.

그러나 그렇게 도피처럼 마주한 '판타지 세계'는 아주 놀라운 세상이었다. 더구나 '한국형 판타지'가 이제 막 시작되는 <퇴마록>의 기세는 날마다 기록을 갱신하기 시작했다. 그 당시만해도 '온라인 서점'이 없었기에 대형서점부터 동네서점까지 <퇴마록>은 들여오기 무섭게 팔려나갔다. 조금만 늦어도 '재고'가 부족해서 몇 주를 더 기다려야 할 정도였다. 그래서 나는 아예 '신간출간' 소식이 들리고 한참 뒤에 서점에서 느긋하게 사모으기 시작했다. 당시엔 정가 5500원이었고, 동네서점에선 단골손님에게 500~1000원 정도 깎아주었기 때문에 나는 4500원 정도에 샀던 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그 정도도 내겐 부담스런 가격이었다. 라면 하나가 20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그 돈이면 라면 20개를 사먹을 돈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도 <퇴마록>을 사모으는 것에는 아깝지가 않았다. 분명 읽고 또 읽을테니 말이다. 그때 정말 이 책을 얼마나 즐겨 읽었는지 셀 수 없을 정도다. 그만큼 좋았다. 현실세계의 비극을 다 잊고 살 정도로 말이다.

그럼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읽었나? 어릴 적부터 '오컬트 장르'를 무척이나 좋아했기 때문에 종교의 신비주의, 초능력과 고대주술, 그리고 무협의 세계는 '내 전공분야'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너무너무 심취했었다. 그래서 박신부의 기도력, 이현암의 초월한 무공, 장준후의 화려한 주술력, 그리고 현승희의 아바타라와 마음을 읽어내는 초능력이 내 눈을 완전 사로잡았다. 하지만 좀 더 읽어나가다보면 그것만이 <퇴마록>의 전부가 아님을 깨닫기 시작했다. 바로 지옥불에 타죽어도 시원치 않을 악당들조차 불쌍히 여기고 구원의 손길을 내미는 '퇴마사'들의 행보가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서양의 퇴마사들은 악당이라면 그저 처치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절대로 용서하는 법도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근데 '퇴마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천인공노할 끔찍한 죄를 저질렀는데도 그들의 죄를 '심판'하지 않고, 인간이기에 도리어 '죽을 위기'에서 목숨을 건져내곤 한다. 그로 인해 자신들의 '안위'는 걱정도 하지 않고서 말이다.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소린가 싶었다. 처음엔 말이다.

퇴마사들이 가진 능력은 슈퍼맨이나 배트맨이 지닌 초능력을 능가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아니 슈퍼맨이나 배트맨은 할 수 없는 '원혼들의 저주'로부터 죄 없는 사람들을 구원해주는, 아니 '죄 많은 사람들'마저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면서 구원해주려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치 세상 모든 '원죄'를 한 몸에 지고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은 죄를 '대신' 속죄하고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신 거룩한 예수 그리스도의 현생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그래서 <퇴마록>을 거듭해서 읽으면서 이런 '퇴마사들의 행보'를 이해하려 했으나 젊은 시절의 나로서는 절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퇴마사들의 손발놀림 하나하나가 숭고해보였다.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이 매우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일이라는 것에 눈을 떴던 것이다.

여중생을 납치해다가 성폭행을 저지르고 술집 접대부로 팔아넘기거나 외국 성매매업소에 팔아치우던 인신매매범이 처참한 꼴로 하나씩 죽어가는 사건이 벌어졌다. 경찰은 원인을 알 수 없어 수사에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었지만, 애초에 죽어 마땅한 죄를 지은 놈들이니 꼴좋다고 남몰래 속시원해 하고 있던 사건이 생겼다. 이를 파헤치는 기자들도 사건의 내막을 파헤치면서 '사필귀정'이라 대대적인 보도는 하지 않고 있지만, 너무도 끔찍하게 살해된 시신들을 보면서 절로 욕지기가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런 사건 소식을 접한 당신이라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죽을 죄를 지었으니 당연히 죄값을 치뤄야 하는 것이 맞긴 한데, 사람이 벌을 주면 이런 끔찍한 짓을 저지른 놈일지라도 '저지른 죄'에 비해 '형편 없는 벌'을 받고 풀려났을 거라고 분개했을 것이다. 그러면서 억울하게 당한 '피해자'만 불쌍히 여기고, 자신은 이런 불행한 일이 벌어지지 않기 만을 바라는 것에서 그치고 말 것이다. 그런데 퇴마사들은 그렇게 죽어 마땅한 놈일지라도 일단 그들이 '사람'이 아닌 '귀신'에 의해서 처참하게 죽어나간다면 옳지 못하다면서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서, '원귀'의 행위를 막고 한을 풀어준 뒤에 극락왕생할 수 있도록 귀신을 제자리로 되돌려 놓는다. 그 과정에서 자신들의 목숨이 위태롭고, 자신들의 영능력으로 감당할 수 없어서 죽을 고비를 수차례 겪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이라 여기고 묵묵히 제 할 일을 할 뿐이다.

퇴마사들은 왜 그러는 걸까? 그냥 원귀가 나쁜놈들을 죽여버리면 속시원하고 좋을 텐데 말이다. 한마디로 '권선징악의 표본'이 아니겠느냔 말이다. '천벌'도 그러한 원리이고 말이다. 그런데 퇴마사들은 '이세상 일'은 이세상 사람들이 '저세상 일'은 저세상 귀신들이 따로따로 분리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아무리 이세상에 문제가 많더라도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저세상의 힘'을 빌려오는 것을 막으려 한다. 그게 '순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의 흐름을 자연 그래도 두면 아무런 문제가 없다. 간혹 너무 적거나 너무 많아져서 '문제'가 발생할 수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물의 흐름대로 놔두면 자연스레 해결될 일이다. 이때 사람의 개입을 해서 '물의 방향'이나 '물의 길'을 살짝 바꾸는 정도는 할 수 있다. 그게 인간에게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말이다. 그런데 사람의 욕심이 끝이 없어서 '물의 흐름'을 거슬러서 아예 반대로 흐르게 하거나 꽉 막아버리려 들면, 이는 뜻하지 않는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퇴마사'들이 등장해서 물의 흐름을 원래대로 바꾸어 놓는 것, 이게 '이야기의 핵심'이다.

기본적으로 퇴마사들의 행보는 '자연 그대로'를 추구하려 하고, 그 다음에는 '인간에게 이로운 방향'을 추구한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다. 아무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천기'를 거스르는 일이라면 막으러 나서고, 아무리 사람을 이롭게 한다고 해도 그것이 이세상이 아닌 저세상의 힘을 빌어서 하는 일이라면 결단코 막아선다. 왜냐면 세상의 기운이라는 것이 '조화'를 기본으로 삼기 때문에 '한쪽'이 이익을 얻으면 '다른쪽'은 손해를 보기 마련이다. 그럼 그 손해 본 쪽에서 손해 본만큼 다시 원상태로 되돌리기 위한 '힘의 작용'이 생겨서 조화를 깨뜨리게 된다. 그리고 그 조화가 깨지는 순간에 수많은 사람들이 원치 않은 피해를 볼 수도 있기에 퇴마사들은 그런 '조화'를 깨뜨리려는 세력들에 대해 자신들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막아선다. 정작 퇴마사들은 원하는 것도 하나 없이 말이다. 그저 애꿎은 사람들이 희생 당하지 않는 것으로 만족할 따름이다. 자신들은 죽다 살아나는 위험천만한 일을 겪으면서도 말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눈물이 났다. <퇴마록>을 읽으면서 울었다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데, 난 울었다. 내게는 그냥 재미만 주는 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퇴마록>의 '구판'이지만, '최신판'이 나오기에 앞서 다시 한 번 싹 정리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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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6
추공 지음, 이백 그림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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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레벨업 6>  추공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2019)

[My Review MMXXVIII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6번째 리뷰] 성진우가 '일본행'을 선언했다. 일본헌터협회가 '제주도 레이드'에서 한국측 S급 헌터들을 몰살시키려는 모략을 꾸미려다가 의도치 않은 변수로 인해서 자국(일본)의 S급 헌터가 7명이나 희생 당하는 처참한 결과를 낳았다. 이를 두고, '자업자득'이니 '사필귀정'이니 말이 많겠지만, 당장 일본에 S급 게이트가 열려버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일본에서는 이를 막을 수 있는 헌터가 없게 된다. 제주도 레이드에서 '고토 류지'만이라도 어떻게 살아서 돌아왔더라면 좋았으련만, 일본측으로서는 '고토 류지'라는 최고 S급 헌터를 잃어버린 것이 너무도 큰 손실이었다.

그런데 정말로 일본에 '초대형 S급 게이트'가 생성되어 버린 것이다. 일주일 뒤면 게이트가 '던전 브레이크'될 것이고, 그 안에서 엄청난 마력을 뿜어내는 마수가 나오기라도 한다면 일본은 그야말로 '멸망 직전'까지 내몰리게 될 것이다. 일본에 생성된 게이트는 미국에서 겨우 막아낸 '카미쉬(용제: 용의 군주) 게이트'보다는 작지만, 세계적으로도 '두 번째로 많은 마력량'을 뿜어내서 일본 정부와 국민들을 초긴장 상태로 만들었다. 만약 이를 막지 못하고 게이트가 열려버린다면 일본은 '도시 한두 개'가 사라지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일본의 전국이 그야말로 초토화될 것이 분명하다. 제주도에 열렸던 S급 게이트보다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게이트였고, 제주도의 게이트에서는 '곤충형(개미) 마수'가 나오는 바람에 사방이 바다로 가로막고 있어 '제주도' 하나만 파괴되는 것으로 어찌어찌 막고서 시간을 벌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일본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된 초대형 S급 게이트에서는 '거인형 마수'가 30마리나 튀어나온 것이다. 더구나 거인이라고해서 행동이 굼뜬 것이 아니고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이며 보이는 모든 것을 파괴했고, 보이는 모든 사람들을 먹어 치웠다. 그야말로 '살육전'으로 사람을 때리고 찢어발기며 먹어치우기까지 하는 괴물들이었다. 한 마리만 나와도 큰 피해가 났을 텐데, 무려 30마리가 각자의 방향으로 쏜살같이 치고 나가며 일본 전역을 파괴하고 있었다. 더구나 바다에서 헤엄까지 치고 건너갈 정도니, 이제 일본은 이대로 끝장이 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한국의 S급 헌터 성진우가 '일본행'을 자청한 것이다. 러시아의 S급 헌터 유리도 단 한 방에 거인에게 죽임을 당해서 전세계 S급 헌터들도 도와주겠다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심지어 '국가 권력급 헌터'를 다섯 명이나 소유하고 있는 미국조차 일본을 외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국의 헌터가, 그것도 혼자(아니 동행자가 있었는데, 아진 길드 부사장 유진호(D급 탱커))서 거인들을 상대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더구나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었다. 러시아 헌터처럼 '하루에 100억'을 지불해달라는 요구도 없었고, 단지 '거인들의 사체'만을 자신의 소유로 인정해달라는 요구만 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요구는 '게이트'를 클리어한 헌터가 당연하게 요구하는 것이기에 실제로는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일본을 돕겠다는 얘기였다. 물론 성진우에게는 마수의 사체에서 얻을 수 있는 '그림자'가 가장 큰 이익이었지만, 성진우의 '스킬'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상황이었기에 그런 성진우의 행보는 전세계 헌터들의 귀감이 되었다.

어쨌거나 일본으로서는 무조건 도움을 받아야만 하는 처지였다. 그나마 남아 있던 일본의 S급 헌터들마저 거인과 맞서 싸우다가 죽어가는 형국이었기에 일본의 운명을 성진우에게 맡겨야만 했다. 하지만 성진우에겐 100레벨이 넘은 상황에서 엄청난 마력의 마수를 죽여야만 '레벨업'을 할 수 있다는 절박감마저 들었다. 그래서 성공여부를 떠나서 성진우에게도 꼭 필요한 레이드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성진우는 거인들과 싸워서 이길 승산이 있던 것일까? 그리고 거인들과의 싸움을 통해서 밝혀질 비밀은 또 무엇일까?

아닌 게 아니라, 지난 '천사상 이중던전' 사건에서 '시스템의 설계자'와 마주쳤고, 성진우 본인이 '그림자 군주', 다시 말해, 9명의 군주 가운데 하나라는 사실을 각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각성하면서 성진우는 '인간'으로 남을지, '마수들의 군주'로 남을지 선택해야 했다. 그리고 그 선택은 '인간'으로 남는 것이었다. 그래서 '설계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성진우는 온전한 '그림자 군주'로 새롭게 태어날 수 없었다. 그림자 군주의 능력을 갖춘 '인간 헌터'로 남을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불완전한 존재'인 상태다. 이런 불완전함이 앞으로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인지가 관건일 게다.

그리고 '그림자 군주'를 둘러싼 비밀도 조금이지만 밝혀지게 되었다. 9명의 군주와 대립하던 '지배자들'이 있고, 또 '악마들'도 군주들과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림자 군주'였을 때, 하늘에서 내려온 '지배자'들과 한 판 승부를 하고 있었는데, 그림자 군주의 '소환능력' 덕분에 실력은 막상막하였다. 그런데 '악마들'의 참전으로 그림자 군주는 곤경을 맞이했고, 이런 '그림자 군주'를 외면한 채 죽임을 당하도록 방치한 '나머지 군주들'은 배신자들이었던 셈이다. 그렇게 '그림자 군주'는 처참한 패배를 했고, '설계자'는 성진우라는 E급 헌터의 몸속에 '그림자 군주의 일부'를 심어준 것이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한 번 각성한 '헌터의 마력'은 아무리 노력해도 높일 수가 없었고, 유일하게 미국에서 각성한 '셀마 헌터'만이 재각성의 스킬을 갖고서 헌터들의 마력을 높여줄 수 있었는데, 성진우는 그녀의 도움이 없이도 스스로 '레벨업'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시스템'을 만들었던 설계자마저 파괴 시켜버렸는데 말이다. 그런데도 성진우는 여전히 레벨업을 할 수 있다.

어쨌든 성진우는 '레벨업'을 해야 할 목적이 다시 생겼다. 미국에서 개최되는 '국제 길드 컨퍼런스'에 한국 대표로 초청되었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엄청난 실력의 헌터들과 만나기 전에 충분히 '레벨업'을 해놓아야만 했던 것이다. 뚜렷한 이유는 몰라도 일단 '레벨업'을 해놓아야 어떤 일을 당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적중했다. 성진우가 레벨업을 조금이라도 게을리했더라면 결코 해결할 수 없는 사건사고들이 연이어서 발생하고 말았다. 이때 성진우의 '그림자 교환' 스킬이 유효하게 쓰였다. 그 누구든 '그림자'를 숙주처럼 심어놓기만 하면 언제 어느 곳이든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쿨타임'이 존재하는 스킬이지만, 엄청난 거리도 단숨에 이동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해서 리스크가 적은 디버프였던 셈이다. 이제 성진우의 활동무대는 '지구 전역'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언제나 가까운 곳에서 생기기 마련이다. 그동안 모습을 감추고 '재기(?)'를 노리던 '군주 세력들'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터져버린 게이트에서는 '거인들의 왕(군주)'이 있었고, 성진우가 처치했다. '용제'라 불리던 '용의 군주(카미쉬)'는 미국에서 모은 '국가 권력급 헌터들'에 의해서 죽었고, '그림자 군주'는 성진우 본인이니, 이제 남은 군주들은 6명이다. 거기다 '그림자 군주'와 싸웠던 '지배자들'도 속속 등장하기 시작했다. 지배자들은 '군주들'과 싸웠으니 성진우에게도 적인 셈이다. 그런데 지배자와 절체절명의 대결을 벌일 때 '배신'을 때린 애들이 군주들이었기에, 성진우는 지배자편도, 군주편도 아닌 셈이다. 그렇다면 누구의 편을 들어야만 하는가? 그때 '한국 헌터협회장 고건희'를 죽이러 온 마수가 '나머지 6군주' 가운데 한 명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밝혀냈다. 그리고 대한민국 1호 S급 헌터였던 고건희는 '지배자의 파편'으로 각성을 한 헌터였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이렇게 성진우는 '군주'도 아닌, '지배자'도 아닌, '누구'의 편에서 싸움을 이어나가야만 할 것인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미국에서 개최한 국제 길드 컨퍼런스에서 성진우는 뜨거운 관심을 받았었다. 왜냐면 던전에서 등장한 인간이 있었는데, 그 인간의 모습이 다름 아닌 성진우의 아버지, '성일환'의 모습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일환의 마력 파장이 '마수의 것'과 완벽히 일치해서 의심스러운 상황인 것이다. 과연 성일환은 '인간'인 건가? '마수'인 건가? 어떤 쪽이든 성진우에겐 힘든 선택이 될 것이 틀림없다.

자, 이제 서서히 '게이트'가 갑자기 열리게 된 이유가 밝혀질 것이다. 군주와 지배자, 그리고 성진우의 끝없는 레벨업이 가능한 이유도 다 밝혀졌다. 그렇다면 이제 '최후의 싸움'이 남게 될 것이다. 과연 성진우는 '누구의 편'을 들 것인가? 고건희 회장은 '지배자의 도움'으로 각성했지만, '인간'으로 남았다. 돌아가신 줄 알았던 성진우의 아빠는 '인간'인지 '마수'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다. 성진우도 '군주의 도움'으로 새 삶을 살게 되었지만, '설계자의 의도'를 파악한 뒤에도 '인간'으로 남았다. 과연, 성진우의 선택은 무엇이란 말인가? 이런 고민중에도 성진우의 레벨업은 계속된다. 일본에서, 미국에서, 또 어디서든 성진우는 레벨업을 한다. 지켜야할 존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존재가 곧 밝혀지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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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성공시대 2 히틀러의 성공시대 2
김태권 글.그림 / 한겨레출판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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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의 성공시대 2>  김태권 / 한겨레출판 (2013)

[My Review MMXXVII / 한겨레출판 10번째 리뷰] 이 책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히틀러' 같은 사람이 등장할 수 있느냐?'는 물음에 곰곰이 따져봤는데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시에도 '아스팔트 보수층'이 등장해서 이명박·박근혜 정부를 열렬히 지지하던 시절이었고, 신한국당, 새누리당이 정부여당으로 강력한 보수의 힘을 결집시켰던 시절이어서 꽤나 답답한 시절이었음에도 대명천지 '21세기 대한민국'에서 히틀러 같은 독재자의 등장은 조금의 의혹과 조짐이 보이긴 하지만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그런데 10여 년 뒤에 대한민국에서 '비상계엄령'이 선포되었다. 하마터면 '히틀러' 같은 윤틀러의 등장을 막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정말 위험천만한 '그날'에 한밤중인데도 민주시민들이 국회의사당 앞으로 모여들어서 '계엄군의 진입'을 막아내며 윤틀러의 독재정권을 막아내는데 성공한다. 정말이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왜 윤석열은 '히틀러'와 같은 독재자가 되길 꿈꿨던 것일까? 뭐, 정확히 말하자면 윤석열이 동경했던 대상은 '히틀러'가 아니라 '전두환'이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독재자'라는 오명에서는 똑같이 취급할 수 있고, '윤석열'도 그와 동급으로 대우 받고 싶어서 대한민국 국민들을 향해 그런 만행을 저질렀을 것이 틀림없다. 이제 겨우 '탄핵'으로 대통령 자리에서 파면 당하고, 법원에서 1차 심판이 이루어지고 있는 과정이지만, 그의 '내란우두머리 사형 판결'은 여러 모로 봤을 때, '확정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궁금한 점은 그게 아니다. 윤석열 집권기에 벌였던 일들이 '히틀러 집권과정'과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았다는 점에서 무척 놀랐다. 특히나 히틀러나 윤석열이 '음모론'을 너무 좋아했던 점은 정말이지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거기다 히틀러의 친위세력이었던 '나치돌격대(SA)'와 윤석열의 친위세력을 자처했던 '백골단(비록 혁혁한 활동은 하지 못했지만)'과 '애국시민들'의 모양새도 놀랍도록 닮았다. 거기에 히틀러의 나치당 집권을 위해서 선전선동을 일삼았던 '괴벨스' 역할에는 윤석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처한 '이진숙 방통위원장'과 '사랑제일교회 사이비교주 전광훈'과 자칭 '애국열사'로 불리길 바랐던 '전한길 한국사강사'로 아주 짝짜꿍이 잘 맞아떨어진다. 거기에 음모론을 퍼다 나르고, 그런 음모론을 자신의 인기정책으로 잘 활용했던 '히틀러'마냥 윤석열도 '극우유튜버'들이 퍼다 나른 온갖 음모론을 곧이 곧대로 믿고 따르는 모습이 정말이지 '히틀러의 현신'이라고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정도다.

근데, 정작 중요한 것은 '히틀러'와 '윤석열'이 얼마만큼의 싱크로율로 잘 맞아떨어지느냐가 아니다. 독재자가 될 것이 너무 뻔한 인물을 왜 독일국민와 대한민국국민이 지지하고 뽑아주었느냐가 핵심포인트인 것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자기들이 쿠데타를 통해서 '권력의 자리'에 올라선 것이 아니라 '선거'를 통해서 정정당당하게 '권력자'가 되었고, '권력의 정당성'에서 한 수 접어서 먹고 들어갔다는 점에서 우려스러움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히틀러도 독일국민이 뽑아주었고, 윤석열도 국민의 손으로 직접 뽑았다. 그게 '팩트'다.

그런데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분위기였다는 것도 '일치'하고 있어서 놀랍다. 굉장히 좌우로 갈라져서 '정국 불안'이 심했고, '좌우 갈등'은 더 심했고, '경제 상황'은 악화일로였다는 점이다. 그런 혼란속에서 '히틀러'같은, '윤석열'같은 못난이들이 권력을 움켜쥐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기에 당시에 못난이들을 뽑은 국민들 탓만 해서는 안 된다. 무지한 국민들 탓을 해봐야 이제와서 무엇을 하겠는가?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려 했던 세력을 발본색원해서 두 번 다시는 그런 과오의 전철을 밟지 못하도록 엄벌해야 하는 것이 훨씬 중요해졌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 체제에서 '투표'는 모든 국민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소중한 권리이자 엄중한 의무인데, 이런 중차대한 '선거'의 의의를 훼손하고 '독재자의 등장'을 획책하려는 못된 세력들을 솎아낼 수 있는 능력과 노력이 절실하다는 얘기다.

1930년대 독일 상황은 '전쟁패배'로 인한 정국혼란과 경제악화를 헤쳐나가기는커녕 도리어 '무능의 극치'를 보여줬던 정치계의 어리석은 행보가 줄다름을 치던 시절이었다. 여기에 자본가들의 '보수진영'과 노동자들의 '진보진영'이 서로 극렬하게 대립하던 때였기 때문에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치킨게임'이 일상이던 시절이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새로운 인물을 독일국민들은 절실히 요구했는데, 그게 바로 '히틀러'였던 것이다. 하지만 당시 엘리트계층들은 '히틀러'가 깜도 안 되는 망상적 정신분열환자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독보적인 연설능력으로 독보적인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던 히틀러를 '얼굴마담' 삼아 자기네 진영에게 유리(집권)하도록 써먹고서는 내다버릴 생각만 했었던 것이다. 윤석열도 비슷한 처지였지 않았나? 박근혜 '유죄판결'을 성사시킨 검찰총장 출신이라 대중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었는데, 문재인 대통령 후임으로 내세울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었던 보수집권세력들에게 '얼굴마담'으로 쓰고서 저고리핫바지 대통령으로 써먹기 딱 좋을 인물이라며 열렬히 영입하던 모습과 말이다.

그런데 실상은 달랐다. 히틀러와 윤석열에 '권력'을 쥐어주자마자 그들은 '자신의 본심'을 숨기지 않고서 국민들을 짓밟고서 군림하기로 작정했다. 물론 '정정당당한 절차'와 '법치주의'로 말이다. 그 절차와 법치가 '국민'들을 위한 것이 아닌 '자기 이익'만을 챙기는데 혈안이 되었다는 점도 정말 놀라울 정도로 일치한다. 그리고 그런 '과욕'을 달성하기 위해서 '정적'을 죽이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윤석열이 정부여당에 '친윤파'로 채워넣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무리를 한 것이나, 비상계엄을 준비하면서 '수방사 지하벙커'를 반정부인사 수감소로 활용하려 했던 점이 그렇다. 그러나 히틀러는 좀 더 잘했다. 권력의 자리에 오르자마자 자신의 친위대들이 '정적'들을 사사로이 처단하는 일은 그저 일상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히틀러의 비위에 맞지 않고 수틀리는 짓을 하면 '수용소'에 수감시켰고, 그 유명한 '홀로코스트(대학살)'를 시행했다. 처음엔 '진보좌파', 그다음엔 '공산당원', 그다음엔 '자본가', 그다음엔 '유대인' 등등 전쟁의 광기를 뿜뿜하다 끝내 자살하기에 이르기까지 히틀러는 수많은 사람들을 공공연하게 죽여버렸다. 만약 윤석열의 계몽령이 계획대로 시행되었다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도대체 이런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 있었을까? 당시 독일국민들이나 한국국민들이 머리에 총을 맞았단 말인가? 저런 인물인줄 전혀 모르고서 그저 순진하게 당하고만 했었냔 말이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 때'가 있었다. 바로 정치적 대립과 갈등이 심할 때, 이런 '독재자'들이 어부지리로 정권을 잡게되는 놀라운 일이 말이다. 1920년대 당시 독일사회는 끔찍한 혼란상태였다. 패전으로 인해 나라살림은 엉망진창이 되었는데도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노동자와 자본가의 대립은 끝도 없었다. 정치인들도 둘로 갈라져서 크게 대립했고, 여러 파들로 나뉘어서 또다시 혼란을 가중시켰다. 이런 혼란한 틈을 타서 히틀러는 '인기몰이'를 시작했고, 독일국민들도 설마설마하다가 '히틀러' 같은 망상가에게 권력을 헌납하는 꼴을 당했던 것이다. 대한민국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사회갈등은 심각했고, 정국혼란은 한 치 앞도 전망할 수 없게 만들었다. 그때 윤석열이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런 위기를 헤쳐나갈 것이라 수많은 국민들이 믿어 의심치 않았다. 분명 윤석열은 바람직한 대안이 아니라고 반대의견도 있었으나 '소수의견' 취급을 했다. 그런 정황의 근거들은 많았다. 손바닥에 王자를 그리고 나온 것을 보고서도 놀라지 않은 사람이 그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이 정말 개탄스러울 지경이었지만, 그 당시 분위기는 '정권교체'만이 답이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런데 보라! 윤석열 3년 동안 대한민국이 얼마나 망가졌는지 말이다.

이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다시 되돌아보아야 할 때다. 우리가 쌓아올린 민주주의가 얼마나 허약한 것이었는지도 철저히 반성해야 한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비상계엄'을 저지르는 멍충이를 두둔하는 세력도 가만 둬선 안 된다. 독일사회가 '나치의 부활'을 철저히 막은 것처럼 한국사회도 '친윤의 부활'을 철저히 막아야 한다. 그리고 '음모론'으로 갈등을 조장하고, 그로써 '이익'을 챙기려는 세력들도 좌시해선 안 된다. 전광훈 아들딸이 '알뜰폰' 팔아서 사익을 챙겼다는 수사도 철저히 해야 한다. '내란선동'으로 이득을 챙겼던 극우유튜버들도 철퇴를 가해야 한다. 그래서 저들이 다시는 '독재자'를 비호하고, '국가위기'로 사익을 취하는 나쁜짓을 할 수 없도록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힘 국회의원 윤상현은 말한다. 국민들은 개돼지라서 '박근혜 탄핵'시키고도 국회의원으로 또 뽑아준다. 그러니 '지금'은 욕을 먹겠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윤석열을 지키는게 더 이익이라고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대한민국 법정에서 사형판결을 받은 '내란우두머리 전두환'도 석방시키고서 천수를 누리다 고이 죽게 해주는 '관용(?)을 베푸는 국민'이 대한민국 국민이었기 때문이다. 노태우도 그랬고, 이명박, 박근혜도 줄줄이 석방시켜주어야 '국민통합'을 이룬다면서 다 풀어준 너그러운 국민들이다. 근데 내 생각에는 그게 '국민통합'에 어떤 보탬이 되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왜 범죄를 저지르고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의 형량을 줄여주는 것이 사회통합의 물꼬를 트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걸까? 이게 대한민국 국민들을 우롱하는 일은 아니냔 말이다. 국민들을 얼마나 우습게 보면 철저히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고 국민들을 개돼지로 여기는 사람을 뽑아주고 또 뽑아줄 거라 믿게 만드냔 말이다. 이 참에 보여주길 바란다. 윤석열만 처단하는 것으로 끝을 내지 말고, 그 일당들까지 발본색원하여 두 번 다시 얼굴을 들고 다니지 못하도록 개망신을 줘야 마땅하다. 연예인은 '자숙기간'을 거치고 나와도 죽을 때까지 욕을 하면서, 왜 정치권력, 경제권력을 가지고 있는 '실질적인 기득권 계층'에게는 욕 한 번 못하냔 말이다. 제발 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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