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 새로운 세상을 꿈꾼 25명의 20세기 한국사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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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위인을 얼마나 공정하게 평가하고 있을까? 친일 논란이 많은 위인(?)들이 아직까지도 떠받들 듯 칭송되고 있는 반면에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애국애족하던 수많은 열사와 의사 들은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역사에서 지워진 채, 우리 기억에서조차 잊혀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편, 수많은 위인들을 공정하게 평가내리지 못하는 원인을 꼼꼼히 볼작시면,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날조되고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아전인수격으로 왜곡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또한 이것이 대한민국 주류언론에서 벌이고 있는 꼼수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느낄 수 있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 위인들의 평가를 다시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대한민국 103년'이라는 시점에 말이다.

 

  그럼 우리가 재평가해야할 위인들은 어떤 분들일까? 무엇보다 '여성위인'에 대한 폄하를 걷어내야 한다. 전근대 뿐 아니라 근현대사에서도 '여성의 역할'은 남자들을 보필하는 것으로 한정하며, 좋게 말해서 '내조'라고 일컬으며 남자들이 양지에서 활동할 때 여성위인들은 음지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위인의 평가는 '남녀의 차이'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폭넓은 관점에서 평가를 내려야할 것이다. 일제시대에 나라 잃은 슬픔이 '남자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3·1만세혁명 당시에 '독립만세'를 목놓아 부르고 외쳤던 이들은 '우리 민족' 전부였고, 일제 치하 한민족의 설움을 느껴 손에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울분을 쏟아내고 자주독립이라는 열망을 꿈꿨던 이들도 '우리 민족' 전체였다. 그런데도 독립운동을 했던 위인들은 대다수 '남자'만을 기리고 '여성'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뿐더러, 유관순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을 정도다.

 

  또한, 재평가의 기준을 바로 세우는 일도 시급하다.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 한국전쟁 당시의 영웅들을 추켜세우는 일이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분이 바로 '백선엽 장군'이다. 그분의 업적을 꼽으라면 너무나도 많아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웅 중에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숱하게 잡아다 가두고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우리는 이렇듯 시대적 아픔을 겪고 격동의 시절을 지내며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인 시절에는 '일제의 수탈'보다 '북괴군의 만행'이 더 끔찍했을 지는 몰라도, 민족적 관점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평가를 하자면,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상처가 우리 민족 내부의 분란으로 벌어진 상처보다 더 치욕스럽게 생각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 본다면, 친일의 과오를 반공의 위업으로 덮어버리고도 남는 우리 현실은 이상하게 여겨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논리를 앞장 세워서 과거에 대한 잘못조차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너그럽게 용서하자면서도, 북한은 같은 민족인데도 사상과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니,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북한과 하는 것보다 일본과 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마지막으로 바로 잡아야 할 시급한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기준'을 고정사실로 못박아놓고 '고정불변의 진리'인 것 마냥 퍼뜨리고 있는 주류언론의 행태다. 언론은 '여론형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도맡아 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망각해버린 듯한 행태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피해국인데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기는커녕 '가해국 일본'을 대신해서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버린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는 '미소냉전'이라는 강대국의 논리로 귀결된 잘못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강대국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자국이기주의'가 팽배해진 마당에 강대국들이 잡고 있는 '유리한 상황'에 잘잘못을 따져 바로 잡기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셈이다.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주류언론'이라면,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지금이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온 국민에게 알리며 선진국에 걸맞는 시민의식을 키우는 '바른 언론'으로 활동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언론이 저지르는 행태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주변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줏대없는 약소국에 불과하다는 듯,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경제발전의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며, 혈맹으로 맺어진 미국에게는 최대한 낮은 자세로 임하며 미국의 요구는 '어떠한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마땅히 추진해야 한다고..그리 하지 않으면, 쬐끄만 북한에게 집어삼겨질 것이라며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급급하다. 더구나 옆나라 중국에 대해선 대한민국의 이익을 생각지도 않고 할말 못할말을 다 지껄이면서도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선 '종속'해야 이득이라는 논리를 펴며 중국의 해괴망측한 온갖 짓거리(동북공정, 한한령, 중국꺼라 우기기 등)에는 그저 수수방관만 일삼고 있다. 이런 엉터리 언론이 제대로 된 위인들의 평가에 소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정도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위인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선진국에 걸맞는 대한민국 시민의 이름으로 평가를 내리기 위해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 고심해야만 한다. 가장 바람직한 판단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식이 선결되어야 한다. 분란이 생겨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막무가내로 공격하고 흠집을 내며, 그도 모자라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대처방안을 내는 저급한 말과 행동은 일절 금해야 한다. 이미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그러므로 '세계시민'이라는 큰 안목으로 인류공영의 이상향을 내세워 '우리 문제'도 해결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과거의 잘못된 이념갈등과 사상검증이라는 낡은 가치관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지나간 잘못은 '철저한 사과와 반성'을 거쳐 '관용과 포용'이라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또한 폭력에 관해서는 냉철한 처벌을 내리고, 그 처벌을 달게 받은 이에 대해선 관대한 용서로 다시금 보듬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위인들을 평가내린다면, 이 책에 언급된 '25명의 위인'이 제대로 보이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독립'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배운 리더들이 저마다 꿈꾼 '아름답고 멋진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노선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런 과정에서 각각의 노선 사이에 시기와 반목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분열적 사고방식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라서는 '좌우합작'을 통해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우리 독립운동가 중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계열'의 위인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 남북으로 갈라지는 아픔의 시절을 겪은 탓에 이들에 대한 평가가 소홀해지고 말았다.

 

  더구나 여성 위인들은 남자들에 가려져서 그 빛을 밝히지도 못하고 사그라 든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도 하나 뿐인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때로는 남자들도 감히 할 수 없는 업적을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며 당당하게 해낸 훌륭한 분들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이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해 유복자를 키우며 온갖 힘든 일을 하던 남자현 의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일본 총독을 암살하려 앞장 서기도 했다. 이를 모티브로 삼아 만든 영화가 전지현 주연의 영화 <밀정>이다. 그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을 바란다는 혈서를 작성해서 세계열강에게 호소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생각하면 손가락은 아깝지 않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 여성 위인이다. 이런 위인을 수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기득권 세력의 논리에 따라 엉터리 여론을 형성하기에 급급한 '주류언론'의 방만한 태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국민의 알 권리'를 실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인데, 대한민국의 주류언론은 당연한 '그 권리'를 기득권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만 활용하는 '선별적 알 권리'를 내세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진실을 알리기보다는 '저들의 세계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편협한 폄하와 왜곡까지도 일삼곤 했다. 조선노동자의 고통과 설움을 알기에 하나 뿐인 목숨도 아끼지 않고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 단식농성을 벌였던 강주룡 열사를 알고 있는가? 또, 일패 기생으로 유명세를 떨친 정칠성 열사는 3·1만세혁명을 계기로 투철한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고, 독립을 위해서 한 몸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독립운동가로 삶을 마쳤다. 그런데도 그들에 대한 평가는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면서 지붕 위에 올라간 상황에는 관심조차 없고, 그가 청상과부의 몸으로 살았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다. 또한, 천한 기생 주제에 성스런 독립운동에 가담하다니 독립운동가들에게 오점을 남길 뿐이라는 논조로 깎아내리기 급급할 뿐이다. 일제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이 해방 이후의 언론들도 비슷한 논리로 여성 위인을 발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디 이뿐인가. 조선독립운동의 트로이카로 불렸던 주세죽, 허명숙, 고명자는 사회주의 계열의 공산당이자 해방 이후에는 월북해서 숙청 당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알릴 이유조차 찾지 않고 말았다. 같이 활동했던 박헌영의 활약은 생생하게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도 대접받아 마땅한 위인들을 재평가하고 재발견하는 일에 소홀하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몰랐던 위인들이 수두룩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제대로 평가받길 바라는 것이다. 이 책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은 자신의 뜻대로 살면서도 자신보다 모두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한 이들을 알리기 위해서 펴낸 책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의 뜻'대로 살기도 힘든데, 그 뜻이 개인적인 이득보다는 우리 모두의 이득을 위해 뜻을 펼쳤다면 존경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업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앞서 말한 '잘못된 기준'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지금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늦지 않게 제대로 평가받아 마땅한 위인들을 널리 알리는 길은 다름 아니라 바로 독자들이 먼저 알아보는 방법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위인을 알아보고 제대로 평가해주길 바랄 뿐이다.

 

책드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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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기 전에 알면 좋은 사실들
홍태화 지음 / 한빛비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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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이런 좋은 책은 널리 알리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더구나 약자를 보호해야 할 법이 도리어 '강자의 유용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현실에서 가해자의 2차 폭력을 막고 피해자를 법의 울타리 안에서 도울 수 있는 방법을 널리 알리는 일은 '지식인들의 의무'이자 '교양인들의 상식'이 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이 책에는 '언론 제보'와 'SNS 폭로' 등으로 자신이 받은 부당한 피해 사실을 알리는 방법이나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사실을 밝힐 때 유용한 팁을 알려주는 것은 물론이거나와 '언론 제보'를 할 수 있는 채널과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기관명', 그리고 '관련 법규'까지 소상히 일러주어서 정말 알면 알수록 좋은 상식을 누구나 쉽게 읽고 따라 할 수 있게 정리 되어 있다.

 

  더욱 유용한 까닭은 '관련 사례'를 조목조목 달아놓아서 자신이 받은 부당한 사례나 직장 갑질, 성폭력 등 따위를 대기업으로부터 명예훼손을 받았을 때 당황하지 않고 대응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기에 피해자인데도 가해자로 인해 '가해자로 둔갑'하는 황망한 일을 당했을 때 유용한 도움을 얻을 수 있게 해주고 있다.

 

  현직 대통령도 언급한 말이지만,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이며, 누구나 법 앞에 평등하고, 법이 정하는 바에 따라 공명정대하게 법적조치를 받을 수 있는 나라이다". 따라서 '법대로 따르면' 국민 누구나 부당한 대우를 받을 일이 없어야만 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법을 다루는 판사와 검사, 변호사가 우리 사회의 '엘리트 계층'이다보니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그들에게 훨씬 유용하도록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에 관한 지식이 부족하거나 법과는 거리가 먼 '선량하기만 한 서민들'은 힘 있는 자들의 고소, 고발만 받아도 '사형선고'를 받는 것마냥 벌벌 떨기 일쑤다. 특히, '명예훼손'과 같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함부로 쓰여지는 '법적 횡포'에 법과 친하지 않아 '소외되고 문외한이 되어 버린 약자들'은 피해를 당하고도 가해자로 또다시 처벌을 받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 처하곤 한다.

 

  이래선 약자들은 억울한 일을 당해도 하소연 할 도리가 없게 된다. 대한민국이 법치국가라는 사실조차 약자들에겐 '거짓말'처럼 느껴지는 대목이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법'과 '법률'에 대한 지식을 쌓아야만 한다. 그래서 최소한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당황하지 않고 가해자들의 횡포에 당당히 맞설 수 있어야 한다. 왜냐면 당신은 잘못한 게 없기 때문이다.

 

  현실은 비정하고, 법이 '힘 있는 자들'에게 더 유리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약자들의 위한 법'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법을 잘 몰라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명확한 '피해 사실'과 명백한 '피해 증거'만 확보해두면 당신을 도와줄 사람과 단체, 그리고 기관이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 두 가지를 가지고 '사실 관계'에 근거해서 '언론 제보'와 'SNS 폭로'를 통해 강자와 대기업의 횡포에 당당히 맞서고 피해자 앞에 무릎을 꿇고 싹싹 빌게 된 사례도 얼마든지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OO 유업 불매운동'이다. 대기업의 갑질로 대리점주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커지자 '언론 제보'를 통해 그 사실이 널리 알려졌고, 그 사실을 인지한 시청자들이 자발적으로 '불매운동'을 펼쳐서 가해자가 더는 악질적인 행위를 하지 않겠다며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도 개선이 되지 않자, 결국 사장이 일선에서 물러나는 촌극이 벌어지고 나서야 겨우 일단락이 된 사례도 있다.

 

  그러니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당당하게 알려야만 한다. 여기에 '안전하게' 피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유용한 안내서가 있으니 말이다. 이 책은 법의 도움이 절실한 이들에겐 유용한 지침서가 될 것이며, 법적인 상식이 필요한 예비 교양인들에겐 필독서가 될 것이다.

 

한빛비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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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5대 희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셰익스피어 연구회 옮김 / 아름다운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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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년에 셰익스피어를 읽겠노라고 다짐해놓고서 미적거리다가 이제사 다시 책을 들었다. 그간 여러 모로 사정이 있긴 했지만 그조차 구구절절 변명일 것 같아 길게 하지 않으련다. 당장은 어머님 병간호로 인한 백수 신세를 면하고, 다시금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겠기에 리뷰에 소홀할 지도 모르겠으나, 책은 늘 내 곁에 있을 것이기에 리뷰도 끊이지 않고 써나갈 것이다. 어쨌든 '다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은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다. 4대 비극과 함께 '상식문제'로 곧잘 나오는 것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일 뿐이고, 우리가 기대하는 '희극'에 걸맞는 명성을 갖춘 작품이냐고 되묻는다면, 글쎄요..라는 답변이 나올 것이다. 직접 읽어보면 그다지 웃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베니스의 상인>은 골탕을 먹는 '악당 샤일록'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전재산을 잃어버리는 통쾌한 내용이 담겨 있기에 '희극'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선 기 쎈 여자를 남자들에게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서 지역사회를 평안하게 만들었다는 웃지 못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요즘 독자들을 웃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신들의 장난에 의해 어긋나 버린 사랑이야기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희극적인 요소를 띤 '요정의 장난'이 오늘날의 독자에게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할 듯 싶다. 왜냐면 셰익스피어 희극의 장점은 바로 '익살스런 대사'에 있는데, 아주 오래 전에 유행했을 법한 익살과 재담이 요즘 독자들에겐 식상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뜻대로 하세요>에서는 로잘린과 올란도의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끝내 해피엔딩으로 끝맺고, <십이야>에서는 세바스찬과 바이올라라는 일란성 쌍둥이 남매가 우여곡절 끝에 각자의 사랑과 맺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배꼽 잡을 정도로 웃긴 작품이 아니다. 그의 비극이 모두가 파멸로 끝을 맺는 '새드엔딩'이라면, 그의 희극은 몇몇 악당을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희극'이라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희극인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하기 위해서 피땀눈물, 그리고 고생을 아끼지 않는 것을 생각하며 <5대 희극>을 접하게 되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감동적인 서사를 음미하면서 읽게 된다면 '해피엔딩'이 될 수밖에 없는 '반전없는 매력'에 푹 빠져 감상한다면 더욱 맛깔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베니스 상인>을 빼고는 '수동적인 여인의 모습'을 당연하다 여기고, 심지어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는 남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맞아도 싸고, 굶어 죽어도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희극속에서 카타리나는 여인들을 모아놓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지 설교하며 마무리하고 있는 장면에선 기겁을 할 지경이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순종이란 말인가? 차라리 천방지축에다 안하무인으로 살던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데 말이다. 나머지 작품에선 모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속만 끓이다 '남자'가 겨우 사랑을 알아보고 '알은 채'를 한 뒤에야 행복해진다는 결말을 말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자아 냈다. 여자가 먼저 사랑고백을 하면, 아니 '내 사랑'을 쟁취하는 적극성을 보이면 '여자답지' 못한 것일까?

 

  딴에는 <베니스의 상인>을 비판적으로 읽으며 '유대인'을 모욕하는 것에 관심을 쏟기 일쑤인데, <5대 희극>을 나란히 놓고 보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지혜롭기까지 한 포셔의 등장이 단연 돋보여서 가장 희극다운 희극으로 보일지경이다. 앞서 <햄릿>을 소개할 때도 셰익스피어의 여성관이 부정적이라며 비판을 했었는데, <5대 희극>에서는 더욱더 부정적이라서 놀랐다. 이런 작품을 두고, 여전히 '명작'이라 불러야만 한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셰익스피어를 '여성관' 하나만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문호가 전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보지 않고 '당근만 골라내는' 편식쟁이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대함과는 별도로 오늘날의 가치관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면, 지적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고전>을 다루면서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문호의 명성 앞에서도 당당히 꾸짖는 능동적인 독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이 평가해놓은 '잣대'에만 길들여져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명작을 읽는다고 해도 아무 짝에 쓸모 없는 시간낭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에야 공들여 책을 읽는 수고는 무엇하러 하느냔 말이다. 그저 남들이 평가해놓은 얄팍한 '지침서'만 읽어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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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 불한 완역판, 개정판 인디고 아름다운 고전 시리즈 1
생 텍쥐페리 지음, 김미성 옮김, 김민지 그림 / 인디고(글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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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왕자>가 주는 감동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등장인물이라고 해봐야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 조종사와 소행성에서 지구로 불시착해서 이곳저곳을 떠도는 어린 왕자가 고작이고, 이야기 전개방식도 앞뒤 순서도, 맥락도 없이 그저 비행사와 어린 왕자의 '경험담'을 읊조리는 것이 전부이기에 굳이 감동적인 '까닭'을 찾으려고 해도 딱히 '이것'이라고 하기 애매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굳이 찾아보라고 하면, 여우와 어린 왕자가 '길들이기'라는 주제로 떠벌린 친구 사귀기에 필요한 조건을 따지는 장면이고, 비행사가 어릴 적에 그렸다는 몇 가지 그림 가운데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을 닮은 모자 그림 때문에 가슴 아픈 상처를 받은 이야기가 인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어린 왕자>의 진정한 주제는 어린 왕자와 그가 가꾸는 장미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랑과 이별, 그리고 재회 이야기를 통해서 찾아볼 수 있다. 그래야 어린 왕자가 여행을 떠난 진정한 이유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어린 왕자가 자신이 살던 행성을 떠나 지구로 오게 된 까닭도 표면적으론 '더 넓은 세상'을 알기 위해서였지만, 그 내면에는 '서로를 더 아끼고 서로 배려하는 참사랑'을 깨닫기 위한 위대한 여행이었다. 왕자가 굳이 어렸던 까닭도 그의 사랑이 풋내나는..아직 무르익지 못한 사랑꾼에 불과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장치였을 것이다. 그래서 왕자의 사랑법은 그저 '유리벽'을 뒤집어 씌워서 장미를 보호하는 것이 전부였던 셈이다. 장미 역시, 그런 보호가 당연하다고 여길 정도로 작고 여린 '존재'였을 뿐으로 왕자의 사랑을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애송이'였던 것일테고 말이다. 그런 둘의 사랑, 다시 말해, 풋내기와 애송이의 사랑은 처음부터 완벽할 수 없었다.

 

  그래서 왕자는 떠났다. 풋내를 지우고 진정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 여러 행성을 떠돌며 멋진 어른들을 만나게 되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세상은 참으로 요상하기 짝이 없었다. 각자 아주 중요하고 멋진 일을 하며 한 평생을 살아가고 있지만, 어린 왕자의 눈으로 보아도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아 보이고, 멋져 보일리 만무한 일에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마지막 종착지로 지구에 도착한다. 지구에 도착해서도 여러 곳을 떠돌지만 '멋진 어른'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자기 일'에만 몰두하며 아무런 목적도 없이 쳇바퀴만 돌리며 바쁘게 살아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 사막 한복판에서 멋진 어른을 만났다. 그는 살기 위해서 고장난 비행기를 고치고 있는 '아주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 비행사였다. 그에게 다가간 어린 왕자는 여러 가지 부탁을 한다. 그러자 멋진 어른이었던 비행사는 어린 왕자의 맘에 쏙 드는 그림을 그려주며 멋진 어른임을 증명한다. 흡족한 어린 왕자는 자신이 겪었던 이야기를 떠들며 멋진 어른에게 '진짜 인생'을 배운다.

 

  하지만 비행사는 '생존'이라는 일을 완수해야 했기에 바빴고, 어린 왕자는 비행사가 바쁨 틈을 타서 다른 친구를 만났다. 바로 여우와 뱀 말이다. 어린 왕자는 여우와 뱀을 통해서 '진정한 우정'이 무엇인지, 그리고 '진짜 사랑'이 무언지 깨닫게 된다. 그렇게 어린 왕자는 삶의 목적을 깨닫고, 우정과 사랑이라는 가슴 찐한 감정을 제대로 배우고 나서야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한 대상이 소행성에 홀로 남겨둔 장미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왕자는 '선택'을 한다. 자신이 진심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으므로...

 

  내가 십대에 읽은 <어린 왕자>는 그저 그랬다. 심지어 책을 읽기 전에 '영화'로 먼저 만났었다. 그때 남은 인상은 '엄청 빠른 장면전환'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두서 없이 전개되는 책의 내용을 고스란히 연출한 감독의 재능이었을테지만, 십대의 내가 이해하기엔 너무 어지럽고 산만한 전개에 '무슨 내용'인지 이해할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가장 인상적인 내용이자 기억에 남는 내용은 바로 '여우와의 만남'이었다. 친구가 되기 위해 자신을 길들여야 하며, 오후 네 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자신은 두 시간 전부터 가슴 두근두근하는 설렘으로 기뻐질 거라는, 그런 사람이 진짜 친구라고 말하는 여우의 대사가 정말 인상 깊었다. 그래서 십대에 읽은 나의 <어린 왕자>는 우정에 관한 책이었다.

 

  논술수업을 위해 다시 읽은 책이며, 사십대에 다시 읽은 <어린 왕자>는 단연코 사랑에 관한 책이었다.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동적인 책이었다. 명작을 읽으면서 다시금 느끼는 것은 '10년 단위'로 반복해서 읽어봐야 한다는 깨달음이었다. 굳이 '10년'으로 기준을 삼은 까닭은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속담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한두 해가 지나서는 절대 알 수 없는 강산의 변화를 10년이라는 세월은 단박에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란 말이다. 어디 강산뿐이겠는가. 사람도 10년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변하기 마련이다. 그렇기에 '같은 책'이라도 우정으로 읽혔다가, 사랑으로 바뀐 것이 틀림없다.

 

  어쩌다보니, 책내용만 나열했는데, 같은 <어린 왕자>라도 '삽화'가 달라지니 그 느낌이 사뭇 달라졌다. 기존의 <어린 왕자>가 진중하고 진지하기만 했다면 '감성적인 그림체'로 바꾸어 읽으니 한결 가볍고 산뜻하게 느껴졌다. 또 하나는 그동안 '영어판 뒤침책'을 주로 접하다가 '불어판 뒤침책'을 새로 접하니, 읽는 맛도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지은이인 생텍쥐페리가 프랑스인인데 어쩌다 '영어판'을 먼저 읽게 된 것일까? 궁금했었는데, <어린 왕자>가 먼저 출판된 곳이 미국이었고, 미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난 뒤에야 비로소 프랑스에서 출판하게 되었다는 헤프닝 때문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런 까닭에 한국독자들도 '불어판'보다 '영어판'을 먼저 접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러나 뒤늦게나마 '불어판'을 읽어보니, 문장 하나하나가 더욱 감성적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프랑스어'에서 '영어', '영어'에서 '한국어'로 뒤쳐지게 되면서 '뜻만 전하는 뒤침(의역)'이 되었다면, '프랑스어'에서 '한국어'로 곧장 뒤쳐지니 비로소 '뜻과 감성이 온전히 전달되는 뒤침(완역)'이 된 듯 했다. 기회가 된다면 '영어판'과 '불어판'을 동시에 읽어보면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는 점을 직접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암튼, 예쁜 책으로 다시 만난 <어린 왕자>가 정말 사랑스럽게 다가왔다. 다시 10년 뒤에 만나면 또 어떤 느낌으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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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아리 - 누구나 겪지만 아무도 말할 수 없던 데이트 폭력의 기록
이아리 지음 / 시드앤피드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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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타까운 일이지만 '데이트 폭력'은 현재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가슴 아픈 일이다. 그것도 둘 만이 있는, 아무도 볼 수 없는 어두운 곳에서 힘쎈 가해자와 연약한 피해자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그 피해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데이트 폭력이 더 끔찍한 건 '가스라이팅'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저질러지기 때문이다. '가스라이팅'이란 심리적 학대의 한 유형으로 상황을 조작, 왜곡시켜서 피해자의 기억과 판단력을 의심하게 만드는 행위를 일컫는다. 이를 테면, "다 너를 위해서 그러는 거야", "널 사랑하는데 뭔들 못하겠니?"..라면서 폭력을 정당화하고 '길들이기'를 시행하며, 가해자가 원하는 대로 피해자가 바뀔 때까지 끊임없이 폭력과 협박, 억압, 강제, 수탈까지 서슴지 않기에 '데이트 폭력'은 피해자에게 지옥보다 더한 아픈 상처를 남기곤 한다. 그래서 '데이트 폭력'을 저지르는 가해자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사회적 합의가 절실하다.

 

  하지만 현실은 아무리 폭력적인 상황이 연출(?)되어도 흔한 연인들 간의 '사랑싸움'으로 치부되기에 가해자에게는 "여자가 맞을 만 했네"라며 별일 아닌 듯 폭력을 두둔하고 피해자에게는 "왜 안 헤어졌어요?"라면서 은근히 모자란 탓을 하며 '데이트 폭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해 있다. 심지어 피해자의 신고로 가해자가 '현행범'으로 체포된 상황이라 할지라도 조서를 작성하는 자리에 당사자인 두 남녀를 동석시켜 제대로 작성조차 할 수 없게 만들거나, 서로 떨어져 있다고 해도 피해자에게 가해자를 '선처'할 것인지, '고소'할 것인지, 그도 아니면 '합의'할 것인지 물으며, 울먹이며 벌벌 떨고 있는 피해자에게 '사건종결'을 서두르는 모양새를 취해 당혹스럽게 만들곤 한다. 더 큰 문제는 피해자가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가해자는 얼마 되지 않아 풀려나게 되고 피해자에게 '2차 폭력(스토킹, 살해협박, 살인 등)'을 저지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종종 뉴스를 장식(!)하곤 하는 것이다.

 

  이런 끔찍한 상황에 맞닥뜨리지 않기 위해, 이별할 의사를 명확하게 밝히고, 가족과 친구, 지인들에게도 이러한 상황을 분명히 알림과 동시에, 직장이나 이웃에게도 정확한 정보를 알려서 충분한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더 중요한 것은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기 전에 분명히 하는 것이고, '데이트 폭력' 발생 후라면 경찰 등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안전을 충분히 확보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귀가 시간에 경찰동행을 신청하는 등 가해자와 완벽한 차단을 하는 것이 보다 안전할 것이다.

 

  허나, 연인 사이였다는 것이 종종 발목을 잡아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완벽하게 격리시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 '데이트 폭력'의 가장 큰 문제점이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의 한계가 드러나는 점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가해자는 피해자의 연락처는 물론이고, 집주소도 알고 있으며, 심지어 '현관 비밀번호'까지 알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기다 요즘엔 SNS가 활발한 탓에 오프라인 뿐만 아니라 온라인 상에서도 스토킹이 얼마든지 가능하며, 피해자에 대한 악의적인 거짓까지 서슴지 않고 퍼뜨릴 수 있기에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는 가해자와 헤어진 뒤에도 불안에 떨며, 악몽도 꾸는 등 심리적 장애를 겪기도 하며, 심하면 자살까지 하게 되는 등 그 심각성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정도다.

 

  <다 이아리>는 실제 '데이트 폭력의 경험'을 웹툰 형식으로 낱낱이 밝혀낸 책이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서 '데이트 폭력'의 끔찍함과 심각성을 직접 경험한 듯 생생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해결책은 난감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가해자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도 거의 없고, 일단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기 전까진 가해자를 처벌할 수 있는 방법조차 없기 때문이다.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더라도 고작해야 '접근금지명령'과 같은 유약한 처벌이 대부분이고, 가해자를 '사회적 격리'시킬 수 있는 뾰족한 방법이 없는 탓에 가해자의 보복에 노출될 위험을 막기 위한 노력은 전적으로 피해자에게 맡겨 놓는 소극적인 대책 밖에 없는 형편이다.

 

  이렇게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나 피해자를 보호할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이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우리 사회구성원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데이트 폭력 가해자에 대한 인식'이 달라져야만 할 것이다. 어떠한 경우에도 '폭력'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야 '사랑싸움'이라는 미명으로 가해자를 두둔하고 피해자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억울한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 가장 큰 까닭은 "당신도 얼마든지 데이트 폭력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 평생을 모태솔로로 살 작정이 아니라면 누구나 사랑에 빠지고 데이트를 하는 연인이 될 것이다. 그런데 사랑하는 그 연인이 한순간에 '폭력'을 일삼는 또라이라면 얼마나 끔찍할 것인가 말이다. 더 끔찍한 것은 폭력을 방조하며 '남일'로 치부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었을 때, 도움조차 청할 수 없는 피해자가 되어 버린다면 어쩔 것인가 말이다. 이는 매맞는 아내/남편이 발생하는 부부싸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부부 사이는 '이혼'을 통해서 법적인 보호라도 받을 수 있지만, '연인 사이'에는 법적인 보호는커녕 보상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에 더욱더 보호하고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

 

  연애하는 것조차 '법의 울타리'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한다는 것이 웃긴 일이라면, 폭력을 저지르는 비이성적이고, 비상식적인 점에 주목해야 한다. 폭력이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비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폭력의 심각성을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더구나 연인 사이는 겉으로 드러난 부분보다 감춰진 부분이 더 많기 때문에 일단 '폭력'이 눈에 띄게 보인다면 분명 '빙산의 일각'일 가능성이 더 크다. 그렇기에 '데이트 폭력의 가해자'는 피해자의 하나 뿐인 목숨마저 좌지우지하는 무소불위의 '우위'를 선점하고서 폭력을 자행하는 일이 태반인 것이다. 그렇다면 '데이트 폭력'을 단 한 번이라도 저지르면 사회적 매장을 시켜도 좋을 엄벌이 필요할 것이다. 적어도 가해자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저지르는 행위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고, 두 번 다시 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때까지 '완벽한 사회적 격리'가 필요하단 말이다.

 

  너무 무거운 형벌이라고 생각하는가? 성폭력과 성추행과 같은 비인간적인 짓을 하고서도 뻔뻔스럽게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는 상상을 해보라. 당신의 옆자리에 '가면'을 쓰고 정상인처럼 행동하는 성범죄자가 함께 하고 있다고 상상을 해보란 말이다. 그들도 '인간'이니 '인권'을 보장받아 마땅하겠지만, 한순간에 '인간'이길 포기하는 그 짐승들이 우리 사회 속에 자유롭게 나다니게 만들고서 어찌 안심하며 살 수 있겠느냔 말이다. 심지어 인간의 탈을 쓴 '짐승'인지도 모르고 사랑에 빠져서 스스로 피해자인 줄도 모르고 '길들여져' 버리는 끔찍한 상황을 난, 감히 상상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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