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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익스피어 5대 희극
윌리엄 셰익스피어 지음, 셰익스피어 연구회 옮김 / 아름다운날 / 2019년 7월
평점 :
작년에 셰익스피어를 읽겠노라고 다짐해놓고서 미적거리다가 이제사 다시 책을 들었다. 그간 여러 모로 사정이 있긴 했지만 그조차 구구절절 변명일 것 같아 길게 하지 않으련다. 당장은 어머님 병간호로 인한 백수 신세를 면하고, 다시금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겠기에 리뷰에 소홀할 지도 모르겠으나, 책은 늘 내 곁에 있을 것이기에 리뷰도 끊이지 않고 써나갈 것이다. 어쨌든 '다시, 셰익스피어'다.
셰익스피어의 5대 희극은 <베니스의 상인>, <말괄량이 길들이기>, <한여름 밤의 꿈>, <뜻대로 하세요>, <십이야>다. 4대 비극과 함께 '상식문제'로 곧잘 나오는 것이니 알아두면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뿐일 뿐이고, 우리가 기대하는 '희극'에 걸맞는 명성을 갖춘 작품이냐고 되묻는다면, 글쎄요..라는 답변이 나올 것이다. 직접 읽어보면 그다지 웃기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나마 <베니스의 상인>은 골탕을 먹는 '악당 샤일록'이 자신의 욕심 때문에 전재산을 잃어버리는 통쾌한 내용이 담겨 있기에 '희극'으로 손색이 없다. 하지만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선 기 쎈 여자를 남자들에게 고분고분하게 만들어서 지역사회를 평안하게 만들었다는 웃지 못한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요즘 독자들을 웃기지 못하게 할 것이며, <한여름 밤의 꿈>에서는 신들의 장난에 의해 어긋나 버린 사랑이야기로 감동적인 이야기로 다가오지만, 희극적인 요소를 띤 '요정의 장난'이 오늘날의 독자에게 그다지 호평을 받지 못할 듯 싶다. 왜냐면 셰익스피어 희극의 장점은 바로 '익살스런 대사'에 있는데, 아주 오래 전에 유행했을 법한 익살과 재담이 요즘 독자들에겐 식상하게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뜻대로 하세요>에서는 로잘린과 올란도의 절절한 사랑이야기가 끝내 해피엔딩으로 끝맺고, <십이야>에서는 세바스찬과 바이올라라는 일란성 쌍둥이 남매가 우여곡절 끝에 각자의 사랑과 맺어지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전해준다.
이처럼 셰익스피어의 희극은 배꼽 잡을 정도로 웃긴 작품이 아니다. 그의 비극이 모두가 파멸로 끝을 맺는 '새드엔딩'이라면, 그의 희극은 몇몇 악당을 제외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 된다는 점에서 '희극'이라 일컫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의 희극인들이 시청자들에게 '웃음'을 전하기 위해서 피땀눈물, 그리고 고생을 아끼지 않는 것을 생각하며 <5대 희극>을 접하게 되면 실망이 이만저만 아닐 것이다. 그보다는 가슴 한켠이 따뜻해지는 감동적인 서사를 음미하면서 읽게 된다면 '해피엔딩'이 될 수밖에 없는 '반전없는 매력'에 푹 빠져 감상한다면 더욱 맛깔나게 되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하지만 <베니스 상인>을 빼고는 '수동적인 여인의 모습'을 당연하다 여기고, 심지어 <말괄량이 길들이기>에서는 남편의 말에 고분고분 따르지 않으면 맞아도 싸고, 굶어 죽어도 마땅하다고 말하고 있다. 희극속에서 카타리나는 여인들을 모아놓고 남편에게 순종하는 삶이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지 설교하며 마무리하고 있는 장면에선 기겁을 할 지경이었다. 과연 누구를 위한 순종이란 말인가? 차라리 천방지축에다 안하무인으로 살던 모습이 더 아름다워 보이는데 말이다. 나머지 작품에선 모두 '남자'에게 사랑을 받지 못해 속만 끓이다 '남자'가 겨우 사랑을 알아보고 '알은 채'를 한 뒤에야 행복해진다는 결말을 말하고 있어서 안타까움을 자아 냈다. 여자가 먼저 사랑고백을 하면, 아니 '내 사랑'을 쟁취하는 적극성을 보이면 '여자답지' 못한 것일까?
딴에는 <베니스의 상인>을 비판적으로 읽으며 '유대인'을 모욕하는 것에 관심을 쏟기 일쑤인데, <5대 희극>을 나란히 놓고 보면, 아름답고 사랑스러우며 지혜롭기까지 한 포셔의 등장이 단연 돋보여서 가장 희극다운 희극으로 보일지경이다. 앞서 <햄릿>을 소개할 때도 셰익스피어의 여성관이 부정적이라며 비판을 했었는데, <5대 희극>에서는 더욱더 부정적이라서 놀랐다. 이런 작품을 두고, 여전히 '명작'이라 불러야만 한단 말인가 하고 말이다.
물론, 셰익스피어를 '여성관' 하나만 가지고 평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대문호가 전하는 감동적인 메시지를 보지 않고 '당근만 골라내는' 편식쟁이 어린 아이처럼 투정을 부리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위대함과는 별도로 오늘날의 가치관과 사뭇 다른 점이 있다면, 지적해야 마땅할 것이다. 우리가 <고전>을 다루면서 당시의 '시대적 한계'를 지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문호의 명성 앞에서도 당당히 꾸짖는 능동적인 독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저 남들이 평가해놓은 '잣대'에만 길들여져서 스스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을 세우지 못한다면 아무리 훌륭한 명작을 읽는다고 해도 아무 짝에 쓸모 없는 시간낭비가 되고 말 것이다. 그럴 바에야 공들여 책을 읽는 수고는 무엇하러 하느냔 말이다. 그저 남들이 평가해놓은 얄팍한 '지침서'만 읽어도 충분할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