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 - 새로운 세상을 꿈꾼 25명의 20세기 한국사
강부원 지음 / 믹스커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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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위인을 얼마나 공정하게 평가하고 있을까? 친일 논란이 많은 위인(?)들이 아직까지도 떠받들 듯 칭송되고 있는 반면에 이름 하나 남기지 못하고 애국애족하던 수많은 열사와 의사 들은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역사에서 지워진 채, 우리 기억에서조차 잊혀져 버렸기 때문이다. 한편, 수많은 위인들을 공정하게 평가내리지 못하는 원인을 꼼꼼히 볼작시면, 기득권 세력의 정치적 판단에 의해 날조되고 '경제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아전인수격으로 왜곡되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또한 이것이 대한민국 주류언론에서 벌이고 있는 꼼수라는 점에서 심각성을 느낄 수 있고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 위인들의 평가를 다시 내릴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대한민국 103년'이라는 시점에 말이다.

 

  그럼 우리가 재평가해야할 위인들은 어떤 분들일까? 무엇보다 '여성위인'에 대한 폄하를 걷어내야 한다. 전근대 뿐 아니라 근현대사에서도 '여성의 역할'은 남자들을 보필하는 것으로 한정하며, 좋게 말해서 '내조'라고 일컬으며 남자들이 양지에서 활동할 때 여성위인들은 음지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이 최선이라는 시대적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위인의 평가는 '남녀의 차이'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폭넓은 관점에서 평가를 내려야할 것이다. 일제시대에 나라 잃은 슬픔이 '남자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3·1만세혁명 당시에 '독립만세'를 목놓아 부르고 외쳤던 이들은 '우리 민족' 전부였고, 일제 치하 한민족의 설움을 느껴 손에손에 태극기를 흔들며 울분을 쏟아내고 자주독립이라는 열망을 꿈꿨던 이들도 '우리 민족' 전체였다. 그런데도 독립운동을 했던 위인들은 대다수 '남자'만을 기리고 '여성'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을 뿐더러, 유관순이라는 이름 이외에는 거의 알려진 바가 없을 정도다.

 

  또한, 재평가의 기준을 바로 세우는 일도 시급하다. 유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라 한국전쟁 당시의 영웅들을 추켜세우는 일이 많다. 그 가운데 가장 논란이 되는 분이 바로 '백선엽 장군'이다. 그분의 업적을 꼽으라면 너무나도 많아서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웅 중에 영웅이라고 치켜세우지만, 그가 '일본군 장교' 출신으로 독립운동가들을 숱하게 잡아다 가두고 죽인 장본인이라는 사실까지 감추지는 못한다. 우리는 이렇듯 시대적 아픔을 겪고 격동의 시절을 지내며 무엇이 더 중요한 것인지 제대로 가늠하지 못한 채 지내왔다. 당장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것이 최우선인 시절에는 '일제의 수탈'보다 '북괴군의 만행'이 더 끔찍했을 지는 몰라도, 민족적 관점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 평가를 하자면, 외적의 침입으로 인한 상처가 우리 민족 내부의 분란으로 벌어진 상처보다 더 치욕스럽게 생각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리 본다면, 친일의 과오를 반공의 위업으로 덮어버리고도 남는 우리 현실은 이상하게 여겨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논리를 앞장 세워서 과거에 대한 잘못조차 사과하지 않는 일본을 너그럽게 용서하자면서도, 북한은 같은 민족인데도 사상과 이념이 다르기 때문에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논리를 펴고 있으니, 우리의 소원인 통일은 북한과 하는 것보다 일본과 하는 것이 더 빠를 것 같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마지막으로 바로 잡아야 할 시급한 문제는 이러한 '잘못된 기준'을 고정사실로 못박아놓고 '고정불변의 진리'인 것 마냥 퍼뜨리고 있는 주류언론의 행태다. 언론은 '여론형성'이라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도맡아 하고 있으면서도, 그에 따른 막중한 책임감이나 사명감을 망각해버린 듯한 행태를 자행하고 있는 것이 매우 안타깝다. 우리는 제국주의 열강들의 피해국인데도 제대로 된 사과와 배상을 받기는커녕 '가해국 일본'을 대신해서 남북으로 분단이 되어 버린 어처구니 없는 결과를 낳고 말았다. 이는 '미소냉전'이라는 강대국의 논리로 귀결된 잘못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선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강대국이라는 자명한 사실을 전세계적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자국이기주의'가 팽배해진 마당에 강대국들이 잡고 있는 '유리한 상황'에 잘잘못을 따져 바로 잡기 위해선 필수불가결한 조건인 셈이다.

 

  이러한 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는 '주류언론'이라면, 대한민국이 세계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선 지금이 '과거의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것을 온 국민에게 알리며 선진국에 걸맞는 시민의식을 키우는 '바른 언론'으로 활동해야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주류언론이 저지르는 행태는 대한민국은 여전히 주변의 강대국에 둘러싸여 이리저리 흔들릴 수밖에 없는 줏대없는 약소국에 불과하다는 듯, 일본에게 사과를 요구하기보다는 '미래지향적'으로 경제발전의 파트너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며, 혈맹으로 맺어진 미국에게는 최대한 낮은 자세로 임하며 미국의 요구는 '어떠한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마땅히 추진해야 한다고..그리 하지 않으면, 쬐끄만 북한에게 집어삼겨질 것이라며 불안감을 조성하기에 급급하다. 더구나 옆나라 중국에 대해선 대한민국의 이익을 생각지도 않고 할말 못할말을 다 지껄이면서도 경제적인 이득을 위해선 '종속'해야 이득이라는 논리를 펴며 중국의 해괴망측한 온갖 짓거리(동북공정, 한한령, 중국꺼라 우기기 등)에는 그저 수수방관만 일삼고 있다. 이런 엉터리 언론이 제대로 된 위인들의 평가에 소홀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를 정도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야 위인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인식을 바로 잡아야 한다. 선진국에 걸맞는 대한민국 시민의 이름으로 평가를 내리기 위해 무엇이 올바른 판단인지 고심해야만 한다. 가장 바람직한 판단은 '평화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인식이 선결되어야 한다. 분란이 생겨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을 막무가내로 공격하고 흠집을 내며, 그도 모자라서 '너 죽고 나 살자'는 식으로 대처방안을 내는 저급한 말과 행동은 일절 금해야 한다. 이미 대한민국은 선진국이다. 그러므로 '세계시민'이라는 큰 안목으로 인류공영의 이상향을 내세워 '우리 문제'도 해결해야 마땅하다. 더구나 과거의 잘못된 이념갈등과 사상검증이라는 낡은 가치관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지나간 잘못은 '철저한 사과와 반성'을 거쳐 '관용과 포용'이라는 수순을 밟아야 한다. 또한 폭력에 관해서는 냉철한 처벌을 내리고, 그 처벌을 달게 받은 이에 대해선 관대한 용서로 다시금 보듬어주어야 할 것이다.

 

  이런 기준으로 우리 근현대사의 위인들을 평가내린다면, 이 책에 언급된 '25명의 위인'이 제대로 보이게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독립'이라는 공통의 목표를 위해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배운 리더들이 저마다 꿈꾼 '아름답고 멋진 나라'로 거듭나기 위해 다양한 노선으로 독립운동을 펼쳤다. 그런 과정에서 각각의 노선 사이에 시기와 반목이 이루어지기도 했고, 분열적 사고방식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다다라서는 '좌우합작'을 통해 큰 업적을 남기기도 했다. 그런 까닭에 우리 독립운동가 중에는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계열'의 위인들이 상당수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해방 이후에 남북으로 갈라지는 아픔의 시절을 겪은 탓에 이들에 대한 평가가 소홀해지고 말았다.

 

  더구나 여성 위인들은 남자들에 가려져서 그 빛을 밝히지도 못하고 사그라 든 경우가 허다하다. 그들도 하나 뿐인 목숨을 아끼지 않고 자기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했으며, 때로는 남자들도 감히 할 수 없는 업적을 당연한 일을 한 것이라며 당당하게 해낸 훌륭한 분들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독립운동을 하던 남편이 일제에 의해 죽임을 당해 유복자를 키우며 온갖 힘든 일을 하던 남자현 의사는 수많은 독립운동가를 길러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일본 총독을 암살하려 앞장 서기도 했다. 이를 모티브로 삼아 만든 영화가 전지현 주연의 영화 <밀정>이다. 그에 그치지 않고 스스로 손가락을 잘라 '조선독립'을 바란다는 혈서를 작성해서 세계열강에게 호소하면서 '조국의 독립을 생각하면 손가락은 아깝지 않다'는 굳은 의지를 보여준 여성 위인이다. 이런 위인을 수많은 이들이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왜냐면 기득권 세력의 논리에 따라 엉터리 여론을 형성하기에 급급한 '주류언론'의 방만한 태도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언론인은 '국민의 알 권리'를 실천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인데, 대한민국의 주류언론은 당연한 '그 권리'를 기득권과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만 활용하는 '선별적 알 권리'를 내세운 결과라고 생각한다. 심지어 진실을 알리기보다는 '저들의 세계관'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편협한 폄하와 왜곡까지도 일삼곤 했다. 조선노동자의 고통과 설움을 알기에 하나 뿐인 목숨도 아끼지 않고 평양 을밀대 지붕에 올라 단식농성을 벌였던 강주룡 열사를 알고 있는가? 또, 일패 기생으로 유명세를 떨친 정칠성 열사는 3·1만세혁명을 계기로 투철한 독립의 의지를 불태웠고, 독립을 위해서 한 몸을 아끼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독립운동가로 삶을 마쳤다. 그런데도 그들에 대한 평가는 '암탉이 울면 나라가 망한다'면서 지붕 위에 올라간 상황에는 관심조차 없고, 그가 청상과부의 몸으로 살았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출 뿐이다. 또한, 천한 기생 주제에 성스런 독립운동에 가담하다니 독립운동가들에게 오점을 남길 뿐이라는 논조로 깎아내리기 급급할 뿐이다. 일제 시대에는 말할 것도 없이 해방 이후의 언론들도 비슷한 논리로 여성 위인을 발굴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어디 이뿐인가. 조선독립운동의 트로이카로 불렸던 주세죽, 허명숙, 고명자는 사회주의 계열의 공산당이자 해방 이후에는 월북해서 숙청 당했다는 이유로 그들을 알릴 이유조차 찾지 않고 말았다. 같이 활동했던 박헌영의 활약은 생생하게 알려진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이처럼 우리는 아직도 대접받아 마땅한 위인들을 재평가하고 재발견하는 일에 소홀하다. 물론 나도 이 책을 접하기 전까지 몰랐던 위인들이 수두룩했다. 그렇기에 지금이라도 제대로 평가받길 바라는 것이다. 이 책 <역사에 불꽃처럼 맞선 자들>은 자신의 뜻대로 살면서도 자신보다 모두를 위해 아낌없이 희생한 이들을 알리기 위해서 펴낸 책이다. 한 사람이 태어나서 '자신의 뜻'대로 살기도 힘든데, 그 뜻이 개인적인 이득보다는 우리 모두의 이득을 위해 뜻을 펼쳤다면 존경받아 마땅할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의 업적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까닭은 앞서 말한 '잘못된 기준' 때문일 것이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아름다운 대한민국이 지금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 늦지 않게 제대로 평가받아 마땅한 위인들을 널리 알리는 길은 다름 아니라 바로 독자들이 먼저 알아보는 방법이다. 더 많은 독자들이 위인을 알아보고 제대로 평가해주길 바랄 뿐이다.

 

책드니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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