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피니티 - 만화로 배우는 우주와 블랙홀의 비밀 한빛비즈 교양툰 17
로랑 셰페르 지음, 이정은 옮김, 과포화된 과학드립 물리학 연구회 감수 / 한빛비즈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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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한호텔에 대한 이야기를 아는가? 이 호텔엔 룸이 '무한 개'나 있어서 무한호텔이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상식적으로 이 호텔에 투숙할 수 있는 손님은 몇 명이겠는가? 답은 '무한 명'이다. 셀 수도 없이 많은 손님을 투숙할 수 있고, 룸도 무한히 많다. 그런데 말이다. 이 호텔에 '새로운 투숙객'이 찾아와서 빈 방을 달라고 하면 언제든 받을 수 있을까? 무한 개의 룸에 무한 명의 투숙객이 있다고 가정한다면 말이다. 수학적으로는 [∞+∞=∞]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능할 것이다. 그런데 물리적으로 방은 끝없이 이어지기 때문에 차례대로 무한 명의 손님을 받고 순서대로 1번방부터 키를 배급해준다고 하면 '무한 번째 방'은 걷고 또 걷고 빛의 속도로 달려가도 '무한 번째 방'에 도달할 수 없기 때문에 '불가능해' 보인다. 그렇다면 무한호텔에서는 어떻게 매번 새로운 투숙객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정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1=∞]이기 때문에 1번방의 손님에게는 2번방으로 옮기라고 방송을 하고, 2번방의 손님에겐 3번방으로 옮기라고 하는 식으로, 'n번방의 손님에게 (n+1)번방으로 옮기라'는 방송을 하면서 '새로운 손님'에게는 늘 1번방으로 안내하면 된다. 이것이 바로 '무한호텔의 영업비밀'이다. 이제 머리속에서 대충이나마 '무한에 대한 개념'을 잡으셨다면, 이 책을 읽어도 무방할 것이다.


  이 책은 크게 '우주의 무한'과 '양자의 무한'에 대한 상상실험을 주요 내용으로 전개하고 있다. 끝없이 펼쳐진 우주와 꼭 닮은 세계가 바로 무한히 작은 양자(미립자)의 세계라는 명백한 사실을 두고 펼쳐내는 '현대물리학의 최전선'을 소개하고 있다는 얘기다. '최전선'이라고 하니까 살벌하고 잔혹한 전장을 떠올리는 분들도 계실테지만, 뭐 틀린 말은 아니다. 무한의 개념으로 바라본 우주와 양자의 세계는 생각하기에 따라서 '극한의 환경'과 다를 것이 없기 때문이다. 먼저, 우주부터 바라보자.


  우주라고 해서 광활한 우주공간을 떠올릴 필요는 없다. 우주를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이해'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바로 '시공간의 개념'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인데, 음...쉽게 설명하면, '공간'속을 빠르게 이동하면 '시간'은 느려지고, 반대로 '공간'속을 느리게 이동하면 '상대적'으로 시간은 빨라진다는 것이 '상대성이론의 핵심'이당. 더 쉽게 설명하면, 빛의 속도에서 '시간'은 멈추게 된다는 상식만 이해하면 된다. 그 반대로 정지된 속도에서 '시간'은 무한히 빨라지게 되고 말이다. 인간이 항성간 우주여행이 가능해진다면 이를 극명하게 증명할 수 있을텐데, 한마디로 빛의 속도에 가깝게 비행하는 우주선 안에 있는 우주인의 시간과 지구에 남겨진 가족의 시간은 다르게 흐르고, 우주여행을 마치고 지구로 돌아왔을 때 우주인의 시간이 '하루'가 지났다면 지구에 남겨진 가족에게는 '수백 년'이 흘러갔을 거라는 얘기다. 이렇게 공간을 지나는 속도가 달라지면 시간도 다르게 흐른다는 과학적 사실이 현대물리학에서는 명백하게 사실로 밝혀졌단다.


  그렇다면 이런 '상대성이론'이 지구 안에서도 통용이 될까? 물론이다. 걸어서 출근하는 사람보다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는 사람이 '시간'을 덜 소비하여 젊음을 유지할 수 있다. 굳이 따지자면 '0.1 나노초'만큼 젊다. 느리게 걷는 것보다 한 걸음이라도 빠르게 다니는 사람이 더욱 오래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되는 셈이다. 남들보다 하루에 만 보를 더 빠르게 걷는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0.000001초'만큼 젊어지는 셈이니 매일 만보를 빠르게 걷는 사람이 80년을 산다고 했을 때, 그러지 않은 사람보다 무려 0.0292초만큼 젊게 사는 셈이다. 한마디로 별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상대성이론'은 정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셈이다.


  따라서 시간은 누구에게나 '다르게' 흐르지만 지구안에 사는 사람은 마치 '동시간대'에 사는 것처럼 느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우주로 나가면 다르다. 가장 빠른 빛의 속도(초속 30만킬로미터)로도 1년이 걸리는 '광년 단위'로 세는 우주에서 시간은 현저히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에서 관측하는 여러 곳의 우주는 마치 '서로 다른 시간'이 흐르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 있으면 큰 차이를 못느낀다. 마치 KTX를 바깥에서 바라본 사람은 KTX가 엄청나게 빠르게 지나가는 것을 보지만, KTX 안에 있는 승객은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 반대로 '양자의 세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주에서 벌어지는 무한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원자'를 하나하나 분리해서 보면, 양성자와 중성자, 그리고 전자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몸 뿐만 아니라 세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물질이 그렇다. 맨눈으로는 '볼 수 없는 작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놀라운 광경은 이렇듯 '미립자'들로 이루어진 세계가 펼쳐진다. 그 작은 세상은 놀랍게도 '텅텅 빈 공간'이 펼쳐진다. 하나의 원자를 구성하고 있는 핵(양성자+중성자)과 전자 사이가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원자를 '축구장'만하게 확대를 하면, 축구장 한 가운데 '골프공'을 놓고 '원자핵'이라고 가상을 한다면 먼지보다 작은 전자가 축구장의 나머지 공간을 구름처럼 돌아다닌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렇게나 텅빈 공간을 가지고 있는 '원자'들이 모여서 우리 몸과 모든 물질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저마다 서로 다른 성질을 띠고 있을까? 그건 원자속의 양성자가 전자를 하나를 얻거나 잃을 때마다 '전기(전자기) 현상'이 일어나기 때문이고, 그 전기적 반발력이 저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원자마다 '다른 특성'을 띠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나 상대적으로 넓고 '텅빈 공간'을 갖고 있음에도 탁자 위에 놓인 물컵이 스르륵 통과해서 떨어지지 않고, 물컵 안의 물이 물컵 아래로 흘러나가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전기현상' 때문이다.


  그렇게나 '작은 세상'을 이루고 있는 미립자의 세계에서 '무한'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건 '진공(공간)'이 펼쳐내는 마법을 관람할 수 있다. 원자(미립자)라고 하는 그 작은 공간에 엄청나게 큰 '텅빈 공간'이 있고, 그 '텅빈 공간'에서 '진공의 마법'이 펼쳐진다고 상상을 해보잔 말이다. 상상이 가는가?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보통 '진공'이라고 표현할 때는 '아무 것도 없는 공간상태'를 말하지만, 미립자 안의 진공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무엇'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다.


  이쯤해서 다시 우주로 돌아가보자. 우리는 우주에 대해서 얼마만큼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놀랍게도 별과 별 사이도 '텅텅 빈 공간'으로 꽉 차있다. 태양계 항성에서 가장 가까운 항성이 약 4광년 떨어져 있고, 태양이 속한 우리 은하와 가장 가까운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250만 광년 떨어져 있다. 그럼 그 사이에는 무엇이 있을까? 놀랍게도 아무 것도 없다. '텅텅 빈 공간'이란 말이다. 그런데 그 텅텅 빈 공간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무언지도 모르지만 분명 뭔가가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그 뭔가를 일으키는 물질을 우리는 '암흑물질'이라고 부른다. 응큼하고 음흉한 무엇이라서가 아니라 '아무 것도 모르기' 때문에 암흑이라 부르는 것이다.


  다시 미립자의 세계에서도 똑같이 '진공' 상태에서 뭔가가 일어난다. 이것을 현대물리학자 가운데 천재라고 불리는 '리처드 파인만'이 '가상입자'를 통해서 진공의 비밀을 밝혀냈고, 그 비밀 덕분에 우리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현상이 '진공에서 발생하는 요동'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물론, 관측할 수조차 없는 그 요동을 '무한의 개념'으로 이해한다면 말이다.


  이처럼 현대물리학의 핵심은 '말이 안 되는 일'을 증명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속에서 무언가 일어나고 있음을 밝혀내는 것에 있다. 그래서 불편한 진실이지만 우리는 '무한'이라는 개념과 좀 더 친숙해질 수밖에 없다. 알아도 알 수 없고 알려해도 좀처럼 알 수 없는 '인피니티(무한)'를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도 해야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 더 생생하게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궁금하긴 할 것이다. 새로 산 최신 스마트폰에 탑재된 '최신기능'이 있기는 한지 말이다. 굳이 몰라도 쓰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고, 신기능을 이해하려고 애를 쓸수록 복잡해서 쓰고 싶어지지 않게 되는 것이 바로 '인피니티(무한)' 때문이다. 현대물리학의 최신기술의 집합체인 스마트폰이 우리 손에 들려 있지만 그 '암흑'과도 같은 메뉴얼을 뒤적이며 일일이 찾아보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점점 두꺼워지던 그 메뉴얼이 요즘엔 사라졌다. 대신 스마트폰 속 어딘가에 탑재되어 있다.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미립자'처럼 말이다. 어떤가 '무한(인피니티)'에 조금이나마 관심이 생겼는가? 그렇다면 이제 이 책을 읽을 준비가 다 된 셈이다. 재미나게 읽으시길 바란다. 분명 재밌다. 그것도 엄청나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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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스 베이더 긴즈버그의 정의를 향한 여정 - RBG가 되기까지 북극곰 그래픽노블 시리즈 6
데비 레비 지음, 휘트니 가드너 그림, 지민 옮김 / 북극곰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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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역사를 논할 때, 내가 늘 빼놓지 않는 것이 있다. 아메리카 원주민(인디언) 학살, 유색인(흑인) 인종차별, 그리고 남녀 불평등, 세 가지다. 지금의 초강대국 미국이 있기까지 미국이 공공연하게 감추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흑역사'가 바로 이 세 가지에서 비롯되고 있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어쩌라고?" 라는 태도로 견지하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은커녕 '불편한 문제'인 것은 분명하지만 해결하지 않아도 별 문제는 없어. 괜히 들쑤셔서 큰일 만들지 말고 그냥 알아서 적응해. 그게 미국사회니까...이런 느낌을 받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물론 개인적인 의견일 뿐이다. 그러나 나는 강력하게 규탄하려 한다. 그런 '차별'이 존재하는 한 미국은 절대로 '아름다운 나라(美國)'일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미국사회에서 'RBG'는 여성인권 신장을 위해 한 평생을 다 바친 위인이며, 미국사회가 존경해마지않는 '여성 대법관'으로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비단 '여성인권' 뿐만 아니라 모두가 평등하고 존중받아 마땅한 사회가 정당하고 당연하다고 여긴 까닭에 미국사회에서 '소외'받아 불공정한 판결을 받은 소수자를 위해 힘쓴 법조인이었다. 지금도 '소수자의 인권'이 희생을 강요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는 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거의 모든 법조인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고 한다. 그녀의 이름이 바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바로 줄여서 RBG다.


  그녀는 미국계 유대인으로 유대인 부모 밑에서 착실하고 선량한 유대인으로 성장하였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일어나고 미국사회에서조차 '유대인'이라는 꼬리표로 '차별'을 받기 시작하면서 사회정의란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전쟁이 끝난 뒤에도 차별은 멈추지 않았다. 루스가 성장을 하면서 '유대식 예배'에 '여자'라는 이유로 예배에 배제되는 일도 겪고, 대학생일 때나 변호사로 활동할 당시에도 여자인 까닭에 '도서관 출입'조차 거부 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몸소 겪으면서, 루스가 한 평생 가야 할 길이 어디인지 분명히 깨닫게 된 셈이다.


  그녀는 '여자'였지만, 우수한 성적으로 '아이비리그 대학의 법학과'를 합격했고, 역시나 졸업생 가운데 가장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는 영광을 쟁취(!)했다. 그러나 '여자'라는 이유로 취업에서 배제되기 일쑤였다. 당연히 경력을 쌓기 힘들었고, 남성 법조인과의 경쟁에서도 밀려나기 일쑤였다. 더구나 여성으로서 '결혼'과 '출산', '육아'는 당연하고 아름다운 권리였지만, 그 권리를 누리기 위해서는 '모든 커리어'를 포기하고 한 남자와 아이들의 '전업주부'로 전락해야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루스는 그런 사회적 편견에 일침을 가하면서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고 난 뒤에도 남성 경쟁자들보다 월등한 실력을 뽐내며 탁월한 법조인으로 성큼성큼 성장하였다. 그리고 온갖 차별을 감내해야만 한다고 사회에서 내몰린 '소수자의 인권'을 위한 변호에 늘 앞장을 섰으며, 특히 '남녀평등'을 내세운 법안을 제출해 승인을 따내는 등 빛나는 업적을 남긴 전설적인 위인이기도 하다.


  그녀는 '남녀차별'을 당연시 여기는 사람들을 향해 당당히 외쳤다. "나는 가녀린 여성들을 동정해 달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목을 밟고 있는 당신들의 더러운 발을 치워 달라고 말하는 겁니다" 정말 멋진 말이다. 남녀평등은 힘 없는 여성을 불쌍히 여겨 도와달라는 외침이 아니다. 남성과 마찬가지로 여성도 당당히 '경쟁파트너'로 실력을 뽐낼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주장이다. 이토록 감동적이고 정중한 호소를 묵살할 용감하고 무식한 남성이 있다면 우리 사회에서 매장을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다. 아니, 반드시 매장을 시켜야 아름답고 멋진 사회가 될 것이다. 정의는 이럴 때 딱 어울리는 말이니까 말이다.


  물론, 루스가 여성법조인으로, 그리고 훌륭한 엄마로 활약할 수 있었던 것은 '동료 법조인'이면서 루스를 대신해서 '가사와 육아'를 톡톡히 도와준 남편의 도움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는 잘난 여성의 성공을 위해 '남편의 내조'를 강조하기 위한 말이 아니다. 집안일과 육아, 그밖의 결혼으로 발생하는 모든 일은 당사인 남편과 아내가 '공동'으로 분담하는 것이 맞다는 얘기다. 남자가 할 일, 여자가 할 일이 따로 없기에 '함께' 해야 마땅하다는 것이다. 현대사회는 '계급'과 '차등'을 당연시하던 하던 전근대사회가 아니기에 반드시 명심해야 할 부분이다. 부득이 집안일과 육아 등의 일을 남편과 아내 둘 중 '한 사람'이 전담하게 된다면 굉장히 미안해 해야 마땅하다. 그렇지 않다면 '이혼'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집안일과 육아는 인류가 반드시 해야 할 '노동의 고통' 가운데 가장 극악의 난이도를 자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 사람의 위인'이 탄생하기까지 주변에서 도와준 많은 분들의 노고도 함께 조명해야 마땅하다고 본다. 가족의 희생 없이 위인은 탄생할 수 없다. 천애 고아라 할지라도 '당당한 어른'으로 자라기까지 영향을 준 사람이 수도 없이 많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이 여느 위인전과는 다르게 '루스의 주변 사람들'을 깊이 조명한 것도 그래서 대단히 인상적일 수밖에 없었다. 루스의 부모님을 비롯해서 루스의 남편과 자녀, 그리고 학창시절 교수님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동료 법조인들의 헌신 없이는 'RBG의 위대한 업적'도 없었다고 단언할 수 있겠다. 유명 연예인의 수상 소감 가운데 "다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 하나 얹었을 뿐"이라는 말이 많은 사람들에게 회자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 유난히 아름다운 까닭도 별 주변이 충분히 어둡기 때문인 것과 같은 논리일 것이다.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 역할을 해준 고마운 분들이 없다면 '스타'는 반짝일 수조차 없다.


  간만에 깊이 공감가는 '위인툰(만화 형식의 위인전)'을 읽었는데, 읽기에 눈이 너무 불편했다. 단조로운 블루 계통으로 통일을 한 덕분에 눈의 피로도가 매우 심했고, 조명이 조금만 어두워도 그림과 글이 분간이 되지 않을 정도로 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라리 '단색'을 고집할 것이었으면 '검정톤'으로 하는 것이 눈의 피로도를 줄여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이런 색감의 책은 기피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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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 이야기 - 물·불·흙·공기부터 우리의 몸과 문명까지 세상을 만들고 바꾼 118개 원소의 특별한 연대기
팀 제임스 지음, 김주희 옮김 / 한빛비즈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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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을 구성하는 가장 기본적인 요소를 '원소'라 한다. 그 원소를 '주기'와 '특성'으로 반듯하게 줄세워 놓은 것은 '주기율표'라고 부르고 말이다. 그렇게 우리가 찾아낸 118개의 원소에서 벗어나는 물질은 온 우주를 통틀어도 찾아볼 수 없다. 왜냐면 자연적으로 만들어지는 원소는 92개 뿐이고, 그 이상의 원소는 인간이 억지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래서 원소는 118개보다 더 많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이상으로 덩치(?)가 커져버린 원소들은 매우 불안정한 탓에 만들어지자마자 소멸해버리는 의미없는 원자가 되어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주기율표에 나열된 118개의 원소가 우리 일상에 미치는 영향은 과연 어떤 것일까.


  먼 옛날에는 물과 불, 공기, 흙 따위를 '원소'라 불렀다. 이 네 가지가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본'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이를 '4원소설'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원소가 아니다. 오늘날의 상식으로 물은 '수소'와 '산소'가 결합해서 만들어졌기에 '순수함'을 잃어 버렸고, 불과 공기, 흙도 원소가 아님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의 상식에 비춰보면, 원소는 '양성자'와 그 양성자를 붙들어매는 '중성자', 그리고 양성자와 중성자로 이루어진 핵 주위를 돌고 있는 '전자'로 구성된 순수한 물질이다. 그리고 이 순수한 물질들은 저마다 '고유한 성질'을 가지고 있어 세상의 모든 물질을 이루는 '근본물질'로 삼았다는 것이 가장 핵심이다. 따라서 우리는 '원소'를 모르고서 살 수는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원소'에 대해서 아는 것이 그리 많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아니, 오히려 '원소'와 관련된 '화학'이라는 말을 너무 싫어하고, 심지어 혐오하기에 이를 정도다. 어떤 음식에 '화학조미료'를 넣었다는 문구만 적혀 있어도 먹지 말아야 할 음식으로 여기고, 여느 물건에 '화학처리'를 했다는 것이 알려지면 값어치가 떨어질 정도니까 말이다. 그래서 '화학'이란 낱말 대신, '천연'이라는 말을 대신 써넣곤 한다. 그러나 사실은 '화학'이나 '천연', 모두 똑같은 '원소'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심지어 우리 몸을 이루는 '구성물질'도 원소의 집합체일 뿐이다. 다만, 그 원소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고, 조합을 잘 이루고 있는지에 따라 저마다 다른 개성을 뽐내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심지어 구성물질도 수소, 산소, 탄소, 질소, 칼슘, 인, 황, 소듐(나트륨), 포타슘(칼륨), 염소, 마그네슘, 규소, 철, 아연, 구리, 망간, 불소, 크롬, 셀레늄, 몰리브데넘, 코발트..로 모두 똑같다. 그러므로 우리는 화학을 비롯해서 '원소'에 대해서 잘 알아야만 한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시중에 '원소'에 관한 책들이 정말 많다. 그 가운데 어느 책을 읽어도 과학상식을 얻는데 많은 도움을 줄 테지만, 이 책 <원소이야기>에만 담겨 있는 이야기가 있다. 그건 바로 '과학'을 넘어 '일상'에서 만나는 원소상식이 아주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책은 '원소에 대한 과학책'에 가깝지만, 이 책은 '원소에 관한 한 편의 에세이'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을만큼 쉽고 재밌다는 점이다. <원소사냥꾼에 대한 이야기>, <완벽한 원자모형을 찾기 위한 과학자들의 고군분투>, <한 눈에 쏙 들어오는 깔끔한 주기율표는 누가 완성했을까>, <전기로 완성되는 금속원소의 짜릿하고 숨겨진 이야기>, 그리고 <생명을 구성하고 세상을 뒤바꾼은 원소에 감쳐진 속사정>까지 읽고 나면 학창시절에 화학을 싫어하던 독자였을지라도 책장 하나하나를 넘길 때마다 숨죽이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물론, 이 책이 아주 쉽지 만은 않다. 양자물리학과 다를 바 없는 양자화학과 양자전기학의 세계로 이끌며, 툭하면 우주로 날아가버리는 저자의 설명에 어이가 없다가, 정반대로 쿼크와 힉스보손, 광자, 그리고 미립자의 세계로 초대해버리는 광란의 원자이야기에 넋을 놓고 일쑤요,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무런 걱정할 것이 없다. 그런 '고차원적인 이야기'는 둘째치고 오직 '원소이야기'에만 집중하면 어렵거나 말거나 아무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저자가 뭘 설명하든 결국엔 "원소란 그런 것이다. 그 원소로 우리는 요리를 하고, 티비를 보며,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고, 밤하늘에 우주쇼를 관측할 수 있다"는 것만 이해하면 된다.


  그만큼 화학(원소)은 일반상식에 가깝고 우리 일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그러니 꼭 알아야 한다. 그래야 '가습기살균제'로 일어난 피해 따위와 같은 불행한 일이 재차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상식적으로 '가습기'는 물분자를 기화시켜서 수증기로 만드는 장치다. 그런데 그런 가습기를 '소독'하겠다고 '살균제'를 넣고 함께 기화시켰으니 '수증기'가 아니라 '독성기체'를 흡입하는 장치를 만든 셈이다. 그것도 환기도 시키지 않은 채 말이다. 우리가 간단한 과학상식이 없을 때 벌어지는 어처구니 없는 참사였다. 어디 이 뿐이랴. 전 지구적으로 일어나는 자연재해와 인공재해도 모두 '원소상식'만 가지고 있으면 피해를 줄이고, 대책을 마련할 수도 있다. 이렇게나 유익한 '원소이야기'를 아직도 읽지 않는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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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한중일 세계사 3 - 일본 개항 본격 한중일 세계사 3
굽시니스트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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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일본개항'이다. 19세기말, 일본이 쇄국에 이어 개항을 하기까지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의 패배' 이후에 굴육적인 개항과 '태평천국의 난'이란 대혼란을 맞은 것처럼 일본도 실질적인 권세를 누리던 막부가 굴욕적(?)인 개항 이후에 '존왕양이의 대혼란'을 겪으면서 권력의 핵심이 막부에서 일왕으로 넘어가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엿볼 수 있다. 같은 시기 조선에서도 '세도정치의 폐해'가 극심해지면서 혼란기를 맞이하지만 서구열강의 침략이 '같은 시기' 중국과 일본에 비해 덜했던 터라 말도 못할 정도로 국력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었던 것은 '동북아 삼국'이 공통으로 겪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중세 이전까지만 해도 국력이 하늘을 찌를 기세였던 '동북아 삼국'이 몇 백년만에 역전해서 맥을 못추는 지경에 이르게 된 것일까? 하루가 멀다하고 피 튀기는 싸움과 함께 '근대화'를 맞이할 만큼 이성이 깨이는 '계몽주의'와 '과학의 발달', 그리고 그 정점이었던 '산업혁명'이 폭발적으로 일어나면서 서양의 괴력이 뿜어져나오고 있었는데도, 아시아와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는 상대적으로 '근대화'가 뒤쳐졌던 탓에 '서양의 제국주의 팽창'을 막을 방도도 찾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만 것이다. 그런 까닭에 '문명국'으로 앞서던 동양의 여러 대국들이 차례차례 서양의 제국주의 침략에 힘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맥없이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암튼, 작금의 세계화를 이끄는 서양의 선진국들이 주춤하는 사이에 발빠르게 선도국가로 발돋움하고 있는 대한민국을 보면서 이 책 <본격 한중일 세계사> 시리즈를 볼작시면, 우리가 얼마나 뒤쳐졌다가 '대역전'을 이루며 앞서나가고 있는지 한 눈에 비교해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경험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이 책 시리즈의 참 매력일테고 말이다. 자, 지금부터 '일본개항'을 소개하겠다.


  일본은 일찍이 포르투갈 상인을 통해서 '조총'을 수입하며 서양의 앞선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양새를 취한다. 허나 서양의 문물과 함께 '그리스도교'라는 종교까지 들어오게 되자 '살아있는 신'이라 불리는 일왕을 모시는 일본인들의 정신적 건강(?)에 심히 해롭다는 결론을 내리고 '쇄국'에 돌입하고 만다. 서양을 향한 유일한 통로는 '네덜란드(화란)'를 파트너로 삼는 것으로 만족하고 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쇄국을 이어오며 외국인을 철저히 못 들어오게 하였는데, 중국 청나라가 '아편전쟁'에서 서구열강의 공격에 맥없이 패배하고 굴육적인 '불평등 조약'을 맺고 후덜덜해진 상황이라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게 된다.


  바야흐로 '쇄국'을 철회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실세는 '막부'에 있었다. 막부를 이끄는 '쇼군'이 지방영주인 '다이묘'들을 다스리며 일본 전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고 있었으니, 당연히 외국인들도 그런 '막부'와 조약을 맺고 이권을 챙기려 했다. 허나 일본은 '막부'가 다스리고 있긴 하지만 형식적으로나마 '일왕'이 다스리는 '만세일계의 신(神)국'이었기에 쇼군은 일왕에게 승인을 밟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며 '유예기간'을 달라고 한다. 이때가 바로 페리제독이 이끄는 '흑선'이 함포를 발사한 뒤에 서양과 첫 외교를 시작한 신호탄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일본 내부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았던 터라 '외세의 압력'에 개항을 결정했더라도 수월하게 진행될 수는 없었다. 당시 실질적 권력을 쥐고 있던 '막부의 권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일왕'에게 충성을 다하며 일본의 자존심(?)을 바로 세우겠다는 '존왕양이 운동'이 지방 사무라이들을 중심으로 널리 퍼져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왕에게 충성하겠다는 것은 '왕조국가'의 당연한 진리이며, 유교국가에서는 으뜸으로 취급받던 자연스런 사상이었지만, 일본은 '일왕'에게 충성을 받치되 '권력의 중심'은 막부의 우두머리인 '쇼군'에게 있었기에 일본의 무사집단은 일제히 쇼군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일본의 '이중적인 행태'가 일본의 개항을 맞아 대혼란의 빌미가 되고 말았던 것이다.


  다시 말해, 서양의 위협에 막부가 오금을 지리며 무력하게 개항 조약을 맺는 모습을 보면서 '일본의 자존심'이 짓밟혔다는 여론이 형성된 것이다. 그래서 이참에 무력한 막부를 탓하고 못난 짓을 서슴지 않는 쇼군을 타도하자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단숨에 '일왕파'와 '막부파'로 일본의 사무라이들이 갈라서게 된 셈이다. 여기에 '막부파'는 쇼군자리를 놓고 '개혁파'와 '구세력'으로 갈라져 권력승계 다툼을 벌이게 되니, 개항조약에 사인을 받으러 미국을 비롯한 서구열강들이 찾아올 날짜는 다가오는데, 일본 내부에서는 혼란만 가중되어 해결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질 않으니 난감하기 이를 데가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되고 만다.


  그도 그럴 것이, 서양 세력에 맞설 수 있는 실질적인 힘도 '막부'에게만 있는 상황이고 보니, 문명개화가 덜 된 일본은 '닥치고 막부에 충성'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었다. 허나 서양의 힘을 제대로 알기는커녕 대충이라도 가늠할 줄 모르던 '일왕'과 '존왕양이 지사들'은 이 기회에 막부에 대한 불만을 쏟아내며 '막부 흔들기'에 열중했던 것이다. 서양의 강력한 힘을 감지하고 '당장'은 납작 엎드려서 소나기는 피해가자는 현실적인 대안을 실천중이던 막부로서는 답답할 상황이 펼쳐진 셈이다. 그 와중에 권력의 구심점이 되어야 할 '쇼군'이 병약하고 무능한 어린아이들로 명맥을 이어나갔다는 것도 불운이라면 불운이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일본은 '막부의 나라'였기에 막부는 '내우외환'을 맞아 어찌어찌 버틸 뿐이었다.


  한편, 서양은 왜 일본에 눈독을 들이고 있었을까? 아직 영국은 두 차례에 걸친 '아편전쟁'을 치르며 청나라를 요리하기에 바빠 일본까지 넘볼(?) 기회를 찾지 못했다. 그 사이에 미국과 러시아가 먼저 일본을 선점하려 했는데, 미국은 '고래잡이의 전진기지'로 삼고자 했으며, 러시아는 영국의 눈을 피해 '부동항'을 차지하려고 각각 일본을 최적의 장소로 손꼽았던 것이다. 당시 '고래기름'은 석유가 나오기 전까지 '산업의 에너지원이자 윤활유'였던 탓에 태평양에서 원활한 고래잡이를 하기 위해선 일본에 안전한 정박지를 만들어놓는 것이 미국에게 절실했던 것이다. 반면에 러시아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으로 정신이 없는 청나라를 대신해서 '연해주 일대'를 러시아가 다스리겠다면서, 어차피 영국이나 프랑스에게 빼앗길(?) 바에야 오랜 친분(?) 관계에 있는 러시아가 대신 차지하는 것이 청나라에게도 이득이 아니겠냐는 해괴한 논리를 펴서, 그토록 염원이었던 '부동항'을 차지하기 위한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그러기 위해서 러시아는 만주를 비롯해서 사할린과 그 아래에 있는 여러 섬들을 차지함과 동시에 일본의 항구를 기착지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조약을 맺길 원했던 것이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치며 일본은 미국과 '불평등 조약'을 맺는 것으로 시작해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러시아와도 '최혜국대우'를 포함한 불평등한 계약서에 도장을 찍게 된다. 이후에 펼쳐질 내우외환의 깊은 내막이 곧 펼쳐지게 될 것이다. 그에 앞서 4권에서는 '태평천국, 그 이후'가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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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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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시나 내 취향은 '텍스트'였다. 영상이 주는 감동과 아름다움에 가려져서 읽어낼 수 없었던 '숨겨진 내용'을 소설을 읽으면서 곱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긴 '영화'가 원작이고, 영화의 인기를 반영해 지어낸 '소설'로 또다시 그 인기를 증명하였기 때문에 '원작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감동은 여전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이해도' 면에서는 확실히 소설이 월등히 나았다.


  내가 원작영화를 보면서 놓쳤던 부분은 '광부들의 파업'과 '대처 수상의 똥고집'이 가지고 온 영국 저소득층의 슬픔이었다. 대영제국으로 영광을 누리던 시절, 석탄을 캐는 광부는 '산업역군'이었으며 영국을 명예를 지켜낸 영웅들이었다. 허나 '석탄산업'이 저물고 대영제국이라는 타이틀도 내려놓을 즈음에는 광부들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광부들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해서 석탄을 캐려고 했지만, 석탄산업은 저물고 석탄을 캐내면 캐낼수록 적자를 보는 퇴물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이에 마가렛 대처는 과감한 개혁드라이브를 시행했으니 퇴물이 되어 버린 탄광을 아예 폐기처분하는 방법으로 영국경제를 되살리려 했던 것이다. 당연히 광부들은 파업을 하며 강경하게 대처했다. 생존권이 달린 '나쁜 정책'을 지지할 멍청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처는 막무가내였다. 광부들을 살리려면 영국 전체가 죽어야 한다면서, 광부들에게 스스로 '희생양'이 되어 줄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빌리네 아빠(재키)와 형(토니)는 이런 일련의 경제정책의 희생자였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빌리는 '발레'를 접하게 된다. 막연하게 권투를 배우며 '남성성(?)'을 익혀가던 빌리는 권투에 집중하기보다는 '춤'에 가까운 권투를 하다가 얻어맞기 일쑤였다. 마침 권투연습을 하는 장소에 발레수업이 동시에 펼쳐지는 우연이 겹치면서 빌리는 자신의 내면에 감춰진 '춤에 대한 본능'을 깨닫게 된다. 다시 말해, 권투 동작에 발레(춤)를 접목시킨 것이다. 이런 해괴망측한 짓을 거쳐 빌리는 '발레동작'에 매료되어 갔고, 결국엔 권투수업은 때려치우고 발레수업을 몰래 듣게 된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물론 '발레선생님'과 '그 딸'은 빼고 말이다.


  발레선생님은 한눈에 빌리의 천재성을 알아본다. 그리고 개인수업을 해주며 '발레 오디션'을 준비하게 한다. 하지만 생계조차 버거운 빌리네 가족은 빌리가 오디션에 참가하기 위해 필요한 '참가비'조차 마련하기 힘들 정도다. 아빠와 형 뿐만 아니라 (탄광)마을사람 모두가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마당에 모두가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 대가로 생계를 꾸릴 수 있는 '대안'을 대처가 제시하기는 했지만, 파업참가자들은 그런 대안을 선택한 사람들을 '배신자'라고 부르면서 온갖 모욕적인 말과 린치까지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험악한 분위기에 자신들의 생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빌리의 발레 참가비'를 선뜻 내어줄 사람은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정말 절박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런 어려움을 뚫고 빌리는 '로열발레학교'에 당당히 입학하였고, 발레리노(남자무용수)로 성장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 적에 흠뻑 빠졌던 <백조의 호수>의 주연을 당당히 맡아 '비상'하게 되는 것으로 소설은 마무리 된다. 물론 '원작영화'도 그렇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와 소설이 대박을 치자, 실존 인물이 궁금한 것은 당연지사다. 필립 모리스가 바로 그 사람이다. 언론에는 '필립 말스덴'으로 소개되곤 했지만, 그의 본명은 '모리스'가 맞단다. 그의 일생은 영화에서 보여준 것이 대부분 맞다고 한다. 발레를 몰래 배우지 않고 3살부터 여동생과 함께 배웠다는 것과 발레보다는 '탭 댄스'를 추고 싶었다는 점이 다를 뿐, 가난한 탄광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것도 사실이고, '로열발레단'에 입학한 것도 모두 사실이란다. 참, 그리고 '가난한 애'가 '고급학교'에 다니면서 열등감을 느꼈던 적도 없단다. 영화나 소설에서는 그런 '열등감'을 살짝 언급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그보다는 '동성애자'라는 오해가 가장 큰 고충이었다고 한다. 발레 같은 것은 여자들이나 하는 것인데, 남자가 '여자의 춤'을 춘다는 것 자체가 그런 오해를 불러오기 마련이라고 말이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이 그를 가장 괴롭게 했단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소수자에 대한 편견'은 자연스런 현상인 모양이다. 특히나 '동성애자'는 비정상인으로 취급 받으며 온갖 나쁜 짓을 받아 마땅한 불결한 존재로 취급하였으니, 발레를 배운다는 것조차 '몰래' 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상황이었으리라.


  그러나 진정한 아름다움은 그 어떤 편견과 시련도 한방에 날려버리기 마련이다. 빌리가 무대에 등장하면서 세상 그 어떤 '백조'보다 강렬한 인상을 보여주며 그 어떤 점프와도 비교할 수 없는 '비상'으로 관객들을 매혹시켜버리자 '동성애자'에 대한 편견도 한 방에 날아가 버린 것이다. 정상인들이었을 '관객'들이 한 눈에 반해버린 존재가 '비정상인(소수자)'가 되어선 안 되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러고 보면 세상은 참 얄궂다. 반푼 쯤 모자란 바보들이 '천재'를 바라보면서 박수갈채를 보내곤 하지만, 그 천재가 진정으로 '비상'하기 전까지는 '날개짓'도 할 수 없게 꺾어버리려 들기 때문이다. 어쩌면 바보들은 자신들의 재주없음을 한탄하며 '천재들의 날개짓'을 시샘하는 본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온갖 편견을 내비치며 '또 다른 천재'들의 등장을 일사분란하게 막아내는 것을 보면 말이다. 자신과 '다름'에 매우 불편한 심기를 표출하는 바보들에게 쓴소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나조차도 그런 바보같은 짓거리를 서슴지 않고 뿜어내기 때문이다.


  우리는 '바보들의 행진'을 멈춰야 한다. 여자가 축구하고 남자가 설거지하는 '일상'이 평범해질수록 우리 사회는 건전해지기 때문이다. 여자는 '집안일', 남자는 '바깥일'을 해야 한다는 시대적 오류는 과거에 묻어두어야 한다. 그땐 그랬지..라면서 추억할 꺼리도 못되는 것을 애써 끄집어 내어서 '사회적 편견'의 소재로 쓰이면 참으로 곤란하다. 그냥 '인간'일 뿐이다. 남자든 여자든 '똑같은 인간'이란 말이다. '인간차별'이 어색하고 모욕적으로 들린다면 '남녀차별'이라는 말도 써서는 안 된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남들의 시선'이 두려워서 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없으리라 본다.


  누가 뭐라든 '나를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당당히 드러낼 수 없을만큼 부끄러운 짓은 살인과 같은 '폭력'을 저지르는 짓이다. 그 어떠한 폭력도 용납할 수 없는 까닭이 바로 '부끄러운 짓'이기 때문이다. 허나 '동성애'가 남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동성애자'를 범죄자 취급하며 마녀사냥하듯 몰아붙일 일이 전혀 아닌 것이다. 딴에는 '동성애'가 종족번식을 차단하는 '사회악'으로 작용한다며 거품을 물고 반대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면 아기를 갖지 못하는 '불임부부'와 '난임부부'도 마찬가지로 사회악으로 대우할 셈인가? 외모에 편견을 갖고 '변형된 유형'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잘 생기고 예쁘면 '무죄', 못 생기면 '유죄'와 무엇이 다를 것이냔 말이다.


  요즘 넷플릭스에서 방영하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인해 '자폐스펙트럼 환자(일명 '자폐증')에 대한 시선이 달라졌다고 한다. 세상에는 참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들 중에 '똑같은 사람'은 없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통사람'을 정상으로 놓고 '평범함'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분명히 '다른 사람'인데도 '똑같지 않으면 불편해 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단 얘기다. 우리는 모두 '다른 사람'일 뿐이다. 그런데도 평범해 보이려 애쓰지는 말길 바란다. 각자의 개성을 존중하는 성숙한 사회를 꿈꾸는 건 인지상정 아니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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